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에 관한 시모음 26)
3월이 오면 /임영준
3월이 오면
늘 걸치고 다니던
먼지투성이 점퍼를 벗어버리고
알싸한 제비 차림으로
압구정을 싸다녀야지
3월이 오면 겨우내 쪼그라진
식솔들을 털고 말려
꼬깃꼬깃 접어두었던
역마살을 풀러 가야지
3월이 오면
적조했던 친구 녀석들을 만나
연습만 했던
사랑 2, 네버엔딩 스토리를
핏대 세워 불러봐야지
3월이 오면
돈 냄새만 맡던
콧구멍을 청소하고
꽃집이든 허브농원이든 가서
뇌리 속까지 차고앉은
속물근성을
깨끗이 털어내고 와야지
그런데 내게 만약
3월이 오지 않는다면
가까운 성당에 가서
고해성사를 하고
그동안 폐 끼쳤던 이들에게
일일이 찾아다니며
헌금과 봉사로 앙갚음하고
기꺼운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아야지
하지만 3월이 오더라도
먼지투성이 점퍼 차림으로
외진 신도시 끄트머리에서
피 터지게 돈만 쫓아다니면서
가족들의 아우성을
나 몰라라 하고
타협하고 사는 것이 두려워
어리석은 허영기로
남들 모르는 시를 써놓고
혼자 낄낄대며 만족하는 게
고작이겠지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김춘수
샤갈의 마을에는 삼월에 눈이 온다
봄을 바라고 섰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은 정맥이
바르르 떤다
바르르 떠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은 정맥을 어루만지며
눈은 수천 수만의 날개를 달고
하늘에서 내려와 샤갈의 마을의 지붕과 굴뚝을 덮는다
삼월에 눈이 오면
샤갈의 마을의 쥐똥만 한
겨울 열매들은
다시 올리브빛으로 물이 들고
밤에 아낙들은
그해의 제일 아름다운 불을 아궁이에 지핀다
삼월 예찬 /김덕성
산야의 풀꽃도
파란가슴을 들어내며 반기고
훈훈한 봄바람
머물다 가며 생명을 불어넣어
긴 잠에서 깨우고
생명의 기운 솟으며
순산하는 봄
빛과 색깔의 향연이 열린다
꽃바람 타고 온 너
내 곁에 머물며
향내 풍기며
되살아나는 고운숨결
너무 좋은
넌 새봄 화창한 삼월의 봄이어라
검은 3월 /허청미
거실 소파에서 무릎덮개를 끌어올리며
유리창 너머 겨울의 지문들을 본다
겨우내 자코메티의 부조 같던 목련가지에
수은 같은 회백색 햇살이 감긴다
노파의 구부정한 팔자걸음을 앞질러
봉인된 괴질 같은 검은 비닐봉지 굴러
이쪽과 저쪽, 이분법의 도식 같은 경계선에서 멈춘다
녹슨 철책 뾰족한 창살에 걸려 검은 깃발이 된다
퇴로가 막힌 담장 밑 군데군데
잔설 검게 웅크려 있다
스카이라이프접시에 담기는 정오 뉴스의 성찬
잡채처럼 엉킨 난기류의 메뉴가 빼곡하다
이십일 세기 투탕카멘 가면이 벗겨졌다
서쪽 검은 사막은 유혈의 雨期, 총알비 내린다
동쪽 섬나라마저 흠씬 물 먹었다
소, 돼지, 닭, 오리…… 들이 빨려드는
모국은 블랙홀,
모국어사전 속 낱말들이 빨간불을 켜고 있다
胃벽에 암각화 되는 어족과 텃밭과 초원의 種들
천년 후, 태양은 얼음덩어리이다 (○)
동그라미 치는 미래의 그대의 찬 손을 유추할 때
까치 두 마리 삭정이 물고 창문에 빗금 긋고 날아간다
내 무릎이 기억한다, 새벽 너의 상서로운 울음을
사방 바벨탑 검은 그림자가 3월을 먹고 있다
춘삼월 /은파 오애숙
그대는 날개, 날개
심연의 어둠 한방에
날려보내는 행복메아리
사모하는 가슴에
사랑으로 물결 쳐
목마름 없는 희망샘물
그대는 날개, 날개
소망의 씨앗 뿌려
가슴속에 피우는 촛불
그대여 내게 와
삶의 향기로 휘날려
3월속에 희망꽃 피구려
3월의 봄 /未松 오보영
어느 누가 막아 서리요
감히
흐르는 세월
변하는 기운
밀려오는 도도한 줄기를
어찌 감히 감당하리요
아직은 다소
어설프긴 하지만
따사한 볕으로
보드란 바람결로
감싸 돌면서
너는
너 임을
너의
너 됨을
신실하게 보여주누나
삼월에는 /오애숙
언 산에
아지랑이 피어오르고
나목의 가지로 수액 흐르며
기지개 화알짝 켜는 숲의 향연
꽃샘바람에도
망울망울 온 산 덮더니
올망졸망 앉아 나비와 벌과
한바탕 사랑의 멋진 춤사위의 속에
분홍 물결로
너울 너~울 춤추며
금햇살 가득 안고 날 보러 오이소
손짓하고 있는 생명참의 삼월이어라
내 마음도
금싸라기 햇살 속에
향그럽게 피어나는 삶의 향기
이웃과 이웃 사이 휘날려 보리
삼월 들판 속에 다짐하고 다짐하네
윤삼월 아침 목련 /손해일
잎새는 아직
꿈결에 젖었는데
윤삼월
꽃 그리매
해돋는 아침나절
급하기도 해라
꽃잎이 제 먼저 나와
바람개비로 벙그네
빨·주·노·초·파·남·보
당금아기
볼우물에 어린 무지개
후둑후둑
비 그친 뜨락으로
봄햇살이
하얗게 부서지네.
處容 斷章 /김춘수
3월에도 눈이 오고 있었다
눈은
라일락의 새 순을 적시고
피어나는 山茶花를 적시고 있었다
미처 벗지 못한 겨울 털옷 속의
일찍 눈을 뜨는 남쪽 바다.
그 날 밤 잠들기 전에
물개의 수컷이 우는 소리를 나는 들었다
3월에 오는 눈은 송이가 크고,
깊은 수렁에서처럼
피어나는 산다화의
보얀 목덜미를 적시고 있었다
바다와 나비 /김기림
아무도 그에게 수심水深을 일러 준 일이 없기에
흰나비는 도무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靑 무 밭인가 해서 내려갔다가는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절어서
공주처럼 지쳐서 돌아온다
삼월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 서거픈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생달이 시리다
3월 /장석주
얼음을 깨고 나아가는 쇄빙선 같이
치욕보다 더 생생한 슬픔이
내게로 온다
슬픔이 없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모자가 얹혀지지 않은 머리처럼
그것은 인생이 천진스럽지 못하다는 징표
영양분 가득한 지 3월 햇빛에서는
왜 비릿한 젖 냄새가 나는가
산수유나무는 햇빛을 정신없이 빨아들이고
검은 가지마다 온통 애기 젖꼭지만한 노란 꽃눈을 틔운다
3월의 햇빛 속에서
누군가 뼈만 앙상한 제 다리의 깊어진 궤양을 바라보며
살아봐야겠다고
마음을 고쳐먹는다
3월에 슬퍼할 겨를조차 없는 이들은
부끄러워하자
그 부끄러움을 뭉쳐
제 슬픔 하나라도 집어낼 일이다
3월의 눈雪 /이명희
밤사이 하늘은
온 세상이 하얗도록
눈을 쏟아 부었다
높음도 낮음도 없이 모두가 평등하고
많고 적음도 없이
공평하게 나눠 가진 세상
이변을 일으킨 3월의 하늘은
크리스마스 같은 설렘으로
절망처럼 속이고 괴롭혔던
시간들을 아슴아슴 걷어낸다
눈부시게 아름다워 숨 막혔던
그날처럼 햇살은
참으로 따뜻하고 평화롭다
모든 것 용서될 수밖에 없어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오늘 같은 날 또 언제 있을까
다시 삼월에 3 /홍윤숙
이 아침 凍土의 살을 찢고
격전의 눈보라길 넘어
한 시대 갇혔던 어둠의 바리케이트 위에
한 자배기 숯불로 타오르는 해야
폭죽 같은 해야
기다림에 지쳐 갈빗대 욱신거리는
반동강 가슴 위에
백골로 누운 할아버지 할머니 支石墓 위에
순금 太환으로 걸리는 해야
눈물 글썽이는 삼월의 해야
3월은 /은파 오애숙
눈이 청명함
집어내는 달입니다
금빛 찬란한 햇살
눈 부시도록
아름답게 스민 맘
초딩에서 중딩
교복을 차려 입고
입학하던 풋풋함
늘 3월이 되면
아련히 설렘속에
물결 치고 있고
새로운 결심이
햇살사이로 속삭여요
3월이 되면 /오광수
웃으세요
3월이 되면,
말라버린 척,
굳어버린 척,
외면했던 빛깔들을 되살리고
조용하니 생명 하나하나의 손을 잡고
환하게 웃으세요.
소망의 외침은
마당 가운데 높다랗게 달고
하늘구름으로 날개 만들어
맑은 바람 한점씩 가만히 불러
살랑살랑
손잡고 웃으며 날아보세요.
움츠렸던 설렘들은
고운 옷 입혀 앞세우고
이산 저 산 날아다니며
긴 한숨들을 받아내어
고상한 언어로
고백도 만들어보세요.
미래는 꿈이 있어 다듬는 것
고운 계절의 사랑을 위해
웃으세요.
3월이 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