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조 어떻게 쓸 것인가
권갑하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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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의 내재율 3장 6구/정완영
1. '노래(唱)'에서 '읽는 문학'으로
2. 시조 기본형에 대한 이해
3. 시조의 기초 단위, 음보(音步)
4. 시조의 형식
5. 시조의 의미 구조
6. 형식의 운용
7. 동시조
8. 창작의 실제
9. 무엇을 담을 것인가.
10.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11. 퇴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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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의 내재율 3장(章) 6구(句)
白水 정완영
오랜 세월동안 망각의 바다 속에 버려져 있던 보물들의 인양작업이 지금 우리 정부에 의해 서둘러지고 있는 걸로 안다. 가령 각 지방의 민속놀이의 부흥, 또는 무슨 연희자(演戱者)들의 인간문화재 지정, 예컨대 근자에 발굴된 안동지방의 차전놀이라든지, 봉산탈춤, 하회탈춤이라든지 심지어 어느 지방의 모내기 노래까지 모두 자리 있을 때마다 연희되고 있고, 우리 국악, 우리 판소리의 계승문제, 조그만 기물들의 장인(匠人)에 이르기까지 소멸되어가는 민족적인 정신문화의 향수에 대한 배려가 오늘보다 더 고양되어간 적은 일찍이 없었다.
하물며 "두만강 푸른 물에 노 젓는 뱃사공…" 민족 역사의 애환이 스며있다고 하여 대중가요에까지 훈장이 주어지는 오늘이 아니었던가.
한데 여기 아주 국보급 중에서도 국보급인 유산이 그 바다의 심저에 가라앉아 있는 채 인양자의 시선이 닿지 못하고 있는 것이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우리 정신의 본향, 우리 정성의 본류인 民族詩歌 <時調>다. 다시 말해 3章 6句에 갈무리되어 있는 민족혼의 내재율 3·4·3·4(초장), 3·4·3·4(중장), 3·5·4·3(종장)의 시조인 것이다. 이것은 중대한 오류이며 시행착오라 아니할 수 없는 것이다.
이 3章 6句에는 우리 민족의 온갖 사고(思考), 온갖 행위, 온갖 습속까지가 다 담겨져 있는 것이다. 이야기가 좀 비약하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필자의 나라사랑의 안목으로 바라볼라치면 춘하추동 계절의 행이, 할머님의 물렛잣던 손길, 늙은 농부의 도리깨타작, 우리 어머님들의 다듬이 소리, 거 어깨춤도 절로 흥겹던 농악에 이르기까지 가만히 새겨 보고 새겨들으면 3章 6句 아닌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것이며 심지어 구부러진 고향길, 동구 밖의 느티나무, 유연히 앉아있는 한국 산의 능선들, 부연끝 풍경소리, 아차(亞字)창의 창살, 어느 것 하나 3章 6句의 시조가락 아닌 것이 없다는 것이다.
흐름(流)이 있고, 굽이(曲)가 있고, 마디(節)가 있고, 풀림(解)이 있는 우리 시조는 그 가형(歌形)이 우연히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 정신의 대맥(大脈)이 절로 흘러들어 필연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라 하겠다. 하기 때문에 필자는 어떠어떠한 민속놀이, 어떠어떠한 고기물(古器物)에 앞서 진실로 민족정신의 보기(寶器)인 우리 시조를 먼저 인양해야 되리라고 믿는다.
우리 문단의 인구가 지금 1천 6백(이 책 발행시)을 헤아린다고 한다. 다른 이는 그만두고라도 글을 쓴다는 우리 문인들 중에서 시조의 틀을 이해하는 사람이 과연 몇 사람이나 될 것인가? 이웃 나라 일본에서는 문인뿐 아니라 전체 국민이 자기 나라 국시(國詩)인 단가(短歌) 배구(俳句)를 모르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을 생각할 때 한심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저네들은 촌부이건, 공인(工人)이건, 회사원이건, 공무원이건 할 것 없이 이 국민시가로 하여 국민 정서의 순화를 도모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온 국내에 작가(作歌)정신이 미만해 있는 것이다. 요즘 또 듣기로는 자기네 국시를 서구에까지 내보내어 그곳에서까지 '短歌會'니, '俳句會'니 등이 성행되고 있다는 소문이다. 우리들은 교과서에서 시조를 배운다는 학생들도, 이를 가르친다는 선생들도 건성으로 넘기고 있다.
그나 그뿐인가, 문인들 중에서는 간혹 시조무용론까지를 들고 나오는 몰지각한 사람이 있으니, 심히 민망하고 창피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자유시 중에서도 시문학사에 남을 만한 작품은 거의가 시조적인 내재율이 흐르고 있는 사실을 이들은 까맣게 모르고 있는 것이다. 한국인의 맥박 속에는 본질적으로 시조적인 내재율이 흐르고 있는 것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물론 문화재도 보호해야 한다. 연희도 계승받아야 하고 공장(工匠)도 이어져야 한다. 그러나 더 시급한 일은 온 국민이 우리 국민문학·민족시를 모두 배우고 익혀 우리 정신의 대종(大宗)을 이어받고, 본류를 밝히어 정서를 순화하고, 인격을 도야하여 흐려지고 거칠어지려는 풍조를 시조 짓기 운동으로 하여 바로 잡아야 하리라 믿는다. 사실 우리 구국의 성웅 이순신 장군도 <한산섬 수루> 시 한 수로 하여 구국 충정이 더욱 빛났고, 절세가인 황진이도 {동짓달 기나긴 밤} 한 수로 하여 오늘날까지 그 향기가 전해 내려오지 않았던가. 물량에만 쏠리려는 우리들의 메마른 심전(心田)에다 물을 대주고 윤기를 돌리는 전 국민 시조짓기 운동은 이제 봉화를 올렸다. (정완영, 『시조창작법』에서)
1. '노래(唱)'에서 '읽는 문학'으로
시조란 '시절단가음조(時節短歌音調)'에서 유래된 말로 그 시대의 노래라는 뜻이다. 우리말의 기본 마디인 3·4조나 3·5조로 이루어져 있어 우리 민족의 호흡에 가장 걸맞고 세계 어디에서도 유형을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리듬을 지닌 시형이다.
고려가요 또는 신라 향가에 뿌리를 두고 고려 말경 그 형태가 어느 정도 확립된 뒤 조선시대 주자학적 사회 이념을 만나면서 더욱 형태가 정연해지고, 말을 고도로 압축시키는 평시조의 미학을 꽃피웠다. 그 뒤 임진왜란으로 초래된 신분제 붕괴 등 사회 변화에 따라 서술양식에 대한 눈뜸이 생겨나고 새로운 사회 계층으로 성장한 평민 의식이 반영되어 사설시조 같은 서술이 가미된 형태적 변화가 생겨났다. 그 후 서구의 자유시의 유입과 함께 이러한 사설시조는 현대 자유시의 개성적 리듬의 미학적 기반이 되었다. 우리 시문학사를 장식하고 있는 김소월이나 정지용, 박목월 등도 이러한 시조의 내재율을 바탕으로 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1930년대를 전후해 시조는 획기적인 전환기를 맞는다. 현대시로의 변모 과정으로 시작법의 혁신적인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즉 창(唱)에 바탕한 청각에서 "읽는 문학인 시각적 이미지"를 제시하는 방향으로 바뀐 것이다. 가람 이병기 선생의 '시조혁신론'이 그 중심에 위치한다.
그러나 현대시로서의 변모과정에서 시조는 크게 왜곡되는 아픔을 겪는다. 1900년을 전후의 자아 상실의 서구문화의 수용과 일제 강점기 문화말살 정책의 영향으로 시조는 정상적인 진화과정을 거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시조 내적으로는 일본 시가에 대응해 더욱 자수율 중심의 정형 양식에 집착하는 현상이 강해졌고, 다른 한편으로는 서구에서 유입된 자유시에 매몰되어 시조는 고루하고 진부한 문학 장르로 폄훼 되는 불운을 겪게 된 것이다.
주체성을 잃은 서구 문화의 수용과정과 일제 강점기의 민족 문화 말살이라는 슬픈 역사가 없었다면, 평시조를 바탕으로 사설시조 형태의 산문적 영역으로까지 진화해온 시조가 그 후 어떻게 현대시로 발전했을까를 생각해볼 때, '자아 회복'이 화두가 되고 있는 21세기에 우리가 시급히 해야 할 일은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고 우리시의 마당을 확장해나가는 일이라 할 것이다. 여기에서 알 수 있듯 시조는 한 시대의 고정된 양식에 박제되어 온 것이 아니라 열린 정신으로 시대변화를 수용하는 양식적 진화를 거듭해왔음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열린 의식으로 시조 창작에 임해야 할 것이다.
2. 시조 기본형에 대한 이해
시조 창작에 있어 가장 먼저 마주치는 것은 형식이다. 일반적으로는 '3장 6구 12음보, 45자 내외'라는 틀 속에 초장 3·4·4(3)·4 중장 3·4·3(4)·4 종장 3·5·4·3으로 인식되어 오고 있다. 학교 교육도 이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자수율의 정형에 맞는 고시조는 전체의 4∼5%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아래의 작품들을 통해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冬至ㅅ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버혀내여
春風 니불아래 서리서리 너헛다가
어론님 오신날 밤이여든 구뷔구뷔 펴리라
-황진이
꽃이 피네 한 잎 한 잎
한 하늘이 열리고 있네
마침내 남은 한 잎이
마지막 떨고 있는 고비
바람도 햇빛도 숨을 죽이네
나도 가만 눈을 감네
-이호우 <개화>
종장의 '5'의 자수가 '7∼8'로 벗어나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그 동안의 교육과 창작이 자수율에 지나치게 지배돼왔음을 반성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제약은 시조 창작을 매우 좁은 틀 속에서 이뤄지게 하고 현대시로서의 생명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해왔음은 물론이다. 따라서 그 동안 시조의 기본형으로 인식되어온 이러한 엄격한 '자수 개념'은 이제 수정될 필요가 있다. 다만 이러한 자수 개념의 기본형에 대한 문제는 시조에 대한 기본 개념 이해와 창작의 지침을 제공하는 것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시조의 기본 틀은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3. 시조의 기초 단위, 음보(音步)
'노래(창)'를 전제로 한 고시조와 달리 현대시조는 온전한 '읽는 문학'이라는 점을 앞에서 살펴보았다. 이점은 고시조의 인용이나 현대시조 창작에 있어 가장 염두에 두어야 할 변별점이요 구분 축이다.
쳐라. 가혹한 매여 무지개가 보일 때까지
나는 꼿꼿이 서서 너를 증언하리라
무수한 고통을 건너
피어나는 접시꽃 하나.
- 이우걸의 <팽이>
그렇다면, 위의 황진이의 고시조와 이우걸의 현대시조 이 두 작품을 포괄하는 형식적 장치는 무엇일까. 그 동안 배워온 자수 개념으로는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황진이의 시조를 다음과 같이 표시해보자
冬至ㅅ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버혀 내여///
春風/ 니물 아래// 서리서리/ 너헛다가///
어론님/ 오신날 밤이여든// 구뷔구뷔/ 펴리라///
이 작품을 읽어보면 /에서는 짧은 휴지(休止)가, //에서는 중간 휴지가, ///에서는 긴 휴지가 있음이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문법의 가장 큰 단위는 <문장>(sentence)이다. <음절>이 모여서 <낱말>이 되고 <낱말>은 <어절>이, <어절>은 <문절>이, <문절>은 <문장>이 된다. 시로 보면 <음절> - <음보> - <句> - <행> - <연> - <한 편의 시>로 된다. ①의 작품을 이에 따라 분석해보면 /은 음보에, //는 句에 ///은 행에 연관되어 진다. 다시 말해 시조를 구성하는 가장 기초적인 단위는 <음보>임을 알 수 있다.
<음보(音步)>는 음의 걸음걸이이다. 문제는 한 걸음걸이에 몇 개의 음절이 들어가며, 어느 정도의 시간성으로 제약되느냐 하는 것인데,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3·4·3(4)·4조로 기계적이지는 않다는 점이다. 우리말의 단어는 대개 2음절('단어' '음절' 등)과 3음절('아버지' '교과서' 등)이 절대 다수를 차지한다. 여기에 조사나 어미가 붙어 실제로는 3음절 또는 4음절이 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음절수가 6,7,8음절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이럴 경우 얼마까지 늘어나는 것을 허용할 것인가 하는 점이 문제다. 여기에 제한이 가해지는 것이 바로 시간적 등가성이다. 율독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다시 말해 한 걸음을 옮기는데 걸리는 시간이 일반적으로 용인되는 범주까지 가능한 것이다.
인용시 ①을 적용해보자. '어론님 오신날 밤이여든'을 율독할 때 '어론님/ 오신날/ 밤이여든//'으로 하지 않고 '오신날 밤이여든'을 한 보폭으로 읽힘이 자연스럽다. ③의 작품에서도 '쳐라,' '가혹한 매여'와 같이 자수와는 상관없이 한 보폭으로 읽혀지고 있다. 이처럼 시조의 기초 단위는 <음보>에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좋은 시조의 창작은 이 음보를 어떻게 잘 운용하느냐에 달려 있다 하겠다.
아무리 여름이 더워도 싫단 말 다신 않을래
이 밤도 또 밤새워 우는 저 가을벌레들 소리
더구나 우수수 잎들이 지면 어이 견딜 까본가.
- 이호우 <聽秋> 첫 수
4. 시조의 형식
앞에서 시조의 초·중·종장이 각각 네 걸음씩 총 열 두 걸음의 형식장치를 가지고 있음은 확인했다. 그러나 평이한 걸음걸이가 계속되는 것은 지루하고 답답하기 마련이다. 시조의 걸음걸이 또한 마찬가지이다. 평이한 걸음걸이에 탄력을 주는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사흘 와 계시다가 말없이 돌아가시는
아버님 모시 두루막 빛바랜 흰 자락이
웬 일로 제 가슴속에 눈물로만 스밉니까.
- 정완영의 <부자상> 첫째 수
조석으로 마주하며 어린양만 여기다가
지아비, 시부모랑 남의 권솔 되어가니
내 언제 나목이 된 양 팔이 이리 허전하냐.
- 민병찬의 <딸을 보내고> 둘째 수
위의 작품을 율독하며 걸음걸이를 실제 내딛어 보라. 처음부터 끝까지 평이한 걸음걸이인가. 실제로 한 걸음걸이에서 걸리는 시간이나 보폭이 달라진 것은 아닌데, 그 걸음걸이에 유달리 힘이 주어지는 부분과 그 힘이 풀리는 부분이 있다. <부자상>에서는 '웬 일로 제 가슴속에'가 이에 해당되고 <딸을 보내고>에서는 '내 언제 나목이 된 양'이 이에 해당된다. 자수 개념으로 보더라도 종장의 첫 걸음은 석자로 축약되어 있고 두 번째 걸음은 다섯 자 이상으로 늘어나 있다.
우리는 여기에서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겠다. 똑같은 걸음걸이로 걸어가되 종장 첫걸음은 석자로 줄어든 그 공간을 힘을 주어 그 간극을 메우고, 종장 두 번째 걸음은 다섯자 이상이므로 힘을 빼도 그 공간이 충분히 차게 된다고 말이다.
평이한 걸음걸이의 계속적인 내딛음에서 오는 따분함과 지루함에 변화를 주어 일시의 조임과 늘어짐. 순간의 긴장과 이완을 주는 시조 종장의 기막힌 형식장치가 이렇게 생겨난 것이다. 이 것이야 말로 시조의 맛과 멋을 더해주는 가장 중요한 요체라 할 수 있다. 역으로 말하면 이 부분을 등한시 한 시조는 읽기가 따분하고 지루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시조의 형식에 대한 정완영 선생님의 다음 글은 이점에 대한 이해의 폭을 더욱 넓혀준다.
"예부터 민족이 있는 곳에 그 민족 특유의 시가 있어 왔다. 멀리 태서(泰西)의 이야기는 그만두고라도 우리 한문문화권인 동양 3국을 살펴보면 중국에 5언이니 7언이니 하는 한시가 있고, 일본에 단가(短歌)니 배구(俳句)니 하는 자기네 나름의 고유시가 있는가하면, 우리나라에는 한국 특유의 뛰어난 가형(歌形) 3章 6句의 시조가 있어 왔다. 그런데 이 제 각기의 시가(詩歌)들이 하나같이 우연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필연적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중국의 한시가 수천 년 동안 풍우에 씻기어 단단하게 광택이 나는 큰 산 큰 계곡의 반석 같은 것으로서, 중국인이란 대륙의 끈질기고 요지부동한 민족성과 그 역사의 장구성을 드러내는 것이라면, 단가(5, 7, 5, 7, 7)니 俳句(5, 7, 5)는 그 자수의 긴축성으로 보나, 그 노래솜씨의 삽상한 맛으로 보나 일호의 군더기를 용납하지 않는 그네들의 성품이며 식성까지 여실히 나타내는 것으로써, 어떻게 보면 그네들의 너무나도 빽빽한 여유롭지 못함까지가 엿보이기도 하는 것이다.
그런가하면 우리 시조는 어떤 노래인가? 우리 민족시인 시조는 초·중·종장으로 나뉘어 있는데. 초장이 3, 4, 3, 4, 중장도 3, 4, 3, 4, 인데 종장만이 유독 3, 5, 4, 3으로 자수의 변용을 가져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한시의 5언이나 7언, 일본의 단가·배구가 모두 자수의 배열에 있어서 한 자의 가감이나 어떠한 변용도 용납이 안 되는데 반해, 우리 시조는 초장, 중장에 있어서도 자수의 가감이 가능할 뿐 아니라, 종장에 와서는 물굽이가 한 바퀴 감았다가 다시 풀어져 흐르는 듯 하는 변용(3, 5, 4, 3)을 가져오는 것이다.
그러면 다른 나라들의 시가가 일행직류(一行直流)인데 반해 유독 우리 시조만이 직류에다 일곡을 더 보태어 마치 여름날의 합죽선처럼 접었다 펴는 시원함을 가져오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여기에 그 연유한 바들을 소개하기로 한다.
나이가 든 사람이면 누구나가 다 알겠거니와 옛날 밤을 새워가면서 잣던 할머니의 물레질, 한 번 뽑고(초장), 두 번 뽑고(중장), 세 번째는 어깨너머로 휘끈 실을 뽑아 넘겨 두루룩 꼬투마리에 힘껏 감아주던(종장)것, 이것이 바로 다름 아닌 초·중·종장의 3장으로 된 우리 시조의 내재율이다.
이만하면 초장·중장이 모두 3, 4, 3, 4인데 왜 하필이면 종장만이 3, 5, 4, 3인가. 그 연유를 알고도 남을 것이다. 이런 시조적인 3장의 내재율은 비단 물레질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생활 백반에 걸쳐 편재해 있는 것이다.
설 다음날부터 대보름까지의 마을을 누비던 걸립(乞粒)놀이(농악)의 자진마치에도 숨어 있고, 오뉴월 보리 타작마당 도리깨질에도 숨어 있고, 우리 어머니 우리 누님들의 다듬이 장단에도 숨어 있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 모든 습속, 모든 행동거지에도, 희비애락에도 단조로움이 아니라 가다가는 어김없이 감아 넘기는 승무의 소매자락 같은 굴곡이 숨어 있다는 사실이다."
5. 시조의 의미 구조
시조의 의미구조에 관해서는 '4단 구조설'과 '3단 구조설' 등으로 나누어진다.
1) 4단 구조
시조 3장의 형식 속에 기승전결(起承轉結)의 4단 구조를 갖고 있다고 보는 견해로, 초장은 起句, 중장은 承句가 되며, 종장이 轉과 結에 해당한다고 보고 있다.
2) 3단 구조
초·중장의 두 전제에 대한 결론이 종장이라는 논법이다. 시정신이 지향한 바가 대상(사물)과의 합일화이든 관념적 객관화를 통한 세계화이든 간에 종장에 이르러서는 동화나 조화로써 결구되고, 의미나 이미저리의 내적 형성력에 의해 통합되고 있다는 주장이다.
6. 형식의 운용
지금까지 우리는 시조의 형식 장치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를 정리해 보면,
① 시조는 초·중·종장의 3장으로 이루어져 있고,
② 각 장은 걸리는 시간이 비슷한 걸음걸이 넷이 모여 이루어지며,
③ 종장의 첫 걸음은 긴장과 조임의 석자, 둘째 걸음은 이완과 풀림의 다섯 자 이상으로 이루어져 있는 독특한 형식장치의 산물이라는 것이었다.
이를 근간으로 보면 시조에서의 행 구분은 어떻게 하라는 철칙이 없는 셈이다.
내가 친 電報와 그녀가 친 電報가 각각 상대를 향해 쏜살같이 날아가다 아득한 저 天空에서 딱 ! 맞닥뜨렸죠.
- 이종문의 <번개> 전문
한번은 막달라가 되어 예수와
간음하고
한번은 유다가 되어 십자가도 팔아먹고
다시 또 천수관음이 되어
거웃 하나에 눈을
뜨네
- 류제하의 <천수관음이 되어> 셋째 수
버둥대며 강 건너던
선잠 여울목
꽃다지 가시내의
거친 숨도
뚝, 그치고
누우런 닥종이 위에
눈곱낀 햇살
빼꼼.
- 김윤철의 <여인숙> 전문
현대인의 사고와 시적 대상은 매우 복잡 미묘하다. 이를 심층적으로 담아내기 위해서는 기존의 3행이나 6행에 고정될 것이 아니라 다양하게 변화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 작은 틀에 최대한의 사유를 담아내기 위해서는 더욱 그렇다. 그렇다 하더라도 시에 있어서 연 가름과 행 가름은 자기 멋대로의 임의적인 것이거나 사치스런 것이어서는 안 된다. 마땅히 한 행으로 잡아야 할 이유가 있어야 하며 연 가름을 할 이유가 있어야 한다.
외형상으로만 볼 때 시행이 십 수행까지 늘어나 언뜻 자유시와 구분이 안 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 자체로 문제가 될 것은 없다. 일부 자유시와의 변별력을 문제 삼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유시적 관점의 문제 제기일 뿐, 우리시를 주체적 관점에서 생각하면 전혀 문제가 될 사항이 아니다. 자유시와의 차이점은 시조 특유의 율격구조와 종장에서의 긴장과 풀림의 특수한 미학적 장치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6. 시조의 다양한 형태
시조는 형태상으로는 단형시조(평시조), 중형시조(엇시조), 장형시조(사설시조), 단장시조, 양장시조(2장시조), 연시조, 옴니버스시조(혼합시조) 등으로 나눌 수 있고, 내용면에서는 서정시조, 서사시조, 동시조 등으로 나눌 수 있다.
가. 평시조
3장 6구 12음보로 구성된 시조의 기본형에 해당하는 형태다.
쩌응 터질 듯 팽창한
대낮 고비의 정적
읽던 책을 덮고
무거운 눈을 드니
석류꽃 뚝 떨어지며
어디선가 낮 닭소리.
- 이호우 <오(午)> 전문
구두를 새로 지어 딸에게 신겨주고
저만치 가는 양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한 생애 사무치던 일도 저리 쉽게 가겠네.
- 김상옥 <어느 날> 전문
나. 엇시조
평시조의 기본 틀에서 어느 한 장의 1구가 2음보 정도 길어진 형태다. 이 또한 마땅히 길어져야할 필연성과 타당성을 갖고 있어야 하겠다.
달무리
해조음
자갈자갈 속삭이다
십년 가뭄 목마름의 피막 가르는 소리
삼천년에 한 번 피는
우담화 꽃 이울 듯
여자의
속 깊은 궁문
날개 터는 소릴 냈다.
- 윤금초 「땅끝」넷째 수
다. 사설시조
사설시조는 초·중·종장 가운데 어느 한 장이 8음보 이상 길어지거나 각장 모두 길어진 산문시 형식의 시조다. 조동일 교수는 "엇시조는 2음보가 세 번 중첩되어 6음보가 나타난 곳이 한 군데만 있는 시조라고 규정할 수 있고, 2음보가 세 번 중첩되어 6음보가 나타난 곳이 두 군데 이상 있거나 2음보가 네 번 중첩되어 8음보가 나타난 곳이 한 군데 이상 있는 시조를 사설시조"로 규정하고 있다.
아래 작품에서 알 수 있듯 사설시조도 기본형은 12음보로 파악된다. 다만 평시조에서는 한마디가 한 걸음이지만, 사설시조에서는 한마디가 두 걸음도 되고 네 걸음 또는 그 이상으로 늘어나기도 한다. 즉 아래 5)와 같이 한 마디에 네 걸음인 경우도 있다.
1)두터비 / 2)파리를 물고 / 3)두험우희 / 4)치다라 안자//
5)건넌山 바라보니 白松骨이 떠잇거늘 / 6)가슴이 금즉하여 / 7)풀덕뛰여 내닷다가 /
8)두험 아래 쟛바지거고//
9)모쳐라 / 10)날낸 낼싀망졍 / 11)에헐질뻔 / 12)하괘라.//
사람이 몇 생(生)이나 닦아야 물이 되며 몇 겁이나 전화(轉化)해야 금강에 물이 되나! 금강에 물이 되나!
샘도 강도 바다도 말고 옥류 수렴(水簾) 진주담(眞珠譚) 만폭동(萬瀑洞) 다 고만 두고 구름비 눈과 서리 비로봉 새벽안개 풀 끝에 이슬 되어 구슬구슬 맺혔다가 연주팔담(連珠八潭) 함께 흘러 구룡연(九龍淵) 천척절애(千尺絶崖)에 한번 굴러보느냐
-조운의 <구룡폭포>
그러나 사설시조 약 300수를 분석한 결과 초·종장이 단독으로 길어진 경우는 극히 드물며, 중장만이 단독으로 길어진(6음보 이상) 경우가 일반적이라고 한다. 중요한 것은 사설시조의 본령인 서사적 요소와 해학성, 현실비판과 풍자 등을 오늘의 감각에 맞게 창조해내는 것이라 하겠다.
라. 단장, 양장시조
시조의 종장만을 살린 경우가 단장시조이고, 중장을 생략한 형식이 양장시조이다.
단 한 줄 긋는 것으로 세상을 다 안는….
- 문무학 <수평선> 전문
말로 다할 수 있다면 꽃이 왜 붉으랴.
- 이정환의 <서시> 전문
뵈오려 안 뵈는 님 눈감으니 보이시네
감아야 보이신다면 소경 되어지이다.
- 이은상의 <소경 되어지이다> 전문
산골을 거닐다가 문득 깨쳐들고 보니
어데서 꺾어 왔는지 꽃이 손에 쥐었네.
-장하보의 <춘조> 넷째 수
마. 옴니버스 시조
한 편의 연작시조 속에 평시조·사설시조·단장시조·양장시조 등 다양한 시조 형식을 모두 아우르는 혼합 형태의 시조를 말한다. 최근에는 이러한 형태의 시조가 다양하게 창작되고 있다.
그리움도 한 시름도 發墨으로 번지는 시간
닷되들이 동이만한 알을 열고 나온 주몽
자다가 소스라친다, 서슬 푸른 殺意를 본다.
하늘도 저 바다도 붉게 물든 저녁답
비루먹은 말 한 필, 비늘 돋은 강물 곤두세워 동부여 치욕의 마을 우발수를 떠난다. 영산강이나 압록강가 궁벽한 어촌에 핀 버들꽃같은 여인, 천제의 아들인가 웅신산 해모수와 아득한 세월만큼 깊고 농밀하게 사통한, 늙은 어부 河佰의 딸 버들꽃 아씨 유화여, 유화여. 태백산 앞발치 물살 급한 우발수의, 문이란 문짝마다 빗장 걸린 희디 희 謫所에서 대숲 바람소리 우렁우렁 들리는 밤 발 오그리고 홀로 앉으면 잃어버린 족문같은 별이 뜨는 곳, 어머니 유화가 갇힌 모략의 땅 우발수를 탈출한다.
말갈기 가쁜 숨 돌려 멀리 남으로 내달린다.
아, 아, 앞을 가로막는 저 검푸른 강물.
금개구리 얼굴의 금와옹 무리들 와와와 뒤쫓아오고 막다른 벼랑에선 천리준총 발 구르는데, 말채찍 활 등으로 검푸른 물을 치자 꿈인가 생시인가, 수천 년 적막을 가른 마른 천둥소리 천둥소리… 문득 물결 위로 떠오른 무수한 물고기, 자라들, 손에 손을 깍지끼고 어별다리 놓는다. 소용돌이 물굽이의 엄수를 건 듯 건너 졸본촌 비류수 언저리에 초막 짓고 도읍하고, 청룡 백호 주작 현무 四神圖 布置하는, 광활한 北滿대륙에 펼치는가 고구려의 새벽을…
둥 둥 둥 그 큰북소리 물안개 속에 풀어놓고.
- 윤금초 <주몽의 하늘> 전문
끊어야지 하는 사이 수북히 쌓인 꽁초
누런 이빨자국 훈장처럼 찍힌 것들, 온몸 주리난장 마구 비틀려진 것들, 갑 속에서 허리 꺾여 통째로 버려진 것들, 고래 싸움에 등가죽 터진 것들, 발버둥 발버둥치다 끝내 숨 멎 은 것들, 발버둥쳐 용케 끝장까지 간 것들, 불덩이 가슴에 안고 시름시름 죽어가고 있는 것들…,
그 중에 한 놈을 집어 불을 막 당기려는데,
이렇게 잘릴 순 없지, 누가 내 모가질 비틀어! 선명한 이빨자국 무릎 꺾인 목소리로, 부장 은 피우던 담배를 사정없이 짓이긴다.
으으윽?,
비명도 못 지르고 스러져갈 파란 숨결.
-권갑하의 <꽁초> 전문
윤금초의 <주몽의 하늘>은 평시조+사설시조+사설시조 구조이고, 필자의 <꽁초>는 사설시조+평시조 형태이다. 어쨌든 이러한 형태는 평시조의 단조롭고 틀에 박힌 가락을 극복하고 다양한 서사 구조의 시조를 창작할 수 있는 변형의 틀이라 하겠다.
7. 동시조
시조 형식 속에 동심을 담아내는 양식으로 어린이가 쓴 시조 또는 어린이를 위해 어른들이 쓴 시조라고 할 수 있다. 어린이 독자를 염두에 두고 창작된 것인 만큼, 무엇보다도 어린이의 사고나 정서에 잘 부합되어야 한다. 즉 아이들의 눈과 아이들의 가슴과 아이들의 목소리여야 진정한 동시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내용과 형식이 단순 명료해야 할 것이다. 간결하면서도 깊은 의미와 아름다움을 가져야 한다. 경계해야 할 사항은 어른들의 유년 회상의 퇴행적 감상이나 주관적 동심주의에 의해 피상적으로 형상화된 작품들이라 하겠다.
이지엽 시인은 "동시조 창작을 하는데 있어서도 고전적이고 자연적인 소재보다는 오늘의 우리 현실을 가감 없이 담아내는 작품들이 많이 창작되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21세기의 첨단시대를 살아가는 오늘날 동시조만이 초가집과 둥근 달을 그려내고 있다면 문제이다. 사이버 공간과 컴퓨터와 테크노댄스와 채팅 방에 길들여진 우리의 어린이들이 과연 얼마만큼 그러한 세계에 공감할 수 있을까. 이제 이들의 생활 속으로 들어가 그들의 마음이 되고 그들의 사고를 가져와야 한다. 동시조가 사랑 받을 수 있는 장르가 되기 위해서는 민족 고유의 숨결이 흐르는 그릇 안에 오늘의 생각과 역사를 살아 숨 쉬게 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나는 나는 게으름뱅이
미루면서 살아왔다
한숨 자고 나중에 하지
좀 놀다 내일 하지 뭐
그 숙제
산더미 같아
허둥대며 사는 오늘.
- 김호길 <숙제> 전문
물과 물 사이엔 틈이 없어 보이지만
물과 물 사이를 알코올은 파고든다
짝궁과 나 사이에도 누가 끼면 어쩌지?
- 문무학 <실험실에서> 중
에이 또 틀렸다 숟가락이 왼손이네
바른 손 바른 손 엄마를 쳐다보다
손으로 계란 부침을 움켜 먹어 버렸다
에이 또 틀렸다 신발이 짝짝이네
오른 발 오른 발 고개를 갸웃대다
맨발로 재롱이 따라 달려나가 버렸다
-박권숙 <어려운 일> 전문
동네서
젤 작은집
분이네 오막살이
동네서
젤 큰 나무
분이네 살구나무
밤사이
활짝 펴올라
대궐보다 덩그렇다.
- 정완영 <분이네 살구나무> 전문
8. 창작의 실제
가. 기본 작법
처음 시조를 짓는 사람은 단시조의 기본부터 익혀야 한다. 연시조로 들어갈 때에도 여러 수보다는 두수 정도로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어제 밤 실실 단비
산과 들을 다 적수고
새 아침 하늘 문 열고
종달새 비비비 욺은
저 언덕 할미꽃 하나
고개 들라 함이다.
- 정완영의 <종달새와 할미꽃> 전문
단순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 작품은 시조의 ABC라고 할 수 있는 기본 구조를 갖추고 있다. 서벌 시인의 해설을 빌리면 이 시는 초·중·종장이 과거와 현재 미래의 의미구조와 리듬 체계를 갖추고 있다. 초장은 과거, 중장은 현재, 종장은 미래에 해당하는 데, 초장은 이미 드러나 있는 세계, 중장은 지금 한창 드러내 보여주는 세계, 종장은 안으로 감추어져서 보이지 않는 세계이다.
초장에서 감미로운 '단비'가 '실실' 내려 산과 들을 다 적셔 놓았다. '어젯밤'의 일이다. 나타난 말들은 이러하지만, 얘기의 핵심은 그게 아니다. '하늘과 땅'이 한 뜻이 되어 새로운 세상을 일구어 놓았다는 얘기다.
중장의 '현재'의 의미 진행은 더욱 생생한 리듬구조를 이루고 있다. '비비비'는 단순한 종달새의 울음이 아니라 '새 아침 하늘 문'을 열어젖힌 것과 같은 의미의 울음이다. 그러면서 초장의 '어제 밤 실실 단비'의 모습까지 연상토록 하는 울음이다. 종달새 울음소리 '비비비'는 종장의 '저 언덕'으로 가는 '비비비'이며, 저 언덕으로 가서 '할미꽃'이 고개 들기를 재촉하고 있다. 종장에 등장하는 '저 언덕'은 '미래'를 상징하는 하나의 세계이다. 빤하게 보이면서 드러나기는 하지만, 알 수 없이 멀리 있는 세계이다. 때문에 '할미꽃'은 아직 다 보이지 않은 세계를 단적으로 상징하는 하나의 대상이다. 고개만 들어올리면 '할미꽃' 꽃망울은 열릴 것이고, 그 꽃망울만 환하게 열려진다면 그 속에 들어 있는 '미래' 세상의 의미는 그대로 드러날 것이다. 그러므로 할미꽃은 그냥 꽃일 수가 없다. 미래를 열고자 하는 우리들의 희망을 아무도 모르게 만들고 있는 그런 존재론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배밭 머리 무논에서는
개구리들이 울고 있다
개굴 개굴 개굴 개굴
개구리들이 울고 있다
그 소리 배밭에 들어가
하얀 배꽃이 피어난다.
휘파람 휘파람 불며
배밭 머리 돌아가면
개구리 울음소리도
구름결도 잠깐 멎고
잊었던 옛 얘기들이
배꽃들로 피어난다.
- 정완영의 <배밭 머리> 전문
첫째 수는 개구리울음들이 배밭으로 들어가서 하얀 배꽃이 피어났다면, 둘째 수에서는 시인의 옛 얘기들이 배밭으로 들어가서 배꽃으로 피어나는 느닷없음을 보여준다. 즉 하나의 배밭을 두고 그 배꽃들을 개구리 울음소리로 피워냈다가, 다시 자신의 옛 얘기로 피워내기도 하는 두 개의 시적 공간을 마련해놓고 있다. 그런데 그것이 교묘하게도 어떤 유기적인 맥락을 가지면서 서로 연결 고리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을 통해 두 수의 시조가 어떻게 독립되어 있으면서도 하나로 통일되며 조화되는가를 알 수 있다.
낙동강 빈 나루에 달빛이 푸릅니다
무엔지 그리운 밤 지향 없이 가고파서
흐르는 금빛 노을에 배를 맡겨 봅니다.
낯익은 풍경이되 달 아래 고쳐보니
돌아올 기약 없는 먼길이나 떠나온 듯
뒤지는 들과 산들이 돌아 돌아 뵙니다.
아득히 그림 속에 정화된 초가집들
할머니 조웅전에 잠들던 그 날 밤도
할버진 율 지으시고 달이 밝았더이다.
미움도 더러움도 아름다운 사랑으로
온 세상 쉬는 숨결 한 갈래로 맑습니다
차라리 외로울망정 이 밤 더디 새소서.
- 이호우의 <달밤> 전문
적어도 이러한 4수 연작이 가능하려면, 1) 주제가 하나라 하더라도 4수 각각 독립된 시의 세계가 존재해야 한다. 2) 4개의 독립된 세계를 하나로 조화시켜야 하고, 전체의 작품이 피가 통하는 통일감을 이루도록 해야 한다. 3)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로 조화되고 통일된 4개의 세계들이 서로가 뚜렷하면서도 참으로 다르다는 변화 감각을 지니게 하는 일이다. 이렇듯 긴 호흡을 유지할 때는 산만함을 배제해야 하고, 언어의 배치와 율격 처리에 신경을 써야 한다.
현실의 체험을 시적으로 재구성함에 있어 구상 시인은 아래 과정을 거칠 것을 조언한다.
1) 시적 대상에 대한 집중적 관찰(시적 대상에 대한 심층 취재)
2) 그 까닭은 무엇인지(대상 사물에 대한 연원 탐구, 시적 동기 유발)
3) 자신의 심리 상태는 어떤지(체험의 구체화 가시화)
4) 그 사물과 관계되고 있는 것들은 무엇인지(방계 취재, 시적 대상물에 대한 구체화, 심화 확대)
5) 그 사물로 인해 생각나는 것들은 무엇인지(작자사의 사상, 인생관, 철학적 사유 등)
이러한 과정을 통해 개인적인 체험(감동)을 보편적인 감동으로 승화시켜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의 작품이 체험이나 선험만으로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 주제의식이 작용하고 상상력이 첨가해 경험을 확대 심화시켜 나가야 하는 것이다. 김제현 교수에 따르면, 상상력은 대개 유사 현상(호밀_.맥주, 누룩->술, 사과->하트표), 접근현상(강물->바다, 산->숯), 반대 연상(앞집 처녀->뒷집 총각, 막걸리는 홍탁->맥주는 골뱅이) 등의 연상 작용에 따라 발전하며, 예리한 관찰력과 풍부한 상상력에 의해 현실적 대상(사물)이 있는 그대로의 사실적인 것이 아닌,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존재로서 새로운 의미와 깨달음을 우리에게 전달해주게 되는 것이다.
이렇듯 한편의 시조는 체험 요소와 상상력의 결합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다음 작품은 상상력이 어떻게 보편적 공감에 이르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水淨寺 큰 쇠북을 백 여덟 번 칠 때까지 쇠북소린 골 안에 모여 풍선처럼 부풀다가 치기 를 끝난 뒤에야 하산을 시작한다.
하도나 좁은 골을 한꺼번엔 못 내려가 수정 같이 둥근 소리 길다랗게 휘어지며 간신히 몸 을 비틀어 세상으로 내려가다, 龍門臺 木百日紅 그 붉은 꽃에 취해 불콰해진 쇠북 소리 꽃가지를 흔들다가 저녁 해 서산에 질 때 塔 마을에 닿는다.
塔 마을 오일장을 두어 바퀴 둘러보고 퇴근하는 동산약국 김씨의 귓밥을 감는,
수정사 먼 쇠북소리, 새벽에 친 쇠북 소리.
-이종문의 <水淨寺 쇠북 소리> 전문
나. 제목 달기
작품의 제목은 사람의 이름 같고 여자의 얼굴 이상으로 중요하다. 제목 여하에 따라 작품이 눈길을 끌기도 하고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 제목 달기의 몇 가지 요령을 들면,
1) 많은 의미를 함축하는 제목이 좋다. (김춘수의 <꽃>, 강현덕의<길>)
2) 의미전달을 쉽게 해야 한다. 내용을 한 마디로 상징할 수 있으면 더욱 좋다.
3) 이색적인 제목을 붙여 기억하기 쉽게 뽑아야 한다. 충격 효과(쇼킹한 제목)를 노릴 수 있는 제목이면 더욱 좋다. (홍성란의 <악!>, 이달균의 <불륜>)
4) 최근에는 제목을 길게 다는 경우도 많다.(이근배의 <내가 왜 산을 노래하는가에 대하여>, 서연정의 <상처를 뒤적이면 길이 보인다> 등)
5) 흡인력이 있어야 한다. 독자를 유혹해야 한다.
9. 무엇을 담을 것인가.
형식의 다양한 운용과 함께 중요한 문제는 작품 속에 담을 내용물이다. 아무리 그릇이 다양하다 해도 그기에 담은 내용물이 시로서 가치를 지니지 못하거나 현대성이 떨어지면 의미가 없는 일이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시조는 형식과 내용이 고시조풍이거나 천편일률적인 경우가 많다. 시조는 말 그대로 그 시대의 노래다. 따라서 그 시대의 정신을 담아내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현대의 복잡 미묘한 사고와 생활의 다양한 단면에 시조의 뿌리를 두어야 한다.
욕이 조상에 이르러도 깨달을 줄 모르는 무리
차라리 남이었다면, 피를 이은 겨레여
오히려 돌아앉지 않은 강산이 눈물겹다.
- 이호우 <바람벌>둘째 수
정오의 빈 들녘에 핏빛 노을이 타오른다
숨찬 경운기 부대 속속 읍내로 들어서고
물 건너
몰려온 한파
우짖고 있는 풀뿌리.
- 송선영 「신귀성록」 첫째 수
쉽사리 야생의 꽃은
무릎 꿇지 않는다
빗물만 마시며 키운
그대 강마른 반골의 뼈
식민지 풀죽은 토양에
혼자 죽창을 깎고 있다.
-고정국 <엉컹퀴2> 전문
뭐시라꼬? 재기들이 도둑임서 내더러 도둑이라꼬?
내사 마 죄라면 주치 못하는 돈 처분한 죄밖에
시·상·에
사람 우에 사람 있대
그 우에 돈 있대
더러번 시상!
- 서일옥 <품바타령> 넷째 수
도심에 높이 서는 신축건물 뼈대 위로
혈루병 앓는 여자가 공사장을 넘보다가
이래 전 죽은 얼굴로 기중기에 걸려 있다.
-정해송 <기중기에 걸린 달>
공원 벤치에 앉아 늦은 저녁을 끓이다
더 내릴 데 없다는 듯 찻잔 위로 내리는 눈
맨발의 비둘기 한 마리 쓰레기통을 파고든다.
- 권갑하 <세한의 저녁> 첫째 수
위의 작품들은 오늘의 현실에 그 시적 바탕을 두고 있다. 가급적이면 과거지향의 소재나 관념적이거나 비현실적인 세계에서 벗어나야 한다. 현대시조의 문제점은 여전히 매너리즘과 음풍농월식 자기만족과 자아도취에 사로잡힌 작품들이 난무하고 있다는 점이다.
■ 무엇을 쓸 것인가
간혹 쓸 것이 없어서 못 쓰겠다고 하소연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면 나는 그에게 간곡하게 말한다. 당신이 지금 전화를 하는 곳에서 손에 잡힐 듯 가까이에 있는 것을 말해보라고 한다. 그걸 쓰라고 한다. 곁에 있는 것부터 마음속에 데리고 살라고 한다. 단언컨대, 좋은 시는 자신의 울타리 안 문지방 너머에 있지 않다. 문지방에 켜켜이 쌓인 식구들의 손때와 그 손때에 가려진 나이테며 옹이를 읽지 못한다면 어찌 문밖 사람들의 애환과 세상의 한숨을 그려낼 수 있겠는가
시인이란 모름지기 그때그때 데리고 사는 어떤 생각이 있어야 한다. 늘 변함없어야 할 시인의 시정신이나 시대를 꿰뚫는 시대정신을 말하는 게 아니다. 시상을 말하는 것이다. 좋은 시상이 마음에 들어오면 그 시상의 중심 소재나 이야기를 오래도록 데리고 놀아야 한다는 것이다. 전광석화처럼 치고 들어온 시상을 오래 붙잡고 쓰다듬을 때, 그 시 속의 뼈는 물렁뼈에서 벗어나고 살은 비곗덩어리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시인은 그렇기에 어느 때든 버드나무의 상처로 살고, 어느 때는 자장면 그릇을 덮고 있는 오후 세시의 신문지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리하여, 십 년 이십 년 내 시에 모셔둘 그 무엇들과 동고동락하는 것이다. 수많은 동거를 하는 것이다. 어디 시뿐만 그렇겠는가? 무릇 예술가는 수도 없이 동거를 일삼는 바람둥이인 것이다.
또한 자신의 목소리를 가져야 한다. 백석은 백석의 언어가 있고, 소월은 소월의 가락이 있는 것이다. 나팔꽃이 올해엔 기필코 해바라기 꽃을 피울 것이라고 마음 다잡는다고 가능한 일이겠는가. 나팔꽃이란 이름을 갖고 있음으로 잠들어 있는 세상의 미명 위에 굵은 나팔소리를 낼 것이라고 호들갑을 떤다고 그게 이루어질 일인가. 자신의 시가 나팔소리로 끽끽거리거나 해바라기로 고개가 꺾이지 않아야 한다. 사람(나)의 눈으로 사람(나)의 시이길 바라자. 그러나 나팔꽃은 산골 처마 밑에서도 덩굴을 올리고, 도심 한복판 가로등을 타고도 오른다. 먹는 입술이 다르고 내다보는 세상이 다르고 끌어올리는 목마름이 다를 것임으로 남과 자신이 다름이라. 아, 나팔꽃이 오늘에도 있었지만 삼십 년 전 생솔연기 매캐한 부엌의 뒷문밖에도 있었고 남한강 자락이나 지리산 낮은 골짜기에도 있었을 것임으로 시속에 가라앉아 있는 시간과 넓이와 들끓음이 다 다름이라. 자신의 나팔꽃으로 들여다보고 내다보고 훑어보고 째려보는 것이다. 자신의 눈초리가 박히는 곳에 시의 싹눈이 오롯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음을 잊지 말자. (이정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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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시의 세계는 상상력에 의해 창조되는 공간이기 때문에 하나의 새로운 세계(상태)를 탄생시키기 위해서는 말을 어떻게 표현하느냐가 가장 큰 관건이다. 20세기 초엽, 재래의 시에 대한 반동으로 일어난 이미지즘 운동은 음악적 율동과 회화적 영상을 융합한 새로운 운율을 창조하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 T.E 흄의 영향을 받은 알딩턴의 이미지스트 선언은 다음과 같다.
1) 일상어를 사용하되, 정확한 말을 고르며 모호한 말이나 장식적인 말을 배척한다.
2) 새로운 기분의 표현으로서 새로운 리듬을 창조하지 않으면 안 된다.
3) 제재의 선택은 자유로워야 한다.
4) 명확한 이미지를 제공한다.
5) 모호하고 부정확한 것이 아니라 견고하고 명확한 시를 쓴다.
6) 긴축(집중)된 것만이 시의 본질이다.
유재영 시인의 다음 시를 통해 빼어난 감각적인 이미지를 만날 수 있다.
덩굴손
긴 봄날이
흘림체로
쓰여지고
뻐꾸기
울음소리에
번져 가는
푸른 적막
못 이룬
지상의
꿈이
메꽃으로
지고 있다.
-유재영 <이 순간> 전문
가. 선경후정(先景後情)의 원리
대체로 서정시는 이 원리를 갖추고 있다. 초·중장에서 경치(서경)를 묘사하고, 종장에 이르러 그에 촉발된 시인의 정서를 노래하는 구조다. 다시 말해 초·중장에서는 시인의 눈에 포착된 가시적 이미지를, 종장은 마음속에 포착된 심상 풍경(시인의 내면의식)을 토로하는 절차를 밟는 방식이다. 시조는 이처럼 자연과 자아의 일체감을 종장에 제시함으로써 정서적 균형을 획득하는 장치에 입각하고 있다. 어쩌면 이 장치야말로 시적 공감 획득과 생명의 지속성을 가져다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좋은 시조는 경(자연 묘사)과 정(지적 자아의 내면 풍경, 사상, 청학)의 조화로운 만남을 이끌어내는데 있다 하겠다.
과수원 옆, 길게 휜 가을의 시간 끝에
천수경 몇 구절이 산자락을 돌아나가고
처연히 세상을 건너는 꽃집 한 채 보인다
그 오랜 징역의 견고한 결박을 풀면
신의 제단에도 시나브로 잎은 지고
수척한 목숨의 길섶에 저문 강이 놓인다.
- 박기섭의 <저문강> 전문
나. 생략과 상징
생략은 문장을 간결하게 하여 행간의 숨은 뜻을 독자가 파악하게 하는 수법이며, 상징은 '평화=비둘기'처럼 추상적 사물을 구체적으로 적시하여 나타내는 것을 말한다. 리강룡의 <자리>는 과감하게 서술을 생략한 작품이고, 박영교의 <창>은 '창'이 갖고 있는 공격성과 날카로움을 통해 언어(혀)의 폭력성을 상징적으로 표출하고 있다.
생대 같은 목숨 하나를 공원묘지에 부리던 날
젖은 눈에 굴절되는 겨울나무 저켠으로
빈자리 세평 반쯤이 다가서는 것 보았다.
- 리강룡 <자리5-이별> 전문
내 혀를 잘라 들고
날 선 창을 만들고 있다.
밤마다 무수한 창을 가만가만 날려 보낸다
가벼운
상처도 없이 상대방이 쓰러진다.
하나 둘 넘어지면서
그들도 날을 세운다
무너지던 사람들이 하나하나 일어서고
탄탄한 밧줄을 끊고
더 날 선 창을 꽂는다.
가만히 들어보면
미움 더욱 익어가고
사랑 더욱 멀어져 앉는 우리들 사는 언덕배기
가득한 우수를 밟으며 마주하고 또 살란다.
-박영교의 <창>
다. 다양한 비유법
1) 직유법
-같다, -처럼, -하는 양 등과 같이 사물을 다른 사물에 빗대어 나타내는 표현법이다.
2) 은유법
'내 마음은 호수''죽음은 영원한 잠'과 같이 원관념은 숨기고 보조 관념만 드러내는 표현법이다. 즉 "A(원관념)는 B(보조관념)이다"와 같이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을 설명하거나 그 특질을 묘사하는 표현 방법이다.
3) 풍유법
본 뜻은 뒤에 숨겨 놓고 비유하는 말만으로 숨겨진 뜻을 넌지시 표현하는 방법이다. "단맛 쓴맛 다 보았다"- 세상 물정 다 보았다.
4) 의인법
'꽃이 웃는다''한강은 말이 없다''가을은 마차를 타고'와 같이 사물을 사람에 견주어 나타내는 표현법
5) 제유법
사물의 한 부분으로 전체를, 또는 말 한마디로 그와 관련된 모든 것을 나타내는 표현 방법. '빵-식량', '감투-벼슬' 등
라. 강조법(과장법, 반복법, 영탄법 등)
1) 과장법
'눈물의 홍수', '쥐꼬리 만한 월급'등과 같이 어떤 사물을 실제보다 크거나 혹은 작게 형용하는 표현법
내 오늘
서울에 와
만평 적막을 산다.
안개처럼
가랑비처럼
흩고 막 뿌릴까보다
바닥난
호주머니엔
주고 간 벗의 명함.
-서벌 <서울1>
2) 반복법
같거나 비슷한 어구를 되풀이하여 문장의 의미를 강조하는 수사법
3) 영탄법
감탄사나 감탄조사, 강조 어미 등을 사용하여 기쁨, 슬픔, 놀라움 등의 감정을 고조 강화하는 기법
마. 변화법(도치법, 인용법, 경구법, 대구법 등)
1) 도치법
어떠한 뜻을 강조하기 위해 말의 차례를 뒤바꾸어 놓음으로써 중심 내용을 더욱 두르러지게 표현하는 방법. '꼭 목화송이 같아, 함박눈이...'
2) 인용법
남의 말이나 글 또는 고사나 격언 등을 인용하는 수사법. 주의할 것은 인용부분에 ' ', " "표나 『 』, *, 주 등을 꼭 해야 한다는 점이다.
난 한 촉 벌고 있는 소액환 창구에서
얼어 터져 피가 나는 투박한 손을 본다
"이것 좀 대신 써 주소, 글을 씰 수 없어예."
- 하순희 <비, 우체국> 첫째 수
11. 퇴고하기
시를 다듬는다는 것에 대하여
퇴고(推敲)라는 고사성어를 새겨보면 글을 다듬는 것의 깊은 뜻을 헤아릴 수 있을 것이다. 퇴(推)는 밀다라는 뜻이고, 고(鼓)는 두드린다는 뜻의 한자다. 퇴고(推敲)란 시문(詩文)을 지을 때 자구(字句)를 여러 번 생각하여 고치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당나라 때의 시인 가도〔賈島:字는 낭선(浪仙),777∼841〕가 어느 날, 말을 타고 가면서 <이응의 유거에 부침〔題李凝幽居〕>이라는 시를 짓기 시작했다.
이웃이 적어 한가로이 살고〔閑居隣竝少〕
풀숲 오솔길은 황원으로 드네〔草徑入荒園〕
새는 연못가 나무에 잠자리를 잡고〔鳥宿池邊樹〕
스님은 달빛 아래 문을 두드리네〔僧鼓月下門〕
그런데 마지막 구절의 '스님은 달 아래 문을‥‥‥'에서 '민다〔推〕'라고 하는 것이 좋을지, '두드린다〔鼓〕로 해야 좋을 지, 여기서 그만 딱 멈추어 버렸다. 그래서 가도는 '推'와 '鼓'의 두 글자만 정신없이 되뇌며 가던 중, 타고 있던 말이 고관의 행차와 부딪치고 말았다.
"무례한 놈 무엇 하는 놈이냐? "
"당장 말에서 내려오지 못할까!"
"이 행차가 뉘 행찬 줄 알기나 하느냐?"
네댓 명의 병졸들이 저마다 한 마디씩 내뱉으며 가도를 말에서 끌어내려 행차의 주인공인 고관 앞으로 끌고 갔다. 그 고관은 당대(唐代)의 대문장가인 한유(韓愈)로, 당시 그의 벼슬은 경조윤(京兆尹:도읍을 다스리는 으뜸 벼슬)이었다.
한유 앞에 끌려온 가도는 먼저 길을 비키지 못한 까닭을 솔직히 말하고 사죄했다. 그러자 한유는 노여워하는 기색도 없이 잠시 생각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내 생각엔 '퇴(推)'보다는 '고(鼓)'가 좋겠네."
이 사건을 계기로 가도와 한유는 둘도 없는 시우(詩友)가 되었고, 스님이었던 가도는 환속까지 하게 되었다고 한다.
퇴고란 좁게는 맞춤법에 맞게 어휘와 어구를 고치고 적절하게 문장을 가다듬는 것이지만, 크게는 작가의 의도를 정확하게 표현하고 독자에게 바르게 전달하려는 것이다. 즉 시원한 소통을 지나, 출렁이는 감흥까지 연결되도록 하는 것이다.
시의 퇴고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시어 한두 개를 바꿔도 시 전체의 미적 감흥이 확연히 달라진다는 것이다. 좋은 시는 단번에 독자의 미적 감흥을 자극하는 스위치를 갖고 있다. 시를 퇴고함에 있어 중요한 것은 한 시 안에 이 스위치를 장치하는 일이요, 이 스위치의 위치를 조정하는 일이다. 시의 방 한 칸이 환해지는 것은 방 어딘가에 스위치와 전구가 있기 때문이다. 벽지만 아름다워도 시 전체가 화사해지겠지만, 순간적으로 독자의 내면을 확 뒤집어 놓는 미적 충격을 주지는 못할 것이다. 이것을 나는 개인적으로, "스위치론"이라고 말한다. 어둡고 어수선한 초고(草稿)의 방 내부에 스위치를 달고 전구를 갈아 끼우는 일이 넓은 의미의 퇴고인 것이다.
그러면 당대의 최고의 문장가 한유는, 왜 '퇴(推)'보다 '고(鼓)'로 바꾸는 것이 낫겠다고 했을까?
'민다'라고 쓸 때에는 바랑을 멘 스님이 날이 저물자 자신의 암자로 돌아온 것이다. 그러니 그저 밀고 들어가면 될 뿐이다. 문 여는 소리야 나겠지만 조용히 자신의 방에 들어가 짧은 독경을 마치고 잠자리에 들면 끝인 것이다. 시 속에 그려지는 풍경의 역동성이 작아지는 것이다.
하지만 '두드린다'로 바꾸면 늦은 밤 스님은 외딴 집이나 낯모르는 암자를 찾은 게 된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신을 끌고 나오는 동자승의 목소리로, 설핏 잠에 들었던 연못가의 새들도 잠자리를 고쳐 앉을 것이다. 또한 산짐승들도 몇 번의 울음소리를 내며 자신의 영역을 확인하려 할 것이다. 의심이 많은 작은 새들은 자리를 차고 올라 달빛을 가르며 날아갈 지도 모른다. 문을 열어주려고 동자승이 눈을 비비며 나올 것이고, 합장하는 작은 손에도 달빛이 어릴 것이다. 탑을 돌아 계단을 올라가는 스님과 동자승의 발등도 보일 것이다. 큰스님에게 조용히 여쭙는 동자승의 목소리가 있을 것이고, 그 다음엔 찻물 따르는 그림자가 암자의 단조로운 문살에 비칠 것이다.
글자 하나가 바뀌면서 시 속의 그림이 영화필름 돌아가듯 바뀌고 암자를 둘러싼 공간 전체가 입체적인 소리 통으로 바뀌는 것이다. 퇴고는 이런 것이어야 한다. 시의 혈관을 풀어주고 독자의 자유로운 상상을 자극하는 퇴고가 되어야 한다. 독자의 상상력에 건전지를 끼워주고 태엽을 감아주는 퇴고가 되어야만 한다. 그래야만 시속의 정신이며 통찰력이 독자에게로 건너갈 수 있으며, 새로운 연대의 힘이나 감동의 파장까지 일으킬 수 있는 것이다.
시를 쓰고 시를 고치는 사람들아.
시의 방에 벽지를 바르고 원앙금침을 깔아놓자. 문 가까운 곳에 스위치를 달고 밝은 알전구도 끼워놓자. 그러면 독자들도 이 방에 들어와 동침을 하리라.(이정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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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시조 쓰기 10계명
1) 소녀 취향을 벗어 던져라. 너무 앳되고 여린 감성을 버리고 눈높이를 높여라. 모든 예술 작품은 '지식의 열매'다. 문학은 작자의 소양, 지식, 인격 등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쏟아 넣는 지식의 산물이다.
2) 상식을 초월하라. 발상을 전환하라. 의식의 혁명->패러다임의 변화. 흔히 산문은 있되 시가 없는 경우가 있는 데, 직설법을 삼가고 은유법과 상상력을 동원하여 '시'를 담아내야 한다. 상식을 초월하는 자만이 소기의 목적을 거두리라.
3) 패기를 살려라. '신인'의 무기는 패기다. 덜 다듬어져도 좋으니까 하늘을 찌를 듯 한 패기를 살려라. 남의 눈치를 살피지 말고 대담하게 대시하라. 기성 시조시인 작품에 과감하게 도전하라. '혁명'을 일으킨다는 각오가 없다면 감히 시조에 도전하지 말라.
4) 소재의 참신성. 시의 소재는 얼마든지 널려 있다. 그러나 그 소재 가운데 상큼한 소재, 경천동지할 소재, 눈이 번쩍 뜨일 소재를 찾아내는 것이 '신인'의 사명이다. 사물을 '새롭게 파악하는 안목'을 가진 자만이 참신한 소재를 발굴해낼 것이다.
5) 스케일이 웅장해야 한다. 한편의 시조를 5∼6수 끌고 갈 수 있도록 스케일이 웅장하고 서사구조를 갖출 수 있는 소재를 천착하라. 우렁찬 목소리가 '울림'의 폭도 큰 것이다.
6) 치열한 시정신. 시조 작품은 언어의 유희가 아니다. 시혼이 깃들지 않고, 시혼이 살아 있는 작품이 아니면 아예 손도 대지 말라.
7) 고정관념을 버려라. (새 술은 새 부대에) 수평적 사고->사물을 거꾸로 보기, 뒤집어 보기, 통찰력 분석력을 가지고 거시적 안목과 미시적 안목에서 사물을 들여다보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
8) 개성을 살려라. 자기 목소리, 자기 스타일을 유지하라. 독특한 개성, 톡톡 튀는 문제를 가진 자만이 이 세상에 끝까지 살아남는 문인이 될 것이다.
9) 정보를 가공하라. 신문 잡지를 열심히 읽고 그때그때 시사문제, 사회적 이슈, 사회적 모순, 비리 문제 등을 시조 문맥 속에 풀어내라. 기성 시조시인의 작품을 열심히 읽고 상대의 장점을 내 것으로 만드는 지혜를 터득하라.
10) 시조를 위해 시간을 투자하라. 시조를 위해 미쳐야 한다. 노력 없이 목적 달성을 바란다는 것은 무위도식과 같은 것이다. 거듭 말하지만 시조를 위해 시간을 투자하라. 투자한 만큼 거두리라. (윤금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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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는 시조의 보법은 어떤 것인가? 다음에 그것을 얘기해보기로 한다. 이 보법에는 대략 5가지의 수칙이 있으니,
첫째가 정형을 지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정형은 궁색하거나 옹색한 것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오랜 역사가 필연적으로 다듬어 온 그릇이어서, 정제된 우리말이면 무엇이거나 다 담고도 남음이 있다는 이야기다.
두 번째가 가락이 있어야 되겠다는 것인데, 우리 일상생활의 음률, 그 내재율이 무리 없이 다 담겨져야 한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시조는 쉬워야 한다는 말씀인데, 그 까닭은 시조가 국민 시이기 때문이다. 쓸 적에는 깊이 오뇌하고, 무겁게 사량(思量)하고, 곰곰이 성찰하되, 다 구워낸 작품은 쉬워야 된다는 이야기다. 언단의장(言短意長)하라는 이야기다.
네 번째는 근맥(根脈)이 닿는 시조, 즉 喜·悲·哀·樂·탄(歎)·묘(妙)·현(玄)·허(虛), 그 밖의 어디엔가 뿌리가 가 닿는 작품을 쓰라는 것이다. 심심풀이, 더러는 화풀이 같은 작품이 눈에 뜨이는 것인 민망한 일이다.
끝으로 시조는 격조가 높지 않으면 그것은 이미 시조가 아니다. 비속어 천속어가 난무하고, 제 몰골도 수습 못할 지경에 이르면 이것은 이미 시조가 아니다.
- 정완영,<시조를 어떻게 쓸 것인가-하나의 管見>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