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기에게>
3월말경에 내게 릴레이 바톤이 넘겨 왔다는 전갈은 받았지만, 그간 미국에 잠시 갔다오는 통에 하도 정신이 없어서 이제야 연락을 한다. 우선 나에게 바톤을 넘겨 준 영기 너와 릴레이를 지켜보는 친구들에게 본의 아니게 실망을 끼쳐 참말로 미안하다, 머리숙여 사과하니,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 주기 바란다. 나도 너희들과 항상 같이 있고 싶은데, 여유없이 몰아대는 내 생활이 야속할 따름이지. 하지만 핑계는 그만두고, 앞으로는 시간을 만들어서라도 가끔씩 카페에 놀러 올께.
영기 네가 나는 잊지 않고 기억해 주듯이, 사실 나도 널 잊지 않고 있단다. 네가 삼남중학교를 다니다가 서울로 전학간 뒤에도 우리는 종종 편지를 하며 서로를 위로하고 지냈던 시절도 기억하고 있으며, 네가 장희랑 군대 생활을 하던 군부대로 영희랑 같이 찾아갔던 그때도 기억하고 있다. 네가 여수에 있다가 서울로 올라간 뒤로는 너를 만날 기회를 갖질 못했지만, 가끔씩 친구들한테 네 소식은 듣고 있다. 열심히 잘 살고 있어 믿음직스럽기만 하다. 건강하게 잘 지내기 바란다.
<석자야, 나와라! 다음은 네 차례다>
우리가 전주에 나와 고등학교를 다니던 어느 때이던가, 추석이 되어 부안으로 가기 위해 단체로 대절한 버스속에서 만났던 네 모습을 난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커다란 눈망울에 하얀 줄무늬 달린 까만 성심여고 교복을 단정하게 입은 네 모습이 하도 예뻐서, 난 그때 석자 네가 내 초등학교 동창생인 것을 참 자랑스럽게 느꼈으며 속으론 꽤 으시대기도 했다. 그뒤 대학에 다니던 어느 시절인가, 전주에서 너를 다시 만나 전주 주변의 어느 방죽에서인가 둘이서 작은 배를 빌려 타고 놀아었지. 그런데, 난 그때 네가 하도 좋아서 돌아오는 차 속에서 엉겹결에 내 팔을 네 어깨에 올려놓았지. 그리고는 당황하는 네 모습을 보고는 난 어찌 그리도 민망스러웠던지. 차에서 내린 뒤에 갑작스레 약속이 있다고 황망히 달아나는 네 뒷모습을 생각하면 지금도 미안하기만 하다. 지금은 다 지난 옛날 이야기가 되어버렸지만, 난 가끔씩 그때가 생각나 겸연쩍어지곤 한다. 요즘도 종종 재전동창회에서 너를 만나면 무척이나 반갑고 좋더라. 밝고 활달하게 살아가는 네 모습을 보면 내 마음도 더불어 즐겁고 흐믓하기만 한다. 죽는 날까지 지금처럼 웃으며 열심히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