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을 떠난 향우님 망운면 유래를 아시나요(2)?
망운향(望雲鄕), 망운부곡(望雲部谷)으로 부르던 망운이라는 지명 아래에 마을 이름은 고려시대에 기록이 없어 알수 없으나 목내를 중심으로 말을 사육한 근거는 오래된 나무들을 보면 알 수 있다고 하여야 할것이다.
향,소, 부곡의 지명아래에 마을 이름은 촌, 리, 동, 평, 소, 포 등을 뒤에 붙였다고 하나 마을 이름은 조선시대에 17 ~ 18세기부터 등장하게 됨
그 대표적인 나무가 우리들이 초등학교 시절에 야외에서 여름에 공부하던 운동장 주변에 있었던 큰 느티나무(괴목나무)를 보면서 마냥 즐겨워던 생각이 떠오른다.
그 느티나무는 어림잡아도 500년은 넘는 나무로 봐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목동리와 목서리에 심어서 관리한 고목나무들은 일종에 말을 사육하기 위한 울타리 역활을 하였으며, 인접에 현경면 송정리와 외반리, 동산리를 잇는 토성제(土城堤)를 보면 더욱 알 수 있는 "말(馬) 사육" 장소였다고 봐도 될것이다.
조선시대에 상주하면서 신안군 11개소의 말 사육 목장(압해면4개소, 자은면4개소, 장산면3개소)을 관리하던 관청이 있던 곳이 우리들이 교실로 썼던 남소학교 터가 바로 감목관 터(현재 목양관 건물)였으며, 건물은 그 당시 일본인들에 의해서 철거되어 천주교 망운성당으로 이설되었다.
초가지붕의 망운 성당 사진을 가지고 계신 친구분들은 카톡으로 보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구 한말에 지도군 총쇄록을 기록했던 오횡묵 군수의 기록에 의하면 망운면 송전을 용머리로 보고 우리의 모교인 초등학교 주변의 울타리 처럼 보였던 주변 나무들을 용 날개로 봤던 기록이 나오며, 유암포, 조산등 마을 이름도 거론되고 있다.
지금도 소재지 입구에 망제와 인접한 현경면 외반리 노인정 입구에 선정비, 공적비. 불망비 등을 보면 알수 있음
영광군 망운면 관활구역에서 1906년9월 24일 무안군으로 편입되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현재의 무안군 소속으로 부르고 있음
- 다음호 계속 기대하세요
첫댓글 행안 친구 정말 좋은 자료정보 감사해요.
그래도 제주에 영기 친구가 고향에 대한 관심이 좀 있어 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