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들은 모두 퇴근한 시간, 뒷정리하고 가게 문을 나서려던 남편은 멈칫했다. 가게 입구에 흑인이 한 명 앉아 있었던 것이다. 이미 자정이 다 된 시간, 넓은 주차장은 짙은 어둠만 가득하고 남편의 차만 한 대 동그마니 남아 있었다. 지나다니는 사람조차 없는 그 시간에, 그 흑인이 어떤 위험 요소를 안고 있는지 알 길이 없어 남편은 한참을 가게 안에 머물렀다. 시간이 흘러도 그는 갈 생각을 하지 않고 그대로 앉아 있었다. 가게에 계속 머무를 수도 없어 그는 문을 나서기로 했다. 혹시 모를 위험한 상황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머릿속으로 그리며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나왔다. 문 앞에 앉아 있던 그는 남편을 보자 엉거주춤 일어났다. 그리고는 간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Can you give me a second chance?”
겨울에도 영하로 내려가는 날이 며칠 되지 않는 플로리다는 집 없이 길에서 사는 사람들이 다른 어느 도시보다 많다. 그런 사람들 대부분은 마약이나 술 중독자이다. 미국에서는 저소득층이 중산층보다 더 많은 혜택을 누린다. 아무리 중병에 걸렸어도 모든 의료혜택을 무료로 받을 수 있다. 온 가족이 충분히 먹고 남는 분량의 식료품을 살 수 있는 카드를 정부로부터 매달 받는다. 낡았어도 냉난방시설이 갖추어진 집에서 살 수 있다. 그래서 맨정신으로 거지가 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마약이나 술 중독에 의해 사고를 쳐서 범죄자가 되었거나, 신용불량자가 되어 평범한 삶의 열차를 놓친 사람들이다. 그 열차를 다시 타기 위해서는 남보다 몇 배의 노력을 해야 하지만, 그럴 의지도 없고, 그것을 도울 가족도 이미 잃은 상태이다.
남편은 그의 ‘세컨챈스’라는 말에 마음이 움직였다. 그에게 내일 아침 열 시에 깨끗한 옷을 입고 오면 일거리를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깨끗한 옷을 살 수 있는 돈을 주었다. 그 말을 전해 들은 가게 직원들은 하나같이 남편이 그에게 이용당했다고 했다. 설사 그가 일하러 오더라도 며칠 못 가 그만 둘 것이라고 했다. 시간과 돈만 낭비할 것이 뻔하다고 그러지 말라고도 했다.
다음날 열시가 되자 그가 나타났다. 꿈 같이 그에게 온 세컨챈스를 꼭 잡아 반드시 새로운 삶을 살아내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있어 보였다. 술에 절어 살았던 그의 몸에서는 여전히 술 냄새가 진동했지만, 그는 열심히 일했다. 남편은 그런 그를 길거리에서 재울 수 없어 가게 앞에 있는 모텔에 방을 잡아 주었다. 일주일이 지나 이주일이 되어도 그는 열심히 일했다. 남편은 그가 살 방을 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범죄기록도 있고 이미 신용불량자로 낙인 찍힌 그에게 세를 주겠다는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남편은 포기하지 않고 동네 구석구석을 다 뒤졌다. 그가 일한 지 한 달이 지나 겨우 방 하나를 구할 수 있었다. 방 두 개짜리 아파트에 세 들어 사는 사람이 방 하나를 다시 세 놓겠다는 곳이었다. 아주 허름한 곳이었지만, 방세만 내면 아무 조건 없이 그를 받아 주겠다고 하였다. 그를 위해 이부자리를 사고 간단한 세간살이를 마련하여 주었다. 옆방 사람으로부터 헌 티브이도 샀다. 그는 티브이가 있는 자기 방을 가져 본 것이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고 하면서 울먹였다.
그렇게 그는 진창 같은 그의 삶에서 마른자리로 넘어오는 것 같았다. 그러나 비바람 막아주는 따뜻한 공간이 낯설었을까? 정해진 시간에 매여서 일해야 하는 삶이 답답했을까? 구걸하지 않아도 술을 마음껏 살 수 있는 돈이 생겨서였을까? 그는 점차 출근 시간을 맞추지 못했고, 일하러 왔다가도 어디론가 수시로 사라졌다. 가게에는 그럴듯한 이유를 대고 나갔는데 찾아보면 언제나 걸인들이 모여 있는 나무 밑에서 그들과 놀고 있었다.
세컨챤스를 간절히 원하던 그는 그렇게 다시 자기의 삶으로 돌아갔다. 그를 믿지 않았던 사람들이 그럴 줄 알았다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거 보라고 사람 그렇게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 당신은 시간과, 돈과, 사랑을 낭비한 거라고 남편의 순진함을 비웃었다.
그러나 남편의 생각은 달랐다. 그의 삶에 한 가닥 희망의 빛을 준 순간으로 기억된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고 했다. 어떤 연유로 그가 그런 삶을 살던, 앞으로 그가 어떤 삶을 살아 내던, 이 세상이 아직은 아름다운 세상이라는 것을 경험하게 했다는 것이다.
그는 여전히 거리에서 살고 있다. 그러나 주차장에서 짐을 나르는 남편을 보면 달려와 손을 보태기도 하고, 거리에서 뒹굴어 냄새나는 몸으로 달려와 남편을 끌어안기도 한다. 그리고 잊어버릴 만하면 가게 안까지 찾아 들어와 남편에게 정말 고마웠다고 인사를 한다. 이제 막 서른을 넘긴 그의 젊음이 안타깝다. 너무 늦지 않게 그가 다시 열차에 올라타기를 바란다. 그럴 수 있다면 우리는 다시 그의 발을 받쳐 주고 열차에 오를 수 있게 밀어줄 것이다.
첫댓글 누구시기에 이 아침을 감동의 물에 마음 흥건히 적시게 하시나이까? 촛불을 켜고 사람이란 무엇인가? 사랑이란 무엇인가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나에게 던지며 평범의 열차를 놓친 한 사람을 위해 기도 합니다
감동 또 감동 입니나 감사합니다
꿈과 희망이 함께 하기를 기도합니다.
기도로 마음을 모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에게 다시 제3의 찬스가 오고 있을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