淸香
부안 채석강에서의 상념의 찌꺼기를 모두 씻어버리고
가벼운 마음으로 다음 목적지인 고창 선운사를 향해 떠납니다.
채석강에서 1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있기에 시간적인 여유를 가지고
변산반도의 남쪽 해안선을 따라 서해바다를 감상하며 달립니다.
가는 도중에 내소사를 들릴까 하였으나
사찰역사에 비해 절의 규모나 특성이 그다지 관심을 끌지 못하고
또 봄철의 경관은 그렇게 추천할 만한 곳이 아니기에 그냥 지나치기로 했습니다.
곰소항을 지나 흥덕에서 22번 국도로 들어가 계속 달리면
선운사에 들어가는 입구를 만나게 됩니다.
그러나 그전에 우리나라의 근대정치에 큰 족적을 남기신
인촌 김성수선생의 생가와 현대문학의 거목이셨던
미당 서정주선생의 생가의 안내표지를 볼수가 있게 됩니다.
사실은 그러한 곳을 방문하여 그분들의 체취를 느껴보는 것이
보다 의미있는 여행이 될거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우리의 몸에 벤 타성은
유명하다는 문화재의 지명도에만 익숙해져 있어
특별히 여행목적을 갖고 오지않는 한 그곳까지 들리지 못함에
아쉬움이 남습니다.
선운사가 가까워 오면서 도로의 오른편으로 길을 따라
개천이 흐르는데 이 천(川)의 이름이
바로 민물장어의 서식지로 유명한 풍천(豊川)입니다.
이곳은 바닷물과 민물이 어울어지는곳이기에 장어들의 서식지로는 최고입니다.
그래서인지 길을 따라가며 장어구이 음식점들이 이어지는데
선운사로 꺽어 들어가는 삼거리는 장어구이 음식점이 집촌을 이루고 있습니다.
11시쯤에 도착한 우리 일행들은 먼저 선운사를 관람한 후
내려와 식사를 하기로 하고 바로 선운사로 향합니다.
淸香
參禪臥雲之義에서 명명되었다는 유래를 가지고 있는 禪雲寺는
백제 말엽의 위덕왕24년(서기 577년)에 검단선사의 개산(開山)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한때는 32개의 암자와 3000여명의 스님이
머물렀다고 하는데 임진왜란으로 대부분이 소실되고
지금의 모습은 광해군 이후에 중창된 모습입니다.
임진왜란의 7년전쟁이라는 하나의 역사적 사건이
수천년 이어온 우리의 문화를 도저히 회복할 수 없도록
철저히 파괴시킨 것에 대한 분노와 함께
왜 국가가 부강해야 하며 나라의 지도자는 정치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실증적 유적을 통해 반면교사를 깨달아야 함에도 아직도 정신차리지 못한
현세의 정치상황을 보면 가슴만 답답할 뿐입니다.
어딜가나 비슷한 절에 대한 얘기는 흥미도 없을 뿐아니라
이곳 선운사에 대해서는 우리카페(그곳에 가고싶다)에서 전에 한번 소개한것이기에
자세한 설명은 피하기로 합니다.
그보다는 차라리 선운사 경내를 들어서면 오른쪽에
조그만 시비가 있는데 禪雲山曲(선운산곡)에 대한 얘기가 적혀 있습니다.
그 얘기를 들려주는 것이 좋겠습니다.
백제때 이 고을의 어느 사람이 전쟁에 나가 오래되도록 돌아오지 않으므로
그 아내가 선운산에 올라가 부군을 상사(想思)하며 노래한 것이
바로 선운산곡으로 백제시대의 가사가 지금까지 전해 내려온 것으로는
이것이 유일한 것이라고 합니다.
淸香
선운사 입구에서 사찰내부까지 군락을 형성하는 3천여 그루의
동백나무는 수령이 500년으로 4월말에 동백꽃 만개의 절정을 이루는데
동백꽃이 질 때는 꽃송이가 통체로 뚝뚝 떨어지는 모습이
마치도 자신의 몸을 투신하여 대자연에 순교하는 느낌을 갖게 합니다.
(지난 3호의 전주편에서 순교성인에 대한 얘기 참고)
특히 선운사 대웅전 뒷뜰의 동백 군락숲은 울창하기가 국내 최대규모로
꽃들이 만발할 때면 온 산이 선혈이 뿌려진듯 진홍빛 꽃잎과
노란 꽃수술의 조화가 장관을 이룹니다.
지금은 밑에 있는 동백나무에서만 꽃들이 피어있을 뿐이었지만
그래도 화려한 기개는 만만치 않았습니다. .
진홍빛 동백꽃잎을 보며 문득 이미자의 동백아가씨의 노랫가사가 떠오릅니다.
“헤일수 없이 수많은 밤을 님을 그리다가 동백꽃처럼 빨갛게 멍이들었다”는
노랫말이 가슴 절절히 와 닿는 것은 왜 일까요?
나의 팬 1호인 순아님이 그리워서 일까요?
아니면 지난 정모때 만난 모든 님들이 그리워서 일까요?
그것도 아니면 드라큐라의 피묻은 입술을 닦으라고 네프킨을 건네주던
호야님이 생각나서 일까요?
유행가 가사라고 한낯 일과성으로 지나치고 말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 시대의 시대상과 문화가 고스란히 녹아있는 것이
바로 대중가요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또 대웅전 좌우에 심어진 백일홍의 기묘한 형상은
꽃이 피면 동백꽃과 함께 선운사의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입니다.
이번에도 지난 금산사에서와 같이 경내에 있는 찻집에 들어가
차를 마셔보았습니다만 그다지 권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경내를 구경하고 나오면서 부도를 찾아가 보려다 세찬 비에 포기하고
그냥 지나쳐야만 했던 것도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것은 부도탑 중에 추사 김정희선생이 쓴 백파선사비문이 너무도 유명하여
수많은 서예가들이 탁본을 떠가는 것으로 이름이 있는 곳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유홍준씨가 쓴 <나의 문화유적답사기>를 보면
그 비문 중 끝의 몇 자는 추사의 글씨가 아닌 다른 사람이
추사체를 흉내 내어 쓴것이라는 사실을 아는사람이 많지 않다고 쓰고 있습니다.
절앞 주차장에 있는 특산물 전시장에서 복분자술 4병을 사들고
기다리고 기다리던 풍천장어를 먹기위해 선운사 입구에 있는 식당으로 향했습니다.
여러식당이 있는데 그 중 선운사로 꺽어지는 입구 첫번째집
(신덕식당 TEL;063-562-1533, http://www.SinDug.co.kr ,
E-mail Sinduk@kornet.net)이 가장 맛있고 잘하는 집입니다.
그곳은 식사 때에 가면 1시간 정도는 기다려야 하는 것을 각오해야 합니다.
장어 맛 뿐만 아니라 다른 반찬이 다 맛있으며 1인분(14,000원)이면
성인남자 양으로 충분할 정도로 듬뿍 담아 줍니다.
거기에 드디어 기다리던 복분자 술을 한잔 곁들이면
天下江山이 眼下遊가 되어 저절로 기분이 흥겨워 집니다.
(식당에서도 복분자술을 팔고 있음)
전국각지에서 몰려오는 관광객으로 자리잡기가 어려울 지경입니다.
그러나 그 맛에 있어서는 절대 실망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이곳을 꼭 한번 들려보시고 복분자 술을 몇병 사가지고 오시면
집에 와서까지 여행의 여운을 오래 간직할 수 가 있을 것으로 생각해 봅니다.
바로 옆자리에 앉은 여행자들도 이번 연휴에 부산에서 오셨다며 무척 만족을 느낀다고 하더군요.
우리(남자)는 식당에서 복분자를 한잔씩 마시고 차의 운전은
부인들에게 맡기며 다시 차를 몰아 정읍 내장산으로 향했습니다.
정읍으로 향하는 넓고 잘 닦은 도로를 달리며
기분좋게 마신 술기운에 이곳 질마제 시인의 詩 한 수를
읊지 않고 지나칠 수 가 없었습니다.
선운사 동구 –미당 서정주-
선운사 골째기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않았고
막걸리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것만 상기도 남었습니다
그것도 목이쉬어 남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