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연과 인간의 교감, 사랑과 행복으로서의 예술
- 강익수의 시 세계
권 온 문학평론가
강익수가 시인詩人의 이름을 얻고 시작詩作 활동에 매진한 기간은 제한적이지만 그의 시 세계는 매우 폭넓고 심오하다. 시집 『호수의 책』은 강익수 시학詩學의 첫 걸음을 효과적으로 제공한다. 그는 ‘사람’ 또는 ‘인간’을 지속적으로 탐구한다. 시인이 집중하는 ‘사람’의 범위에는 ‘아버지’, ‘아들’, ‘손자’, ‘어머니’, ‘아내’, ‘손녀’ 등이 포함된다. 강익수의 시적 촉수는 ‘시간’ 또는 ‘세월’을 향한 섬세한 감식안을 자랑한다. 그에게 시詩는 ‘자유’와 ‘여유’로 나아가는 티켓ticket이다. 시는 우리가 온전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최적의 방법이 된다. 시인은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추구하면서 ‘사랑’을 지향한다. 독자들이 사람의 길에서 ‘행복’을 발견할 수 있다면 그에게는 더없는 기쁨이 될 것이다.
눈 깜짝하는 사이
100년이 지나간다
한 걸음 내딛는 사이
1000년이 지나간다
말 한마디 건네는 사이에
10000년이 지나갔다
달팽이 걸음은 광속의 행보
하나의 문장이면 수만 년이 걸리는데
너희는 수 초 만에 완성한다
잠깐의 묵언수행이면
너희는 세상의 도서관을 가득 채우고도 남을
말의 홍수를 쏟아낸다
종이 다른 소통의 부재는
이렇듯 느림과 빠름의 간극인데
너희는 이를 생물과 무생물이라 한다
100년도 무른 너희들이
빠른 것만 쫓아가니
지구가 돈다
- 「사람과 돌의 간극」 전문
강익수는 “사람”의 본질을 찾기 위해 “돌”의 성질을 헤아린다. “눈 깜짝하는 사이”, “한 걸음 내딛는 사이”, “말 한마디 건네는 사이”는 ‘사람’의 ‘시간’을 가리키고, “100년”, “1000년”, “10000년” 등의 ‘지나감’은 ‘돌’의 ‘시간’을 의미한다. 사람의 시간은 “빠름”으로 연결되고 돌의 시간은 “느림”으로 이어진다. 또한 사람은 “생물”에 속하고 돌은 “무생물”을 대표할 수 있다. 돌은 “하나의 문장”을 “수만 년” 걸려서 이해할 수 있으나 사람은 그것을 “수 초 만에 완성”한다. 요컨대 시인은 “사람과 돌의 간극”을 활용하여 사람과 돌의 각각의 가치를 적확하게 파악한다. 우리는 여기에서 시의 원리와 세상의 이치를 발견한다.
허공에
한 가닥 불심으로 지은
사찰
없는 듯 있으므로
공즉시색으로 엮은
투명한 법문 같다
기다림마저
바윗돌 같은 수행의
길
지나가던 불자
제 몸 던져 불공 올리면
출렁이는 죽비
적막한 하늘에
발우도 없는
청빈한 공양
- 「거미」 전문
이것은 “거미”에 관한 시이다. 다시 말하자. 이것은 ‘거미’에 대한 시가 아니다. 다시 말하자. 이것은 거미에 관한 시이자 거미에 대한 시가 아니다. 이 시에서 거미와 연결할 수 있는 단어로는 “허공”이나 “하늘”이 있다. 이 작품의 핵심을 구성하는 대부분의 어휘는 거미와 무관하다. 곧 “불심”, “사찰”, “공즉시색”, “법문”, “수행”, “불자”, “불공”, “죽비”, “발우”, “공양” 등은 ‘불교’와 관련된다. 독자들은 강익수의 제안을 수용하여 “기다림”과 “청빈淸貧”의 가치를 되새길 일이다.
모든 신화를 거슬러 가면
138억 년 전 적막한 우주의 자궁에 닿는다
탄생은
플랑크 스케일과 시간의 요동치는 빅뱅의 후예
사랑과 파괴, 정의와 불의 혼돈의 영역에서
자기 복제를 향한 감출 수 없는 욕망이
내 심장에 뛰고 있다
풀과 돌멩이에도
부단히 소멸을 극복하기 위한 심장이 있다
혼돈의 시간을 넘어간 페가수스
포효하던 목소리 잦아지고 억제된 꼬리는 퇴화되어
별이 되었다
퇴근길
지폐 같은 사람들로 가득 찬 지하철
거침없는 질주와 굉음에 숨죽인 도시는
아무도 발 딛지 않은 138억 년 전의 적막한 자궁이다
한 바구니의 욕설을 하수구에 버리고
달빛으로 몸을 씻고 별빛을 삼키며
또 다른 혼돈의 블랙홀 속으로 빨려들어 간다
- 「빅뱅의 후예」 전문
복합성을 품고 있는 시가 여기에 있다. 하나는 ‘우주’에 관한 영역이다. “빅뱅”, “138억 년 전”, “블랙홀” 등이 이를 구성한다. 다른 하나는 ‘신화’에 관한 영역이다. “혼돈”, “페가수스”, “별” 등이 이를 구성한다. 또 다른 하나는 ‘사회’에 관한 영역이다. 사회에 관한 영역은 외적인 측면과 내적인 측면으로 구분 가능하다. 사회 관련 영역의 외적인 측면은 “퇴근길”, “지폐”, “지하철”, “질주”, “굉음”, “도시”, “욕설”, “하수구” 등이 구성한다. 사회 관련 영역의 내적인 측면은 “사랑”, “파괴”, “정의”, “불의”, “소멸” 등이 구성한다. 시인의 진술들 중 우리에게 가장 큰 감동으로 다가오는 것으로는 “자기 복제를 향한 감출 수 없는 욕망”과 “소멸을 극복하기 위한 심장”을 꼽을 수 있다. ‘소멸’의 공포를 극복하기 위한 대표적인 방법이 ‘자기 복제’이다. 우리는 강익수의 제안을 받아들여 혼돈을 뚫고 올바르게 나아가야 할 길을 찾아야 할 테다. 소멸의 사막을 건너서 자기 복제의 바다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아버지는 술로 인하여 몸마저 가누기 버거워하셨다
간절한 바람은 죽음으로 완성된다
앙상한 갈비뼈와 우뚝한 콧날
몸을 비워 심장으로 들어오는 바람의 말을 들었다
말의 날개가 쇠잔하여 스르륵 멈춰선 것만 같았다
술에 취해 비틀거렸다기보다는 바람의 각도에 흔들렸던 것이다
그마저도 작별한 듯 미동도 없는 풍향계,
산 자와 죽은 자 손이 닿았을 때
이승과 저승의 육신으로 흐르는 것도 바람 같은 것일 터
당신은 필시 바람에 날개의 유서를 쓰신 것이지요
나부끼는 글을 해독하느라 어둑해서 돌아온 날,
어깨를 들먹이던 외투가 낯익은 모습으로 걸려 있다
- 「풍향계」 부분
이 시에서 주목하는 대상은 “아버지”이다. “당신”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는 ‘아버지’는 “술”이나 “바람”과 깊은 관련성을 맺는다. “술로 인하여 몸마저 가누기 버거”웠던 남자, “술에 취해 비틀거렸”던 남자가 아버지이다. ‘그’는 무엇보다도 ‘바람’과 강하게 연결된다. 이 작품에서 바람은 “삶”과 “죽음” 사이를 잇는다. 바람은 “이승과 저승”을 매개한다. 바람은 “산 자”와 “죽은 자”를 연결한다. 시인은 독자들에게 술과 친숙했던 아버지가 ‘죽은 자’가 되어 ‘저승’으로 이동하는 과정을, ‘죽음’의 계곡으로 이동하는 “작별”의 과정을 보여준다. “당신은 필시 바람에 날개의 유서를 쓰신 것”이고 강익수는 바람에 “나부끼는 글을 해독하느라 어둑해서 돌아”왔다. “어깨를 들먹이던 외투가 낯익은 모습으로 걸려 있다”라는 이 시의 마무리는 ‘죽은 자’와 ‘산 자’의 비현실적인 만남을 포착한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세월 가는 거 잠깐이야 학생 나이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육십이 되었어” 오래전 외지의 고등학교에 입학하여 일주일을 일 년 같이 보내고 처음 집으로 가던 기차에서 환갑의 두 노인 내게 건넨 말씀
(……)
하루 두 번 두 칸짜리 기차는 풍경을 흔들어 놓고 멀어져 가고 친구도 선생님도 순이도 그리고 나도 누군가로부터 떠나갔을 등 굽은 길은 허리를 세우고 굳어 있었다 절반의 약속으로 절반의 만남을 나누고 돌아가는 길 어머니와 사탕의 달콤한 어린 미소를 기차는 덜컹거리며 시간을 깨워 놓는다 오래전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한 봉지의 사과를 들고 집으로 향하면서 내 아들이 또 손자가 사과를 들고 세월의 기차와도 같이 집으로 가는 모습 그려 본다
- 「시간 여행」 부분
“시간” 또는 “세월”을 이야기하는 시이다. 인간은 ‘시간’을 주관적으로 인식할 수 있다. “학생 나이 때”와 “육십” 사이의 거리는 40년을 상회하지만. “두 노인”은 “엊그제 같은데”라고 발언하기 때문이다. 시적 화자 ‘나’가 “일주일을 일 년 같이 보내”게 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 가능하다. 이와 같이 사람은 긴 시간을 짧게 인식하기도 하고, 짧은 시간을 길게 수용하기도 한다. 시인의 시간 관련 표현은 “기차”나 “풍경” 또는 “길” 등 ‘공간’ 관련 어휘와 함께 통합적으로 등장함으로써 상상력을 풍성하게 자극한다. 강익수의 기억 속에는 “한 봉지의 사과를 들고 집으로 향하”던 “아버지”가 생생하게 남아있다. 아마도 우리들의 아버지는 ‘사과’나 “통닭” 또는 “호두과자” 같은 것을 들고 경쾌한 발걸음을 옮겼을 테다. 그런 까닭에 시인이 작품의 마무리에서 “내 아들”과 “손자”의 귀가하는 모습을 상상하는 대목은 더욱 애틋하고 아름답다.
그동안 혹사당하면서도
머리에서 가장 먼 곳에 있어 무심한 내게
관심을 가져달라는 신호였을까
하기야 발에도 생각이 있다면
변방의 병사들이 부족한 군량미와 추위에 반역을 도모하듯
오래전 반기를 들었을 것이다
여행과 등산을 좋아했고 젊은 날 힘들었던 군 생활도
발의 몫이었지만 발이 얼마나 힘들게 버텨왔는지는
얼굴의 조그만 뾰루지보다 관심을 두지 않았다
어머님이 그랬다
어머님은 신호조차 보내지 않았다
- 「발」 부분
사람들은 대개 신체의 말단에 위치한 “발”의 중요성을 간과하기 쉽다. 이 시의 시적 화자 ‘나’ 역시 “머리에서 가장 먼 곳에 있”는 ‘발’에 무심했나 보다. “발등이 퉁퉁 부어올”랐기 때문이다. ‘나’의 “무심”은 ‘발’의 “혹사”를 일으켰을 것이다. 반면 ‘나’는 “얼굴”에 “조그만 뾰루지”라도 나면 매우 “신경” 썼다. ‘조그만 뾰루지’라는 “신호”를 보낸 ‘얼굴’의 이상異常은 바로 알아차리면서 “부어오른 발”의 아픔에는 “관심”의 촉수를 뻗지 못했던 것이다. 요컨대 ‘나’는 머리에서 가까운 곳, 눈에 잘 띄는 곳에 위치한 얼굴에는 관심을 두면서 머리에서 먼 곳,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위치한 발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강익수는 여기에서 어떤 대상을 판단할 때, 단편적인 접근이 아닌 복합적인 접근이 필요함을 보여주었다. 시인은 독자들에게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발’의 가치를 알려주었다. 특히 ‘발’과 연결된 “어머님”의 등장은 가없는 감동으로 다가온다.
1
달력의 숫자를 보면 시간의 징검다리인 것만 같아 그 징검다리 한 번쯤 앞서가고 또 뒤돌아도 가보고 싶었어
2
느긋하게 아침 식사를 하고 배낭을 둘러메고 길을 나서네 들길로 가면 들꽃과 산으로 가면 새와 나무와 말을 나누네 편편히 어깨동무를 하고 뒹굴기도 하고 장난스레 렌즈 속으로 들어가기도 하면서 그대로 들이 되고 산이 되네 우리였다가 더러는 남이 되곤 하였지만 그곳엔 언제나 우리였다네 길 위의 자유와 여유 백발이 되어서야 가져 보네 먼 길에 더러는 힘이 부치기도 하면서 어둑한 길 돌아오면 멀리서 하찌를 부르는 천사 같은 목소리에 밀려오던 피곤 일순간 사라지고 손녀 손 잡은 아내 잔소리 허기진 배를 채우네
- 「시간의 징검다리 건너가면」 부분
앞에서 살핀 「시간 여행」과 유사한 ‘시간’ 계열 작품이다. 노화老化가 진행됨에 따라서 인간은 지나간 시간과 다가올 시간을 생각하는 경향성이 커진다. 지나간 시간은 점점 길어지고 다가올 시간은 점점 짧아지는 시기가 노년老年이다. 노년에는 “달력의 숫자를 보”며 깜짝깜짝 놀라는 경우가 늘어난다. 시적 화자 ‘나’는 “시간의 징검다리”에서 “한 번쯤 앞서가고 또 뒤돌아도 가보고 싶었어”라는 심리를 피력하는데, 여기에는 다가올 미래를 향한 호기심과 지나간 과거에 대한 회상이 내재한다. ‘나’는 언제나 “자유와 여유”를 꿈꾸었으나 “백발이 되어서야” 비로소 이를 누리게 되었다. 또한 “들꽃”, “새”, “나무” 등 다양한 자연과 교감하고 “손녀”의 “천사 같은 목소리” 속에서 “피곤”을 해소하였다. 그동안 잘 견딘 스스로의 인생을 돌아보고 자신에게 주어진 느긋한 현실에 감사하는 ‘나’의 모습은 우리에게 커다란 울림으로 다가온다. “아버지”, “어머니”, “아내” 등 소중한 가족을 향한 “사랑”의 향기 역시 기억할 일이다.
매일 5분씩 늦게 가는 시계
불편에 골똘하다가 5분씩 늦게 맞춰 보기로 했다
처음엔 지각으로 5분 늦게 들어간 교실처럼 어색했지만
차츰 익숙해지면서 하루 5분의 여유를 즐기게 되었다
표준시로 재단한 나의 하루는 24시간 5분
한 달이 되자 150분이 일 년이 되자 1825분의 시간이
덤으로 생겨났다
5분의 여유가 있다는 생각에
뜨거운 커피잔을 들고도 느긋해져
처음으로 깊은 향을 마셨다
거울 속 희끗희끗한 머리카락도 자세히 살펴보니 멋있게 보이기도 했다
잊고 있었던 옛 애인이 떠오르기도 했다
달리기 선수는 1초의 단축을 위해 청춘을 투자하는데
하루 5분의 시간을 나에게 투자하자
차츰 시간의 경계가 사라졌다
시時가 시詩를 내어놓기도 했다
모처럼 만난 친구는 내게 젊어 보인다며 부럽게 바라보는데
나만의 비법을 알려 주며 술도 공짜로 먹었다
- 「5분의 여유」 전문
「시간 여행」, 「시간의 징검다리 건너가면」 등과 함께 ‘시간’ 계열을 이루는 시이다. 시적 자아 ‘나’에게 깨달음의 계기로서 다가온 대상은 “매일 5분씩 늦게 가는 시계”이다. 시계를 “5분씩 늦게 맞춰”서 얻은 바는 “하루 5분의 여유”이다. 놀라운 점은 이제부터 “나의 하루는 24시간 5분”이 되고 “한 달이 되자 150분이” 늘어나며 “일 년이 되자 1825분의 시간이/ 덤으로 생겨났다”는 사실이다. “5분의 여유”로 인해 ‘나’는 “깊은 향을” 느끼며 커피를 마시게 되었고, “거울 속 희끗희끗한 머리카락”의 “멋”을 발견하였다. “하루 5분의 시간을”, “투자”함으로써 ‘나’는 “차츰 시간의 경계가 사라”지는 “비법”을 깨닫게 되었다. 이것은 ‘나’가 쫓기는 삶이 아닌 온전한 삶을 누리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하루 5분의 “덤”에서 출발한 여유의 시학詩學이 한국 사회 곳곳으로 퍼져 나아가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집안은 모름지기 사람의 공간인데
점점 사람은 줄어들고 개들이 자리하면서
사람의 족보에 오르고 있다
잘 조련된 개는
짖지도 않고 짝을 찾지도 않고
꼬리를 흔들며 온몸으로 주인만 섬긴다
개 팔자 좋다 하여
함께 사는 사람 팔자도 좋아지는지
개 가족 얼굴이 훤하다
여의도에도 둥근 개집이 있다
사납게 싸우며 짖어대기 일쑤다
차라리 개들이 모여 있다면
꼬리를 흔들며 충성할 것이다
- 「개판」 부분
우리말 중에서 “개”와 관련된 표현은 대개 부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경우가 많다. 가령 ‘개같다’는 어떤 대상이나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 데가 있음을 뜻하고, ‘개자식’ 또는 ‘개새끼’는 어떤 사람을 좋지 않게 여겨 욕하여 이르는 말을 가리킨다. 유사한 맥락에서 이 시의 제목이기도 한 “개판”은 상태, 행동 따위가 사리에 어긋나 온당치 못하거나 무질서하고 난잡한 것을 속되게 이르는 말을 뜻한다. 강익수가 ‘개’나 ‘개판’을 도입한 이유는 “사람”과 대비하기 위해서이다. ‘사람’과 연결된 단어로는 “집안”이나 “족보”가 있는데, 시인에 의하면 “개들이”, “사람의 족보에 오르고 있다” 곧 ‘사람’의 위치에 ‘개’가 자리하는 가치 전도 현상이 발생한다. 특히 “여의도에도 둥근 개집이 있다”라는 진술을 통해 국회의원을 비롯한 정치인들을 비판하고 풍자한다. ‘국회의사당’은 “둥근 개집”이 되고, ‘국회의원들’은 “사납게 싸우며 짖어대기 일쑤”인 “개들”이 되는 것이다.
나무와 새, 다람쥐가 먼저 철이 들었으므로
사람은 그들과 어울려 살면 그만이었다
사람이 사람으로 살아가는 일이
나무가 나무로 살고 다람쥐가 다람쥐로 사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가게가 없으니
콩나물값이 얼마인지 몰라도 좋았고
도로가 없으니
자동차로 얼굴을 내민 사람도 없었다
해와 달도
때가 되면 길 위에서
친구가 되어 주었다
온통 눈이 내려
마음마저 하얗게 물들면
분수없이 푼수만으로도 넉넉한 곳
꽃피는 게
어찌 땅속에 뿌리를 둔 이들만 피우냐고
화사한 웃음꽃 피운다
하늘 아래 바보스럽게 살수록
행복한 곳
곰배령
- 「곰배령」 전문
이 시는 이번 시집에 수록된 강익수의 다채로운 시편 중에서 가장 매력적인 작품일 수 있다. 시인이 주목하는 대상은 “나무”, “새”, “다람쥐”, “해”, “달”, “눈”, “꽃” 등으로 구성되는 ‘자연’이다. 그에 의하면 자연은 “사람”보다 “먼저 철이 들었”다. 자연과 대비되는 사람은 “가게”, “콩나물값”, “도로”, “자동차” 등과 연결된다. 사람은 세속적인 성격을 벗어나기 힘든 반면 자연은 이를 벗어난다. 강익수는 ‘사람’이 ‘자연’의 “이치”를 깨닫고 ‘자연’과 “친구가 되어”서 “웃음꽃”을 “피”울 때 “행복”을 찾을 수 있다고 보았다. 시인은 독자들에게 “분수없이 푼수만으로도 넉넉한 곳”을 찾아서 “하늘 아래 바보스럽게 살” 것을 강조한다. 우리는 그가 제시하는 “곰배령”이 강원도 인제군에 위치한 고개인 동시에 자연과 사람이 일체화되는 이상향 理想鄕으로서의 “행복한 곳”임을 굳게 기억하자.
맑고 물큰한 호수는 오늘도 제본 중이다
부치지 못할 편지를 쓰고 싶거나 새와 구름의 말을 읽고 싶은 날
지나온 발자국만큼 긴 편지를 써도 좋을 여백과
새와 구름의 말이 있는 호수로 간다
운동장이자 학교이자 도서관이기도 한 그곳엔
청둥오리가 새끼들에게 한가로이 책을 읽고 쓰기를 가르치고 있다
햇살이 아침의 빗장을 열자
갈대는 호수의 이야기 하늘에 써 내려간다
구름은 그림자 놀이하듯 상형문자로 화답하지만
막 도착한 철새 몇 마리
하얀 설원과 늑대의 이야기 펼쳐 놓기 바쁘다
먼 데 산은 바위와 소나무와 옹달샘이 호수의 뿌리가 아니냐며
제 그림자로 조곤조곤 서툴게 쓴다
- 「호수의 책」 부분
강익수는 여기에서 이번 시집의 지향성을 보여준다. 그는 “호수” 계열과 “책” 계열을 동시에 추진한다. ‘호수’ 계열에는 “새”, “구름”, “청둥오리”, “햇살”, “갈대”, “철새”, “설원”, “늑대”, “바위”, “소나무”, “옹달샘” 등이 있는데 이것들을 포괄하면 ‘자연’이 된다. ‘책’ 계열에는 “제본”, “말”, “읽기”, “편지”, “운동장”, “학교”, “도서관”, “쓰기”, “이야기” 등이 있는데 이것들을 아우르면 ‘인간’이 된다. 이 시는 일차적으로 ‘호수’는 ‘호수’이고, ‘책’은 ‘책’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또한 근원적인 차원에서 이 작품은 ‘호수’가 ‘책’과 다르지 않음을 보여준다. ‘자연’은 ‘인간’과 다르지 않고, ‘인간’은 ‘자연’에 속한다. 곧 ‘호수는 책이다.’ 호수를 경험하는 일은 책을 읽는 일이다.
늪의 두려움은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평온에서부터 시작하듯 사랑도 그랬다
너와 나 사이의 와는 언제부턴가 징검다리 같았다 냇가를 사이에 두고 건너편 마을 친구들과 돌팔매질하며 싸웠어도 다음날이면 웃으며 징검다리를 건너 오가기도 하였고 많은 비가 내리는 날이면 서로 바라보다 돌아가듯 우리도 그랬다
지금이라는 것은 지나간 시간과 다가올 시간의 경계선이라는 것을 너를 바래다주고 돌아오던 차창 너머 풍경에도 없는 듯 유리창이 있다는 것을 사는 것이 먹먹해서야 알았다
인간人間은 왜 사이 간間을 쓰는지 알기까지 몇 번의 찬바람이 지나갔다
- 「사람의 길」 전문
시인은 “우리”를 구성하는 “너와 나”에서 접속 조사 “와”에 주목한 후 ‘와’를 “징검다리”에 비유한다. 시적 화자 ‘나’와 ‘너’ 그리고 ‘우리’는 “인간人間”을 대표한다. 강익수는 인간에 내재하는 “사이 간間”에 집중하는데 이것은 위에서 언급한 “와”와 연결된다. 그는 ‘인간’ 또는 ‘사람’의 핵심으로서 “사랑”을 선택한다. 시인에 따르면 사랑은 “평온”과 “두려움” 사이에서 격렬하게 진동한다. 또한 “지금” 또는 ‘현재의 시간’은 “지나간 시간과 다가올 시간” 사이에 위치한 “경계선”임을 강조한다. ‘현재’는 ‘과거’와 ‘미래’ 사이의 “유리창”인 셈이다. 이 시는 인간의 본질을 ‘경계’ 또는 ‘사이’의 관점에서 파악한다. 요컨대 강익수는 ‘평온’과 ‘두려움’ 사이에서 끝없이 움직이는 ‘사랑’이야말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사람의 길”임을 밝혔다.
강익수의 첫 시집 「호수의 책」을 검토하였다. 12편의 시에 담긴 그의 시 세계를 이해한다는 것은 가없이 넓게 펼쳐진 에메랄드 색 호수와 저 멀리 우뚝 선 산봉우리의 만년설을 환하게 맞이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 시인은 ‘자연’을 이해하고 ‘사람’을 탐구하며 ‘사랑’을 지향한다. 강익수가 파악하는 ‘사람’ 또는 ‘인간’은 ‘자연’과 대비되거나 연동된다는 점에서 개성적이다. 자연의 순수함 앞에서 인간은 경계심을 풀고 친구가 된다. 또한 평화와 공포의. 이중적인 상황에서 피어나는 꽃으로서의 사랑은 사람에게 주어진 진정한 방향이자 가능성이다.
단테 알리기에리Dante Alighieri에 의하면 “자연은 신의 예술이다.(Nature is the art of God.)” 또한 미국의 작가이자 심리학자인 토니 로빈스Tony Robbins, Anthony Robbins는 “완벽해지려고 애쓰지 말고, 단지 인간으로서 훌륭한 본보기가 되어라.(Don't try to be perfect; just be an excellent example of being human.)”라고 이야기하였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 Aristotles에 따르면 “사랑은 두 몸에 사는 하나의 영혼으로 이루어져 있다.(Love is composed of a single soul inhabiting two bodies.)”
강익수는 신의 예술로서의 자연 앞에서 인간은 언제나 겸손해져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는 자연과 진정한 교감에 이를 수 있는 사람이 하나의 영혼으로서의 사랑을 수용할 것을 강하게 믿고 있다. 우리는 자연과 사랑의 가치를 신뢰하는 인간에게, 행복이라는 이름의 안식처가 허락될 것이라는 시인의 예언에 경의를 표한다. 앞으로 강익수의 삶과 시에 영원한 행운이 함께 할 것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