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응 연수를 마치고

[주오돈]

사회적응 연수를 마치고

천안 상록호텔에서 공무원 연금공단이 주관한 3박 4일간 실시한 은퇴 설계과정 연수 마지막 날이다. 전날 초저녁 일찍 잠들어 한밤중 잠을 깨 연수기를 남겨놓고 새벽이 오기를 기다렸다. 사우나가 개장되는 시간에 맞추어 온탕에 몸을 담갔다. 바깥으로 나와도 아직 날이 밝아오지 않아 캄캄하기만 했다. 일기예보에 기온이 크게 떨어지고 바람이 분다고 해서 산책은 나서지 않았다.

숙소로 돌아와 점심 식후 귀가를 위한 가방을 미리 챙겨 놓았다. 양말과 속옷 말고 다른 짐은 없어 간단했다. 학교에서 쓰던 것을 가져온 노트북은 빠뜨리지 않았다. 잠시 뒤 퇴실하게 되면 청소 아주머니가 들릴 텐데 5천 원을 화장대에 놓아두었다. 만 원짜리가 있었으면 두고 싶었으나 지폐가 준비되지 않았더랬다. 약소했지만 사흘간 쾌적한 잠자리를 제공 받은 최소한 마음이었다.

아침 식사를 위해 식당으로 가니 차림표는 해장국 뷔페였다. 그러고 보니 사흘 아침 식단은 모두 해장국으로 나왔다. 오전 일과가 시작되기엔 시간이 일러 운동장 둘레를 한 바퀴 둘러 숙소로 와 쉬다가 연수 장소로 갔다. 마지막 날은 오전 일과만 진행되었는데 선배와 대화 시간이었다. 정년을 다 채우지 않고 암을 치료받느라 조기 퇴직해 이모작 인생을 열정적으로 사는 분이었다.

강사는 대학 재학 중 행정고시를 거쳐 행정안전부 고위직까지 승승장구했던 분이었다. 장차관 바로 턱밑인 국장까지 이른 분이었다. 간암 발병으로 조기 퇴직해 병마와 싸우면서도 전공을 살린 박사 학위를 취득해 몇몇 대학 초빙교수가 되어 행정학 강의를 나가기도 했단다. 젊은 날부터 꿈이었던 문인의 길에 도전해 수필로 등단해서 작품집을 다섯 권이나 펴낸 영원한 현역이었다.

선배와의 대화가 끝나자 연금공단 관계자가 연수 시설과 강의 내용에 대한 설문 조사가 있었다. 나는 응답 문항에 대해 대체로 흡족하다는 항목에 체크했다. 그동안 받았던 일반 직무연수는 연수가 종료되기 전 평가가 있기 마련인데 은퇴 지원 연수에서는 그것이 필요하지 않아 부담이 없어 좋았다. 현장으로 복귀해 1주일 후까지 열어둔다는 온라인 강의도 나는 들어볼 생각이 없다.

넷째 날 오전 강의 종료와 함께 식당에 차려진 국수를 점심으로 들고 호텔 정문으로 나가니 셔틀 버스가 대기했다. 며칠 지냈다고 안면이 익은 20여 명 연수생들과 함께 천안 시외버스터미널과 천안역을 거쳤다. 나는 천안아산KTX역에 내려 하행선 열차 운행 시각을 살피니 출발까지 여유가 있었다. 낯선 역 구내를 둘러보다 지역 명물인 호두과자 두 봉지를 사 열차가 오길 기다렸다.

내가 타는 KTX는 진주 가는 열차로 부산행 선로로 진입했다. 개찰구에서 플랫폼으로 나가니 송이가 굵은 함박눈이 펄펄 날렸다. 열차에 탑승해 천안 교외를 달리는 차창 밖은 하얀 눈이 쌓여 갔다. 눈이 내리는 황량한 겨울 들판에서 곧 퇴직하면 나서게 되는 나의 앞날을 보는 듯했다. 몇 개 터널을 거쳐 대전이고 동대구였다. 대구부터는 주변 산천은 내 눈에 익숙한 지형이었다.

경산과 청도는 무정차로 미끄러져 내려와 밀양에 몇몇 손님이 내렸다. 밀양에서 삼랑진으로 돌아 낙동강을 건너니 내가 사는 집 바깥마당 같이 발자국이 곳곳에 찍힌 강둑이 보였다. 한림정을 지난 화포습지는 북녘에서 날아온 겨울 철새가 베이스캠프를 차려 오글거렸다. 진례 들녘을 지나니 곧 개통할 창원에서 사상으로 접속하는 동해남부선을 대체하는 새로운 철로가 깔려 있었다.

창원중앙역에 닿으니 승객 다수가 함께 내렸다. 날씨가 추워져 목도리를 두르고 장갑을 꼈다. 가방이 없었다만 집까지 걸어도 되는 거리이나 택시는 탈 생각이 없어 시내버스를 기다렸다. 집 앞으로 지나는 버스가 다가와 탔더니 금방 아파트단지였다. 일주일 만에 귀가인데도 주말을 맞아 연사 와실에서 돌아오던 기분과는 달랐다. 멀리 천안을 거쳐 대구 밀양을 둘러와 그런 모양이다. 21.12.17

[채운]

이미 마음의 준비는 끝나신 듯하네요...응원합니다.

[주오돈]

채운님! 반갑습니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앞두고 있습니다.
격려와 성원, 감사합니다^^
늘 건안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