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아라비아는 생각할 것이라고는 가족 밖에 없다.
그 곳은 술도 여자도, 카바레도 립스틱 짙게 바른 찻집도 없는 곳이다.
오직 아내 사진, 자식 사진만 가지고 사막의 열풍 속에 사는 곳이다.
나는 늘 주머니 속에 메모지를 넣고 다녔다.
잠시 내게 머무는 틈이 있으면 편지를 쓴다.
그것은 마치 애연가가 담배를 물듯 나는 가슴의 펜을 꺼내 편지를 쓴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의 첫 편지를 받았다.
내가 궁금하듯 아내 역시 내 일이 궁금했다.
그립기는 아내도 마찬가지.
야속한 아빠
정말 궁금해서 어떡해야 좋을 지 모르겠어요.
보름이 지났는데 한 통의 편지도 오지를 않네요. 이렇게 매일 기다려도 조바심이 나서 어쩔 줄 모르며 기다려도 왜 아직 소식이 없는 걸까요.
비행기에서부터 편지를 쓰신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비행기에서 쓴 편지도 이렇게 오래 걸리는 것일까요. 속이 타고 애가 말라요.
내가 보낸 편지는 받아 보았는지요. 모든 것이 궁금해서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어요. 잘 도착했다는 소식만 들어도 좋겠어요. 어디 아픈 것은 아니겠지요. 편지가 중간 어디에서 묶여 있는 것은 아닐까요. 아빠, 다른 말은 할 수도 할 말도 없어요. 다만 아빠 소식이 올 때까지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제발 소식 좀 많이 빨리 보내 주세요. 그 외에는 아무것도 싫어요.
1978년 8월 9일
아빠의 숙이가
아내가 나를 생각하는 그 날, 그 시간에 나는 아내를 꿈꾼다.
아내의 편지를 받기 전에 나는 이런 사연을 보냈다.
내 사랑, 숙
어제도 인편이 있다 하여 편지를 써 보냈었지. 어쩌면 그 편지와 이 편지를 같이 받게 될 지 모르겠군.
요새 웬일인지 모르겠소. 쉽게 잠을 이룰 수가 없구려. 이 잠꾸러기가 말이요. 밤이면은 12시가 넘어도 눈이 말똥거리고 있지. 나에게 주어진 업무에 대한 초조 때문 일거요. 모든 일에 신경을 쓰는 성격 때문이니 작은 일 하나 하나 까지 신경을 곤두 세우고 있으니 잠이 어디 제대로 오겠소.
오늘 점심 시간이었다오. 이곳 현장은 오전 11시에 점심 식사 시간이고, 2시까지 낮잠을 자는 시간이고 밤에 모자라는 잠을 자야 할 텐데 도대체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오. 숙이 생각을 하다가도 못다한 이곳 일이 떠오릅디다. 내가 잠을 이루지 못할 때 나를 다독이던 숙을 생각하고 숙이가 지금 이 장소에 있다 해도 그러리라고 생각을 하고 하고 또 했다오. 고마운 일이지. 그 생각 덕분에 설 잠이나마 들었어.
숙, 나는 요새 쉽게 짜증 내는 버릇이 생겼오. 빈말로 나마 때려 업고 도로 가버릴까 보다라고 하여 타자수 이재형을 겁먹게 만들고 있지. 스스로 얼마나 나약한 소리인가를 잘 알고 있오. 이곳은 마치 준비 안된 신혼 살림을 차린 신혼 부부 같은 꼴이라고. 부족한 것이 너무 많고 물건을 사면 이미 사놓은 것이 있는 그런 상태라고. 누구 무엇이라고 하면 그 자리에서 대답을 하고는 돌아서면 잊어버리고 도대체 정신을 차릴 수가 없지 뭐요. 담만 빌라에 있을 때는 대형 세탁기 하나와 건조기라도 있어서 빨래 걱정은 없었지마는 이곳에서는 손빨래를 할 판이지. 저녁 일과가 끝나면은 혼란은 말 못해. 샤워장에서 빨래를 하여야 하는데 샤워 꼭지가 6개 밖에 없으니 오죽 하겠소. 나는 점심 시간을 이용하고 있지. 그때는 또 그렇게 조용할 수가 없어. 그 동안 잠이야 모자라지만 조용히 기질 수 있는 내 시간이라고.
내 일중에서 적지 않은 일을 심재극씨가 맡아서 하고 있어. 심재극씨는 시내를 매일 나가다시피 하여 내가 이것 저것을 부탁을 하고 내 말이라면 잘 들어 주고 있지. 대신 나는 소모품 따위를 챙겨주니 서로 편리를 보고 있는 셈이라고. 언제는 맥주를 한 병 주더구먼. 알코올 성분은 하나도 없는 것이지만 그 정만으로도 눈물이 성큼 나올 듯 하지 뭐야.
숙,
아들 녀석은 잘 자나. 녀석이 요새는 꽤 커서 목욕을 시킬 때도 큰 힘이 들겠지. 외할머니께서는 얼마나 수고가 크시겠어. 신경을 쓰시고 몸도 고달프시니 병이라도 안 나셨는지 몰라. 몸보신 대드리고 영계 백숙을 해드려 잡숫게 하구려.
그리고 이것 저것 걱정이 있으면 부모님께 의논을 나누도록 하여 혼자 걱정을 도맡고 있지 말고.
누이와 막내도 숙이를 잘 위로하여주고 있겠지. 착한 아이들이니까. 잘들 하고 있겠지.
지금은 밤 10시가 다 되어가고 있지마는 아직도 사무실에 있어. 많은 사람들이 마찬가지로 근무를 하고 있지.
숙, 요새 집에서 가지고 왔던 10만원을 야금 야금 쓰고 있는 형편이야. 이곳에서는 담뱃값이 주로 쓰이고 있지만 이제 양담배도 별로 탐탁하지 않아. 그래도 마음 답답하고 풀리지 않으니, 모두들 마치 종이를 태우는 아궁이를 입에 가지고 있는 것 같아.
숙, 편지를 보낼 때는 항공 우편을 이용하지 말고 집에서 보낼 때는 내가 준 봉투 아래에다가 극동 건설 주식회사 인력 관리부 귀중이라고 하여 보내라고. 그곳에서는 편지를 종합하여 보내니까. 항공편으로 보내는 것보다 빠르고 사람이 직접 회사로 가는 것보다 나을 거야.
내가 지금 회사 주소를 기억을 하지 못하니까 회사에다가 전화를 걸어서 물어보라고. 그곳에서 오는 편지를 보니까 300원짜리 우표를 부처서 오고 있는데 항공편을 이용하려면은 나하고 같이 산 항공 서간을 이용하도록 하고……
숙, 이곳에는 인편이 드무니 인편을 있을 때는 인편을 이용하겠지마는 주로 항공편으로 편지를 보내도록 하겠소. 한 15일 정도고 걸린다고 하지마는 이틀이나 사흘에 한 통씩 보내면은 숙이가 궁금하지 않겠지.
숙, 사랑스러운 아내. 당신은 지금 새벽잠이 들어있겠지. 그 곳은 새벽 4시쯤 이니까. 더위에 몸 조리 잘하고 건강하고. 너무 울지는 말고. 새벽에 내 꿈이라도 꾸겠지. 젖먹이 아이는 젖 달라 보챌 거고.
안녕.
내 사랑 숙에게.
1978. 8. 6 밤
첫댓글 마치 제가 그 상황에 처하기라도 한 듯.. 올라오는 글들 잘 읽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