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이후 가장 가고 싶은 여행지로 스페인이 떠오르고 있다.
수도 마드리드에는 다른 지역과 차별화되는 명품 느낌을 물씬 느낄 수 있는 요소들이 즐비하다.
스페인의 산티아고가 종교의 순례지라면 마드리드는 예술의 순례지라 불린다.
마드리드에는 이러한 예술 작품뿐만 아니라 시내 곳곳에서 명품 느낌을 주는 요소들이 많다.
스페인에는 전국적으로 이름난 여행지가 산재해 있다.
여명의 레티로공원 호수 [사진/성연재 기자]
세비야 대성당과 절벽 위 다리로 유명한 론다, 알람브라 궁전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유산을 가진 곳이 스페인이다.
그러나 자칫 지나치기 쉬운 마드리드야말로 알고 보면 스페인의 모든 문화와 예술이 집대성된 명품도시다.
마드리드 시내와 교외 지역을 다녀보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들을 수없이 만나게 되고 왜 이곳이 명품도시인지 알 수 있게 된다.
시벨레스 궁전 위에서 본 거리 [사진/성연재 기자]
'빛의 풍경' 명품도시의 요건
마드리드에서 가장 붐비는 곳은 그란 비아(Gran Via) 거리다.
마드리드 시내는 16세기부터 도시의 중심이 된 그란비아 거리를 중심으로 남쪽은 구시가, 북쪽은 신시가지로 나뉘어 있다.
그란 비아 거리를 걸어 내려오다 보면 1510년 세워진 시벨레스 궁전과 만난다. 궁전 건물이지만 요즘은 마드리드 시청사와 시민단체 등이 사용하고 있다.
시벨레스 궁전 옥상에는 루프톱 레스토랑이 있는데, 회전교차로와 시벨레스 분수대 등이 한눈에 보여 소셜미디어에서 핫 플레이스가 됐다.
분수대는 레알 마드리드가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UCL) 등에서 우승하면 뛰어드는 전통이 있는 곳이다.
레티로공원의 '왕따 나무' [사진/성연재 기자]
시벨레스 궁전에서 내려다보면 왼편으로 아토차역까지 약 1.4㎞ 이어진 프라도 거리가 눈에 띈다.
이 거리에는 프라도 미술관 등 마드리드 3대 미술관이 포진돼 있다.
프라도 미술관 맞은편에는 마드리드 시민들의 허파라고 할 수 있는 레티로 공원(Parque del Retiro)이 자리 잡고 있다.
미주 정복을 기념하는 아메리카문화센터와 중앙은행도 근처에 있다.
이들을 몽땅 아울러 마드리드에서는 '빛의 풍경'이라고 부르고,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됐다.
프라도 미술관 [사진/성연재 기자]
이 거리와 공원 등을 중심으로 예술과 문학, 과학이 발전했기 때문이다.
어느 날 아침 해가 뜨기 전 '빛의 풍경'의 가장 핵심인 레티로 공원을 방문했다.
이곳을 방문하면 마드리드가 왜 명품 도시인지 쉽게 알 수 있다.
500년 역사를 자랑하고 있는 이 공원은 면적이 1.4㎢에 달해 서울숲 공원과 비슷하다.
16세기 초, 수도원의 정원으로 조성된 공원은 일부 귀족과 왕족만을 위한 공간이었다.
약 150년 전 일반 시민들에 공개되기 시작해 오늘에 이르렀다. 이제는 수많은 시민이 이곳에서 조깅하며 산책을 즐기는 공간이 됐다.
찬란한 아침 햇살이 떠오르기 시작하자 반려견을 데리고 산책길에 나선 시민들의 모습이 많이 눈에 띈다.
숲 곳곳으로 난 작은 오솔길을 제각각 다니는 모습은 활기차고 건강해 보였다. 초겨울이었지만 반소매와 반바지 차림의 조깅족들도 눈에 띈다.
레티로 공원 바로 앞은 프라도 미술관이다. 명품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공간들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레알 마드리드 경기장 [사진/성연재 기자]
레알 마드리드
일정표를 보니 레알 마드리드 경기장인 '에스타디오 산티아고 베르나베우'(Estadio Santiago Bernabeu) 방문이 빠져 있었다.
이 경기장은 구단 회장인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의 이름을 따랐다.
이곳은 일정에 꼭 넣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해 마지막에 다행히 방문할 수 있게 됐다.
필자는 월드컵 취재는 물론 국가 간 대항전인 A매치 취재 경험도 많다. 레알 마드리드 구장 방문은 그래서 축구 팬의 입장에서가 아니었다.
세계적인 축구팀이 어떻게 축구를 관광 자원화하는지를 눈으로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결국 정말 방문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표소 앞에서는 암표상들이 다음날 있을 FC 바르셀로나와의 경기 티켓을 수십 배 높은 가격을 제시하며 팔고 있었다.
슬쩍 가서 떠보니 800유로를 부른다. 100만 원이 넘는 가격이다.
붐비는 매표소 [사진/성연재 기자]
피식 웃어주고 경기장으로 향했는데 단지 스타디움 방문을 위한 관람객들이 만든 줄이 최소 100m는 서 있다.
마치 월드컵 경기를 위해 줄을 선 듯한 모습이라 깜짝 놀랐다.
차례를 기다려 어렵사리 들어가니 지하에는 각종 경기 우승컵들이 죽 나열돼 있고, 위쪽으로 올라가니 스타디움이 보인다.
상암월드컵경기장보다 규모가 더 크다는 느낌을 받았다. 몇 개 층이 더 위쪽으로 쌓여있는 느낌이다. 관람석의 분위기는 무척이나 뜨거웠다.
기념 촬영에 여념이 없었고, 현장에서 즉석 SNS 라이브를 하는 팬들도 있었다.
돌아 나오는 길에는 반드시 기념품 매장을 들르게 돼 있다. 수많은 팬이 유니폼이나 소품들을 구매하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레알 마드리드의 힘이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바로 다음 날 열렸던 FC 바르셀로나와의 경기를 관람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아 참! 레알 마드리드의 레알은 '진짜'(Real)가 아니라 로열(Royal)이란 뜻이다.
불타는 석양만큼 뜨거웠던 데보드 신전
데보드 신전의 젊은이들 [사진/성연재 기자]
마드리드 서쪽 만사나레스 강변 프린시페 피오 언덕에는 생뚱맞은 이집트 데보드 신전(Temple of Debod)이 있다.
데보드 신전은 1970년대 스페인이 이집트 아스완댐 건설을 지원한 것에 대한 이집트의 선물이다.
원래 BC 2세기경 나일강 유역에 세워져 있던 신전 하나가 분해된 뒤 마드리드에 똑같이 세워졌다.
당시 이집트는 스페인을 비롯해 독일, 미국, 이탈리아 등 4개국에 고대 유적을 선물했다.
특이하게도 이곳은 젊은이들의 석양 로맨스 장소로 자리 잡았다. 석양에 맞춰 방문했더니 때마침 하늘이 붉게 타올랐다.
그러나 석양보다 더 붉게 타오른 것은 젊음이었다. 신전을 찾은 젊은 커플들은 주위 시선도 아랑곳하지 않고 애정 표시에 전념하는 모습이다.
비슷한 시기 오세훈 서울시장이 마드리드를 방문했다.
그는 만사나레스강 인근의 고속도로를 지하화하고, 상부에 8km 길이의 대규모 수변공원을 조성한 리오공원을 답사했다.
그가 마드리드를 방문한 것은 명품도시로서의 모습을 배우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최근 좁은 골목길에서 발생한 이태원 참사를 떠올리면서 마음 놓고 젊음을 발산할 수 있는 공간에 대해 구상도 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칼레 거리의 갤러리아 카날레하스 백화점 [사진/성연재 기자]
빠뜨릴 수 없는 명품거리
명품도시에 어울리는 명품 건축물도 많이 보였다.
가장 붐비는 그란 비아 거리가 일반 시민들이 부담 없이 다닐 수 있는 거리라면, 칼레 거리는 명품 느낌이 나는 건축물들이 즐비한 곳이다.
칼레 거리에서 가장 눈에 띄는 곳 가운데 하나는 포시즌스호텔 건물이다.
한쪽이 뾰족한 로켓 모양으로 세워진 이 건물 1층은 에르메스가 자리 잡고 있고, 위층은 포시즌스 호텔이다.
뒤쪽으로는 명품 백화점으로 유명한 갤러리아 카날레하스 백화점이 있다.
마드리드 최고 부자들이 쇼핑하는 공간으로, 수공예 도자기 등 호사스러운 제품들이 즐비하다.
갤러리아 백화점 지하에는 마드리드에서 가장 핫한 음식점들이 모여있다.
그란 비아 거리에도 화려한 쇼핑몰이 많다. 이곳에서는 널리 알려지지 않은 명품만을 골라놓은 명품관을 한곳 만날 수 있었다.
'와우'(WOW) 백화점이다. 전자기기부터 생필품까지 대체로 명품 소리를 들을 수 있을 법한 제품들로 가득 차 있다.
이곳 지하에서 한화로 1천만 원에 달하는 예쁜 디자인의 스피커를 테스트해봤다.
메탈 음악을 선곡해 한껏 볼륨을 높였는데 쿵쿵 때리는 소리가 단단하고도 떨림이 전혀 없다.
이곳에는 샴푸나 비누 같은 저렴한 생필품들도 있으니 명품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한번 찾아볼 만하다.
백화점 지하 고급 레스토랑의 빠에야 [사진/성연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