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어떤 일이 일어나도
놀랍지 않을 것 같다
우리는 가끔 거리에서도
발작 증세를 보인다
뒤틀린 몸보다 곤혹스러운 것은
서로의 모습을 보며 희열을 느낀다는 것
그것을 숨기지 못하고
몸을 부들부들 뜬다는 것이다.
아픈 시간만큼
아프지 않은 시간이 두려웠고
아기가 촛농처럼 흘러내렸다
“생굴을 낳는 것 같아”
서로 웃으며
눈을 감았다
떴다
아직도 우리는
―최지인, 「아직도 우리는」 전문
“뒤틀린 몸보다 곤혹스러운 것은 서로의 모습을 보며 희열을 느낀다는 것”
이보다 끔찍한 광경이 있을까 탄식하다가 현실 세계를 빼다 박은 듯한 표현에 잠시 몸서리쳤다.
조롱과 모멸, 은근한 학대를 이겨 내는 게 이 시대의 생존법이 된지 오래다.
시대의 어두움을 신랄하게 보여 준 시를 읽고 있자니, 네덜란드의 화가 하에로니무스 보스(Hieronymus Bosch, 1945년 추정~1516)가 그림에 옮겨 놓은 지옥의 모습이 떠오른다.
넓은 화면에 작은 인물과 동식물이 기기묘묘하게 그려진 보스의 그림은 기이함을 넘어 공포스럽다. 그악스러운 표정의 악마, 신음이 절로 나올 만큼 끔직한 고문의 잔상들은 그 자체로 두 번 보고 싶지 않은 ‘지옥’이다.
보스는 왜 이 추악함의 세계를 그림에 담게 됐을까?
안타깝게도 보스에 관해 알려진 사실은 극히 적다. 그가 언제 태어났는지, 누구에게 영향을 받았는지, 어떤 계기로 그림을 그리게 됐으며, 어떤 메시지를 그림에 담으려 했는지 그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단초도 현재는 남아 있지 않다.
그림이 그려진 시기는 15세기. 500년 전 그림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현대적인 감각이다. 21세기 초현실주의 화가들이 표현해 낸 것 이상으로 거대한 스펙트럼을 보여 준다.
“아픈 시간만큼 아프지 않은 시간이 두려웠고”라 말하는 시인의 통찰처럼 불행한 시간만큼 행복한 시간도 두려워하는 게 사람 살이다. 그 톱니바퀴에서 우리는 벗어날 수 없다. 사람은 모두 죄를 짓고 있으며, 그 대가로 파멸에 이르게 될 것이라는 예언서의 말을 보여 주는 보스의 그림은 15세기에도 21세기에도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 ‘신현림의 미술관에서 읽는 시, 작가의 젊은 날을 사로잡은 그림 하나 시 하나(신현림, 서해문집, 2019)’에서 옮겨 적음. (2022. 3.24. 화룡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