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촛불 더불어 걱정 김인기
일전에 내가 식구들과 동성로에 나갔다. ‘요즘 촛불문화제 열기가 대단하다는데, 우리도 어디 구경이라도 하자.’ 이런 마음이었다. 사실은 나도 현직 대통령이 못마땅하다. 요즘 논란의 중심인 미국산 쇠고기 문제만이 아니라 한반도 대운하니 공기업 민영화니 하는 등으로 내세우는 그 정책들이라는 게 모조리 걱정스럽다. 이명박 정권이 출범한 지 겨우 석 달밖에 지나지 않았으나, 그간 사람들이 그 난맥상에 질려버렸다. 여기에다가 나라 바깥의 사정도 그다지 좋지 않다. 국제 곡가와 유가가 급등하니 국내 물가도 오른다. 작년에는 그래도 유권자들한테 기대라는 게 있었다. 그래서 의혹이 많았어도 희망에 끌려 이 사람에게 표를 준 것이다. 그랬는데 이제는 초등학생들마저 아무개는 물러가라고 외친다. 지도자가 조롱을 당한다. 그런가 하면 어느 목사는 촛불집회를 두고 사탄의 계략이라고 하였다. 어느 비서관은 촛불을 든 시민들이 바로 사탄의 무리라 하였다. 대통령을 쥐라고 하는 이들이나 시민들을 마귀라고 하는 자들이나 그 입은 다를 것이 없다고나 할까. 이 와중에 그 누구의 측근이라고 하는 자들이 저마다 한 자리씩 차지하겠다고 덤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미친 소는 너나 먹어.” 오늘도 거리에서는 사람들이 이러는데, 어느 해괴한 논객은 대통령이 총칼로 이런 시민들을 진압하라고 선동한다. 우리들이 동성로에 나간 그날이 마침 현충일이었다. 서울에서는 72시간 촛불집회가 열리는 중이었으나, 대구에서는 그렇지도 않았다. 이게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다. 내가 아직은 어린 아이들 손을 잡고 나가 이런 꼴을 보이는 게 좋을지 나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아무리 평화집회라고는 하지만, 여기는 누가 누굴 성토하는 자리가 아닌가. 내가 원래 이런 사람이다. 과거 1980년대에도 내 태도는 이와 유사했다. 나는 대체로 이런 소란을 꺼린다. ‘그러나 동료 학생들이 무고하게 죽고 다치는데 내가 도대체 무슨 대단한 공부를 한답시고 이러는가?’ 이런 생각으로 시위에 몇 번 참가하다보니, 당시에 내가 그만 ‘운동권 학생’으로 불리기는 했다. 심하다! 그때에도 나는 그랬다. 내가 언제 어떤 계획에 따라서 특정한 목표를 달성하고자 헌신이라도 했던가! 이런 것과는 무관하게 그저 아무개를 처단하자는 구호나 외치고 다니는 정도로는 ‘운동권’이란 이름이 과분하다. 뭐, 이런 자평이었다. 그런데 요즘 촛불문화제 참가자들 성향이 바로 이렇지 않나 싶다. 유모차를 밀고 오는 새댁들이나 기껏 열서너 살에 지나지 않는 학생들에게 배후를 물을까? 그런데도 파렴치와 몰상식으로라도 자기들 기득권 옹호에는 광분했던 그 몇몇 신문사들의 작태는 여전하다. 이러면서도 감히 정론직필을 들먹이다니. 예수 그리스도가 땅을 치고 통탄할 일부 신교도들의 아연한 언행도 별로 사그라지지 않았다. 하기야 예전에도 오렌지족이라는 것들이 있었다. 그 나이의 젊은이들이라면 으레 품을 법한 이상(理想)이나 순수(純粹)와는 아예 거리가 멀고 그저 소비향락에 골몰하느라 여념이 없는 부류를 두고 사람들이 한때 그렇게 칭했다. 이런 녀석들한테야 시대의 고민이니 뭐니 하는 게 다 우스꽝스러웠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이런 부류의 인간들이 그 이후로도 내내 잇속에는 밝아 호의호식한 게 아닌가 싶다. 나야 그간 이들의 존재도 잊고 지냈지만, 근래 누가 ‘오렌지’를 ‘어륀지’로 발음해야 한다고 해서 항간에 화제가 되었는데, 이때 나는 갑자기 그들 생각이 났다. 혹시 그 ‘오렌지족’이 이제는 ‘어륀지족’으로 진화한 건 아닐까 싶었다. 이러자 나는 이 사회가 무척이나 너절해 보였다. 그래서 이럴까? 나는 아직도 알 수 없는 것들이 많다. 겨우 하룻밤을 지새우며 수필 한 편을 써도, 나는 그 글이 오래오래 부끄럽지 않기를 바란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수필가가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 글을 써도 그렇다. 그런데 대통령 임기 5년도 끝나기 전에 치욕이 될 게 분명한 말과 글로 열심히 권력에 아부하는 저들은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인가? 그러면서도 그들이 언필칭 전문가이고 더러는 학자이고 또 무엇이라 자부하는가 보다. 한편으로는 이들한테 영혼이 없는가도 싶고, 또 한편으로는 모두 망각의 달인들인가도 싶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런 일들이 일어날 수 있으랴. 그러나저러나 아마도 고달프기로는 오늘도 청와대 주변에서 촛불을 든 시위대와 맞선 전경과 의경 들일 것이다. 자신들의 직무에 성실해야 한다는 뜻에서 보자면 그 자리에서 열심히 시위대를 막아야 하지만, 이게 여러 가지로 고역이다. 아무리 평화시위라고 하지만, 이게 언제 어떻게 돌변할지 모른다. 대통령이 일을 마구 저질러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 이제 시민들이 흥분해서 그의 멱살이라도 잡지나 않을지. 이런 불상사가 생기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하랴. 치안책임자가 이런 걸 용인할 수도 없거니와 사후에는 그 시민들조차도 이건 묵과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니까 설령 누가 누구를 불신임한다고 하더라도 분별해야 할 게 적지 않다. 사람은 육신을 가진 존재이다. 아무리 그 생각이 온당해도 오래 시달리면 극단으로 치닫는다. 더는 상식과 이성이 통하지 않는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 이러면 그 어떤 참상이 빚어질지 모른다. 이런 걸 두고도 누가 멀리서 손가락이나 물고 서서 저기 저들이 어떻다고 비방이나 할 것인가? ‘쯧쯧쯧……. 천한 것들!’ 그러나 사실은 그게 아니고 그러는 자들이야말로 ‘재수 없는 것들’이 아니겠느냐. 촛불집회에 따로 지도부도 없다는데, 이러면 누가 그 갈등을 수습하기도 어렵다. 불행은 더 늦기 전에 막아야 한다. 그런데 어떻게 되어서 대통령이 다양한 시민들의 정서와 이해(利害)를 헤아리기는커녕 이 상황에도 도리어 한심한 꼼수나 두려는가. 나는 현재 이명박 정권의 앞날을 낙관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시민들이 촛불 대신 횃불을 드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그런 상황이 되면 이 사회가 치러야 할 희생이 너무 크다. 도적질이 아무리 나쁘다지만, 두부 한 모 훔쳤다고 손목을 자를 수야 없다. 촛불 아래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지만, 횃불 아래에서는 또 모른다. 그리고 시민들이 좀 기억했으면 하는 게 있다. 과거 김대중 씨와 김영삼 씨가 후보단일화를 촉구하는 여론에 거스른 적이 있다. 그 분들한테도 다 나름의 변명이란 게 있겠으나, 그 아집으로 결국은 죽 쒀서 개한테 준 꼴이 되었다. 지금이라고 이런 일을 당하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다 아는 바와 같이 요즘은 정보통신기술이 대단하다. 그래서 혹자는 일부의 사람들이 더는 정보를 독점하여 뭘 어떻게 하기 어려운 시대라고도 한다. 그러나 정말 그게 그런지 의심스럽다. 정보를 바라보는 시선에도 저마다 다른 틀이 있다. 그러면 그 해석도 다르다. 그런 만큼 일부의 사람들이 매체를 장악하여 정보를 자기들 입맛에 맞도록 가공하여 퍼뜨릴 수 있다. 여기에 어느 개인이 대항하기는 어렵다. 이게 고민이다. 그러나 유사 이래로 이런 걸 고민한 사람들이 어디 한둘이었으랴. 그래서 내가 무거운 마음으로 자리에 누웠더니 자신을 미국산 미친 소라고 주장하는 동물이 꿈에 나타나 내게 이렇게 말하였다. “그래, 사람들은 나를 두고 미친 소라고 하는 건 좋다 이거야. 어쩌면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르니까. 내 월령이 36개월이야. 그간 난 동물성 사료도 많이 먹었어. 그러니까 내 몸 어딘가에 탈이 났을지도 몰라. 그래서 나는 사람들이 광우병이 어떻다며 촛불을 든다는 소식에 감격했어. 아하, 저 나라에는 우리들의 건강을 염려하는 분들도 다 있구나. 이게 다 착각이었지! 우리들의 농장주들은 잔혹했어. 초식동물인 우리들에게 동료들의 사체를 먹이다니. 나는 우리들 가운데 일부가 마침내 미쳐서 죽었다는 이야기에도 전혀 놀라지 않았지. 생각해 봐. 너희들이었으면 미치지 않았겠어. 그런데 마침내 나도 20개월 쇠고기로 둔갑하여 그리로 가게 되었어.” 아이고, 이제는 이렇게 내 꿈자리마저 뒤숭숭하다. 더구나 6월 10일인 오늘은 전국 각지에서 집회가 크게 열린다는데, 도대체 언제까지 이런 상황이 이렇게 이어져 더불어 사는 사람들마저 구지레하게 하려나. 그래도 사람들한테는 끝끝내 지켰으면 하는 품위라는 게 있는데, 기어이 누가 나서서 아무개는 어떻게 하라고 일일이 말을 해야만 하느냐. 어유, 어유! [200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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