[신춘문예/소설 당선작] 후레쉬 피쉬 맨(김종은) - 1 그 때 우리는 나무 궤짝에 담겨 있었다. 어린이 야구단에 입단했던 날이나 아버지가 자전거를 사주시던 날처럼 눈에 보이듯, 고개만 돌리면 뒤편에서 당장이라도 펼쳐질 것 같은 기억은 아니지만 그것은 날이 지날수록 점점 선명해졌다. 우리는 분명 나무궤짝에 담겨 있었다. 궤짝에 담겨 있었다는 것은 물론 자랑할만한 일이 못 된다. 그러나 불툭불툭 솟아오르는 기억을 어쩌겠는가. 굳이 감출 필요는 없는 것이다. 억울하다거나 뭐 그런 일은 없었다. 종종 그 때의 일을 회상하곤 하는데, 상상하기 힘들겠지만 경험에 의하면 실제로 그것은 그리 나쁜 일만도 아니었다. 몸에 온통 비린내가 배어 버렸다는 것을 뺀다면. 우리가 담겨 있었던 궤짝은 여러 장의 얇은 판자조각을 엮어 만든 부실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 바닥의 가운데 판자는 물기에 젖어 절반 이상이 썩은 탓에 흡사 눅눅한 종잇장처럼 위태로웠고, 옆의 것은 작고 녹슨 못을 늙은 개의 흉한 이빨처럼 드러내고 있었으니 그 부실의 정도는 이루 짐작할 수 있으리라. 보고 있노라면 바닥에 떨어져 머리가 깨지는 혹은 허리를 찔리는 참혹한 고통을 상상해내기가 어렵지 않아서 아주 오싹했다. 우리는 눈알을 굴리며 바닥과 모서리 모두를 경계해야 했다. 어째서 이곳에 이렇게 모이게 되었는지 따위의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오로지 우리는 서로 몸이 흔들리지 않도록 안간힘을 쓰는 데에만 집중했다. 코를 찌르는 수돗물의 역겨운 냄새와 진흙 투성이의 장화에 머리가 짓눌렸던 고통과 더불어 던져지듯 궤짝에 담겨졌던 순간의 아찔함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우리는 온 몸에 힘을 넣고 빳빳한 자세로 그 모든 것들을 견딜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자칫 방심했다간 녹슨 못에 허리를 찔릴지도 모르는 일이 아닌가. 그러는 동안 우리가 담긴 궤짝은 끊임없이 어딘가를 향해 움직였다. 도착지가 어디인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었다. 그저 끌려가고 있을 뿐이라는 참담한 현실이 마치 누군가 알몸 위에 수많은 얼음 덩어리를 올려놓은듯 혹독한 추위만을 전해줄 뿐이었다. 그러한 이유로 우리는 단 한번도 눈을 감을 수 없었다. 도착한 곳은 우리가 떠나온 곳만큼이나 넓고 밝았으나 무척 시끄러웠다는 점에서 달랐다. 유혹처럼 밝은 할로겐 불빛 주위로 온갖 소음들과 발자국 소리가 가득했다. 그럼에도 우리가 담겨온 궤짝과 별반 다르지 않은 곳이었다. 그것은 분명 괴상한 일이었다. 가까스로 몸을 일으킨 우리는 우리와 비슷한 처지에 놓여있는 수많은 것들을 보게 되었다. 무엇인가 가득 담겨있는 수많은 궤짝들. 무한한 궤짝들의 행렬. 궤짝을 담는 또 하나의 궤짝. 급기야 선연히 이곳이 또 하나의 거대한 궤짝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는데, 그렇게 되기까지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린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단지 양의 문제였던 것이다. 잠시 후 우리가 담겨 있던 궤짝 위로 또 다른 궤짝이 올려졌다. 이번에 우리는 무시무시한 어둠과 맞닥뜨려야 했다. 정확히 그 어둠만큼의 두려움이 엄습했으나 우리 모두는 지쳐 있었으므로 그저 축 늘어져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 때, 어쩐지 나는 탈출을 생각했다. 힘주어 팔다리를 움직이며 소리를 지른 것이다. 그런데 입 밖으로는 아무런 소리도 새어 나가지 않았고 오히려 공허한 빈 입의 움직임만이 남아 더욱 더 고요해지는 것이 아닌가. 팔다리는 마치 지느러미처럼 힘없이 바닥과 벽을 내리치며 기껏해야 탁탁 정도의 소리밖에 내지 못했다. 마치 지느러미처럼. 그 때 문득 깨달았다. 나는, 아니 우리는 물고기가 되어버렸구나. 그래. 이곳은 거대한 도매상 혹은 물류창고, 아니면 쇼핑센터쯤 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물고기, 그 중에서도 이제 막 잡힌, 그러니까 생선이 된 거야. 두려운 어둠 속에서. 제길, 생선이 되어버리다니. 정말이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사방에서 떨어지는 물소리가 들리고, 온 몸은 축축해졌다. 아마도 그 때 이 지긋지긋한 비린내가 배어 버린 모양이다. 그것이 전부였다. 다시 말하지만 생선이 되었다는 것. 물론 상상하기 힘들겠지만 경험에 의하면 그것은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 때 우리가 무시무시한 갈고리에 대해 하던 이야기를 그만두고 서로 누가 더 싱싱한가란 문제를 놓고 열띤 토론을 벌일 수 있었을까. 토론은 흥미롭지 못했다. 쓰레기 같은 단어들이 오가고, 나는 슬그머니 빠져나와 구석에 기대어 노래를 부르기로 했다. 그때까지 나를 제외한 모두들은 파닥거리며 하던 이야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는 입만 뻥긋거렸다. 당연하지 않은가. 생선 주제에 토론은 뭐고 노래는 뭐란 말인가. 슬프게 움직이는 입 모양. 나의 말들. 나무궤짝 구석에 홀로 누워있던 나는, 그래도 노래를 멈추고 싶지 않았다. 망연한 입놀림만으로 부르는 나의 노래를 들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문득 동그란 두 눈에, 끔벅거리지도 못해 늘 놀란 것처럼 동그란 두 눈에 눈물이 고여, 소리없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나는 물고기. 나는 생선. 너도 물고기. 너도 생선. 나는 궤짝에 담겨있었네. 위태롭게 담겨있었네. 나는 팔려간다네. 우리는 팔려간다네. 맑은 눈과 푸른 등 줄을 서로 뽐내지만, 그깟 것 무슨 소용이람. 신선하게, 신선하게. 그러면서 내 머릴 눌러 밟아, 던져지면 또 다시 궤짝일 뿐이지. 궤짝에선 늘 누워있어야 하지. 똑바로 서고 싶어. 푸른 바다에 허리를 곧게 펴고 다시 서고 싶어. 정신을 잃고 다시 생각해보면 그래, 나는 그때 궤짝에 담겨있었네. 이제 곧 모든 것은 멈춰질 테지. 나는 신선한 생선 한 마리. 오싹한 한기가 느껴졌다. 그리고 숨이 턱 막혀버릴 만큼의 엄청난 굉음이 들렸다. 그것은 마치 무엇인가 무너지는 소리 같았다. 노래를 채 마치기도 전에, 아니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왜 눈물은 흐르다 멈추었는가. 왜 녀석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가. 왜 몸은 움직이지 않는가. 아니 입은, 그리고 눈은 왜 깜박이지 않는가. 아, 추웠다. 조금 전까지 미치도록 추웠다. 큰 소리를 내며 무언가 내게 다가왔다. 아니 굴러떨어져 내려 순식간에 모든 것을 덮어버렸다. 아 그것은 혹독한 추위. 혹독한 얼음 덩어리들이었던가. 멈춤. 모든 것은 정지되었다. - 내 친구의 소설, 「a fresh fish man」 전문, 혹은 일부 - 그 때는 언제였던가. 하던 말을 멈추고 눈을 감아본다. 「신선한 생선 사나이」를 이미 고교 삼 년 시절에 집필해 낸 훌륭한 작가였던 친구와 나는 불치병에 걸렸다. 아니 걸리고야 말았다. 물론 우리가 파란 줄무늬의 십자가가 덕지덕지 붙은 촌스러운 병원 옷을 입고, 그 냄새나는 침대에 누워 한 달 이상 끙끙 앓다가, 찾아오는 가족이나 친구가 뜸해지는 순간, 그러니까 낡은 병원 냉장고에는 최후의 유통기한을 이틀 앞둔 다 늙어빠진 복숭아 통조림만이 덩그러니 남는 그런 순간, 담당의사로부터 아주 심각하게, 노력은 해봤지만 어쩔 수가 없소, 라든가 당신네 둘은 말이야 현대의학의 궁지에 몰리고 말았소, 혹은 좀 더 기다려 봅시다, 그러나 각오는 해 두는 것이 좋소 따위의 진부한 대사를 들은 것은 아니다. 의료기관이 내어주는 공인된 판정이라면 단 한 번도 받은 적이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를 스스로 우린 불치병에 걸리고 만 거야 하고 그늘진 양화대교 아래에서 팩 소주나 들이키는 그런 인간쯤으로 생각하지는 말아줬으면 좋겠다. 최소한 나와 친구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병을 확실히 진단해 낸, 흔한 말로 내 병은 내가 잘 안다는 식의 현명한 청년이었으니까. 아마도 그 때, 겉으로 드러나는 증상이라면 나와 친구는 그리 다르지 않았다. 얼굴이 약간 창백하고 식욕이 없으며 덕분에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꺼린다는 것. 물론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우리와 절친하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의 모임 같은 것을 만들면 모임장소로는 적어도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쯤은 고려해야 할 테니까. 그렇게 타인과의 관계를 적절하게 조절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우리가 사람들을 잘 만나려 하지 않는 것은 앞서 말한 바 우리의 불치병 때문이었다. 증상은 그리 대단치 않은 것이었지만 그 결과를 상상해 보자면 너무나도 무시무시해서 잠을 이루기가 힘들었다. 나의 경우 생명에 치명적인 상처를 줄만한 것은 아니지만 친구는, 적어도 지금과 같은 식이라면 당장 내일이라도 죽어버릴 것만 같아 늘 초조했던 것이다. 검을 줄을 두른 녀석의 사진을 들고 장례 행렬을 이끄는 모습을 상상하자면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런 의미에서 결국 나의 결과도 끔찍하긴 마찬가지였다. 기껏 사귄 친구가 죽어버린다는 일은 너무나 가혹하지 않은가. 그런 일은 나에게 있어서도 최악이다. 하지만 그것은 정말이지 최악의 경우이므로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물론 장점도 있었다. 증상과 관련하여 우리는 혼자 시간을 보내는 면에 있어서 그 누구보다도 탁월했기 때문이었다. 독서와 음반수집, 비디오 감상, 컴퓨터 채팅, 인터넷 접속, 낙서 등 종류도 다양했다. 누구나 다 하는 것들이라고? 물론. 그렇다. 그건 혼자 시간을 보내는 혹은 보내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탓이다. 혼자서 동시에 얼마나 많은 것들을 할 수 있느냐에 매달려서 말이다. 이런 것들은 아주 재미있는 것들이긴 하나 그럼에도 우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껌처럼 책상에 들러붙은 채 미분이나 적분 또는 영어로 된 원소를 노트 위에 적어 쪼개고 합치는 등 부질없는 짓을 하는데 소비해야만 했다. 그러고 있자면 정말 껌처럼 몸이 딱딱해져서 누군가 다가와 떼어주기 전에는 꼼짝도 할 수 없었던 경우도 있었다. 친구와 나는 고교 동창이었다. 그래 그 때였다. 나는 녀석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다. 자식, 얼굴이 하얀 걸 보니 변비를 앓고 있나 하는 정도 이상의 생각은 하지 않은 것이다. 녀석과 나는 엄연히 다른 부류였다. 물론 지금도 같은 부류가 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 때는 지독히 무더운 여름이었다. 체육시간이었는데, 홀수 번호와 짝수 번호로 편을 나누어 야구시합을 했었다. 운동장 면적관계로 약식 야구를 할 수밖에 없었는데 당시 나는 투수였다. 이것은 지금 돌이켜 보아도 놀라운 일이다. 아무튼 여러모로 특별한 날이었다. 나는 사람마다 보이지 않는 실을 하나씩 달고 있어서 하늘의 신들이 그 끈을 잡고 장난을 친다는 어떤 추운 나라의 운명과 관련된 신화를, 그 인연을 굳게 믿는다. 왜냐하면 더운 여름날에 고교 삼 년 반이 체육시간을 지켜 수업을 강행한다는 것 자체가 극히 드문 일이었고, 종목을 야구로 선택하다니, 더욱 드문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투수를 하고 싶어하는 수많은 아이들 때문에 회마다 돌아가며 공을 던지는 룰을 택했음에도 불구하고 내 차례에 녀석이 타석에 섰다는 것은 분명 누군가 내 끈과 녀석의 끈을 잡고 장난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 아닌가. 아무튼 약식 야구였음에도 정식으로 공을 던지고 만 나는 그 가공할만한 스피드를 견디기 위해 허리를 잔뜩 굽혀야 했고 - 정말이지 나이스 피칭이었다- 그 바람에 녀석이 퉁퉁한 야구공을 얼굴로 쳐내고 주저앉아 코피를 흘리며 바닥에 쓰러져 있다는 것을 한참 후에야 알게 되었다. 규정이란 늘 지키지 않으면 사고가 나기 마련이다. 담임인 체육 선생은 등나무에 드러누워 모자를 푹 눌러쓴지 오래 되었고 때문에 많은 아이들이 한동안 허리를 꺾고 깔깔거렸다. 대부분 사태의 심각성을 잘 모르는 것같았다. 내 강속구의 위력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나는 순간 어떤 운명적인 위험 같은 것을 느꼈고, 녀석을 부축해 수돗가로 가 물을 튼 후 흐르는 피를 물로 씻어 주었다. 고만고만한 십 팔 세의 남학생이라면, 삼 분쯤 물로 닦고 고개를 젖힌 후 이 분 가량 코를 만져주면 그깟 코피쯤이야 툭 멎어버린다. 코피란 그렇게 치료하면 낫는 상처다. 그런데 녀석의 피는 멈출 줄 몰랐다. 녀석의 코에 댐이 하나 있는데 내가 그 둑을 무너뜨린 모양이었다. 아니면 녀석이 나를 더더욱 송구스럽게 만들기 위해 부러 콧구멍 안쪽에 비밀스레 만들어 놓은 댐의 모든 수문을 열어 놓은지도 몰랐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렇게 많은 피를 흘릴 수 있을까. 슬슬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생전 그렇게 무시무시하게 흐르는 피는 처음이었다. 영화 「살아난 시체들의 밤」보다도 더 생생한, 그것은 진정한 호러무비 그 자체였다. 머리칼이 쭈뼛 서는 냉기가 몸 전체를 휘돌았고 이내 두려워졌다. 코뼈가 부러질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고 만 것이다. 그런데도 어쩐지 나는 신경질을 부리고 있었다. 『뭐야, 왜 이렇게 멈추지 않는 거야?』 『어, 괘, 괜찮아. 원래 상처가 잘 아물지 않는 체질이야』 그렇게 녀석의 대답은 침착했다. 그렇게 말하고, 그렇게 징그럽게 순진하고 차분하게 말하고, 뭐랄까, 그것은 새벽 세 시의 안개 같은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친구는 그 자리에 픽 쓰러져 버렸다. 여성잡지를 감탄해가며 읽고 있다 달려나왔을 것이 뻔한 양호선생이 과다출혈이라고 말해주지 않았다면 나는 살인누명을 쓴 사람처럼 눈물을 흘리며 도망쳤을지도 모르겠다. 담임이었던 체육선생은 덮고 잤던 모자로 내 얼굴을 두드려대며, 잠이 덜 깬, 지독히도 컬컬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하지만 녀석이 죽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웠던 나는 그깟 모자 따위 개의치 않았다. 그런데, 잠이 덜 깬 상태에서도 호통을 칠 수 있다는 것은 참 신기한 일이었다. 아마도 그 때, 나는 절대로 야구선수는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것 같다. 『약식 야구잖아. 약식. 약식 몰라? 선생이 뭔 말을 하면 들어 쳐 먹어야 할 거 아냐! 안 그러던 녀석이 왜 그래?』 병원으로 실려간 친구는 과다출혈한 날로부터 구일이 지나서야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 미안한 마음에서 난 녀석의 옆자리에 앉기 시작했고 한동안 학교에서 녀석은 「과다출혈」로, 나는 「데스피칭」으로 통했다. 그러나 학교로 돌아온 후에도 녀석은 종종 수업을 빼먹곤 했다. 꽤나 중증인 모양이었다. 그렇게 되면 나는 또 영락없이 가해자가 되고 말았다. 죄를 진 것같은 기분에 나 데스피칭은 과다출혈의 집을 방문하기로 했다. 기집애도 아니고 병문안을 가는데 뭘 사 가야 할지 막막해서 나는 하는 수 없이 「눈 먼 믿음」이라는 밴드의 음반을 또 사고야 말았다. 당시에 나는 이런 음악들을 아주 좋아했었는데, 물론 지금이야 구질구질한 것같아서 잘 듣지 않는 편이지만, 아무튼 그 때는 늘상 그런 촌스런 신디사이저와 박력없는 드럼 소리만 들었다. 에릭 클랩튼이 기타의 신이니 어쩌구 하는 얘긴 다 영국 애들 말이고 나의 경우, 몸이 딱딱해지는 것을 방지하기엔 그런 음악이 아주 효과적이었기 때문이었다. 나한테 그 음반을 선물 받은 사람은 아마 백 명쯤 될 것이다. 그렇지만 모두들 그랬듯이 녀석도 아주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 당시 백 개 이상 구입했음에도 지금은 절판이 되어버린 걸 보면 그 음반은 모조리 내가 다 사버린 모양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노라면 어쩐지 외롭기도 했다. 아무튼 집이 꽤 컸음에도 녀석의 방은 지하에 있었다. 차고였던 걸 개조해서 세를 내어 주다가 그곳에 살고 있던, 그러니까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중년 부부가 나간 이후 다시 세를 놓기도, 그렇다고 차고로 쓰기도 뭐해서 녀석이 짐을 싸서 직접 내려왔다고 녀석은 제법 꼼꼼하게 말해 주었다. 『굉장했어. 그 중년부부. 남편이란 사람, 암 판정을 받고 불과 두 달만에 움직이지도 못하더라. 그러다 죽었어. 처음 이 방에 들어왔을 때 사방에 노끈이 매달려 있었어. 잡아당기면 방문이 열리는 줄, 불이 꺼지는 줄, 텔레비전이 켜지는 줄, 보일러 스위치가 돌아가는 줄. 그리고 포도봉봉 캔이 열 일곱 개. 오줌이 가득 들어있었지. 정말 굉장하지 않니?』『줄을 화장실에 매달아 힘껏 당길 생각은 없었나 보지?』 암이란 병은 참 신기하다. 엄청난 병인 것 같은 데 왜 그리도 주위에 걸리는 사람이 많은지. 감기 환자만큼 흔한 것같다. 그 때 절대 암 따윈 걸리지 않으리라 다짐해보기도 한 것 같다. 하지만 그게 뭐 내 뜻대로 되는 일은 아닐 테고 어쨌든 녀석의 이야기를 꽤나 진지하게 들었던 것만은 사실이다. 화장실 당기기 대목에서 녀석은 큰 소리로 깔깔거리며 웃어댔다. 그 날 이후로도 녀석의 집에 꽤 많이 갔었지만 늘 그 지하에만 있어서 실제로 집은 어떻게 생겨먹었고 가족들의 얼굴이 어떤지 지금까지도 알지 못한다. 녀석의 방에 놀러갔다, 라는 표현이 아주 정확할 것 같다. 가끔 녀석의 어머니가 크래커나 탄산음료 같은 것을 가지고 내려온 적은 있었는데, 늘 여기다 놓고 간다는 말과 함께 무슨 마녀처럼 사라져버렸다. 그런 이유로 녀석과 헤어질 때면 감방에 면회를 마치고 나오는 기분이 되었다. 촌스런 신디사이저와 박력없는 드럼 소리, 우는듯한 보컬의 노랫소리와 함께 녀석이 손가락을 책상에 톡톡 두드려댔다. 뭔가 말을 꺼내야 할 것같은데 좀처럼 입이 열리지 않아 나는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아주 의기양양하게. 녀석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담배 피우니? 넌 공부도 잘 하잖아』 『답답한 소리는. 머리 좋은 사람이 피우는 거야, 담배는. 상륙작전 같은 거 아무나 하는 줄 알아?』 『음, 맥아더…. 나도 하나 줄래?』 놀래라. 녀석이 예의 그 징그럽게 순진하고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무심코 한 개피 꺼내다가 나는 문득 멈추고 말았다. 또 어떤 사태가 벌어질지 모르니 그만두는 것이 현명한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이었다. 나 역시 차분하게 설명해 주기로 했다. 『담배가 한 갑에 스무 개피가 든 이유는 나이 때문이다. 스무 살이 되어야 피우는 거야. 난 학교를 좀 늦게 들어왔거든』 『한 개핀데 뭐. 돌잔치 치룬 지는 십 팔 년도 넘어』 녀석도 제법이었다. 하지만 녀석의 병은 상처가 잘 아물지 않는다는 것 아니던가. 만약 내가 무심코 한 개피 내밀어 녀석 폐의 섬모를, 그 보들보들한 털을 몇 개라도 죽이면 코피가 그랬듯 녀석의 상처는 여전히 아물지 않을 것이었다. 공기통로에는 점액들이 생겨나 폐포 내 공기주머니로 흘러 들어가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면 녀석은 꼼짝없이 서서 익사하거나 십 구 세부터 만성천식을 앓아 텔레비전 쇼 같은 데 나올 것이고 나는 텔레비전을 보다 머리털을 쥐어뜯게 될 것이다. 한 사람을 익사시키거나 평생 기침을 하게 만들었다는 자책에 시달린 나머지 따라 익사하거나 평생을 녀석의 호스피스 같은 일로 소비해야 할지도 몰랐다. 상상만으로도 충분히 끔찍했다. 『…알겠지? 평생 호스피스 같은 걸 하고 살아갈 순 없잖아. 난 네 형인걸』 우리는 처음으로 얼굴을 마주하고 큰 소리로 웃었다. 언제부터 이런 증상이 있었느냐고 묻자 녀석은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내 생각에 선천성 질병은 아닌듯 싶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선천성일 경우 지금도 배꼽에서 피를 철철 흘리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지하실이라 그런지 으슬으슬 몸이 떨려왔다. 방안에는 습기가 가득했다. 눈에 보이지는 않았지만 어딘가 물이 새고 있는 것같았다. 『어딘가 물이 새는 것같아. 이러단 금세 곰팡이가 필텐데』 『그러겠지. 어디에도 신선한 건 없어. 축축하니까, 조만간 곰팡이가 생기겠지. 상관없잖아. 어차피 우린 생선이니까』 그럼에도, 적어도 그 당시엔 녀석의 방과 웃음소리가 마음에 쏙 들었다. 하지만 생선 대목은 조금 의아했다. 내가 묻자 녀석은 잘 생각해 보면 생선이란 걸 금방 알 수 있다, 고만 했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방을 나설 때 녀석은 자신이 직접 썼다는 소설 「신선한 생선 사나이」의 일부를 나에게 주었다. 버스 안에서 나는 생선이 되어버린 우리들의 이야기를 아주 흥미롭게 읽었다. 다 읽고 보니 생선이라면, 전적으로 동감하는 바였다. 어쩐지 비린내가 나는듯도 했다. 친해진 우리는 꽤나 독특한 커플이었다. 늘 뒷짐을 지고 걸어다녔던 교장선생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 「불미스러운 사건」 이후 우리는 졸업할 때까지 체육수업을 받지 않았으며 담임이었던 체육선생은 수업시간마다 교탁에 엎드려 자느라 늘 허리를 불편해했다. 투덜대면서 자습이나 하라고. 녀석의 코피는 졸업할 무렵에서야 완전히 멎게 되었다. 부부가 닮는 이치로 친구도 시간이 지나면 닮기 마련이다. 놀라운 일은 아니지만 가끔씩 어 너도? 하는 식의 감탄이 종종 생겨나는 것이다. 나는 지금도 이런 것이 우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 조금씩 닮아갔다. 가을이 끝날 무렵부터 녀석은 지독하게 추위를 탔다. 대입고사 당일에는 겹겹이 옷을 껴입고 그 위를 머플러로 칭칭 동여맨 후 고사장에 나타났을 정도가 되었다. 미쉐린 타이어의 마스코트가 걸어오는 것 같았다. 『추위에 강해야 좋은 대학 간다니까』 나는 오리털 점퍼의 지퍼를 목까지 올리며 그렇게 말했다. 살갗을 갈라놓을 만큼 바람이 매섭던 겨울날이었다. 녀석은 추위 때문에 시험을 제대로 치루지 못했노라고 말했다. 어쨌든 녀석은 그렇게 성적이 조금 떨어진 관계로, 나는 추위에 단련된 관계로 원하던 바에 의해 우리는 같은 대학에 입학했다. 어차피 어느 대학 무슨 과 같은 것. 그다지 신경 쓰이는 일은 아니었다. 나란 이름의 흔하디 흔한 생선은 어디에 놓아도 팔려 나가기 마련일 테니까. 영등포에 있든 노량진에 있든 그것과는 상관없는 일이지. 팔리지 않는다면 겉모양이 부실하든가 몸 어딘가가 썩었거나 하는 문제지 수산시장의 문제는 아닐 꺼야, 라는 것이 고교시절부터 이어온 내 생각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이런 내 생각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 때, 녀석이 대학에 붙기를 간절히 기도했던 녀석의 어머니는 정작 녀석이 대학생이 된 그 추운 겨울에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우리에게 비스킷을 내어 줄 때처럼, 그렇게 마녀가 요술부리듯 떠나버린 것이었다. 『더 이상 도시락 쌀 일은 없을 테니까. 예상했던 바야』 물론 예의 덤덤한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지만 녀석은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무척 난감한 순간이었다. 녀석의 입술이 눈이 시릴 만큼의 새파란 색으로 변했기 때문이었다. 모형 항공기 모터라도 매달은 양 어깨를 부들부들 떨어대며 녀석은 춥다고 말했다. 녀석의 어머니 문제가 아니라, 추위에 떨어대는 녀석의 모습이 너무나 슬퍼서 나 역시 왈칵 울음이 쏟아져 나올뻔했다. 녀석의 방으로 들어가 녀석을 꼭 껴안고 장미 무늬가 어지럽게 그려진 붉은 담요를 세 장이나 덮었다. 비로소 녀석은 잠이 들었고 내 몸은 온통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녀석의 아버지는 늘 그랬듯 그날도 곁에 없었다. 아는 얼굴이 녀석뿐이므로 대학에 진학하고 나서도 우리 커플을 여전했다. 달라졌다면 우리의 이름이 불렸다는 것 정도일까. 더 이상 우리를 과다출혈이나 데스피칭으로 기억하는 사람은 없었다. 궤짝에 담겨오다 툭 내던져진 꼴이라니. 비린내가 진동했다. 학교 생활은 한 달만에 지긋지긋해졌다. 전혀 신선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신입생 여러분 환영합니다. 여러분의 꿈을 펼치시기 바랍니다. 자유와 지성을 키우는 곳. 넓은 세계를 확인하십시오. 현수막은 곳곳에 걸려 있었으나 사실 우리는 넓은 세계에 있다 더욱 좁은 곳으로 떠밀려온 것과 다름없었다. 그래서 나는 매일매일 여름날의 약식 야구를 그리워했다. 『우리 왜 이따위 걸 배우고 있는 거지? 넌 마음에 드니?』 생각했던 것과는 많이 다른 시간들이 계속되었으나 그럭저럭 견딜만했다. 견디는 것이라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어쩌면 우리가 견디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 결과일른지도 모르겠다. 대학생활의 시작과 함께 녀석은 몸을 추스리는 일을 했고 나는 호스피스처럼 녀석을 도왔다. 강의는 유치했고, 강의를 듣는 아이들은 더욱 유치했으니 우리에게 달리 할 일이란 게 있었을까. 풍선껌이거나 아니면 생선들. 언젠가 학교에 바라는 점을 써 달라는 무기명 설문지의 괄호를 나는 「교수의 뇌를 반만이라도 교체해 주시오. 제발」이라고 채웠으며, 친구는 「여기에 무엇을 쓰든 쓰지 않든 결과는 같다」라고 채웠다. 녀석은 이름까지 적은 모양이었다. 불만은 없었다. 강조하건대 단지 사람들과 어울리는 일을 좋아하지 않았던 우리들로서는 그런 것들쯤이야 모두 다 견딜만했다는 것이었다. 시험을 치르고 난 뒤 친구가 어깨를 긁으며 말했다. 『가려워. 제길. 그냥, 가려워』 최근 들어 녀석은 몸 여기저기가 심하게 가렵다고 종종 말해왔었다. 그리곤 감기에라도 걸린 것처럼 온 몸을 부르르 떨어대는 것이었다. 몹시 춥다고, 왜 이렇게 춥냐고, 그렇게 중얼거리는 것을 늘 덧붙였다. 우리의 생활은 늘 그랬다. 『이제 뭘 하지?』 새로 산 에어컨의 바람처럼 맑고 상쾌한 공기가 사방으로 떠다녔다. 녀석의 몸에 푸른 반점들이 돋아나기 시작한 것도 오월이 시작될 무렵이었다. 창백하리만치 하얀 녀석의 몸에 난 푸른 반점들은 맑은 구월 하늘에 떠 있는 구름 같기도, 소다수에 떨어뜨린 청색 잉크 방울 같기도 했다. 반점들은 녀석이 늘 가려워했던 부분과 정확하게 일치했으므로 나는 약간의 두려움을 느꼈다. 『대체 이게 다 뭐야? 넘어졌어?』 『모르겠어. 요즘엔 옛날 상처들이 다시 살아나는 것같아. 최근엔 다친 기억이 없는데 자꾸 이래.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기억이 나. 예전에 다친 상처들이야. 이렇게 자국이 생기는 거지. 깨끗이 나으려고 그러나 봐. 병원에서는 잘 모르겠다 그러는데 하지만 꾸준히 다니고는 있어』 어쩐지 불길한 것이었다. 그러나 녀석은 화끈거리거나 쑤시지는 않는다고 했다. 오히려 춥다고 했다. 혼자 있노라면 입김이 나기도 한다는 것이었다. 이러다 온 몸이 퍼렇게 되는 건 아닌가 싶기도 했다. 의사는 조금 더 지켜보자, 라고 말했다 한다. 대체 그 의사는 녀석의 병을 무어라 진단했을까. 대체 녀석의 몸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 없었지만 나는 몸을 따뜻하게 하고, 되도록 긁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충고를 해 주었다. 생선들이 자신들의 불행을 잊은 채 팔딱거리는, 이른바 수산시장 축제가 열리게 되었다. 푸른 오월 하늘, 물론 조금도 감동적이지는 않았지만 이것 역시 그럭저럭 견딜만한 것이었다. 이런 일에 참석한다는 것 자체가 불쾌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지만 놀랍게도 녀석은 꼭 끼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하긴 즐길 것이라곤 실망뿐이니 실망을 즐기는 일에도 쏠쏠한 재미는 있기 마련이다. 아주 실망스러운 일을 자주 겪게 되다 보면 그렇게 된다. 어쩌면 너무 익숙해진 탓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란히 앉아 나는 맥주를 녀석은 프랑스산 생수를 마셨다. 이것도 역시 상당히 실망스러운 결과 중 하나인데 녀석에게 술을 마시지 않도록 하는 것이 내 임무였으므로 어쩔 수 없었다. 서로 반쯤 비웠을 때 여학생 둘이 다짜고짜 옆에 와 앉았다. 이런 부류의 애들이라면 딱 질색이었다. 호기심 많아서 사람 성질을 돋워야만 성격을 파악해 내는 그런 애들. 이즈음이 되면 올 여름에는 겨드랑이 털을 깎을지 그냥 놔 둘지에 대해 하루종일 고민하는 그런 타입일 게 뻔했다. 한 명은 머리가 길었고 한 명은 짧았다. 프랑스산 생수를 마시고 있던 녀석도 심드렁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신입생들 맞죠? 그러니까 후레쉬맨』 그들은 까르르 웃었다. 『응』 나는 그렇게 대답했으나 녀석은 네, 라고 대답했다. 여전히 징그럽게 순진하고 차분한 목소리로 말이다. 『우린 이 학년인데』 『그래?』 나는 그렇게 되물었으나 녀석은 그렇군요? 라고 되물었다. 긴 쪽은 트럼펫 스커트에 학교 배지를 달고 있었고 짧은 쪽은 가디건 스타일의 자켓을, 손에는 팬케 모양의 백을 들고 있었다. 대단히 흥미로운 백이었다. 머리가 짧은 쪽이 긴 쪽에게 뭐라 이야기했다. 우리의 얼굴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것같았다. 또 한번 실망. 뻔한 이야기다. 이런 애들은 같이 잘 때도 김빠지게, 죽어라 뚫어지게 얼굴만 쳐다보는 그런 타입이다. 물론 우리의 얼굴이 좀 닮았다는 점에 대해서라면 인정한다. 여학생 둘은 모두 꽤 취한 상태였다. 『둘 다 얼굴이 하얀 게 귀엽네?』 『불치병 때문이야』 『불치병? 그게 뭔데?』 『전 상처가 잘 낫지 않아요』 의외로 녀석이 먼저 대답했다. 그리고는 순서에 맞게 착착 돌아갔다. 여학생들의 안타까운 함성소리. 연민에 찬듯 하지만 뭔가 신비스러운 구석이 엿보인다는 몸짓. 호기심을 가득 품은 눈동자의 동공축소. 그러다 눈동자들은 나를 향했다. 늘 먼저 말을 꺼내는 것은 머리가 긴 쪽이었다. 『그럼, 그 쪽은요?』 『일종의 변비』 이번에도 순서에 맞게 착착 돌아갔다. 까르르 웃는 소리. 자신에 찬듯, 하지만 농담도 잘 한다는 몸짓. 다음 농담을 기다리는 눈동자의 동공확대. 이럴 때마다 난 늘 곤란해했다. 더 이상 이야기할 기회를 주지 않는 상황은 늘 곤혹스럽기 마련이다. 잘 들어주길 바랍니다. 뱃속에는 팔 미터의 대장이 있는데 이 놀랄 만큼 길다란 대장이 수분을 뽑아 혈액으로 되돌려 보내죠. 수분이 추출되어야 찌꺼기가 남기 마련인데, 개인에 따라 다르지 않지만 이 과정은 보통 열 두 시간에서 열 네 시간 정도가 소요되거든요. 그러나 저같은 사람은 그게 좀 더딘 거죠. 또는 근심 걱정이 많거나 좋지 않은 음식을 먹을 때도 이런 일이 벌어지곤 해요. 농담이 아니라 전 진짜 이 병을 앓고 있는 거예요. 하고 말할 기회를 좀 주었으면 좋겠다. 다음부터는 에이즈라고 대답해야겠다. 머리가 긴 여학생은 자기도 상처가 잘 낫지 않는다고 장난삼아 말했다. 그럴 땐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물었다. 녀석은 오랜 시간이 지나면 상처를 들여다보는 일이 즐거워지기도 한다고 대답했다. 녀석은 무척 진지했다. 하마터면 녀석이 술을 마실뻔 했지만 취중에서도 필사적으로 말린 나의 아우성 덕분에 새벽녘까지 이어진 맥주 마시기는 별 문제없이 끝났다. 각자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옷가지며 소지품 따위를 정리하고 있을 즈음, 느닷없이 짧은 쪽이 입을 열었다. 그녀는 반쯤 남은 맥주 잔을 움켜쥐고 당당하게 녀석을 향해 말했다. 취해 보였다. 『한 잔 받아. 안 그럼 무척 서운할 거야』 그건 정말이지 엄청난 실수였다. 난 방심한 것이었다. 그깟 반잔도 채 되지 않는, 한 시간 이전에 김이 다 빠져버렸을 맥주 정도야 뭐 어떻겠느냐는 생각. 곧 이어 난 절망하고 말았다. 그녀의 잔을 받아들고 단숨에 들이켠 녀석이 전기톱에 베인 오래된 고목처럼 그대로 쓰러지고 만 것이다. 마치 일부러 그러는 것처럼, 어찌나 쉽게 쓰러지던지 우리 셋은 녀석을 가운데 두고 한참을 멍하니 서 있기만 했다. 나는 짧은 쪽에게 신경질을 부렸다. 왜 그렇게 말을 못 알아듣느냐고. 마구 욕설을 퍼부은 것 같다. 그녀는 소리내어 울었고 긴 쪽은 나를 진정시키느라 곤욕을 치뤘다. 짧은 쪽은 주저앉아 쓰러진 녀석을 두 팔로 안았다. 『일어나! 일어나! 이제 막 니가 좋아졌단 말야』 물론 나 역시 개인적으로는 짧은 쪽이 마음에 들었으나 사태가 이렇게 된 이상, 게다가 긴 쪽이 엉겨붙는 바람에 어쩔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우리는 불치병 덕에 애인을 얻은 셈이었다. 하지만 녀석이 학교를 나오지 않게 되면서부터 우리 넷의 관계는 소원해졌다. 물론 그간 우리는 다른 사람들처럼 극장에 다니고, 닭으로 만든 버거를 먹고, 만난 날짜 셈하다가 잔치를 열어 반지를 나눠 끼고, 고궁 연못에 앉아 잉어를 향해 돌을 던지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러나 녀석이 학교를 나오지 않을 때마다 감방에 면회를 가야 했으므로 슬슬 그러한 일들에 게을러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머리가 긴 나의 애인이 말했다. 『나이도 어리고 후배잖아. 근데 왜 늘 반말해?』 『학교를 늦게 들어갔다니까. 그런 애들은 얼마든지 있어. 게다가 넌 나보다 잘 하는 것도 없잖아』 그리고는 다시는 만나지 않았다. 긴 쪽으로서는 그 점이 꽤나 거슬렸던 모양이다. 그러나 분명 나는 고교 삼 학년 때 이미 대학 일년생이었다. 생활도 말투도 다르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어쩌다 학교를 늦게 들어간 케이스라고 설명해 주어도 믿으려 들지 않았다. 그 애도 역시 이젠 다 끝났다, 고 말했는데 난 도통 뭘 시작한 것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끝났다면 끝난 것이겠지. 난 그녀를 붙잡지 않았다. 반면 머리가 짧은 쪽은 몇번이고 잡아보려고 애썼다. 몇번인가 만나기도 했었는데, 그것도 역시 힘들었다. 나는 그녀를 설득하는 작업을 쉽게 포기해버린 것이다. 긴 쪽이라면 하나도 아쉽지 않았지만 짧은 쪽은 조금 안타까웠다. 말은 못했지만 녀석이 꽤 슬퍼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보지 않으면 마음도 사라져. 춥다고 덜덜 떨기만 하는데. 내가 무슨 나이팅게일 쯤 되는 줄 알아? 게다가 미친놈이야』 짧은 쪽은 다른 녀석을 만나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점에 대해서라면 친구는 여전히 슬퍼했다. 상처가 또 생겼다고도 했다. 미칠 듯이 춥다고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슬프다고 했다. 매번 나는 녀석의 그런 모습만 봐야 했다. 보다못해 짧은 쪽을 찾아가 다시 한번 무슨 말이든 해봐야겠다고 기운차게 나설 때마다 나는 번번이 기관총이 달려있는 전자오락만 하고 돌아왔다. 대충 어림잡아 본다면 보병만 팔백이십 명 정도 죽였다. 그 일은 생각보다 훨씬 재미있었다. 나도 하기 싫은 호스피스를 그 쪽에게 해 달라고 부탁하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였다. 그러나 녀석이 상심에 빠져있던 시기에 탱크와 프로펠러가 여섯 달린 수송기와 벙커 따위를 부수고만 있었다는 것은 지금 생각해 보아도 좀 미안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솔직히 벙커 따위만 부수고 왔어. 대단치 않잖아. 그냥 넘기자. 이런 상처는 피 한 방울 나지 않잖아?』 『그래, 자국이 남지 않는 것만 해도 다행이겠지. 쉽게 생각하면 쉽게 끝나는구나』 어떻게 설명해 주어야 될지 몰랐다. 다행히 방학이 시작되었고 그럭저럭 우리는 한 학기를 마칠 수 있었다. 나는 주차장과 수송차량, 건물과 작업복까지도 새빨간 대형 마트에 일자리를 얻었다. 녀석도 같이 하고 싶다 했으나 한 이틀 다녀 본 바 아무래도 녀석에게는 무리인 듯 싶었다. 「A-1」이라는 코너에서 계산 일을 했는데 아침 일곱 시에 출근해서 친절히, 부지런히, 열심히! 라는 구호를 외치고 박수를 세 번 친 다음 「A-1」으로 가면 되는 것이었다. 그러면 썰물처럼 사람들이 밀려들고 그중 누군가 내 앞에 한 바탕 쏟아내면 하나하나 품목별로 바코드 인식기로 통과시켜 합산한 후 거스름돈과 영수증을 돌려주면 끝이었다. 간단해서 좋았다. 그곳은 수산시장과는 차원이 달라서 나 는 훨씬 많은 것들을 보고 배울 수 있었다. 그 많은 사람들과 단 한 마디씩이라도 나눠보면 더 좋을 것같았지만 현실이란 모두들 바쁜지라 안녕 하는 인사 한 마디조차 전해들을 수 없었다. 나 역시 바빠지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녀석의 방에 갈 수 있는 날은 일요일뿐이었다. 전화 통화는 수시로 했다. 녀석의 건강을 체크하기 위해서 빼먹을 수 없는 일이었다. 별반 다르지 않았지만 최근 들어 녀석의 목소리는 더욱 차분해졌다. 녀석은 힘없는 목소리로 별 일 없으면 그만 끊자고 했다. 그렇게 삼일째였다. 불안했다. 주차하던 자동차에 스치기만 해도 한 달을 앓는 녀석이었다. 오래된 책을 꺼내다 부딪치거나 텔레비전의 먼지를 닦아내다 감전되거나 컴퓨터와 연결된 전화선에 발목이 걸려 넘어진지도 몰랐다. 그런 일은 흔히 일어나지 않던가. 그렇지 않고서는 녀석이 저렇게 의기소침해할 이유가 없었다. 일요일 아침 일찍 나는 녀석의 방을 찾았다. 『대체 이게 다 뭐야?』 『모기 때문에』 어두웠다. 이중으로 된 창은 모두 닫혀 있었다. 게다가 두꺼운 커튼마저 내려져 있었으니, 성 프란체스코회의 오래된 수도원에 들어온 것만 같아 간단한 성가라도 한 곡 불러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커튼 아래 놓인 침대의 사방으로 푸른 모기장이 길게 늘어뜨려져 있어 방 안의 분위기는 무척 기묘했다. 침대 옆 스탠드에는 반쯤 타 들어간 모기향이 접시 위에 놓여 있었고 스프레이식 살충제도 하나 있었다. 녀석은 셔츠의 어깨를 내려 몇 군데 모기 물린 자국을 보여주었다. 꽤 커다란 놈이 문 모양으로 완치되려면 오랜 시간이 걸릴듯 싶었다. 대학 신입생의 첫 방학이 이런 꼴인줄 진작에 알았더라면 우리는 과연 껌처럼 그렇게 삼 년을 허비했을까. 녀석은 그곳에서 좀처럼 나오려 하지 않았다. 갇힌 모양이었다. 눈물이 왈칵 쏟아져내릴 것만 같았다. 『하고 있는 아르바이트 있잖아. 한 달만 채우고 우리 어디든 갈까? 그 일도 슬슬 지겨워지는 참이야』 나의 말에 녀석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이리저리 살펴 녀석의 상처를 확인해보고 싶었으나 녀석의 실루엣만이 눈에 들어왔다. 원체 어두웠고, 게다가 녀석은 침대 구석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었으니 당연한 이치였다. 『대체 무슨 일이야. 불 좀 켜자. 아침엔 모기 없잖아. 피가 나거나 뭐 그런 건 아니지?』 『그래! 피는 없어! 제발 신경쓰지 않고 살 수 없니? 내 상처고, 나아져도 내가 낫는 거야. 그렇게 신기하니? 넌 내가 어떻게 됐으면 좋겠지? 그런 일은 절대 없을 거야. 가서 계산이나 계속하지 그래?』 녀석은 와락 소리를 질렀다. 무언가 공포에 질렸을 때 내지르는 그러한 느낌이었다. 그 때였을까. 그동안의 외로움. 마치 주렁주렁 매달듯 지니고 다녔던 녀석의 외로움을 볼 수 있었다. 새벽 세 시의 안개처럼 차갑고 무언가 노려보는듯한 기운들. 연기처럼 피어올라 녀석을 옭아매고 있는 그것. 『아버지한테 연락해 볼까? 그 편이…』 『그만 둬. 어차피 오지 않아』 녀석의 단호한 말투와 온통 창백한 몸. 십초 이상 지켜보기가 힘들 정도였다. 그동안 녀석과 나는 무엇을 했던가. 차라리 암이었으면. 그런 말이라면 더 이상 견딜 수 없다는듯 녀석은 또 한번 구석으로 가 웅크렸다. 방이 너무 어두웠으므로, 끝내 상처는 확인할 수 없었다. 나는 녀석을 위해 책 대여점으로 가 흥미진진한 만화책 몇 권을 빌려 전해주고는 그곳을, 평소 감옥 같다 생각했었지만 오늘은 어쩐지 수도원 같았던 그곳을 황급히 빠져 나왔다. 아르바이트 마지막 날, 계산대 앞에서 그녀를 만났다. 짧은 쪽이었다. 「A-1」계산대 앞에서. 그녀는 컵이 딸린 커피 세트와 바닥용 세제, 감자칩 같은 걸 우르르 쏟아냈고 나는 삑삑 소리를 내면서 물건들을 봉투에 담았다. 『잠깐 얘기 할 수 있을까?』 그동안 제법 머리칼이 자란 그녀는 바빠, 잠깐밖에 되지 않아, 라고 대답했다. 빨간 주차장의 화단에 앉아 담배에 불을 긋고 나는 그녀에게 녀석에 대해 얘기했다. 할 이야기는 많았으나 그녀가 시간이 없다 했으므로 되도록 간략하게 말해야 했다. 녀석의 푸릇푸릇한 살갗과 창백한 얼굴 그런 것들이었다. 결국 요지는 녀석을 한 번만 만나달라는 간절한 애원이었다. 『당연한 거 아냐? 제 몸에 칼질이나 해대는 그런 미친놈을 만날 이유가 없어. 걘 그렇다 치고 넌 또 뭐니? 넌 무섭지도 않아? 말려야 할 꺼 아냐?』 한동안 나는 그녀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녀석을 그렇게까지 생각하고 있는 바에야 더 이상 부탁할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간곡히 부탁한 후에 그녀의 바뀐 전화번호를 얻어낼 수는 있었다. 그리고 정확하게 삼 일 후, 나는 점장으로부터 한 달치 보수를 받았다. 함께 여행계획을 세우려고 녀석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녀석은 받지 않았다. 울리지 않는 발신음처럼 간단하게 모든 것은 그렇게 끝났다. 2 장례식 날에도 녀석의 아버지는 나타나지 않았다. 찾아오는 사람도 없었다. 나 역시 누구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다. 녀석의 뼛가루는 눈처럼 희었다. 반짝반짝 빛나는 뼛가루를 보고 있자니 목 언저리로 소름이 돋았다. 추위가 느껴졌으며 입김이 서리는 것 같기도 했다. 이 추위를 뼛속 깊숙이 파묻고 살았을 것이다. 녀석이 그토록 추위를 탔던 이유를 비로소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욕실은 푸른색이었다. 타일이고 천장이고 세면대, 욕조까지 모두 새파랬다. 보통 욕실은 푸른색이지 않던가. 하지만 적어도 이곳만큼은 녀석으로 인해 푸른색으로 변한듯, 그렇게 보였다. 모퉁이엔 약간의 물이 침묵하듯 고여 있었다. 미처 흘러내리지 못한 물방울들이 모인 그곳에 녀석이라도 있다는듯 나는 한참을 바라보다 욕조에 물을 받았다. 푸른 수돗물. 삼 분의 이쯤 채우기까지 콸콸콸 물소리가 들렸고 난 울고 있었다. 그런데 왜 그것만 몰랐단 말인가, 라고 말하면서. 하지만 놓아주어야만 했다. 그래서 나는 욕조 바닥의 마개를 뽑아냈다. 수돗물과 섞인 녀석의 뼛가루는 재빠르게 휘돌아 배수구를 향해 흘러갔다. 저 음습한 곳, 어두운 곳, 곰팡이꽃 가득할 하수구를 따라, 한 마리 물고기처럼 꼬리를 흔들며 사라지고 있었다. 언젠가 녀석은 상처를 들여다보는 것이 즐겁다 했었다. 오랜 상처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즐거워진다고. 예전의 상처들, 되살아난 상처들을 보고 있으면 사람들이, 과거의 사람들이 마치 사진처럼 떠오른다고도 했었다. 그래서 상처 는 녀석의 추억이라고, 그런 말도 했었다. 재미있던 일, 즐거웠던 일이 그 속에 있다고도 했었다. 나는 그 모든 말들을 생생하게 기억해 냈다. 그런데 왜 그 말은 기억하지 못했던 것인가. 『예전에, 글쎄 언제 처음인지 모르겠지만 네 살 땐가? 그랬을 꺼야. 넘어져서 무릎에 피가 송골송골 맺혔지. 피만 보면 무섭구 슬퍼지던 그런 나이니까. 그 순간 앙 하고 울음을 터뜨렸어. 그 때 화닥 놀라던 엄마, 아빠 얼굴이 기억나. 어쩔 줄 몰라 하시면서 업어주고 입으로 피를 빨아주고 하던 거. 무등을 타고 약국에 가서 밴드를 붙이고 사탕과 장난감도 사 주시던 얼굴이. 그 때는 얼마나 좋았던지』 그렇게 홀로 제 몸에 상처를 냈을 것이다. 담배에 불을 붙이자 목구멍이 답답했다. 누군가 목덜미를 있는 힘껏 움켜쥐고 있는 것같았다. 어느새 목구멍으로부터 쓰린 기운이 힘차게 올라왔다. 이제 녀석이 원한다면 마음 편히 건네줄 수도 있을 텐데. 축축했다. 이곳은 사방이 다 축축하다. 어깨가 다시 떨리기 시작했다. 이 물방울들은 어디에서 오는가. 나는 그 대답을 위해 다시 녀석의 소설 「신선한 생선 사나이」를 읽는다. 문득 욕조에서 무언가 퍼덕이는 소리가 들린다.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