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여주역>여주향교>연세새로운병원>소양천>한글시장(여강길동일)>대로사>전망대>세종산림욕장(스템프)>세종대왕역사문화관>세종대왕릉>두름길>효릉>왕의숲길>영릉>뻐스이동>한글시장>함흥냉면(식사)>소양천>여주역
“영릉(寧陵)을 참배하기 위해 임금이 걸었던 거둥길” 거둥길은:왕이 선대왕의 능에서 제사를 주관하기 위해 오가던 능행길을 말합니다. 여주에는 조선의 제4대 임금 세종대왕의 영릉(英陵)과제17대 효종대왕의 영릉(寧陵)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세종대왕이 후손에게 남긴 훌륭한 업적들과 그 업적의 바탕이 된 애민정신을 되새겨 볼 수 있습니다 또한 효종대왕의 북벌에 대한 의지를 느껴볼수있는 구간입니다 효종대왕을 참배하기 위해 수 많은 임금이 걸었던 길을 생각하며 걸어보시길 바랍니다
여주향교는:경기도 문화재자료 제3호로 지정된 여주시를 대표하는 고려말~조선시대 지방 교육기관이다. 여주향교는 본래 고려 말 가정 이곡에 의해 마암 근처에서 창건되었는데, 임진왜란 때 불에 타 1685년(숙종11년) 여주읍 홍문리의 잣나무 고개에 재건하였다.하지만 이후 부락에 자주 괴질이 발생하여 마을 주민이 희생되자 풍수지리상 좋지 않다고 하여 현 위치로 이건 되었다. 건물의 배치는 전형적인 전학후묘의 형태이며, 여주 향교는 규모는 크지 않으나 건물 부재의 형태나 결구법에서 지역성이 잘 나타나 있다. 지금은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가을 분향하는제사의 기능만이 남아있다 전교1명과장의 6~7명이 운영을 담당하고 있으며 현재상시개방되고 있지 않다 주요 문화재 1) 대성전 2) 동무 3) 서무 4) 내삼문 5) 명륜당 6) 외삼문
1979년 경기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대로사는 조선 후기의 학자 송시열(宋時烈)의 영정을 모신 사우이다.1785년(정조 9) 왕이 영릉(英陵)에 참배하다가 옛날 송시열이 능을 향해 통곡하며 후진에게 북벌(北伐)의 대의를 주장했다는 말을 들었다.이에 김양행(金亮行) 등 유신에게 명하여 사당을 건립하게 하고 '대로사'로 사액(賜額)하였다.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 때에도 그대로 존속되어 이름만 '강한사(江漢祠)'로 개칭하였다
비 앞면에는 ‘대로사비(大老祠碑)’라는 전액(篆額)이 적혀 있고, 뒷면에는 정조의 어필(御筆)로 된 비문이 새겨져 있는데 위에는 전액(篆額)으로 ‘어제어필(御製御筆)’이라고 쓰여져 있고 그 아래에 ‘대로사비명병서(大老祠碑銘幷書)’라고 쓰여져 있다.비문 끝에 ‘황명숭정기원후삼정미동십일월(皇明崇禎紀元後三丁未冬十一月)’이라는 기록이 있어 1787년에 세워졌음을 알 수 있다. 화강암으로 되어 있는 이 비는 방형대석 위에 비신을 세우고 그 위에 지붕모양의 가첨석을 얹었다. 규모는 총높이 377㎝, 비높이 224㎝, 너비 66㎝, 두께 66㎝이다. 비각 속에 잘 보존되어 있다.
영릉(세종과 소헌왕후)영릉은 조선 4대 왕 세종과 소헌왕후의 능이다.영릉은 1446년에 소헌왕후가 먼저 세상을떠나자 세종이 미리 정했던 자리인헌릉 서쪽에 있는 현 인릉 자리에 처음 조성되었고, 4년 뒤에 세종이 세상을
떠나자 합장릉의 형태로 조성되었다. 그 후 풍수지리상 자리가 좋지 않다고하여 1469년에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봄철5월~6월가을철10월~11월개방
첫댓글 산머슴님 더운날 좋은길 안내해주고 댕겨온길 후기로
정리하여 잘 담아주셔서 머리속에 쏙쏙 후기보니 먼길만큼 즐거움도 가득했지요
수고많으셨습니다.
세종효종길 봉화7길은 볼게 많은길 이었네요 발로 걸음며 눈으로 즐기며 몸으로 체감하며 즐기며걷는 기분 좋은 길이었네요 우암송시열의 사당 대로사도 이외로 넓고 잘 정리되어 있고 남한강을끼고 있는 여강길도 부분 겹쳐서 걸을 수 있었지요 소나무숲속의 세종산림욕장 환상이었습니다 오솔길 걸으며 맘껏 휠링 할 수 있슴에 감사하며 즐건 나들이 었습니다 우리 길벗님들 또한 대단한 체력들을 가지고 있지요 지치지 않고 무한체력?자랑스렵습니다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공지했던 거리보다 훨씬 많이 걸은 길인 것 같은데도, 함께 한 길벗들의 유쾌한 분위기 덕에 힐링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올려주신 사진들을 보면서 놓쳤던 역사를 되새기는 시간을 갖게 되네요. 산머슴님 수고 많았습니다.
여주시가 옛날과 현재가 공존하는 평화로운 곳이군요
고운길입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