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악산 (1288)등산
조 흥 제
1989.9.24.
1979년 초겨울에 조일산악회에서 갔다 온 후 10년만에 조일산악회에서 194차 산행을 또 치악산으로 갔다.
치악산은 강원도 원주 근방에 있으며 선비와 구렁이의 전설이 깃든 산이다. 옛날에 과거 보러 가던 한 선비가 치악산을 지나가는데 요란한 까치 소리가 들려 바라보니 나무 위에 까치가 구렁이에게 휘감겨 곧 잡혀 먹히게 되어 본능적으로 화살을 꺼내 구렁이를 쏴 까치를 살려 주었는데 그날 저녁 숙소로 정한 곳이 깊은 산속 외딴 집이다. 여인 혼자 사는 집이라 거북하긴 하였지만 어쩔 수 없었다. 잠결에 가슴이 답답하여 눈을 떠 보니 구렁이가 가슴을 감고 있었다. 구렁이는 “네가 낮에 내 남편을 죽였으니 나도 너를 죽여야 되겠다.”고 했다. 선비가 그때 상황을 설명하자 그렇다면 “집 뒤 절간이 있는데 절 뒤 종을 치면 살려 주겠다”고 했다. 종은 높아서 칠 수 없었다. 그때 종을 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구렁이는 몸을 스르르 풀더니 사라졌다. 선비가 종루 앞에 가 보니 머리가 깨진 까치가 떨어져 죽었는데 낮에 살려 준 그 까치가 보은을 한 것이다. 그래서 산명이 까치치(雉)자를 넣어 지었다는 전설이 있다.
8시 30여 명의 회원들이 모여 15분에 출발하였다. 10시40분 치악산 입구인 구룡사 주차장에 도착하여 가게에서 필요한 물건을 사고 출발. 구룡사는 공사가 한창이다. 구룡사를 지나자 철다리가 나오고 건너 조그마한 폭포가 나오는데 구룡소인 모양이다. 폭포는 높지 않으나 소는 깊어 보인다.
오늘 산행 계획은 선녀탕~세렴폭포, 사다리병창~비로봉~서북능선으로 잡았는데 사다리병창 코스가 험하고 사람이 많을 것 같아 내려오는 코스로 올라가기로 했다. 조금 오르자 앞서가는 팀이 우뚝 섰다. 길을 잘못 들은 것이다. 안내 총무 박영래씨가 바로 잡아 주었다. 일행이 쉬는 회수가 많아 나는 그대로 가려고 하니 ‘이 길도 한 시간쯤 가면 능선길에 올라서는데 거기서 쉬세요.’한다. 선두팀을 이끌고 가다 보니 길이 쌍갈래 길이다. 길이 잘 보이지 않아 뒷팀이 오면 같이 행동하기로 했다. 뒷팀과 합류, 계곡 가에서 휴식, 내가 또 가려고 하니 앞 팀을 선두하란다. 얼마쯤 가다 선두 따라오는 팀에게 추월당하다. 나는 무리없이 가는 것이 특징.
12시50분경 급한 경사 길을 치고 올라가니 능선길이다. 거기서 쉬다 쥐가 난 사람이 있어 걱정하면서 오르니 후미 팀이 아직 오지 않아 기다리다 보니 다른 사람들이 다 올라간다. 나도 가다 뒤돌아보며 완만한 능선길을 따라가니 정상부 돌탑들이 보이는 것이 정상이 멀지 않은 것 같다. 2시경 정상에 서다. 날씨는 청명하여 멀리까지 보이고 바람도 없어 추위는 못 느꼈다. 10여일 전에 백두산에 올랐을 때의 추위가 하도 심해 잠바를 가져왔으나 꺼낼 필요가 없었다. 먼저 올라왔던 팀들은 기다리다 지쳐 내려간다고 한다. 카메라를 가진 사람이 나밖에 없어 사진 찍고 내려가자고 하니 되짚어 올라오기가 귀찮아 그들은 그냥 내려가다.
정상에는 커다란 돌탑이 3개가 있다. 그 탑을 쌓게 된 계기가 재미있다. 원주에서 과자 장사 하는 용진수씨에게 꿈에 하얀 노인이 나타나 치악산 정상에 바닷가에 있는 예쁜 돌을 갖다 3개를 쌓으면 국태민안(國泰民安)한다는 꿈을 꾸고 62년부터 시작하여 74년까지 쌓았다. 등산객들이 돌이 예쁘다고 빼가서 자꾸 무너지자 다시 쌓기를 여러 차례, 결국 병이 나서 50대에 죽었다. 그 탑은 높이 10m의 3개의 탑이다.
후미팀과 합류하여 사진 찍고 간식을 나누어 먹고 하산했다. 200~300m 내려가니 석간수에서 나오는 약수가 있어 거기서 밥해 먹다. 5시30분 구룡사 주차장에서 도토리 묵으로 목마름을 달래고 7시에 차에 올랐다. 10시 서울에 무사히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