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탄진행 무궁화 열차의 카페:그동안 장거리 라이딩 이동시에는 항상 버스를 이용 하였으나 기차 이용은 처음이다
자전거 거치대가 있는 기차만이 자전거를 실을 수 있다고 하여 약간 걱정을 했으나 驛務員(역무원)이
친절히 카페안으로 안내하여 주었다
대청호에 물 안개가 피어 오르고 있다
合江亭(합강정):금강 8경중 제 8경.
屛風(병풍)처럼 펼쳐진 한장의 그림과 같은 아름다운 금강의 景觀(경관)을 한눈에 볼 수 있다
合江(합강)은 금강과 조치원에서 흘러 내려온 미호천이 합해져서 생긴 말이다
세종보:세종시의 象徵性(상징성)을 부여하고 한국의 文化(문화),藝術(예술), 科學(과학)의 우수성과 금강의 흐르는 물결을 形象化(형상화) 하였다
水門(수문)이 눕는 形式(형식)으로 건설되어 있어 흡사 간이 물막이댐 같기 때문에 그냥 지나치기 쉽다(세종댐 수력 발전소가 있는 곳이다)
석장리 박물관:공주시 석장리 일대에서 發掘(발굴)한 先史時代(선사시대),舊石器 時代(구석기 시대)의 遺物(유물)을 傳示(전시)하고 있는 博物館(박물관)
公山城(공산성)...옛 熊津城(웅진성이다):아래 설명 참조
백제 무령왕릉 입구:옛 古都(고도)답게 古風(고풍)스러웠다
송산리 고분군(아래 설명 참조):무령왕릉을 포함하여 총 7기의 왕릉이 있다
공주보:百濟(백제)의 잃어버린 名聲(명성)을 되찾은 武寧王(무령왕)을 象徵(상징)하는 鳳凰(봉황)을 形象化(형상화) 하였다
백제의 르네상스를 향해 펼쳐진 봉황의 큰 날개짓이란 意味(의미)에서 "금빛 나래보"라 命名(명명) 하였다
백마보: 黃山(황산)벌에서 5천 決死隊(결사대)와 함께 羅唐(나당) 聯合軍(연합군)에 결연히 맞서 싸우다 장렬히 玉碎(옥쇄)한 階伯將軍(계백장군)이 白馬江(백마강)을 지키기 위하여 살아 돌아 왔다는 "階伯衛還(계백위환)"을 테마로 말을 타고 백마강을 내려다 보는 것을 形象化(형상화) 하였다
이 곳을 지날때는 계백 장군이 노기띤 음성으로 部下(부하)들에게 督戰(독전)하는 다급한 외침과 오천 決死隊(결사대)가 황산벌(지금의 논산시 연산면 신양리,신암리 일대)에서 敵陣(적진)을 향해 뿌연 먼지를 일으키며 突進(돌진)하는 말굽소리와 喊聲(함성), 그리고 나라를 위한 衷情(충정)이 "바람의 소리"가 되어 웅웅거리며 나의 귓가에 맴 돌았다
지나가는 나그네인 나의 가슴속에서는 그 무엇인가 뜨거운 것이 솟구쳐 오르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아! 계백장군의 나라를 위한 衷情(충정)을 생각하니 왠지 나도 모르게 목메어 울고 싶구나! .......계백과 오천 결사대여! 영원하라!.......
落花巖(낙화암):저 扶蘇山(부소산)에는 三千宮女(삼천궁녀)의 傳說(전설)이 서린 落花巖(낙화암),궁녀들의 넋을 위로 하기 위하여 세운 皐蘭寺(고란사),백제 왕들이 즐겨 마셨고 이 약수를 마시면 3년이 젊어 진다는 皐蘭藥水(고란약수)터, 바위틈에 자라고 있는 長生不老草(장생불로초)인 皐蘭草(고란초),백제의 마지막 세 忠臣(충신)인 계백,성충, 흥수의 影幀(영정)을 모신 三忠祠(삼충사)가 있다
금강은 부소산을 베고 흐르나니
고란사 아래 무심한 유람선만 왔다 갔다 하는구나!
그대여! 이곳에 들르시거든
반드시 허무하게 사라진 백제의 자취를 더듬어 보시라!
지금은 백마강에 雜草(잡초)만 무성하여 지나가는 나그네의 시름만 깊게 잠기게 하는구나!
저 멀리 낙화암 절벽위에 1929년에 궁녀들을 追慕(추모)하기 위하여 세운 육각형의 百花亭(백화정)이 보인다
아! 삼천 궁녀들! 백마강 푸른 물에 몸을 맡기고
꽃 지고 옥 부서지듯 물따라 가버렸구나!
낙화암 아래에 꽃들은 없으니 필히 천상에서 노닐고 있으리라!
아직도 내 마음 속에는 그대들이 아름다운 꽃잎으로 남아 있어라!
부여의 브릿지 파크:자전거 도로가 공원으로 꾸며져 있어 참으로 넓다
강경 황산 포구 등대:1915년에 세워진 이 燈臺(등대)는 금강 하류에서 서해의 魚物(어물)을 싣고 들어 오는 漁船(어선)과 旅客船(여객선)을 안내해 주었고 등대에 표시된 水位標(수위표)는 조수간만차,장마철의 홍수로 인한 水位(수위) 변화를 測定(측정) 하였다
허나 지금은 뱃길 끊긴 강가에 외롭고 쓸쓸한 등대만이 덩그러니 있으니 歲月(세월)도 참 무상하구나!
아! 그 옛날 이 부근의 酒幕(주막)은 뱃사공들로 붐볐었겠지!
뱃사공들이 하루의 피곤을 풀고 시름을 달래기 위하여 막걸리 잔을 기울며 시끌벅적 흥청 댔겠지!
錦江(금강) 河口堰(하구언)에 도착 :금강 종주길은 총 6개의 인증센터(대청댐,세종보,공주보,백제보,익산 성당 포구,금강 하구둑)가 있는데 공식 주행 거리는 146키로로 표지판이 잘 되어있고 평탄하고 아름다운 길로 잘 알려져 있으나 나는 라이딩 도중에 여러번 길을 헷갈리고 시간에 쫒기느라 惡戰苦鬪(악전고투) 끝에 完走(완주) 하였다
금강 하구언의 落照(낙조):국내 최대의 철새 到來地(도래지)인 금강 하구언은 금강 8경중 제1경이다.
아름답다 못해 황홀한 落照(낙조)를 바라 보며 나의 모든 낡은것을 비워 내고 그 자리에 새로운 희망과 기대를 채워 보았다
허나 아쉽게도 이번 라이딩중 가장 보고 싶어 했던 철새들의 群舞(군무)는 보지 못했다
작은 점이 모이고 흩어지고 다시 모이면서 세상에서 가장 驚異(경이)로운 公演(공연)이라는 철새들의 群舞(군무)....,
먹구름처럼 까맣게 수 놓았던 가창오리 군단이 금강둑을 넘어 서천과 군산의 논으로 사라지는 황홀한 철새들의 군무를 언젠가 내 두눈으로 기어히 보리라!
금강둑의 갈꽃과 억새들도 가창오리의 군무가 연출하는 感動(감동)에 몸을 부르르 떤다고 하지 않던가!
백마강의 유람선:이 유람선은 구드래 나루터에서 낙화암 사이를 운항한다
흘러간 구슬픈 백마강 노래가 흘러 나오는 듯 했다
백마강에 고요한 달밤아
고란사에 종소리가 들리어 오면
九曲肝腸(구곡간장) 찢어지는 백제 꿈이 그립구나!
아~~ 달빛어린 낙화암의 그늘 속에서
불러보자 삼천 궁녀를,,,,,
백마강에 고요한 달밤아!
철갑옷에 맺은 이별 목메어 울면
계백장군 삼척님은 임사랑도 끊었구나
아~~오천결사 피를 흘린 황산벌에서
불러 보자 삼천 궁녀를...
백마강에 고요한 달밤아!
칠백년의 한이 맺힌 물새가 날면
일편단심 목숨 끊은 남치마가 애닯구나
아! 낙화 삼천 몸을 던진 백마강에서
불러보자 삼천궁녀를....
은빛 물결로 출렁이는 갈대: 바람이라도 몸을 간지럽히면 갈대는 몸을 부르르 떨며 은빛 물결로 출렁이며 춤을 춘다
아! 나는 詩人(시인)이 못되어 이런 아름다움을 보고서도 시 한 줄 못쓰니 그게 痛歎(통탄)스럽구나!
금강 종주 라이딩 내내 라이딩 길목 길목은 온통 은빛 물결로 출렁이고 있었다
그대들이여!
강 건너에는 우리나라에서 4대 갈대밭으로 유명한 서천 신성리 갈대밭(금강 8경중 제 2경)이 있으니 가서 애잔한 갈대의 노래를 한번 들어 보시라!
강경 황산포구: 한때 원산과 함께 조선의 2대 포구로 번성했던 강경 황산포구
관광객 없는 텅빈 유람선만이 외롭게 강가에 떠 있다
강경포구에서 바라보는 노을은 무척이나 아름답기로 유명한데 黃山(황산)이란 말은 노을이 빚어 낸 이름이며, 노을에 感染(감염)된 地名(지명)이다
그 누구도 노을을 어찌 하지 못 하리라!
노을을 보고 슬퍼 하거나 행복해 지는 것은 그대들의 自由(자유)다.....노을은 자유의 化身(화신)이니까
강경포구는 강경 젓 시장으로도 유명한데 해 마다 김장철을 앞두고" 강경 발효 젓갈 축제"가 열리며 한국인이 먹는 젓갈의 약 60% 이상이 이곳을 거쳐 간다 한다
강경포구에서 부터는 바다를 향해 갈수록 금강이 점점 水量(수량)이 많아지고 강폭도 넒어지고 바람도 더욱 거세진다
대청댐: 금강 本流(본류)를 가로 지르는 多目的(다목적) 댐으로 貯水量(저수량) 기준으로 소양호와 충주호에 이어 세번째 큰 호수이다
강 건너에는 風光(풍광)이 무척 아름다워 한때 대한민국 大統領(대통령)의 여름 別莊(별장)으로 使用(사용) 되었고 지금은 국민들의 "思索(사색)의 쉼터" 역할을 하고 있는 靑南臺(청남대)가 있다
가을 들판도 점점 황금빛으로 변해가고........
낙화암 詩碑(시비)
나라가 망하니 산과 강도 예와 다르구나!
홀로 강에 뜬 달은 몇 번이나 차고 기울었나!
낙화암 언덕에는 아직도 꽃이 피어 있으니
당시 비바람은 아직도 다 불지 않았는가!
海洋强國(해양강국)을 꿈 꾸었던 백제의 꿈이 무참히도 산산이 깨진 歷史(역사)의 眞實(진실)을 알고 있는지 모르고 있는지 무심한 유람선만 백마강을 오가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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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딩 기록(총171키로)***
1,일시:2015,9,13(일)
2,복정역에서 수원행 아침 첫차인 05,43분 지하철 탑승
3,수원역에서 신탄진행 무궁화호 열차 07시03분 탑승
4,신탄진역에 08시 20분에 도착하여 대청댐으로 라이딩 시작
5,종착지인 금강 하구언에 17시 40분에 도착
6,금강 하구언~군산 시외버스 터미날에 18시 46분에 도착
7,군산 시외 버스 터미날에서 성남행 버스 19시30분에 탑승
8,성남 터미날에 22시 40분에 도착
9,성남 터미날~자택(23시50분에 도착 귀가)
* 라이딩 도중 판단 착오로 자주 종주 코스 이탈함
* 업힐 코스:익산 성당 포구~봉새 언덕마을(짧은 급경사가 쌍봉으로 있음)
그 외에는 모두 느슨한 업힐 코스임
* 강경 포구를 지나서 부터는 금강은 수량이 보다 많아지고 강폭도 넒어 지면서 점차로 바람도 거세어짐
* 총 경비:3만원 정도 지출
* 드디어 *국토 종주*에 이어 지지부진했던 *4대강 종주*를 모두 마치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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百濟(백제)는 그 옛날 이미 역사속으로 煙氣(연기)처럼 사라져 버린 나라다.
허나
나는 燦爛(찬란)한 文火(문화)의 꽃을 피운 백제의 香氣(향기)를 찾아서.....
海洋(해양) 强國(강국)이 되고자 했던 깨어진 백제의 꿈의 흩어진 破片(파편)을 찾아서.....
백제의 옛 古都(고도)인 公州(공주)와 扶餘(부여)를 貫通(관통)하며 흐르고 있는 4 대강의 하나인 錦江(금강) 縱走(종주)라이딩을 決行(결행)한 끝에 성공적으로 라이딩을 마치고 귀가 하였다
燦爛(찬란)했던 백제의 歷史(역사)를 품에 안고 오늘도 유유히 흘러가는 錦江(금강) 縱走(종주)라이딩 길목 길목에는
백제의 興亡盛衰(흥망성쇠)로 얼룩진 아득히 먼 옛 百濟人(백제인)의 魂(혼)이 불어오는 바람결에 묻어 있었고
羅唐(나당) 聯合軍(연합군)에 의하여 허망하게도 무참히 짓 밟히고 산산조각 나 깨져버린 백제의 遠大(원대)한 꿈의 破片(파편)들이 어지러히 널려 있었다
百濟(백제)의 歷史(역사)와 文化(문화)와 哲學(철학)이 含蓄(함축)된 遺跡(유적)들도 곳곳에 散在(산재)해 있었는가 하면
세련된 文化(문화), 藝術的(예술적) 感覺(감각)으로 燦爛(찬란)한 文化(문화)를 꽃 피웠던 百濟人(백제인)들의 哀歡(애환)과 숨결도 이곳 저곳 곳곳에 깊게 스며 배어 있었다
그야말로 이번 라이딩 코스는 발길 닿는 곳마다 백제 역사와 백제 王室(왕실)의 이야기가 到處(도처)에 떠 돌고 있었던 것이다
錦江(금강:한문으로 錦(비단금)을 쓰고 있지만 원래는 熊(곰웅)의 熊水(웅수)에서 곰강으로 불리다 금강으로 변했다 한다 )은 전북 장수군 장수읍 수분 마을의 뜬봉샘에서 發源(발원)하여 천리 물길을 풀어 내며 흐르면서 合江公園(합강공원)에서 조치원에서 내려오는 미호천과 合流(합류)하고 扶蘇山(부소산)을 반달 모양처럼 크게 휘돌아
전라북도 북부와 충청도를 東西(동서)로 가로 지르며 호남 평야를 두루두루 적시며 굽이 굽이 흐르다 西海(서해)로 흘러들어가 일생을 마감하는 江(강)이다
*참고:1.한강 발원지:태백시 검룡소
2,낙동강 발원지:태백시 황지 연못
3,영산강 발원지:담양군 용면 용추봉의 가마골
4,금강 발원지: 전북 장수의 수분마을의 뜬봉샘
5,섬진강 발원지:전북 진안군 데미샘
錦江(금강)은 굽이쳐 흐르는 강 줄기가 흡사 緋緞(비단)을 풀어 놓은 듯 아름다워 緋緞江(비단강)이라고도 불리우는데 이 錦江(금강)은 百濟(백제)의 古都(고도)인 公州(공주)와 扶餘(부여)를 지나면서 白馬江(백마강:백마강의 유래는 百濟(백제)의 "백"과 "크다"라는 意味(의미)가 있는 "마"가 합쳐져 "백제에서 가장 큰 강"을 의미한다는 뜻에서 백마강이 되었다는 說(설)과 그 옛날 당나라의 장군 蘇定方(소정방)이 白馬(백마)의 머리를 미끼로 삼아 錦江(금강)에서 龍(용)을 낚았다는 傳說(전설)에서 白馬江(백마강)이라고 불리었다는 說(설)이 있다
옛날 錦江(금강)은 백제 문화의 中心地(중심지)로 백제 문화를 일본으로 傳播(전파)한 길 이기도 하였고 또한 일본 뿐만 아니라 新羅(신라),高句麗(고구려),唐(당)나라는 물론, 멀리는 西域(서역)에 이르기 까지 文物(문물)을 交流(교류)했던 國際 海上 交通路(국제 해상 교통로)로
白馬江(백마강)이 있었기에 扶餘(부여)는 123년간 百濟(백제)의 都邑(도읍)으로 유지되며 찬란한 문화를 꽃 피울 수 있었다, 강경을 지나면서는 강경강이라 이름을 바꾸어 흐른다
百濟(백제)는 기원전 18년에 온조에 의하여 처음으로 河南(하남)의 慰禮城(위례성)에 都邑(도읍)을 정하고 세워졌는데 660년 의자왕을 끝으로 歷史(역사) 속으로 연기처럼 사라진 나라다
百濟(백제)는 新羅(신라)와 高句麗(고구려)와의 角逐(각축)속에 熊津(웅진:지금의 공주),사비(지금의 부여)로 수도를 계속 옮기면서 興亡盛衰(흥망성쇠)를 겪으면서도 훌륭한 백제의 문화를 꽃 피웠다
***扶蘇山城(부소산성)***
扶餘(부여)에 들어서면 발 닿는 곳마다 百濟(백제)의 歷史(역사)와 百濟(백제) 王室(왕실)의 이야기가 배어 있는데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백제의 마지막 王城(왕성)으로 백제시대에는 泗枇城(사비성)으로 불린 扶蘇山城(부소산성)이다
웅진성에서 사비성으로 遷都(천도)한 왕은 성왕으로 성왕은 잃어버린 漢江(한강) 流域(유역)을 되찾기 위하여 활발한 정복 활동을 함과 동시에 백제의 문화 발전에 크게 이바지 하였다
扶蘇山城(부소산성)은 扶餘(부여) 市街地(시가지) 북쪽 짙푸른 숲을 이룬 해발106미터의 나지막한 扶蘇山(부소산)에 있는 城(성)으로
百濟(백제) 最後(최후)의 날 수많은 百濟(백제) 여인들이 꽃잎처럼 떨어져 죽음으로 節槪(절개)를 지킨 皐蘭寺(고란사) 바로 위에 위치해 있는 落花巖(낙화암),
그녀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세운 皐蘭寺(고란사:고란사 뒷편 바위 틈에는 長生不老草(장생불로초)라 불리우는 皐蘭草(고란초)가 자라고 있는데 옛 백제왕이 고란 약수물을 마실 때 이 皐蘭草(고란초)를 물 위에 띄워 마셨다 함),
百濟(백제)가 運命(운명)을 다 하던 순간에 목숨을 바친 義慈旺(왕자왕)의 3 忠臣(충신)인 階伯將軍(계백장군),成忠(성충),興首(흥수)의 影幀(영정)과 位牌(위패)를 모신 三忠祠(삼충사)등이 있고
皐蘭藥水(고란 약수)를 마시면 3 년이 젊어진다 하여 有名(유명)하다
遊覽船(유람선)이 백화암과 낙화암 사이를 오간다
***百濟(백제)의 三忠臣(삼충신)***
三忠(삼충)이란 백제의 運命(운명)이 다 하는 순간에 목숨을 바친 의자왕의 세 忠臣(충신)을 말한다
1,階伯將軍(계백장군):서기 660년 唐(당)의 蘇定方(소정방)이 이끄는 水軍(수군) 13만명과 新羅(신라)의 大將軍(대장군) 金庾信(김유신)이 指揮(지휘)하는 陸軍(육군) 5만명이 水陸(수륙) 挾攻(협공)으로 百濟(백제)를 侵攻(침공) 했을 때 階伯將軍(계백장군)은 죽음을 무릅쓴 最後(최후)의 決死隊(결사대) 5천명을 뽑아 황산벌 (지금의 논산시 연산면)에서 決死抗戰(결사항전) 하며 맞서 싸워 처음에는 네번이나 이겼으나 결국 황산벌에서 최후를 마치며 玉碎(옥쇄)한 백제의 마지막 名將(명장)이다
이때 階伯(계백)은
唐(당)과 新羅(신라)의 대군을 상대 해야하니 國家(국가)의 存亡(존망)을 알 수 없다!
처 자식이 捕虜(포로)로 잡혀 奴隸(노예)가 될지 모른다.
살아서 侮辱(모욕)을 당하느니 죽느것이 낫다며 손수 자신의 손으로 식구들의 목을 칼로 베어 죽인 후 兵士(병사)들 앞에서는
옛날 越(월) 나라 왕 구천이 5천명의 軍事(군사)만으로 吳(오)나라의 70만 大軍(대군)을 擊退(격퇴)한 것을 言及(언급) 하며
勇氣(용기)를 다해 싸워서 國恩(국은)에 報答(보답) 하자고 兵士(병사)들을 督勵(독려) 하였다. 이때 階伯(게백)은 新羅君(신라군)과 맞서 네번 모두 이겼다
신라의 좌장군의 아들인 官昌(관창)을 사로 잡았으나 나이가 어려 돌려 보냈는데 또 다시 官昌(관창)이 쳐 들어 오자 이번에는 사로 잡아 處刑(처형)해 버렸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형편 없었던 신라군은 관창의 죽음에 고무되고 사기가 沖天(충천)하여 죽을 각오로 백제군을 공격하니 백제의 오천 決死隊(결사대)는 모두 玉碎(옥쇄) 하고 말았다
이번 라이딩 내내 계백장군과 5천 決死隊(결사대)의 나라를 위한 애국충정이 황산벌에서 바람의 소리가 되어 내 귓가를 맴돌며 윙윙거리며 소름을 돋게 하였다
2,成忠(성충):義慈王(의자왕)의 잘못된 政治(정치)를 바로 잡으려고 옥중에서 식음을 전폐하고 斷食(단식)을 하다가 죽었다
3,興首(흥수):羅唐(나당)의 聯合軍(연합군)을 막아낼 방도를 忠諫(충간) 하였다
***義慈王(의자왕)***
百濟(백제)의 마지막 왕인 31대 의자왕은 무왕의 아들로 태어 났는데 執權(집권) 초기에는 아우들과 友愛(우애)가 깊고 思慮(사려)가 깊었을 뿐만 아니라 勇猛(용맹)스러워 중국의 思想家(사상가)인 曾子(증자)에 견주어 海東曾子(해동증자)라 일컬어질 정도로 聖君(성군)이었으나 집권말기가 가까워지면서 太子宮(태자궁)을 화려하고 사치스럽게 지은것을 시작으로 점점 放蕩(방탕)해져 매일 호화스러운 잔치를 열면서 國運(국운)이 기울기 시작 하였다
특히 의자왕의 잘못된 정치를 諫(간)하는 忠臣(충신)인 成忠(성충)을 獄(옥)에 가두어 버린 뒤 부터는 백제는 온갖 怪變(괴변)이 잇 따랐다 한다
羅唐(나당) 聯合軍(연합군)이 사비성을 침공하자 사비성(지금의 부소산성)을 버리고 웅진성(지금의 공산성)으로 도피 하였다가 이곳에서 항복하였고 끝내는 백성 1만2천명과 함께 당나라로 押送(압송)되어 당나라에서 최후를 맞이 하였다
***公山城(사적제12호)***
백제의 最後(최후)를 맞이한 옛 熊津城(웅진성)으로 산봉우리를 연결하고 溪谷(계곡)을 가로질러 城壁(성벽)을 築造(축조)하여 屛風처럼 둘러싸인 전형적인 防禦用(방어용) 山城(산성)이다
산성의 북쪽에는 금강이 흐르고 해발110미터의 稜線(능선)에 위치해 있어서 천연의 要塞(요새)이다
百濟(백제)의 대표적인 고대 城郭(성곽)으로 羅唐 聯合軍(나당 연합군)이 사비성을 위협하자 백제 마지막 왕인 의자왕은 사비성을 버리고 이 公山城(공산성)으로 왕자들과 함께 避身(피신)하여 抗戰(항전) 하였으나 결국 이곳에서 降伏(항복) 하였다
이 公山城(공산성)은 조선 仁祖(인조)가 李适(이괄)의 亂(난) 때 公山城(공산성) 내의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쌍수정에서 6일동안 머물며 錦江(금강) 건너편을 바라보며 서울에서 叛亂(반란)이 鎭壓(진압)되는 소식을 간절히 기다렸던 곳이다
***구드래 나룻터(명승 제63호)***
扶蘇山(부소산)서쪽 기슭의 백마강가에 있는 나루터로 풍광이 뛰어나 대한민국 명승 제 63호로 지정되어있다
백제 사비성의 關門(관문) 역할을 하였다
백제왕이 이 근처에서 절에 예불을 드리며 부처님께 절을 하자 바위가 저절로 따뜻해져서 "구들돌"이라 하였는데 여기서 유래된 말이라 推測(추측)된다
구드래 나룻터를 통해 倭(왜)의 배들이 백제의 首都(수도)인 사비성에 들어 왔다 한다
***공주 송산리 古墳群(고분군: 사적 13호)***
공주읍 송산리 고분군에는 총 7기의 王陵(왕릉)이 있는데 이 중 제7호기가 武寧王(무령왕)의 陵(능)이다
무령왕능은 백제의 무덤중 유일하게 주인이 確認(확인)된 王陵(왕릉)이자 盜掘(도굴)되지 않고 고스란히 遺跡(유적)들이 모두 出土(출토)되었는데
무령왕은 백제의 제 25대 왕으로 聰明(총명), 勇猛(용맹)스러워 거의 다 쓰러져 가는 백제를 다시 일으켜 세우고 고구려와의 전쟁을 勝利(승리)로 이끌며 百濟(백제)를 크게 中興(중흥)시켰던 君主(군주)였다
무령왕릉이 發掘(발굴)됨에 따라 1,500년 동안 잠자고 있었던 백제의 찬란한 문화가 빛을 발하게 되었다
이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遺物(유물)들은 인근 公州(공주) 博物館(박물관)에 展示(전시)되어 있다
이 송산리 고분군 인근에는 公山城(공산성),공주 박물관, 곰나루등이 있다
***익산 성당포구***
조선 시대 稅穀(세곡)을 관장했던 성당창이 있었던 곳으로 江景(강경)과 益山(익산)이 맞 닿은 곳에 있다
전통적인 포구 마을의 歷史(역사)를 그대로 담아 낸 壁畵(벽화)가 있다
***금강 하구둑***
이른 아침에 피어 오르는 물 안개와 해질 무렵 아름다운 落照(낙조)는 금강 하구의 자랑거리인데
금강 하구언은 莊嚴(장엄)하게 흐르는 錦江(금강)이 바다를 만나 품을 넓히는 곳에 만들어진 大規模(대규모) 水理施設(수리시설)로 충남 서천과 전북 군산을 잇는 橋梁(교량) 역할도 하고 있다
국내 최대의 철새 도래지로 금강 철새 眺望臺(조망대)가 설치 되어 있다
夕陽(석양)에 하늘로 치솟는 철새들의 群舞(군무)는 壯觀(장관)이다
드넓은 갈대밭과 農耕地(농경지)를 품고 있는 금강 하구는 가창오리,청둥오리를 비롯해 검은 머리 물떼새등 稀貴鳥類(희귀조류)와 수 만마리의 철새들이 날아와 아름다운 群舞(군무)를 펼치기 때문에 철새들을 眺望(조망)할 수 있는 名所(명소)이다
첫댓글 자전거 여행은 맛이 다르지요!
금강을 종주했던 시간이 생각나게 하는군요!
어허라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다시 한 번 도전하고 싶어집니다.
여전히 공무에 바쁘시군요!
고맙습니다!
언젠가 금강종주길 갔었던 기억이,,,,,,
다못돌구 왔기에 언젠가 종주 해야 하는데,,,,
어허라님 후기로 대리만족합니다,,,,,^^
기차편으로 갈때 자료 참고로 하겠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오랫만에 이번 일요일 날 뵙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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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5.09.15 13:14
하늘이 높아져서 사진이 더욱 아름답게 보입니다. 사진실력이 업글되셔서 그런가요?
저도 꼭 4대강 국토종주에 도전하는게 숙제입니다. 부럽습니다 선배님
매 라이딩마다 이게 내 한계구나! 하며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어요!
허나 며칠 후면 또 나 자신도 모르게 다음 여행지를 물색하고 있는 저를 발견하지요!
아뭏튼 라이딩 여행은 *신이 내린 축복*임에 틀림 없는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종주축하드립니다.
단 몇마디 말씀이 따뜻하게 느껴지네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