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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의 사찰 神興寺 에서 2014/10/23 22:23 | 추천 2 스크랩 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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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금성에서 내려다 본 울산바위를 배경으로 한 신흥사와 통일 대불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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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은 등반으로 서너 번을 갔었어도 오래되어서 그런지 설악의 명승지로 불리는 신흥사는 기억에 없었다. 가 보면 알겠지 하고... 다녀온 곳 신흥사...
신흥사는 1984년 6월 2일 강원문화재자료 제7호로 지정되었다.
신라의 승려 자장 (590년(진평왕 12) ~ 658년(태종무열왕 5)이 창건하고 석가의 사리를 봉안한 9층탑을 세워 향성사香城寺라고 부르다가 701년 화재로 소실된 후 의상義湘대사가 이곳 부속암자인 능인암터에 다시 절을 짓고 선정사禪定寺라고 하였다 선정사禪定寺는 천년동안 번창하였는데 조선 중기 인조 22년(1644)에 다시 화재로 소실되었단다.
선정사가 불타자 많은 승려가 떠났으나 운서, 연옥, 혜원 세 승려만은 유서깊은 사찰이 폐허가 된 것을 가슴 아프게 여겨 재건을 논하던 중 하루는 세 승려가 똑같은 꿈을 꾸었는데 꿈에 향성사 옛터 뒤의 소림암으로부터 신神이 나타나 이곳에 절을 지으면 수만년이 가도 삼재가 범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고 사라졌다.
그래서 다시 절이 세워졌으면 신의 계시로 창건하였다고 하여 "신흥사神興寺"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펌)
옛 향성사香城寺터 삼층석탑
설악동 입구 눈에 잘 띄지 않아 사진도 주의해서 찍지를 않았는데 다행인지 사진 속에 포함되어 있는 삼층석탑...
자장율사가 창건할 당시의 향성사(香城寺)라는 절이 신라 32대 효소왕 10년 (691)에 화재로 모두 불타 없어졌지만 설악동 입구에 있었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 바로 이 삼층석탑!!!
이 삼층석탑 있는 곳이 그 옛날 향성사터로 지금의 신흥사神興寺이다.
일주문
신의 계시로 지었다는 신흥사의 일주문은 사찰의 문 즉 산문이라고도 한다고. 산사에 들어서면 맨 먼저 만나게 되는 문으로 경내와 경외를 구분하는 문을 지나려니 올 최고의 인파인듯 많은사람들에 떠밀려 간다는 표현을 하고 싶을 정도였다.
사람 피해 사진 찍어대느냐 얼마나 힘들던지이 애써 찍은 사진 욕심껏 올려 보려구요...ㅋ
일주문에 들어서자 바로 오른쪽으로 부도밭이 단풍속 너머 보인다. 우선 절 입구에 가면 먼저 눈여겨 볼 부도밭...
속초 신흥사 부도군 束草 神興寺 浮屠群
신흥사는 신라 (新羅) 진덕여왕 6년(652)에 자장율사(慈藏律師)가 창건하여 향성사(香城寺)라 불렀으나 효소왕 10년 (701)에 의상대사가 중건(重建)하고 신정사로 개칭 하였으며 조선 인조 22년(1644)에 사찰을 중건하고 신흥사로 개칭 하였다.
부도군에서 모두 17기의 부도가 있는데 원당형((圓堂塔)이 7기이고 석종형(石鐘形)이 10기 이며 부도명이 있어 주인공을 알 수 있는 것이 12기이다 부도와 함께 6기의 비석이 있는데 모두 1779년부터 1827년 사이에 세워진 것이다.
이곳의 부도는 모두 조선 후기(後期)의 것으로 신흥사 중창이후 역대 고승들의 부도가 단일 장소에 집중된 전형적(典型的)인 부도군이란다.
부도(Buddha) Studa 또는 부두(浮頭), 부도(浮屠), 포도(蒲圖), 불도(佛屠)라고 함. 옛날에 부도(浮屠)를 번역한 사람들은 불타(佛陀)의 전음(轉音)이라하고 근간에 이를 번역한 신역가(新譯가)에서는 [솔도파(率堵婆) 곧 탑의 전음(轉音)이라 한다.
후세(後世)에는 흔히 솔도파(率堵婆)와 통용하며 우리나라에서는 스님네들의 사리(舍利). 유골(遺骨) 정골(頂骨=두정골頭頂骨)을 넣은 석종(石鐘)은 부도(浮屠)라고 함. 중국에서는 옛날에 스님네를 일컫는 말로 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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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사 통일염원 석불
1987년 착공해서 1997년에 민족의 염원인 통일을 이루고자 하는 마음에서 완공된 통일 염원 석불이란다.
신흥사 통일염원 석불은 크기는 높이 14.6m, 좌대 높이 4.3m, 좌대 지름 13m, 광배 높이 17.5m 규모의 대형 석가모니불로 민족통일을 기원하기 위하여 조성하였단다. 총 108t의 청동이 사용되었으며, 8면 좌대에는 통일을 기원하는 16나한상(十六羅漢像)이 돋을새김으로 새겨져 있다.
불상의 미간에는 지름 10㎝ 크기의 인조 큐빅 1개와 8㎝짜리 8개로 이루어진 백호가 박혀 있어 화려함을 더한다.(펌) 사진 불가라나??? 계단을 내려가 내부로 들어가면 법당이 있었는데 청동불 바로 밑을 내법원당이 터를 잡고 있다고 보면 된다.
이곳에는 1,000개의 손과 눈을 가진 천수천안관세음보살이 봉안되어 있다.
이 글을 읽어 보면.....음!!!
대충 읽어보고는...ㅋ
권금성과 노적봉을 배경으로한 산사!!! 그림 좋고..뭐어 공기야 말 할 것도 없곤...ㅋ
세심교 절간으로 들어가기 전 마음을 먼저 씻고 정갈한 마음으로 가야징,,,...ㅋ
세심교 다리 난간의 조형물도 눈여겨 보다. 용... 용머리인가???.
신흥사 가람 배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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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왕문
신흥사로 들어가기 전 거쳐야 하는 사천왕문 사천왕은 불법에 귀의한 중생을 보호하고 부처의 도량에 잡귀들이 침범하지 못하도록 하는 수호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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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로수대
사천왕문을 들어서자 바로 문 옆에 있던 감로수대에서 물 한모금???...달디 답디다....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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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사 보제루
사천왕문을 지나면 가장 먼저 신흥사 보제루의 모습을 보게 된다. 이 신흥사 보제루는 조선 영조 46년(1770) 세워진 것으로 장대석으로 쌓은 2단 기단 위에 정면 7탄, 측면 2탄의 홑처마 맞배지붕 구조이다.
법고나 목어... 경판 등의 보관에 통풍이 잘 되게 하기 위한 습도조절용(?)으로 기둥에 주춧돌(기둥 밑에 기초로 받쳐 놓은 돌)을 받쳐 놓은 조상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곳을 통해 신흥사 본전 안마당으로 들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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神興寺極樂寶殿
극락보존極樂寶殿은 1971년 12월 16일 강원도유형문화재 제14호로 지정되었다. 신흥사의 본전으로 인조 25년(1648)에 창건하였으며 영조 26년(1750) 순조 21년(1821)에 중수하였고, 최근 1977년에 보수하였다. 잘 다듬어진 화강암으로 쌓은 높은 기단 위에 세워져 있다. 공포는 3출목이며 쇠서(전각 기둥 위에 덧붙이는 소의 혀모양으로 된 장식)는 끝이 위로 올라간 앙서이다.
소로(小累)와 첨차의 아랫부분이 직면으로 사절되어 조선 후기의 일반적인 형태를 취하고 있다. 전면 계단은 하나의 돌로 되어 있고 양끝에 용두를 새겼고, 옆면에 귀면상을 조각하였다.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좌우에 봉안되어 있다. 공포의 아름다움과 단청의 다양한 문양은 다른 건물의 추종을 불허한다. (두산백과)
본전 앞마당의 석등과 괘불대
극락보전은 극락세계의 주인공인 아미타블을 주존으로 봉안하는 보배로운 전각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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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사 명부전 新興寺 冥府殿
18세기에 건축된 신흥사 명부전은 전면 창호의 조형과 구성에서 보이는 독특함과 전체적인 통일성 등을 볼 때 조선후기 사찰 건축의 전형적인 특징인 간략화와 다양성을 보여주고 있어 조선후기 사찰건축의 양식적 특징 연구에 중요한 자료적 가치가 있다는 점에서 지정 보존가치가 있다고.
*** 新興寺 木造地藏菩薩三尊像 신흥사 목조지장보살삼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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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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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묵당(寂默堂) 말없이 명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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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종루
범종은 경내 보제루에 보존되어 있는데, 이 종은 1400여년 전 향성사의 종이라고 전한다. 향성사가 불탈 때 깨졌던 것을 1748년에 원각(圓覺)이 개주했으나 소리가 완전하지 못하여 1758년에 홍안(弘眼)이 다시 개주하였다.
이 종의 무게는 600㎏으로 6·25전쟁 때 총상을 입은 뒤 1963년에 수리하여 보존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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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하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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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전祖師殿
조사전祖師殿은 조사스님(종파를 개설한 스님 또는 그 가르침을 이어 전하는 스님) 또는 사찰의 창건주, 중창주 스님의 공덕과 위업을 기리기 위해 스님의 위패 또는 영정을 모신 전각이란다.
새로 단장이 되어서인지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선명한 꽃살무늬가 당혹하게 만들 정도로 화사하다....ㅋ
노적봉과 권금성 배경으로 한 선원과 법검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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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원仙院
참선공간이라고.. 불교 선종의 사원 또는 선을 닦는 도량으로 선원에서의 수행은 좌선을 중시하기에 좌선방이라도 하는 전통적인 승려 교육기관을 의미하기도 한단다.
잎이 다 떨어진 담쟁이 줄기가 엉겨있는 모양도 새롭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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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공지혜의 칼을 찾는 집이라 하여 법검당이라고 하며 사찰 내에 적묵당(寂默堂)이 심검당과 함께 위치할 경우에는 적묵당은 선원仙院으로, 법검당은 강원講院으로 이용되는 경우가 많으며 이곳은 순수한 수행처라고 한다.
이곳은...???
울산바위로 가는 길목에 있던 부도와 비석
사천왕문을 나서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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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