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의 북한산이야기-에피소드16(021124)
라 라 라 라 라 라
장막을 걷어라
너의 좁은 눈으로 이 세상을 떠 보자
창문을 열어라
춤추는 산들바람을 한번 더 느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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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행복의 나라로 갈테야
양희은의 '행복의 나라'를 부르며 북한산으로 향하는 보라.
미란님과의 만남에서 '행복'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하게 되었고
하루하루의 인생을 행복하게 살리라 다짐한 보라.
그런데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성경에도 '항상 기뻐하라.'지만 요즘 세상에 여간 힘든게 아냐.
하지만 2주만에 산이야기님들과 하는 산행인 오늘 만큼은 왼종일 행복해야지.
하늘에 구름이 끼였다.예보대로 비가 안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회색하늘,장막처럼 구름이 쳐진 하늘.
오늘 하루는 우울하라는 하늘의 명령인가?
그건 그렇고 또 북한산인가? 보라야 지겹지않냐?
바둑님이 얼마전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산의 세계는 무궁무진해요.깊이가 무한해요.
북한산만 해도 매일 올라도 코스가 다르고
인수봉만 60여개의 코스가 있어요.
북한산.아직 안가본 코스가 많아요.
그만큼 무궁무진해요.
북한산! 정말 신비한 산이에요."
20여년 등산 경력의 바둑님의 이러시니
1년도 안된 보라는 할말없다.
겸양에서 하신 말씀이 아닌 것같다.
닫힌 공간에서 무한의 세계라.
북한산은 지도 보면 분명 끝이 있는데
그 안에 무한의 세계가 있다니....
바둑판도 가로 19줄,세로 19줄인데
그 끝을 아는 자 아직 없어.
두뇌도 머리통 속에 있건만
뇌에 대해 모두 아는 자 아직 없어.
세상은 신비(神秘)에 둘러싸여 있네.
판도라의 상자를 통째로 삼킨 것 같은 보라.
"나는 생각한다.고로 존재한다." 데카르트
흉내 내볼까?
"나는 바둑둔다.고로 존재한다."
"나는 등산한다.고로 존재한다."
마시면 필림이 끊기는 술도 가급적 안 마시기로 다짐하는 보라.
뇌세포가 단풍잎 떨어지듯 사라지는 나이에 알콜이 들어가면
의식이 점점 흐릿해질 것이다.
촛불이 꺼지는 마지막 순간까지
보다 생생히 생의 현장을 보고,듣고,느껴보고 싶은 보라다.
수유 전철역에서 하차하여 6-1을 타고 가는데 중간에서 솔향님 승차하신다.
슬슬 행복에 젖기 시작한다.
0930;북한산 입구 종점
바둑님,어이해님,박사님,떼제베님 먼저 와 계신다.
0945;누가 뛰어온다.보아스님! '오메! 단풍 들것네!'. 얼마만인가? 두달?석달?
잊혀져 가던 얼굴이었는데 웃는 모습 보니 보아스님 틀림없다.
소리님,풀륫님은 독감 땜에 못오신다네....우울해지고 침울해지고------
항상 행복하기가 이렇게 힘들다니까.
잔병치레를 해야 오래산다는데 암튼 빨리 완쾌(完快)하소서!
0955;도선사 입구
불상을 연등이 둘러쌌다.
'봉축(奉祝).청담대종사 탄신100주년기념'
'삼각산(三角山)도선사'라고 씌여있다.
삼각산은 북한산의 옛이름이라는데
'삼각'은 인수봉,백운대,만경대 세봉우리가 뿔처럼 솟아 그랬다는데
진관사도 그렇고 절에선 '삼각산'이라는 이름을 쓴다.
깔딱고개 가는 길.
상수리나무라고도 하는 참나무들이 즐비하다.
바위밑 눈녹은 얼음이 보이고 낙엽은 눈을 반쯤 덮고 잠들어있다.
1030: 깔딱고개.
나무사이로 인수봉이 보인다.
옅은 안개로 선명하지가 않지만 그 땜에 더 신비롭게 보인다.
등반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보였는데 자세히 보니 너댓명이 오르고 있다.
바둑님은 에베레스트 오르려는 사람들이 연습하는 것 같다고 하신다.
1040;수덕암
인수봉 안내문이 서있다.
백제시조 온조왕이 형 비류와 함께 올라 도읍을 정했고
어린아이 업은 듯하여 부아산(負兒山),부아악(負兒岳)이라고 했으며
대포알을 바로 세워놓은듯한 모양의 200미터높이의 화강암(花崗巖)이라네.
날씨는 춥지도 덥지도 않은데 바람이 안불어 고요하다.폭풍전야인가?
바람 한점없고 나뭇잎 하나 흔들리지 않는다.
시간이 정지한 듯 하다. 달리의 그림속에 있는 듯한 기분이다.
와이어잡고 오내리는 사람들의 움직임과 발딛는 소리가 정적을 깨트린다.
누런 잡종개 한 마리가 나타나 앞서간다.
젖통이 늘어진 암캐인데 살얼음 덮인 바위길도 미끄러지지 않고 잘 간다.
햇볕이 안드는 왼쪽 계곡엔 흰눈이 그대로 쌓여있다.
아이젠 신고 올라가는 사람도 꽤있다.
눈길에 미끌어지는 사람이 제법 많다.운동화 신었으니....
집게로 쓰레기 줍는 아줌마들.
국립북한산공원에서 고용한 분들 이신데 봉지에 쓰레기가 가득하다.
1110;백운산장
백운암을 올려다보며 잠시 휴식.
뒤를 돌아보니 잎사귀를 떨군 나무들 눈속에 서있다.
능선도 가파르지않아 옛날 눈 온날 뒷동산에 오른 생각이 난다.
1135위문(衛門)
향기님 기다리다 눈을 뭉쳐 던져본다.나무에 부딪히며 부서진다.
동심(童心)으로 돌아간다.살짝 녹아서 뭉치기에 적당하다.
이런 눈으로 눈싸움하다 한 방 맞으면 더럽게 아팠지.
만경대 오르는 숲은 인근 야산처럼 보이는데 줄이 쳐있다.
그대로 가는 사람들이 있다.정상은 큰 바위봉이 2개 솟아있다.
몇번 눈을 던지다 어이해님,박사님,떼제베님,보아스님과 백운대에 오르기로 한다.
성벽을 증축하고 있다.인부말이 돌을 헬기로 나른다는데 글쎄.....
백운대(白雲臺) 정상에서 인수봉,숨은벽,만경대,도봉산을 실컷 구경하고 사진찍고 내려온다.
백운대 정상밑. 만경대가 잘보이는 슬립위에 많은 사람들이 앉아있다.
바람이 안부니 마냥 쉬고싶은 모양이다.
추석에 달맞이 산행에서 바둑님과 바둑두던 기억이 새롭다.
위문에서 향기님,바깥분,언니님과 인사한다.
애로마님의 밝은 노란색 웃옷이 이채롭다.개나리꽃 향기가 나는 것 같애.
언니님은 코오롱 등산학교 출신이시란다.
1230위문출발 대동문향
불수도북 종주시 헤드랜턴에만 의지하여 걸었기에 밝은 낮에 보고싶던 길이다.
눈이 녹아 물이 되어 진창이 된 길.
눈이 녹다말아 얼어버린 살얼음길.
흙길,낙엽길,조막돌길,계단길.... 길 전시장 같다.
오른쪽을 돌아보니 백운대 뒷벽이 보인다.
눈녹은 암벽이 멋있고 재미있어 보이는데 등반객이 없다.
재미가 없어서 그렇다는데.....
정면에는 노적봉이 보이고 왼쪽으로 만경대를 끼고 도는 길이다.
숲을 보니 오그라진 진분홍 단풍잎들이 보인다.
말라버린 단풍잎.아가의 조막손같다.
꽃샘추위가 아니라 단풍샘 추위가 심술을 부린 모양이다.
마지막 행복을 움켜 잡으려는 단풍을 그대로 삼켜버린 잔인한 겨울.
언니님께서 북한산 7부능선 계곡을 따라 걸으면 단풍이 기막힌데
올 가을엔 추위가 빨리 와 부지런한 사람만 그 행복을 느꼈다네.
백운대에서 잘 보이던 도봉산이 희멀건 안개속에 또 보인다. 방향감각이 헷갈린다.
1300;만경대 피아노바위밑
릿지하며 만경대 오르는 사람들이 보인다.
숨은벽,염초봉보다 한단계 높은 릿지코스라고 바둑님 설명하신다.
대동문 2키로 남겨둔 곳에서 점심식사.
떼제베님 잔뜩 꺼내신다.배,감 보따리째다.
양갱과 쵸코렛은 백운산장에서 이미 먹어치웠고.....
전엔 달님이 배낭에서 계속 꺼내시더만 바통을 건네주셨나?
언니님 왈 코오롱 등산학교서는 장거리 산행시 자기 먹을 것만
가지고 갈 것을 권유한단다.
야속하지만 합리적인 방법같기도하다.
먹을 땐 좋지만 웬지 부담스럽다.
과일이 남고 아무도 먹으려하지않아 보라 혼자'우적우적'
먹을 때 보면 오라지게 잘먹는데 살이 안찌네. 신기해.
식사후 대동문을 향해 가는데 길가 숲에 뭔가 보인다.
'SHALOM 힘내세요'라는 푯말이 보인다.
위는 붉은 띠,아래는 파란띠로 국기 모양의 문양이 그려져있다.
'샬롬'이면 히브리어로 '안녕하세요' 같은데 누가 붙여놓았을까?
1355;용암문(龍岩門)
1420;동장대(東將臺)
옛날에 장군이 여기 올라 지휘하던 곳이고
북한산에서 남장대,북장대와 더불어 3기장대로
동장대가 가장 규모가 크다고 써있다.
단체사진 찍고 출발하는데 '보라님!'. 박사님이 부르시네.
보라가 스틱 두고 가는 것을 솔향님이 발견하셨다네.
지리산에서 무릎저는 것을 보고 스틱을 선뜻주시던
솔향님이셨는데 오늘은 잊어먹고 가는 것을 찾아주시네.
'감사합니다!' 명성산에선 어이해님이 찾아주시더만.....
모두들 피로한 기색도 없이 발걸음 가볍게 성벽을 끼고
오르고 내리고 잘들 가시는데 '누구신가?'
오르막만 나타나면 보아스님 쩔쩔매신다.
터벌터벌 걷는 보아스님. "워킹은 힘들어요!"
닭장의 의리라며 옆에서 미칠미칠 걸어주는 보라.
허리와 배에 살이 쪄서 그러하시다길래
인공암장 얘길하니 해보시겠다네.
그러다 내리막만 나타나면 어디서 힘이 나는지 뛰기도하시네.
1430;대동문
서울시내는 스모그에 덮인 모습이 안쓰러워 고개를 돌린다.
바람다운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숲과 계곡.능선에 생기가 돈다.
왼쪽으로 칼봉능선이 보인다.
별로 재미없는 코스라는데 자꾸 쳐다보며 군침을 꼴깍하는 보라.
1510;대성문
저멀리 보현봉이 보인다.휴식년제라 출입이 통제되고있다네.
안내판에 북한산 봉우리 사진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있다.도봉산까지....
올라가는데 50대중반의 부부 내려온다.
내리막 계단인데 얼음길이다.미끄러워 아내가 엉금거린다.
남편은 먼저 아래에서 기다린다.
남편: "아.어서 뛰어내려와"
보라: "뛰면 안돼요!"
아내: "것봐요.뛰지 말라는데 당신은 왜 자꾸 뛰라는거야! 이상해."
남편: "허허허"
하마터면 산에서 부부싸움 벌어질뻔. 스키장인줄 아셨나?
1530;대남문
보현봉이 가까이 보인다.안개에 살짝 가려있고 흰눈이 보인다.
1600;문수봉
문수봉 앞 작은 봉우리에 휘날리던 태극기가 안 보인다.
깃봉만 고독하게 찬바람을 맞고있다.
기다리던 암릉코스가 나타난다.
제각기 신발에 묻은 이물질을 털어낸다.
비스듬한 곳을 내려갈땐 발밑창을 비스듬히하여 비벼대는 스미어링(SMEARING),
움푹 파인곳엔 발을 들이밀고 뒤틀어주는 쨈밍(JAMMING)등의 기술로
릿지코스를 모두 무사통과한다.
바둑님은 쉬워보이는 곳에도 로프로 확보해주신다.
20대여자가 혼자 등반하여 올라온다.
바둑님이 내리신 로프잡고 올라가라니 사양하고 능숙한 솜씨로 올라간다.
문수봉밑 무명봉위 에서 전후좌우아래를 둘러보시던 떼제베님
'속이 탁 트이는 것 같아요.'
뒤엔 문수봉,왼쪽 옆엔 보현봉,저멀리 비봉이 보이는 명당중의 명당에서
문수보살,보현보살,비로나자나불. 삼존불의 이름을 딴 봉우리에 둘러싸인 곳에서
사통팔달(四通八達)의 기분을 느끼셨으리라.
승가봉 가는 길에 보니 거의 소나무만 보인다.
도선사쪽에선 상수리나무 숲이었는데......
이 곳에 처음 오를땐 그저 바닥의 바위길 보느라 정신없었는데
등산 기술을 약간 습득하여
조금 여유(餘裕)가 생기니 시야(視野)와 안목(眼目)이 넓어지는 느낌이 든다.
등산하며 행복해지려면 기술적인 면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곳은 의상봉쪽에서 오르고 두번째인데
빙 둘러보면 볼수록 신비한 영감(靈感)을 느낀다.
보라에 대해 아직 5%도 모르는 보라.
이 곳 봉우리 여기저기 오르다보면
보라의 마음 속에 감춰져있던 마음이 바위 위에 투영(投影)되어 나타날 것 같다.
1630;승가봉
슬립을 올라 정상에서 보니
회색 구름 사이를 비집고 나온 붉은 해가 비봉 너머 서쪽 하늘을 물들인다.
석양을 등진 비봉을 쳐다보며 황혼에 빛나는 문수봉,보현봉을 배경으로 '찰칵'.
거룩하고 거룩하신 삼존불 이름을 딴 봉우리가 저녁 노을에 물들어갈 때
산이야기님들은 벅차 오르는 행복감에 젖어가는 것 같았어.
이번 북한산 종주중 가장 멋지고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이 아니었나싶다.
인생도 황혼 무렵이 가장 멋지고 아름답고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듯 했어.
사모바위가 보인다.점점 가까이 보이는데 밑에 있는 돌이 악어같이 보인다.
네모진 옆면이 칠판처럼 보인다. 뭔가 써 보고싶다.
가을의 낙서
가이아(Gaia) 용트림할 제
우로보로스(Ouroboros) 헛기침
천망(天網) 던져지고
찰나(刹那)속을 헤집는 영원(永遠)의 바람
뫼뷔우스(moebius)띠 타고 부는 돌개바람
시간(時間) 굽이치고
공간(空間) 굽어지고
천지우주(天地宇宙) 사라지고
동서남북(東西南北) 사라지고
전후좌우(前後左右) 사라지고
너도 나도 사라지고
남자 여자 사라지고
이줄 저줄 사라지고
잔잔한 호수 위 물비늘 반짝반짝
빙빙도는 바람결에
물보라 허공(虛空)위에 튀퍼질 때
옷줏웃죽 솟오르며
옹긋봉긋 솟오르며
연꽃 만개(滿開)하네
바람!
바람이여!
니르바나(Nirvana)로 빛나는 바람이여!
가마솥
휘휘저어
섞어저어
바람떡 만들어서
냠냠쩝쩝
냠냠쩝쩝
1700;샘터
양스틱을 빼어짚고 내려가니 모두들 기다리고있다.
남매,부부인 일가족이 이제 산에 올라온다.땅거미가 오고있는데?
1730;구기매표소
하산주
떼제베님은 바쁘신 중에도 시간내어 비행청소년을 교도(矯導)시키고자 강의하신다네.
거기서 행복을 느끼고 어머니,아내가 이해해주고 보조를 맞추어주어 행복하시다네.
비행청소년들에게 등산을 가르쳐 북한산 인수봉에 오르게하면 어떤 반응이 올까? 궁금해진다.
노가다하며 무의탁 노인들을 씻겨주며 봉사하는 천사같은 부부얘기 들려주시네.
어렵게 채취(採取)한 산삼을 병든 노인,필요한 이들에게 그냥 주는 사람들을 TV에서 본 기억이 난다.
자기는 비닐하우스에서 살면서....
이런 사람들이 있기에 세상이 그나마 유지되는 것이 아닐까?
귀가 길에 향기님 부부와 버스에 동승(同乘)한다.
향기님 바깥분은 이번 산행이 길어 힘들었지만 산의 좋은 공기를 마시다보니
담배를 끊어야겠다는 생각을 하셨단다.
정말 금연(禁煙)에 성공하신다면 향기님의 행복지수(幸福指數)는 얼마가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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