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최재완 |
2013-03-11 10:01:02 |
■ 사회적 배려 대상자
이념 대립이 심했던 80년대 후반 이후 우리 사회에는 하나의 특이한 현상이 생겨났다. 지금도 그런 경향이 없진 않지만, 그 당시는 사회에서 큰 목소리를 내는 쪽이 좌파쪽 인사들이었다. 이들은 자신들이 자유와 정의를 추구하는 민주투사로서 그들이 하는 행위는 절대선이라고 강변했다.
그들 스스로 진보인사라 자칭했다. 그들 중에는 우리 사회에 순기능을 하는 순수한 진보주의자들이 있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종북을 앞세운 가짜 진보파나 골수 마르크시스트들도 수두룩했다.
좌파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반미를 그들의 행동강령 가운데 최우선순위로 두었다. 미국이라면 무조건 반대하고 증오했다. 그런데 이런 사람일수록 정작 자신은 미국에서 공부하거나 장기간 살다온 사람들이었다. 더구나 그들의 자녀들도 미국에 유학중이거나 미국시민권자가 많았다. 심지어는 자식들의 병역의무을 피하기 위해 미국에 보내기도 했다.
KBS 전사장, 동국대 모 교수, 그리고 정치권과 학계, 종교계, 운동권 등에서 많은 사람들이 그랬다. 그렇게 미국을 싫어하면서도 자신의 거의 모든 사회적 경력과 스펙은 미국 없이는 성립하지 않았다. 그들의 평소 주장과 실제가 너무 달랐다. 겉으로는 반미에 진보였다. 그런데 그 뒤를 살펴보니 미국물을 많이 먹었거나 진보를 가장한 종북주의자들이 너무 많았다.
기득권 세력에 싫증난 시민들은 한 때 혹시나 하고 그들에게 기대해봤다. 그러나 희망은 일순에 불과했다. 겉과 속이 너무 판이했다. 권력과 재물을 탐하는 게 기득권 못지 않았다. 선량한 시민들은 낙심했다. 기득권도 믿지 못하겠고, 그렇다고 겉과 속이 일치하지 않은 자칭 ‘진보주의자들’을 믿기에는 더더욱 어려웠다. 그래서 나타난 일시적인 현상이 지난 대선 때 안철수바람이었다.
이처럼 지난 몇 십년 동안 진보쪽 사람들의 행태가 한동안 문제였다. 그런데 요즘은 기득권 쪽에서 시민들을 실망케 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한나라당 출신의 전여옥 전의원은 자신의 지역구가 영등포 갑이다. 그런데 자신의 아들을 지역구 안에 소재한 신길동 장훈 자율형 사립고(자사고)에 사회적 배려 대상자 전형으로 입학시킨 사실이 최근 드러났다.
아들은 사회적 배려 대상 전형 가운데 비경제부문의 ‘다자녀(3자녀)가정 자녀’로 합격했다가 2학기를 다니고 자퇴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앞서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의 아들도 영훈 국제중에 사회적 배려 대상자 중 ‘한부모가정 자녀’ 전형으로 합격한 사실도 논란의 대상이 됐다. 그러나 이부회장 아들은 거액의 기부금을 내고 입학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회적 배려 대상자는 국제중과 자사고를 설립하면서 생긴 입학전형제도다. 이들 학교는 초기부터 비싼 수업료 등으로 ‘귀족학교’라는 비판을 들었다. 이런 비판을 감안해 경제적 약자나 사회적 소수자에게도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자는 취지에서 이 입학제도가 만들어졌다.
사회적 배려 대상자 전형은 경제적 배려 대상자와 비경제적 배려 대상자로 분류되었다. 경제적 배려 대상자에는 기초생활수급자, 한부모 가족 보호대상자, 차상위 계층이 대상이다. 비경제적 배려 대상자는 한부모 가정 자녀, 소년소녀가장, 조손가정 자녀, 븍한 이탈주민 자녀, 환경미화원 자녀, 다자녀 가정 자녀 등이다.
문제는 바로 비경제부문에서 주로 발생했다. 애초에 소외계층이나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그들에게 균등한 교육을 받을 기회를 제공하기 위헤 설립된 제도가 사회적 배려 대상자 전형이었다. 그런데 여기에 비경제적 부문이 들어가면서 권력이나 돈 있는 특권층을 위한 전형제도로 슬그머니 전락했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전여옥 전의원의 경우 누가 보더라도 그의 정치적 경력이 없었다면 아들이 자사고에 입학할 수 없었을 게다. 한마디로 특혜받은 것이라 하겠다. 그의 평소 정치적 입지와 언행은 바른말 잘하기로 소문났다. 그러나 정작 자신의 일에는 눈 딱 감고 특혜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
누구든지 무슨 일에 특혜를 받고 싶다면 이부회장 아들의 경우처럼 그에 상응하는 기부금을 내던지 아니면 적절한 기여를 해야 한다. 그 간 사회지도층이 이런 상응조치 없이 특혜나 편의를 제공받은 사례가 많았을 것이다. 세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다.
보수냐 진보냐를 막론하고 지위나 힘을 이용해 특별한 대우를 받으려는 자들이 여전히 너무 많다. 겉으로는 온갖 사회정의를 다 찾으면서 속으로는 딴 짓하는 행위다. 지도층이 이래서는 나라의 정기(正氣)가 바로 서기 어렵다.
스스로 지도층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은 공인의 입장에 맞는 적절한 처신과 활동을 하는 게 그들의 과업이자 책무다. 윗물이 시궁창인데 아랫물이 어찌 깨끗함을 유지할 수 있겠는가. 차제에 우리 모두 주변을 다시 한번 둘러보고 숙정할 일은 반드시 숙정해 나가야겠다. 그것이 사회발전의 지름길이다. (完)
2013. 3.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