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한 십일조와 풍성한 삶
(성경은 세 가지의 십일조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
성경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말씀만 듣고 그 명령을 다 지켜 행하면 반드시 복을 받고 부자가 되며 가난한 자가 없게 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만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내리는 그 명령을 다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신 땅에서 네가 반드시 복을 받으리니 너희 중에 가난한 자가 없으리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허락하신 대로 네게 복을 주시리니 네가 여러 나라에 꾸어줄지라도 너는 꾸지 아니하겠고 네가 여러 나라를 통치할지라도 너는 통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라.”(신15:4-6)
그런데 이 말씀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주어진 물질들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 것인가에 관한 말씀과 함께 주어진 말씀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재정적으로 부요케 되고 풍성한 삶을 살아가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께서 주신 물질들을 어디에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가 중요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3대 섬김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섬김, 가족들을 섬김, 불우이웃들을 섬김이 그것들입니다. 무엇으로 섬기는가? 물질로 섬기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을 섬기기 위하여 정해진 최소치의 물질이 있고, 가족들을 섬기기 위하여 정해진 최소치의 물질이 있고, 불우 이웃을 섬기기 위하여 정해진 최소치의 물질이 있습니다. 성경은 이것들을 가르쳐 십일조라고 부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 가족(친족), 불우이웃이라는 세 대상을 섬기기 위한 세 가지 십일조를 말씀하고 있는데, 성경은 이 세 가지 모두를 다 십일조라고만 칭하고 있음을 봅니다. 그래서 본인은 각각을 구분하기 위하여 세 가지 십일조의 용도에 따라서 각각의 십일조 앞에 용도를 붙여 부르고 있습니다.
첫 번째 십일조 즉, 성전십일조를 말씀하는 성경구절은 다음과 같습니다.
“내가 이스라엘의 십일조를 레위 자손에게 기업으로 다 주어서 그들의 하는 일 곧 회막에서 하는 일을 갚나니 이후로는 이스라엘 자손이 회막에 가까이 말 것이라 죄를 당하여 죽을까 하노라 오직 레위인은 회막에서 봉사하며 자기들의 죄를 담당할 것이요 이스라엘 자손 중에는 기업이 없을 것이니 이는 너희의 대대에 영원한 율례라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거제로 드리는 십일조를 레위인에게 기업으로 준 고로 내가 그들에 대하여 말하기를 이스라엘 자손 중에 기업이 없을 것이라 하였노라”(민 18:21-24)
“성전의 일을 하는 이들은 성전에서 나는 것을 먹으며 제단에서 섬기는 이들은 제단과 함께 나누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이와 같이 주께서도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명하셨느니라.”(고전9:13-14)
두 번째 십일조, 즉 가족십일조를 말씀하는 성경구절은 다음과 같습니다.
“...너희 번제와 너희 희생과 너희의 십일조와 너희 손의 거제와 너희 서원제와 낙헌 예물과 너희 우양의 처음 낳은 것들을 너희는 그리로 가져다가 드리고 거기 곧 너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먹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손으로 수고한 일에 복 주심을 인하여 너희와 너희 가족이 즐거워할지니라 .... 너희와 너희 자녀와 노비와 함께 너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 것이요 네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과도 그리할찌니 레위인은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음이니라 ... 너는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와 네 우양의 처음 낳은 것과 너의 서원을 갚는 예물과 너의 낙헌 예물과 네 손의 거제물은 너의 각 성에서 먹지 말고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실 곳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너는 네 자녀와 노비와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과 함께 그것을 먹고 또 네 손으로 수고한 모든 일을 인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하되 너는 삼가서 네 땅에 거하는 동안에 레위인을 저버리지 말지니라”(신 12:5-19)
“너는 마땅히 매년에 토지소산의 십일조를 드릴 것이며 네 하나님 여호와 앞 곧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를 먹으며 또 네 우양의 처음 난 것을 먹고 네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항상 배울 것이니라... [26절]무릇 네 마음에 좋아하는 것을 그 돈으로 사되 우양이나 포도주나 독주 등 무릇 네 마음에 원하는 것을 구하고 거기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너와 네 권속이 함께 먹고 즐거워할 것이며 네 성읍에 거하는 레위인은 너의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자니 또한 저버리지 말지니라.”(신14:22-27)
"만일 어떤 과부에게 자녀나 손자들이 있거든 그들로 먼저 자기 집에서 효를 행하여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배우게 하라 이것이 하나님 앞에 받으실 만한 것이니라...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딤전5:4,8)
세 번째 십일조, 즉 불우이웃을 위한 구제십일조를 말씀하는 성경구절은 다음과 같습니다.
“매 삼년 끝에 그 해 소산의 십분의 일을 다 내어 네 성읍에 저축하여 너의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 인과 네 성중에 우거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로 와서 먹어 배부르게 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의 손으로 하는 범사에 복을 주시리라.”(신14:28-29)
“셋째 해 곧 십일조를 드리는 해에 네 모든 소산의 십일조 내기를 마친 후에 그것을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에게 주어 네 성읍 안에서 먹어 배부르게 하라.”(신26:12)
"기록된 바 그가 흩어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의 의가 영원토록 있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희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너의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니 너희가 모든 일에 넉넉하여 너그럽게 연보를 함은 그들이 우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는 것이라."(고후9:9-11)
이상과 같이 성경에는 하나님, 가족(친족), 불우이웃이라고 하는 세 대상을 섬기는 세 가지 종류의 십일조가 나옵니다.
첫째 십일조는 한 해의 추수를 끝낸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의 소득의 1/10을 구별하여 자기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들에게 바칩니다.(민18:21-24) 그러면 레위인들은 백성들로부터 받은 십일조에서 다시금 1/10을 구별하여 제사장에게 바치는데 바로 이와 같은 십일조의 첫 단계를 ‘첫째 십일조’라고 합니다. 이는 순수하게 회막에서 봉사하는 사역자들인 레위인들과 제사장들의 생계유지만을 위해서 쓰이게 됩니다. 이것을 오늘날 신약시대로 적용하자면, 회막에서 봉사한다는 말은, 교회공동체에서 복음을 전파하는 목회사역을 의미하는 것임을 성경이 말씀합니다(고전9:13-14). 그러므로 이 십일조는 교회공동체의 복음사역을 감당하는 목회자들을 위하여 쓰여지는 물질이 될 것입니다. 저는 편의상 이것을 가르쳐 성전십일조라 칭하는 것입니다.
둘째 십일조는 첫째 십일조외에 또 다른 십일조를 말하는데 이는 백성들이 온 가족과 더불어 성소로 가서 한 해 동안 풍성한 복을 내려주신 하나님께 대한 ‘감사 잔치’를 벌이는 비용으로 사용되었습니다.(신12:5-19, 14:22-27) 이는 자신과 자녀와 노비 즉 가족들과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들이 함께 먹고 즐거워하는 일을 위해서 쓰입니다. 저는 편의상 이것을 가족십일조라 칭하는 것입니다.
셋째 십일조는 유대인들은 안식년을 기준하여 제3년과 제6년(즉 매 3년마다)에는 객과 가난한 자 즉 고아와 과부를 돕는 구제를 위하여 또 다른 십일조를 추가로 드렸습니다.(신14:28-29, 26:12-15) 편의상 이것을 불우 이웃을 위한 것이므로 구제십일조라 칭하는 것입니다.
말라기 선지자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친히 말씀하신 ‘십일조와 봉헌물’ 혹은 ‘온전한 십일조(히. kol-hammaaser ; 모든 종류의 십일조, all kinds of the tithe/Biblelex)’의 개념이 바로 이상과 같은 것입니다.(말3:7-12) 이상과 같은 온전한 십일조를 드릴 때에 하나님께서 물질의 복을 주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바로 이 부분에서 하나님은 우리들이 하나님을 시험해 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둑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둑질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봉헌물이라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둑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히. kol-hammaaser ; 모든 종류의 십일조, all kinds of the tithe/Biblelex)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말3:8-10)
특별히 하나님은 이웃구제십일조를 드릴 때에는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이 기도하라는 명령까지 해 주셨습니다.
"셋째 해 곧 (이웃구제)십일조 드리는 해에 네 모든 소산의 십일조 내기를 마친 후에 그것을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에게 주어서 네 성읍 안에서 먹어 배부르게 하라. 그리할 때에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아뢰기를 내가 성물을 내 집에서 내어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에게 주기를 주께서 내게 명하신 명령대로 하였사오니 내가 주의 명령을 범하지도 아니하였고 잊지도 아니하였나이다. 내가 애곡하는 날에 이 성물을 먹지 아니하였고 부정한 몸으로 이를 떼어두지 아니하였고 죽은 자를 위하여 이를 쓰지 아니하였고 내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여 주께서 내게 명령하신 대로 다 행하였사오니 원컨대 주의 거룩한 처소 하늘에서 보시고 주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복을 주시며 우리 열조에게 맹세하여 우리에게 주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복을 내리소서 할지니라."(신26:12-15)
이상과 같이 성경은 하나님과 가족(친족)과 불우이웃이라고 하는 세 대상을 섬기기 위한 각각의 세 종류 십일조헌금을 명령하고 있으며, 이 세 가지 십일조를 구원받아 하나님의 백성 된 자들이 마땅히 행해야 할 헌금생활의 최소치 기본지침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혹자는 이상의 세 가지 십일조를 모두 하나의 십일조로 오해하여 하나의 십일조가 회막의 봉사자들인 레위인들과 제사장의 생활비로도 쓰여 지고, 가족과 불우이웃을 돕는 구제비로도 쓰여 지는 것으로 주장하기도 하는데 이는 성경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성경 각각의 본문을 자세히 고찰해 보면 각각의 본문이 말씀하고 있는 내용들이 각각의 다른 십일조들을 의미하고 있기 때문이고, 유대 역사가 요세프스도 민수기 18:21은 전적으로 레위인들게만 바치는 십일조이고, 신명기 14:23은 식구들끼리 나눠먹는 십일조요, 신명기 26:12은 3년마다 드리는 가난한 자들을 위한 십일조로 보고 있고, <유대 고대사> 4권 8:8,22에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에게 주기 위해 떼어 놓은 것 말고 너희 소산의 10분 1을 따로 떼어 놓아라. 너희는 이것을 팔 수는 있으나 거룩한 도시에서 거행되는 절기와 제사 때에 꼭 사용해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소유하라고 주신 땅의 소산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 마땅하기 때문이다.”라고 함으로써 단 하나의 십일조가 아닌 각각의 십일조임을 밝히고 있기 때문입니다.
혹자는 이상과 같은 십일조가 구약시대의 율법이므로, 오늘날 교회시대 신자들에게는 더 이상 의무가 아니며 적용되지 않는 것으로 주장하기도 하는데, 구약이건 신약이건 모두가 다 동일한 하나님의 말씀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창세기로부터 요한계시록까지 동일한 그분의 말씀입니다. 세대주의적 성경관을 조심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마5:17)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마22:21)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찌니라."(마23:23)
이상의 성경구절들은 모두가 다 십일조는 구약에서도 신약에서도 하나님의 자녀들이 행해야 할 거룩한 기본의무이자 특권임을 말씀하는 것들입니다
모든 면에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세 가지의 십일조들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들을 자세히 정확하게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첫째 (성전)십일조는
“내가 이스라엘의 십일조를 레위 자손에게 기업으로 다 주어서 그들이 하는 일 곧 회막에서 하는 일을 갚나니···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거제로 드리는 십일조를 레위인에게 기업으로 주었으므로 내가 그들에 대하여 말하기를 이스라엘 자손 중에 기업이 없으리라 하였노라.”(민18:21-24)
“성전의 일을 하는 이들은 성전에서 나는 것을 먹으며 제단에서 섬기는 이들은 제단과 함께 나누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이와 같이 주께서도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명하셨느니라.”(고전9:13-14)
이상의 말씀에 명시된 대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성전에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역자들의 생계를 위하여 하나님의 성전에 드리는 최소치의 기준으로 드려져야 하는 것이며,
둘째 (가족)십일조는
“너희의 십일조와··· 너희의 하나님 앞에서 먹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의 손으로 수고한 일에 복 주심으로 말미암아 너희와 너희 가족이 즐거워할지니라.··· 너희와 너희의 자녀와 노비와 함께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 것이요. 네 성중에 있는 레위인과도 그리할지니 레위인은 너희 중에 분깃이 없음이니라.”(신12:6-12)
“너는 마땅히 매년 토지소산의 십일조를··· 너와 네 권속이 함께 먹고 즐거워할 것이며···”(신14:22-26)
“만일 어떤 과부에게 자녀나 손자들이 있거든 그들로 먼저 자기 집에서 효를 행하여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배우게 하라 이것이 하나님 앞에서 받으실 만한 것이니라.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딤전5:4,8)
이상의 말씀에 명시된 대로 순전히 가족들과 함께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고 누리는 일과 성중의 레위인(오늘날로 말하면 자신이 섬기는 교회의 목회자)들에게 주의 사랑을 나누는데 사용하는 최소치의 기준이 되어야 하고
셋째 (구제)십일조는
“매 삼년 끝에 그 해 소산의 십분의 일을 다 내어 네 성읍에 저축하여 너의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 인과 네 성중에 거류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로 와서 먹어 배부르게 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의 손으로 하는 범사에 복을 주시리라.”(신14:28-29)
“셋째 해 곧 십일조를 드리는 해에 네 모든 소산의 십일조 내기를 마친 후에 그것을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에게 주어 네 성읍 안에서 먹어 배부르게 하라.”(신26:12)
이상의 말씀에 명시된 대로, 하나님의 자녀들은 무엇보다도 먼저 2년 동안은 자기 가족의 재정적인 필요들을 보살피고 채워줌으로 자기 가족을 어느 정도 세운 후에는, 즉 제 3년째에는, 우리 가족이 아닌 제 3자인 불우이웃들의 재정적인 필요들까지도 보살피고 채워주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지구촌사랑교회는 이상의 말씀들을 성경대로 그대로 순종하기 위하여 신앙생활을 시작한 제 3년째에는 교회를 통하여 순수하게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들을 구제하고 선교하는 일에만 사용되도록 하기 위하여 구제십일조 헌금봉투를 만들었고 교회성도들에게 이 부분을 가르치고 있으며 믿음으로 이일에 동참하는 성도들이 계속해서 늘어가고 있음을 보는데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 일인지 하나님께 감사와 모든 영광을 돌려 드립니다.
매번 수입이 생길 때마다 첫째십일조(즉 성전십일조)와 둘째 십일조(즉 가족십일조) 외에 나머지 부분에서 십일조의 1/3에 해당하는 물질을 더 떼어서 따로 불우이웃을 위한 구제십일조로 교회에 헌금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매 삼년마다 불우이웃을 위한 구제십일조를 드리는 것과 똑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한달 수입이 120만원인 사람은 전체 수입의 20%인 24만원을 십일조로 구별한 후, 10%인 12만원은 성전십일조로 하나님께 드리고(교회에 헌금), 나머지 10%인 12만원은 가족 친지의 재정적 필요를 채워주는데 사용합니다. 이것을 가족십일조라고 합니다. 제 3년째에는 불우이웃을 위한 구제십일조를 다시 추가로 구별해야 합니다. 그러나 언제가 3년째인지 헤깔리는 경우가 있기에, 매번 십일조를 뗄 때마다 십일조액수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금액(4만원)을 추가하여 구제십일조로 드리면 편리합니다. 그렇게 계산하자면 매번 23.3%가 온전한 십일조인 셈입니다. 가족십일조로는 매월 순수하게 가족들에게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나누는 일에만 사용하고(유대인들은 가족모두가 신앙인이기에 가족모두가 성소로 올라가는 것이 가능하나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가 못하기에...) 12만원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4만원은 구제십일조로 교회에 헌금을 하면 교회에서 구제와 선교를 위한 기금으로 사용한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당시의 농경사회가 지금의 월급사회로 전환된 환경 속에서 성경 가르침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고 그대로 살리면서도 효과적(?)으로 실천하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한 번 정리하자면 120만원의 수입이 생길 경우 12만원이 성전십일조요, 12만원이 가족십일조요, 4만원이 구제십일조인 것입니다. 12만원은 성전십일조로, 4만원은 구제십일조로 교회성전에 헌금하고, 12만원은 가족십일조이기에 교회에 헌금으로 드리지는 않지만 가족들의 재정적인 필요들을 채워주는데 사용하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지구촌사랑교회 모든 성도들뿐만이 아니라 우리 한국 교회 전체가 이 부분에서 성경적인 순종을 할 것을 제안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은 분명히 우리나라 교계 전체에 물질의 복을 쏟아 부으실 것이며 더 강한 하나님 나라의 확장사역이 펼쳐질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만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내리는 그 명령을 다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신 땅에서 네가 반드시 복을 받으리니 너희 중에 가난한 자가 없으리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허락하신 대로 네게 복을 주시리니 네가 여러 나라에 꾸어줄지라도 너는 꾸지 아니하겠고 네가 여러 나라를 통치할지라도 너는 통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라.”(신15:4-6)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둑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둑질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봉헌물이라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둑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충분치 않도록(that not enough/ [berakah (blessing) ad (until)-beli (not)-day: (enough):/이병천註])붓지 아니하나 보라”(말3:8-10)
“할렐루야,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그의 후손이 땅에서 강성함이여 정직자들의 후손에게 복이 있으리로다. 부와 재물이 그의 집에 있음이여 그의 공의가 영구히 서 있으리로다.”(시112:1-3) 아멘.
옛날에 김익두 목사님이 재령에서 부흥회를 인도할 때입니다. 원래 김익두 목사님은 신유의 은사를 가진 사람이라 김익두 목사님이 가서 복음을 증거하면 병든 자가 인산인해로 모여왔고 많은 사람이 병에서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재령에서 부흥회할 때 한 남자가 오더니 안수를 하고 있는 김익두 목사님의 손을 꼭 잡고 놓치 않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나는 본시 건강하니까 건강을 위한 안수는 필요 없고 물질의 축복이 필요한데 물질의 축복을 받으려면 십일조를 내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내 마음이 자꾸 흔들려서 십일조를 못내고 있으니 목사님께서 제게 십일조 안수를 해주십시오.” 그렇게 부탁을 했습니다. 김익두 목사는 그 자리에서 입고 있던 두루마기의 소매를 쫙 찢어가지고서 그것을 묶어서 주머니를 만들어가지고서 그것을 주면서 “당신이 물질의 축복을 받기 원한다면 항상 이 주머니를 갖고 다니면서 수입에서 들어오는 데로 여기에 철저하게 십일조를 넣어서 교회에 바치시오.” 그리고 안수를 해주었습니다. 그 남자는 장마다 돌아다니며 장사를 하는 장돌뱅이였는데 그 후로는 이 십일조 주머니를 꼭 옆구리에 차고 다녔습니다. 10원을 벌면 1원을 넣고 100원을 벌면 10원을 넣었습니다. 그 모습을 하도 신기해서 사람들이 “그게 뭐요?”하고 물으면 “이것은 십일조 주머닌데 나에게는 축복의 주머니”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나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얼마나 축복해 주셨던지 한낯 장돌뱅이에 불과했던 그가 재령에서 제일가는 재벌이요, 황해도에서 헌금을 가장 많이 드리는 장로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가 바로 재령교회의 정찬식 장로입니다. 여러분 평범한 장돌뱅이가 하나님께 십일조와 헌물을 정성으로 드리고 하나님을 의지한 결과로 일약 거부가 되고 교회사에 이름이 남는 장로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 착실한 청지기 역할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청지기가 주인의 재물을 훔치고 난 다음에 주인이 그 청지기를 계속해서 고용하겠습니까? 파면하고 말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 속에 언제나 심고 거두는 법칙을 생각하고 무엇으로 내가 심어 놓든지 심어야 거둔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 농부가 아무것도 안 심고 거두기를 바라는 사람이 있습니까? 무엇을 심든지 심어야 거두지요.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나지요.
고린도후서 9장 6절로 7절에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찌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생애 속에 심는 것을 보시고 거두게 하십니다. 내가 심은 대로 내가 거두지 않으면 내 자손대에라도 거두는 것입니다.
강문호목사님께서 소개하신 한신교회 이중표 목사님이 살아 계셨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한 분이 십일조라면서 3천 1백 몇 만원을 가지고 왔습니다. 한꺼번에 드리는 십일조 치고는 꽤 큰 액수지요? 거기에는 이런 사연이 있었습니다.
가정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몇 달 동안 기도하여도 응답이 없었습니다. 전에는 기도하기만 하면 산뜻하게 해결을 받곤 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하나님! 제가 잘못 한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네게 내 것을 도적질하였다.>
<나는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한 적이 없는 데요.>
<남편이 몇 달 전 퇴직할 때 퇴직금 3억원을 받았는데 십일조는 내 것인 데 바치지 않았다.> 그 때서야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은행에 가서 십일조를 드리려고 돈을 찾는 데 하나님이 마음에 음성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몇 달 전에 드려야 하는 데 이제 바치니 이자도 있다.> 그래서 이자까지 계산하여 십일조를 드리는 이를 본 적이 있습니다. 십일조는 하늘 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기도 응답이 안 되거나 더디면 십일조를 점검하여 보어야 합니다.
한 번은 갈보리교회 강문호목사님이 강원도 산꼴로 집회를 간 적이 있습니다. 호텔도 여관도 없어서 어느 성도 집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대단히 부잣집이라 집이 컸습니다. 그래서 그 집을 강사 숙소로 선택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집에 제일 어른이 할머니였습니다. 루마치스 관절염으로 걷지를 못 하고 몇 달 동안 누워 계신 할머니였습니다. 집회를 마치고 숙소로 오면 할머니가 강문호목사님을 옆으로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자기에게도 오늘 말씀을 전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목사님은 전 시간 설교를 할머니에게 다시 하곤 하였습니다. 너무나 사모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십일조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갑자기 할머니가 나에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나는 다리를 낫게 하여 달라고 하나님께 오랫동안 기도하였는데 안 돼. 그런데 왜 그런지 알았어. 십일조를 몇 년 동안 안 드렸어. 하늘 문이 막혔어.>
<그럼 십일조 생활을 다시 하셔야 되겠네요.> 할머니는 내 손을 잡으면서 말했습니다.
<강 목사님! 사람의 돈을 떼어 먹었어도 갚아야 하는 데 하나님 돈을 떼어 먹고 이제부터 십일조 드리면 돼나! 그 동안 떼어 먹은 십일조를 드려야지.>
그리고 그 동안 안 드린 십일조가 얼마인지 계산하시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혼자 중얼거렸습니다.
<그럼! 내가 십일조 떼어 먹은 것이 얼마나 돼나 계산해 보아야지.>
이튿날 할머니는 당시 600만원을 드렸습니다. 당시 왠만한 집이 600만원이었습니다. 시골 집 한 채 값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오늘 날로 말하면 6,000만원 쯤 드렸습니다. 온 교인들이 정성을 다 하여 기도하였습니다. 그 후 할머니는 회복하고 걸어서 교회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어부는 절대로 그물을 팔지 않습니다. 농부는 아무리 어려워도 종자씨를 먹지 않습니다. 화가는 아무리 살림이 어려워도 붓을 없애지 않습니다. 목수는 망치와 대패는 어디를 가든지 가지고 다닙니다. 내 머리를 깎아 주는 이발사는 6.25때 가위 하나만 들고 다니면 먹는 문제를 해결하였다고 합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가위는 주머니에 넣고 다녔습니다. 성도는 십일조만은 절대 건드리면 안 됩니다.
어떤 이에게 돈을 꾸어주었는데 떼어 먹고 안 준다면 다음에는 결코 안 꾸어 줄 것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십일조를 떼어 먹는 사람에게는 하늘 문을 열어주지 않습니다. 복을 주시지 않습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바 온전한 십일조는 하늘 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온전한 십일조로 하늘의 문이 열리게 하였다면,
이제는 믿음의 씨앗을 심고 하나님의 보상을 기대하십시오.
보상을 바라고 헌금하는 것은 잘못이 아니라 성경적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농부의 씨를 30배, 60배, 100배로 늘리시는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우리의 재정을 늘리십니다. 그것은 농사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추수로 비유되는 엄청난 증식의 원리는 그리스도인의 재산에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이것은 사람이 한 말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희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니 너희가 모든 일에 부요하여 너그럽게 연보를 함은 저희로 우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려는 것이라”(고후9:6-11)
전통적으로 교회는 보상을 바라고 헌금하는 행위를 잘못으로 규정지어 왔습니다. 그러나 위에 제시한 성경구절을 처음 읽는 사람이라도, 지금까지 교회가 이 문제에 관한 하나님의 말씀을 잘못 알고 있었다고 결론 내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마태복음 6:33의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는 말씀에서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한다.”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문자적으로 보자면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구하고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추구한다.”는 것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본문의 문맥 속에서 나타나는 그 구체적인 의미가 무엇이겠습니까? 이 말씀의 전 문맥은 마태복음 6:19절부터입니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 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즉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한다는 구체적인 의미는 우리의 재물을 구체적으로 하나님께 드린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여기의 “보물”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theesauros"로 “보물, 보배합, 쌓아놓는 곳(은행)”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실제로 이 단어는 마12:35절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는 말씀과 눅6:45절 “마음의 쌓은 선··· 그 쌓은 악···”에서 “쌓은”이라는 의미로 쓰여졌습니다. 그래서 중간 문맥인 24절에는 “···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는 말씀을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재물을 하늘에 쌓는 구체적인 방법을 설명하셨습니다.
(막 10:21-22) 『[21]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가라사대 네게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22] 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고로 이 말씀을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가니라』
그리고 우리가 우리의 재물을 하나님께 드릴 때에(먼저 그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할 때) 주어지는 결과 “··· 그리하면 이 모든 것(재물)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는 말씀의 의미는 우리의 재정이 내세 천국에서 장차 주어질 것이라는 말씀이 아니라, 이 세상 즉 금세에서 주어지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진리가 막10:29-30절에서는 금세에서 100배로 내세에서 영생으로 갚으신다고 표현되고 있음을 봅니다. 내세 천국에서는 재물이 더 이상 필요치 않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재물은 이 세상에서 필요한 것입니다. 내세 천국에서 재물을 소유하게 될 것이라는 잘못된 개념을 교정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헌금 드리는 것을 일일이 보시고 계십니다(막12:41-44). 그것은 하늘나라에서 되어지는 일의 그림자입니다(히9:24).
쉽게 설명하자면 우리가 하늘의 은행에 우리의 재물을 쌓아놓은 만큼, 저축하는 만큼 하늘의 은행장인 아버지 하나님께서 우리의 필요들을 이 세상에서 100배로 갚아주시고, 저 천국에서 영생으로 갚아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사도바울은 이 부분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하는 말이로다.”(고후9:6) 아멘. 많이 심고 많이 거두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심되 좋은 땅에 심어야 100배로 결실합니다.
(마 13:8)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혹 백 배, 혹 육십 배, 혹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막 10:29-30)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 전토를 백 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물질은 사후(死後)에 백배로 돌려받는 것이 아님을 주목하십시오. 주님은 바로 지금 “현세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리라고 말씀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돈은 우리가 살아 있을 때에만 효용가치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집과 전토를 금세에서 100배로 받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땅이 좋은 땅입니까?
좋은 땅은? 어떤 것을 의미합니까? 주님과 복음을 위한 선교단체와 교회이어야 합니다.
이 세상에는 “선교하기 위해 존재하는” 교회와 선교단체가 있는가 하면 “먹고살기 위해 선교하는” 교회와 선교단체가 있습니다. 또 어중간하게 운영이 되나 주객이 전도된 경우도 나쁜 땅에 속합니다. 예를 들어 선교단체의 유지비나 회장의 판공비 등으로 70%이상 지출되고 나머지 거스름돈이나 선교사들 후원금으로 지출된다면 좋은 땅은 아닙니다. 전자는 살아있는 좋은 땅이고 후자는 죽어있는 나쁜 땅입니다.
재정이 적절하게 쓰여 지고 있는가? 술 마시는 일과 같이 엉뚱한 일로 탕진되지는 않는지... 그 단체가 성경적인 원리에서 벗어나지 않는가? 그 조직의 지도자가 성경적으로 사는가? 그 단체는 성장하는가 아니면 죽어 가는가? 성장의 준비과정인지 죽어가는 과정인지를 잘 파악해야 합니다.
좋은 밭에서 무엇인가를 거두려면 거두기 원하는 것을 그곳에 심어야 100배로 거둘 수 있고, 이자율이 좋은 은행에서 좋은 이자를 받으려면 그 은행에 돈을 저축해야 이자를 받을 수 있는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께 재정의 복을 받으려면 하나님께 우리의 재정을 뿌리고, 천국은행에 우리의 재정을 저축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천국은행의 이자율은 10,000%(100배)이며 이 세상에서 인출하는 것이라고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고후 9:6-11) 『[6]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7]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8]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9] 기록한 바 저가 흩어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의 의가 영원토록 있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10]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희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니 [11] 너희가 모든 일에 부요하여 너그럽게 연보를 함은 저희로 우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는 것이라』
(갈 6:6-9) 『[6]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8]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막 10:29-30) 『[29]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30]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빌 4:14-19) 『[14] 그러나 너희가 내 괴로움에 함께 참예하였으니 잘하였도다 [15] 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 받는 내 일에 참예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 [16]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 번 두 번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 [17] 내가 선물을 구함이 아니요 오직 너희에게 유익하도록 과실이 번성하기를 구함이라 [18]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의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19]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하늘에 저축할 것이 없으면 소유를 팔아서라도 저축하십시오.
가난한 농부는 빚을 내서라도 종자를 구입해서 땅에 뿌리고 100배의 수확을 기대하는 법입니다.
(눅 12:31-34) 『[31] 오직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32]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 [33]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주머니를 만들라 곧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보물(저축)이니 거기는 도적도 가까이 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 [34] 너희 보물 있는 곳에는 너희 마음도 있으리라』
다시 한 번 지적하거니와 이 구절은 내세에서 물질을 돌려받는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하늘에 저축을 하고 금세에서 100배로 돌려받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31절).
하늘나라에서는 돈이 필요치 않습니다. 돈은 지금 여기 이 땅에서 필요한 것입니다.
“낡아지지 아니하는 주머니를 만들라”(33절)는 말씀은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 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고후4:16)는 말씀에서 보는 바와 같이 우리의 속사람인 영에다가 믿음의 주머니를 만들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심는 만큼의 믿음을 가지게 되고 그 믿음으로 재정을 인출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너 자신을 낡아지지 아니하는 그릇, 낡아지지 아니하는 저장고로 만들라.”는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심을 때는 반드시 순종과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첫째,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말씀하시는 그대로의 양(믿음의 분량)을 따라 순종함으로 정확한 액수를 심어야 합니다.
(빌 2:13-14) 『[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14]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고후 9:7)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타인의 강요에 의해 믿음의 분량이상을 드리지 마십시오. 단,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자원하여 더 드리는 것은 용납됩니다.
둘째, 하나님이 100배가 되게 넘치도록 돌려주실 것을 믿는 믿음으로 바쳐야 합니다.
(히 4:1-2) 『[1]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 혹 미치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2] 저희와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그러나 그 들은 바 말씀이 저희에게 유익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을 화합지 아니함이라』
(히 3:19) 『이로 보건대 저희가 믿지 아니하므로 능히 들어가지 못한 것이라』
(시 81:10-12) 『[10]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네 하나님이니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하였으나 [11] 내 백성이 내 소리를 듣지 아니하며 이스라엘이 나를 원치 아니하였도다 [12] 그러므로 내가 그 마음의 강퍅한 대로 버려두어 그 임의대로 행케하였도다』
(히 11:1-2) 『[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2]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으니라』
모든 기적은 믿음에 의해 생기는 것이지 아무런 결과도 바라지 않으면서 헌금을 한다는 것은 곧 믿음이 없는 행위에 불과한 것입니다.
모든 헌금은 순종과 믿음 가운데 드려야 합니다. 이것이 아니라면 드리지 마십시오. 주님은 그런 것을 받지 않으시며 주님이 받지 않으신 것에 대하여 갑절로 돌려주실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돈을 드리는 것은 단순한 돈이 아닙니다. 그것은 복음의 옥토에 뿌려지는 씨앗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배가 시키셔서 우리에게 돌려주심으로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우십니다. 씨앗믿음의 기적은 우리의 마음에 평안과 기쁨으로 드리는 태도, 그리고 계속해서 기대하는 마음을 갖게 합니다. -오랄 로버츠-
오랄 로버츠는 베니 힌에게
“베니, 당신은 교인들에게 헌금하라고만 하지 결과를 기대하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드리라는 말만 합니다. 농부는 씨를 뿌리면서 추수를 기대합니다.··· 오늘 아침 당신의 교인들에게 헌금을 드리라고 말하면서 성경이 말씀하는 바를 전했습니다. 놀라운 성경말씀을 나누었고 헌금에 대한 도전을 주었지만, 그들에게 받을 것을 기대하라고 말하진 않았습니다. 심는 것과 거두는 것은 항상 균형을 이루는 것입니다. 저는 씨를 뿌리면서 추수를 기대하지 않는 농부를 본 적이 없습니다.”라는 말을 하며 헌금할 때마다 다음과 같이 행동할 것을 충고했습니다.
1] 기대되는 추수를 적으라.
2] 추수하게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라.
3] 받을 것을 기대하라.
4] 추수할 때까지 계속 드리라.
-그러면 더 많이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눅6:38절에 근거한 오랄 로버츠의 이 원리를 듣고, 베니 힌은 헌금을 드리면서 “주님, 제가 빚에서 벗어나게 해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이라고 기도를 썼다. “네가 적고 있는 그 말을 진정으로 믿느냐?”는 내적 감동을 따라 “그렇습니다, 주님, 저를 빚에서 벗어나게 하심을 믿습니다.”라는 고백을 하자 “그렇다면 나에게 감사하라”는 감동이 오고 “하지만 아직 빚을 지고 있는데 당신께 감사할 수 있습니까?”라고 하자 “지금 나에게 감사하라”고 하셨기에 “저를 빚에서 벗어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멘.”이라고 크게 외쳤다. 몇 달 후 어떤 부부로부터 식사에 초대받았는데 “베니 목사님, 주님께서 몇 달 동안 어떤 일에 대해 저희 부부에게 계속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라는 말과 함께 봉투 두개를 건냈다. “저희 부부가 목사님의 빚을 갚으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액수가 충분하십니까? 베니 목사님!”... 그 순간 베니 힌은 그의 아내 수잔과 함께 울어버렸다고 합니다.
(The Biblical Road To Blessing. 부자가 되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Benny Hinn. 크레도, pp.155-161)
우리(얼 피츠)는 올바로 십일조를 하는 사람들이었으며 수년 동안 많은 것을 줄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돈이 배가 되어 돌아오는 것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하였었다. 우리가 이것에 대해 생각할 때, 그 이유는 한 번도 목적을 가지고 씨를 심어보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우리는 십일조를 하여 왔고, 다른 사람들에게 관대하게 주었지만, 의도적으로 심은 적은 없었던 것이다. ··· 우리는 나의 친구를 만나 이것은 선물이나 주는 것이 아니라 열 배로 배가되어 돌아올 것을 믿는 씨라고 말하며 그의 손에 쥐어 줌으로 그 돈을 하나님 나라에 심도록 인도하심을 받았다. ··· 그 뒤 6주 동안 그 친구와 나는 소식을 전하고 우리의 삶 가운데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들을 나누며 추수를 바라고 있었다. 어느 날, 소그룹 성경공부를 마쳤을 때, 어떤 사람이 수표가 든 봉투를 가지고 나에게 왔다. 그는 이 돈을 내게 주는 것에 대하여 며칠 동안이나 하나님과 변론하였다고 말했다. ··· 내가 봉투를 열었을 때, 놀랍게도 수표의 금액은 우리가 심은 것의 정확히 열 배였다! 나는 너무나도 흥분하여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를 알지 못했다. ···어떤 사람들은 왜 모든 것이 100배가 아닌 열배로 돌아올 것을 믿지 않느냐고 묻는다. 우선, 그것은 믿음의 문제다. 나는 왜 열 배로 돌아올 것을 믿었는가? 그것은 나의 믿음의 수준이었다. (그리스도인의 재정원칙. Wealth, Riches &Money, 예수전도단, pp.272-273)
멕시코 살틸로 사과농장의 농부들이 믿음의 씨앗을 심은 이후 한파로 사과시장을 독점하는 기적을 경험하였습니다.
거듭된 흉작으로 재정이 극도로 쪼들리게 되었고, 풍성한 수확에 대한 약속의 말씀을 들은 그는 풍성한 사과 수확의 씨앗으로 거액의 헌금을 드렸다. 이 헌금을 하느라 그는 극도로 쪼들리게 되었다. 힘에 겨울 정도의 거액을 헌금하고 살틸로의 집으로 돌아온 그에게는 최악의 소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헌금을 한 바로 그날 밤 때 아닌 추위가 몰아닥친 것이다. 이로써 농장의 사과 꽃들이 모조리 얼어붙었다. 이와 같은 사태를 맞자 의심이 먹구름처럼 피어올랐다. 결핍의 공포로 인해 하나님이 그의 헌금을 열납하지 않으신 것이 아닌가 하는 회의가 그를 괴롭혔다. 그렇지만 그는 아내에게 지혜롭게 다짐했다.
“추수를 위해 믿음으로 씨를 뿌렸으니, 이제 우리는 기도할 도리밖에 없소. 자연의 결과는 좋지 못하지만, 우리 하나님은 자연을 다스리는 분입니다.”
그 부부는 간절히 부르짖었다. 그렇게 기도하면서 그들은 두려움을 떨쳐버렸다. 소문이 나돌면서 그로부터 보름 동안 그들은 심한 마음고생을 했다. 누구나 “올해 사과 농사는 끝장”이라고 했다. 이 신실한 하나님의 종들은 이웃 농부들의 조롱과 비웃음의 대상이 되었다. 이들은 꿋꿋하게 버텼다.
“우리는 사과를 수확할 겁니다. 하나님이 지켜 주실 거예요. 우리는 믿음으로 씨를 뿌렸으니, 믿음으로 거둘 겁니다.”
보름 만에 기적이 일어났다. 얼어붙은 꽃들이 매달려 있던 나무마다 아주 작은 사과 알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아주 조그마해서 보일 듯 말듯했지만 어쨌든 살아있었고 상태도 양호했다. 사과는 날마다 알이 굵어져 마침내 탐스럽게 익었다. 그해 마을에서 사과를 수확한 집은 이 신실한 농부네 집밖에 없었다. 그리고 수확은 그 어느 해보다도 풍성했다.
자, 이제 가장 감동적인 부분으로 넘어가자. 그 해 다른 농장이 다 흉작이어서 이 농부의 사과는 전에 없이 비싼 가격에 팔렸다. 이 부부는 “바라는 추수량에 맞춰 씨를 뿌려야지 작년 추수량에 맞춰 뿌려서는 안 된다.”는 재정의 법칙에 대한 살아있는 증인이었다. 우리는 장래 추수의 규모에 따라 시를 뿌려야 한다. 과거 추수의 규모에 맞춰 파종해서는 안 된다.
없는 것에 연연하여 파종하지 말라. 과감하게 미래의 추수를 바라고 투자하라. 그렇잖아도 돈이 없어 죽겠는데 어떻게 그러냐고 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소득이 충분치 않다면 전보다 더 많은 씨를 뿌려야 더 많이 거둘 수 있다는 원리를 알아야 한다. 많이 드릴수록 많이 거둔다.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고후9:6) 아멘.
(30배 60배 백배의 축복받는 원리, 존 아반지니, 나침반, pp.138-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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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예수찬양방송선교회 원문보기 글쓴이: 주님사랑에빚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