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훌륭한 선생님의 명예 퇴직>
사실 저같은 경우,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돈이 없어서 대학을 공짜로 가르쳐주고 교사로 발령을 내준다고 해서 국립사범대학에 진학했습니다. 바로 위의 형이 학습적성이 높아서 의과대학에 다니는 바람에 더더욱 저는 찬밥 신세가 된 셈이었습니다.
언젠가 미팅에서 간호전문대학 다니는 여학생이 "남자가 갈데가 없어서 사범대학을 다니느냐?"는 자존심을 짓밟는 소리에 상처를 입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근래에 50대 초반의 P교사가 학생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얘들아, 우리가 대학에 입학할 때는 남자들은 사범대학에 안갔어. 다른데 취직이 잘되는데 구태여 사범대학에 갈 이유가 없었지..."
이 이야기를 귓결에 듣고는 옛날 예비 간호사가 말한 상처의 트라우마가 되살아나는 것같았습니다. 사립학교 특채 출신의 P교사가 어떤 의도로 학생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했는지 몰라도, 그당시 공부는 잘하지만 형편이 가난한 남학생들이 국립사대를 많이 입학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삐딱한 시선, 잘못된 가치관을 가지고 평가절하하는 것같이 들려서 서운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처음부터 교사가 되겠다고 결심하고 국립사대에 진학한 사람과 이것저것 시도하다가 교사가 된 사람의 생각과 철학,교직에 대한 소명의식은 분명히 다른 것입니다.
지난 해 서울시교육청의 '초등교사 임용고시 정원 축소' 파동도 그런 맥락을 모르는 무지함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현재 교대는 내신 1.34등급 이하의 최고 우수한 학생들이 입학합니다. 그 우수한 인재들이 처음부터 초등교사가 되겠다고 결심하고 교대에 입학하여 졸업한 학생들인데, 초등교사를 하지못하면 그들은 결국 실업자가 되라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그들에게는 생존을 위한 희망의 싹을 싹둑 자르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당시(1980년대 말까지) 교대졸업생도 마찬가지였지만, '국립사대 출신 우선 임용제도'의 장점은 처음부터 교사가 되겠다는 생각으로 대학 4년을 '예비 교사의 자질 함양과 자기 역량 개발의 기간'으로 온전히 보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교사로서 굉장한 행운이요 축복이었음을 이제는 말할 수 있습니다. 요즘 임용고시가 워낙 치열하다보니까, 그런 '교사의 자질 함양 기간' 운운했다가는 시대착오적인 생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무조건 임용고시에 합격하기 위해 몸부림치는데, 그렇게 사치스런 이야기를 언급한다는 것은 괜한 시간낭비라고 치부할 수도 있습니다.
훌륭한 교사의 명예퇴직을 이야기하기 위해 서두가 너무 길었습니다.
수업을 잘 가르치고, 업무능력이 뛰어난 교사를 유능한 교사라고 합니다. 여기에 덧붙여 사람이 좋고, 이해심 많아서 모두가 좋아하는 품성을 지닌 교사를 훌륭한 교사라고 합니다.
실력(학습지도능력, 생활지도 능력 포함)은 출중한데, 사람이 차갑고 따지기를 좋아하며 손해볼 짓은 절대 하지 않는 경우에 다른 동료교사들이 너무 잘 알게 됩니다. 한마디로 친밀감을 느끼지 못하고 늘 마음의 벽이 있는 듯한 교사는 절대 훌륭한 교사로 평가받기 어렵습니다.
여기 소개하는 J선생님은 정말 수업에 대한 열정과 남다른 의욕을 가지고 끊임없이 자기수업을 변화시키고, 스스로 변신하려고 무척 애를 쓰고 노력하는 교사, 후배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듬뿍 받는 교사였습니다.
그동안 도단위 교과연구회 활동도 열심히 하면서, 연구위원으로 연구회 활동을 주도하면서 후배들을 아우르고 솔선수범하였습니다. 특히, 연구회 소속 교사들의 수업 혁신마인드 제고와 수업 방법 개선 노력에 지대한 영향력을 미쳤습니다.
그동안, 미친 듯이 학교 생활에 애정을 쏟고, 수업 방법 개선과 수업 혁신을 위해 다른 교사들의 우수 수업을 벤치마킹하며, 수업비평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이론으로 수업의 달인 경지에 올라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득 친한 친구의 죽음으로 인한 상실감, 그리고 심신이 지쳐서 이제는 모든 것을 미련없이 내려놓고 싶다고 했습니다. 결국, 쉬고 싶은 마음이 모든 것에 우선해서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마음을 정리하여 사표를 과감히 던졌다고 합니다.
결심한 J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개인의 사생활이 중요하고, 개인의 행복이 중요'하기때문에, 본인의 의사를 존중해주는 것이 마땅하다는 생각입니다.
늘 겸손이 내면화된 J선생님은 후배들의 귀감이 되고, 각종 수업에 대한 연수와 세미나가 있으면 죽기살기로 쫓아 다니면서 배우고, 자신의 수업에 적용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교사였습니다. 자신이 배운 최신 수업 이론이나 실습 내용 등을 다른 동료 교사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함께 토론하고 가르쳐주기도 하였습니다. 항상 독서와 연구를 좋아하고 다른 교사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기를 좋아하는 '천생 교사'였습니다.
그런데, J선생님이 이번에 학교를 그만둔다는 소식을 접하고 지인들로부터 아주 난리가 났다고 합니다.
훌륭한 교사는 동료교사들 뿐만아니라 학생들이 먼저 알게 되고, 학부모님들도 좋아합니다.
J선생님처럼 교사로서 출중한 실력 겸비와 인간성이 좋고, 학생들을 잘 설득하는 능력도 뛰어난 교사, 관리자는 물론 동료교사들과 좋은 인간관계를 맺고 헌신하는 교사, 솔선수범하고 베푸는 교사, 자신이 좀 손해를 보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양보의 미덕을 실천하는 교사가 바로 훌륭한 교사, 신의 한수에 해당하는 아름다운 교사라 할 수 있습니다.
이번에 이런 다양한 요소와 조건, 아름다운 인성을 갖춘 J선생님의 명예퇴직이 확정된 것입니다. 특히, 젊은 교사들보다 더 다양한 수업 방법을 시도하고, 수업혁신의 각종 연수와 세미나에서 배운 방법을 동료 교사들과 전문적학습공동체를 통해 함께 실천하는 모습이 너무 열정적이고 감동적이었습니다.
학교에서는 수석교사로서 젊은 교사들을 위해 기꺼이 수업개선을 위한 상담과 멘토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였는데, 이번에 교단을 영원히 떠난다고 하니까 마음이 아프고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현재, 아무리 훌륭한 선생님이라도 퇴임하면 모든 것이 끝이고 교육과는 무관한 삶을 살게 되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대학교수로 퇴임하면, 능력있는 분이나 제자를 잘 둔 덕분에 '명예교수'라는 직함으로 계속 강단에 설 수 있지만 초중등 교원들은 교직을 그만두면 모든 것이 사장되고 묻혀버립니다. 교육청마다 '00컨설팅 지원단', '00자문단','00위원회'도 그렇게 많지만 퇴직한 선생님들 중에 수업전문가와 경륜을 활용한 지원단이나 자문단은 거의 없습니다.
몇몇 위원회도 구색맞추기 위해 퇴직자들을 끼워넣지만, 그것도 묵직하고 높은 직함(교육장, 국장, 직속기관장 등)을 가졌던 사람들만의 전유물이나 마찬가지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정말로, 참말로, 진실로 후배교사들을 위해서 수업전문가들은 퇴직하더라도 이분들을 활용할 방법을 좀 찾아보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제도적으로 후배들에게 수업노하우 전수, 경험과 경륜의 공유, 교직선배의 내공을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면 참 좋겠다는 마음입니다.
이제 2월말이면, 학생들과 후배교사들의 박수를 받으며 교단을 떠나시겠지만 J선생님을 생각하니까 이렇게 마음이 정리가 됩니다.
'학생들의 가슴 속에 간직하고 기억에 남는 교사 상은 아마 5가지가 아닐까?
먼저, 모든 면에서 인격적인 감화를 준 그리운 선생님입니다.
둘째, 진로와 상담을 잘 해주신 초6년, 중3년, 고3년 담임선생님일 것입니다.
셋째, 자신이 따르고 특히 진로선택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선생님일 것입니다.
넷째, 자신이 닮고 싶은 선생님, 좋아했던 교과 과목 선생님일 것입니다.
다섯째, 좋지 않은 추억을 남겨 기억을 지우고 싶은 선생님일 것입니다.'
J 선생님은 첫째부터 넷째에 해당하는 교사가 아닐까 감히 평가하고 싶습니다.
아마 퇴직 후에도 J선생님은 봉사의 삶, 남을 위해 뭔가 유익한 일을 하시면서 보람있고 즐겁게 제2의 삶을 이어갈 것으로 확신합니다.
첫댓글 정말 공감가는 멋진 글이네요. 님의 모든 내용에 고개가 끄덕여지고 동의합니다.
그리고 J선생님의 앞날에 응원을 보냅니다.
멋진 선생님의 제2 인생 출발을 응원합니다~
J선생님을 비롯하여 퇴임을 앞두신 모든선생님들의 앞날에 행운이 깃드시길 응원합니다.
훌륭하신 선생님이시기에 앞으로의 생활도 당연히 귀감이 되시리라고 믿습니다
힘찬 응원의 박수를 보내드리고 싶습니다
J선생님,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