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하면 떠올라야 할 세 가지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제주도 여행을 떠날 때면 휴양지로 간다는 생각을 가졌다. 제주도의 특이한 관광지를 찾아가고 수많은 맛집을 찾아 식도랑 여행을 떠나는 것이 제주 여행의 크나큰 묘미다. 또한 제주도 해변 앞바다는 육지에선 만날 수 없는 영롱한 빛깔을 띠고 있기 때문에, 이 아름다운 바다를 따라 걷는 제주올레를 걷는 것 또한 필수 코스라 할 수 있다.
일반적인 제주도 여행이 이렇기에 제주도라는 섬이 가지는 본연의 가치를 잘 모르는 경우가 많고, 나 또한 그중 하나였다. 제주도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는데, 도대체 왜 등재되었는지에 대해선 별로 생각을 안 해 본 것이다. 제주도는 세계에서 찾아보기 힘든 특이한 지형 때문에 세계유산이 될 수 있었다. 180만 년 전부터 화산활동으로 생성된 제주도 전체가 특이하긴 하지만 그중 세 곳이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그 주인공은 제주도의 상징인 한라산, 용암이 흘러내려 생긴 거문오름 용암동굴계, 제주도의 수많은 오름 중 단연 으뜸이라 할 수 있는 성산일출봉이다.
이 중 가장 찾아가기 쉬운 곳은 거문오름 용암동굴계에 속한 만장굴이라 할 수 있다. 한라산과 성산일출봉을 보려면 가파른 오르막길을 올라야 하지만 만장굴은 주차장에서 내려 동굴 안으로 들어가면 끝이다. 만장굴 외에도 벵뒤굴, 김녕굴, 용천동굴, 그리고 당처물동굴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포함되어 있지만 일반인은 관람이 불가하므로 사실상 만장굴 외에는 그 실체를 볼 수 없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수많은 동굴을 만든 주체인 거문오름을 탐방할 수도 있으며,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이후 보호를 위해 예약 탐방제로 운영하고 있다.
만장굴은 찾아가기 쉬운 제주도의 명소라 제주도를 처음 갔을 때의 일정에도 포함이 되어 있었다. 만장굴을 형성한 거문오름은 만장굴을 찾아가고 난 한참 뒤에 방문했다. 만장굴은 육지에서 유명한 석회동굴인 환선굴, 고수동굴 등에 비하면 볼거리도 많다고 할 수 없지만, 용암이 흘러간 흔적을 보는 것만으로 탄성을 자아내었다. 거문오름은 초목으로 이루어진 다른 오름들과 달리 울창한 숲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일본군이 지은 벙커도 볼 수 있어 재미를 더한다.
대한민국 유네스코 세계유산 이야기 20 - 만장굴과 거문오름
제주 말로 '아주 깊다'는 의미에서 '만쟁이거머리굴'로 불려 온 만장굴은 약 10만 년 전~30만 년 전에 생성되었다. 제주도는 180만 년 전에 형성된 것으로 추정되지만, 만장굴은 1958년에야 당시 김녕초등학교 교사였던 부종휴 씨에 의해 발견되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만장굴은 총길이가 약 7.4km에 이르며, 부분적으로 다층구조를 지니는 용암동굴이다. 인근에 있는 김녕사굴, 밭굴, 개우젯굴과 애초에 모두 연결되어 있었으나 천장이 붕괴되면서 분리된 것으로 여겨진다. 만장굴의 주 통로는 폭이 18m, 높이가 23m에 이르러, 세계적으로도 큰 규모의 용암동굴이다. 전 세계에는 많은 용암동굴이 분포하지만 만장굴과 같이 수십만 년 전에 형성된 동굴로서 내부의 형태와 지형이 잘 보존되어 있는 용암동굴은 드물어서 학술적, 보전적 가치가 매우 크다.
만장굴은 동굴 중간 부분의 천장이 함몰되어 3개의 입구가 형성되어 있는데, 현재 일반인이 출입할 수 있는 입구는 제2입구이며, 1km만 탐방이 가능하다. 만장굴 내에는 용암종유, 용암석순, 용암유석, 용암유선, 용암선반, 용암표석 등의 다양한 용암동굴생성물이 발달하며, 특히 개방구간 끝에서 볼 수 있는 약 7.6m 높이의 용암석주는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로 알려져 있다.
만장굴에는 우리나라 박쥐의 대표 종인 제주관박쥐와 긴가락박쥐가 수 천 마리 씩 거주하고 있다. 박쥐는 모리, 파리 등의 해충을 1시간 동안 100마리 이상 잡아먹는 훌륭한 구충제인데 도시화로 인해 개체 수가 많이 줄고, 현재는 세계적으로도 멸종 위기에 놓여있어 국내 박쥐 최대 서식지인 만장굴의 생태학적 가치는 날로 높아질 전망이다. 다만 만장굴의 입장 가능 구간은 제2 입구에서 약 1km뿐이어서, 일반인들이 굴 깊숙한 곳에 사는 박쥐를 만나기는 어렵다.
거문오름은 해발 456m(둘레 4,551m)의 오름으로 거문오름 용암동굴계를 형성한 모체로 알려져 있다. 숲이 우거져 검게 보여 검은 오름이라 하였다고 전해진다. 제주도의 오름 중 유일하게 유네스코 세계 자연유산에 등재되었는데, 이는 거문 오름에서 흘러나온 용암류가 경사를 따라 북동쪽 해안가까지 흘러가면서 지질학적 가치가 높은 화산 지형과 용암 동굴을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제주도 자연유산지구 학술조사용역결과에 따르면 선흘리 거문오름 주변에 발달한 동굴의 규모는 용암 동굴로서는 세계적인 수준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거문오름은 북동쪽 산사면이 터진 말굽형 분석구의 형태를 띠고 있으며, 정상에 오르면 거문오름 용암동굴계를 만든 화산의 분화구가 한눈에 보이고, 분화구 안에는 낮게 솟아 오른 작은 봉우리들이 있다. 주변에는 용암동굴을 비롯하여 산탄, 용암 함몰구, 수직동굴, 식나무와 붓순나무 군락, 풍혈(바람구멍)등 다양하게 발달한 화산 지형들을 관찰할 수 있다. 그밖에 갱도 진지, 병참도로 등 일본군의 태평양 전쟁 때의 군사 시설이 발견되고 있어 역사 탐방지로도 활용되고 있다.
만장굴과 거문오름 탐방 이야기
만장굴은 고등학교 수학여행 때 한 번, 가족 여행 때 한 번 총 두 번을 방문했다. 수학여행 도중에는 친구들과 노느라 기억이 하나도 나지 않지만, 가족 여행 때 만난 만장굴은 어떠했는지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당시엔 제주도가 이미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후였지만, 그런 내막을 모르고 봐도 만장굴은 신비한 동굴이었다. 용암이 흘러 생긴 동굴이지만 마치 용이 지나간 것처럼 보이는 흔적이 남아 있어 흥미로웠다. 육지에서 유명한 석회동굴과 달리 동굴의 규모도 거대해 동굴의 형성 과정에 엄청난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일반인에게 공개되어 있지 않은 용천동굴의 영상도 흥미롭다. 동굴에 물이 차 있어 배 위에 앉아 노를 저으며 동굴을 탐험하는 내용인데, 만장굴과 달리 아기자기하며 동굴의 생태계도 잘 보전되어 있다. 동굴을 날아다니는 박쥐부터 동굴을 가득 채운 푸른빛의 물까지 용천동굴을 가 볼 수는 없지만 영상 만으로도 제주도가 지닌 가치를 쉽게 알 수 있었다.
거문오름에 대해 알게 된 건 제주도를 하도 많이 찾아가 더 이상 어딜 둘러봐야 할지 모를 때였다. 이곳저곳 찾아보니 제주세계자연유산센터가 보였고, 이곳에서 세계유산인 거문오름을 탐방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거문오름은 제주도의 용암동굴을 만든 모체이며, 동굴을 포함해 거문오름까지 세계유산에 등록되어 있었다. 너무나 흥미로운 사실이라 방문하지 않을 수 없었고 친구와 함께 떠난 여행에서 거문오름을 탐방하게 되었다.
거문오름 탐방은 지정된 시간에만 가능하며, 해당 시간에 찾아가면 안내해주시는 분이 1시간 동안 친절하게 설명해 주신다. 거문오름에 대한 배경지식 없이 찾아가도 상세한 안내 덕분에 제주도의 신비한 자연을 아는 데는 무리가 없다. 거문오름을 따로 걸으면 어떻게 이곳에서 분출한 용암이 동굴을 형성했을까 상상이 되지 않지만 설명을 듣고 나니 그 내막을 알 수 있다.
안내가 끝나면 개별로 거문오름을 탐방할 수 있다. 1.8㎞의 정상 코스, 5.5㎞의 분화구 코스, 10㎞의 전체 코스 중 우리가 택한 건 당연하게도 전체 코스였다. 전체 코스를 따라 걸으니 저 멀리 한라산이 보이고, 거문오름 주위로 형성되었던 경작지가 보인다. 일본군의 진지 또한 남아 있어 일본이 전쟁의 교두보로 삼았던 제주의 아픔을 여기서도 느낄 수 있다.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내용과 별개로 거문오름 위에 형성된 숲이 너무나 아름답기 때문에 여행 일정에 거문오름을 끼워 넣은 건 대만족이었다.
한라산은 국립공원 여행기에서 소개했기 때문에 제주도의 마지막 세계유산은 서귀포시 성산읍에 있는 성산일출봉이다. 성산일출봉은 한라산과 함께 제주도에서 가장 많이 소개되는 곳으로 옆에서 보아도 아름답고 정상에 올라서서 보아도 아름답다. 정상에 오른 건 두 번, 옆에서 본 건 수십 번에 달할 정도로 성산일출봉의 아름다움은 변함이 없었다. 어찌 보면 지겨울 수도 있겠지만 성산일출봉을 빼놓고는 제주도를 논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