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2:1-10
여러 해 전에 텔레비전에서 개구장이 스머프라는 만화영화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초록색 꼬마들이 주인공인 만화였는데, 등장인물 가운데 투덜이 스머프라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이 친구는 이름대로 입만 열면 투덜댑니다. 매사가 불평이고 불만인 그런 친구였습니다.
실제로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무슨 일에 대해서도 늘 투덜대고 불평을 늘어놓는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함께 여행을 할 때 제일 힘들게 하는 사람이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힘든 건 누구나 다 마찬가진데 혼자 힘든 것처럼 힘들어서 못 가겠다거니, 밥이 맛이 없다거니, 왜 이런 길로 가냐느니 하면서 매사에 불평이고 불만인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하고 같이 여행을 하게 되면 다른 사람들까지도 마음이 불편해지고 여행하는 내내 그 사람이 신경 쓰여서 뭘 제대로 할 수가 없게 됩니다.
제가 아는 어떤 교회의 사모님 가운데 그런 분이 한 분 계셨습니다. 해외 한인교회 목사님의 사모님이었는데, 이 분은 뭐가 그리 못마땅한지 매사가 불평이었습니다. 그 교회에서는 한 달에 한번 정도 행사가 있어서 교인들이 음식들을 만들어 와서 함께 밥상공동체를 하곤 했는데, 해외 생활이 대개 그렇지만, 다들 바쁘고 음식 만들 재료 구하기도 만만치 않고 해서 상당히 부담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그래도 아무도 불평하지 않고 다들 정성껏 음식들을 만들어 와서 맛있게 나누곤 했는데, 행사가 끝나고 나면 사모님이 항상 불평인 겁니다.
다른 건 다 그만두고라도, 교인들이 저마다 열심히 준비해서 가지고 왔는데, 고맙다는 말 한마디 하지 않으면서, 나중에 들리는 얘기는 교인들이 아무도 안 도와줘서 사모님이 자기 혼자 일 다 했다고 불평하고 다닌다는 겁니다. 그래서 한번은 행사가 있을 때 어떤 집사님이 자기가 주관해서 하겠다고 해서 잘 마쳤는데, 이번에는 또 그게 영 못마땅한 겁니다. 그래서 무슨 일을 그렇게 엉망으로 했냐는 둥, 행사에 참석했던 사람들 보기 창피해서 얼굴을 못 들겠다는 둥 하면서 또 불평인 겁니다. 그 교회 교인 가운데 사모님에게 상처받고 시험 들어서 교회를 떠난 사람들이 하나 둘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불평은 말하는 사람에게도 독이 되고, 듣는 사람에게도 독이 됩니다. 불평은 자기에 관한 일이 아니라고 해도, 듣는 사람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듭니다. 불평하는 말을 자꾸 듣고 있으면 자기도 모르게 자기도 불평하는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불평을 자꾸 하게 되면 모든 게 점점 더 불만스러워지고, 불평할 일들은 점점 더 늘어가게 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말씀이 바로 이런 불평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불평이 얼마나 엄청난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에서 나온 지 벌써 여러 해가 지났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에돔이라는 나라 근처에 도착했습니다. 모세는 에돔땅을 지나서 가나안에 들어가게 해달라고 에돔왕에게 부탁을 했는데, 에돔왕은 거절합니다. 할 수 없이 이스라엘은 에돔을 우회해서 가야 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모세의 형 아론이 세상을 뜨게 됩니다. 그 얼마 전에 모세의 누나 미리암도 세상을 떠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오던 지도자들이 하나씩 둘씩 그들 곁을 떠나고 있었고, 가나안에는 언제쯤 들어가게 될 지 알 수도 없고, 게다가 빠른 길로도 가지 못하고 멀리 돌아서 가야하고, 여러 가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치고 마음이 조급해졌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하며 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합니다.
“어찌하여 우리를 이집트에서 데리고 나왔습니까? 이 광야에서 우리를 죽이려고 합니까? 먹을 것도 없습니다. 마실 것도 없습니다. 이 보잘것없는 음식은 이제 진저리가 납니다.”
이들의 불평은 정당한 것이었을까요? 그들이 이렇게 먼 길을 돌아와야 했던 것은 그들이 선택한 것이었습니다. 일찍이 하나님께서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레 겁을 먹고 그 길로 가기를 포기하는 바람에 이렇게 먼 길을 돌아와야 했던 것이었습니다. 이건 하나님을 원망할 일도, 모세를 탓할 일도 아닌, 바로 자기 자신들의 결정이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또, 왜 자기들을 이집트에서 데리고 나왔느냐고 불평합니다. 이미 오래 전부터 힘들 때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투덜대던 불평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불평은 정말 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나라도 일본의 식민지로 있다가 해방이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어려운 일이 참 많았겠지요.
전에 일본이 지배할 때는 그냥 시키는 대로 하기만 하면 됐지만, 이제는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일을 우리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하니까, 얼마나 힘이 들었겠습니까? 게다가 우리는 기술도 없고 자본도 없고 뭐든지 부족한 형편이니, 살림살이가 식민지 시절보다 못한 게 많았을 겁니다. 그렇다고, 왜 우리를 해방시켰냐고 불평할 수 있습니까? 식민지 시절이 더 나았다고, 그 때로 돌아가자고 말하는 게 타당한 일이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런 불평은 그들을 노예상태에서 해방시켜 자유를 주시고 그들에게 자기 땅과 자기들의 나라를 세우게 해주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을 완전히 무시하고,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를 악한 일로 바꾸어놓으려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또 먹을 것도 없다, 마실 것도 없다고 불평합니다. 지금까지 수십 년 동안 굶어죽지 않고 목말라 죽지 않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건 다 잊어버렸습니다. 방금 전에도 사막에서 바위를 쳐서 물이 쏟아져 나와서 모든 사람들이 시원하게 목을 축였는데, 이미 그 일은 다 잊어버렸습니다. 그들이 진저리가 난다고 하는 보잘 것 없는 음식은 만나를 말합니다. 그들을 오늘까지 살게 해 준 만나가 진저리가 나는 보잘 것 없는 음식이라는 겁니다. 그들은 그들이 경험한 수많은 기적들까지도 불평거리로 만들었습니다. 감사하고 찬양할 일들까지도 불평하는 그들의 마음은 도대체 어떻게 된 걸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왜 이렇게 불평하고 원망하면서 하나님과 모세를 탓하는 것일까요?
불평은 만족하지 못하는 데서 옵니다. 불평은 정말로 뭐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지금 있는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깁니다. 다 가지고 있으면서도 하나가 없으면 그게 불만스럽고 불평하게 되는 겁니다. 하얀 색으로 깨끗하게 벽을 칠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한쪽에 조그만 검은색 점이 찍혀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 검은 점에 신경이 쓰이기 시작하면, 다른 흰 부분은 다 눈에 들어오지 않고 오직 검은 점만 눈에 자꾸 띄게 되고, 결국 흰 벽 전체가 그 검은 점 하나 때문에 망쳤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불평이라는 게 꼭 이와 같습니다. 별로 대수롭지 않은 일로 불평을 하기 시작하면, 결국은 다른 모든 것이 다 불평거리가 되고 마는 경험을 우리도 종종 하지 않습니까?
만족하지 못하는 것은, 실제로 뭐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욕심이 많아서 그렇습니다. 아무리 가져도 더 가지고 싶은 욕심, 아무리 많아도 부족해 보이는 욕심 때문에 만족할 줄 모르고, 만족할 줄 모르니까 자꾸만 불평이 생기는 겁니다. 우리가 자꾸 남과 우리를 비교하고, 남들이 가진 것을 부러워하고, 나 자신에게 불평하는 것도 욕심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은 내가 가진 것을 다 가지고 거기다가 내게 없는 것도 가졌습니까? 내가 남을 부러워하듯이, 남도 나를 부러워할 수 있는 건데, 우리는 우리에게 있는 건 생각하지 않고 우리에게 없는 것만 생각하면서 남들을 부러워하고, 불평을 합니다. 욕심 때문입니다.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욕심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렇게 끊임없이 불평을 늘어놓은 것이, 정말로 그들이 가진 것이 없고 모든 게 부족하기만 해서였을까요? 그들이 그렇게 초조해하고 조급해진 것이 그들이 사막에서 버려졌기 때문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사막에서 그 어느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그들을 인도하시고,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적절하게 공급해 주셨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만족할 줄 모르고 불평만을 늘어놓았습니다. 그들의 욕심이 그들을 그렇게 만든 것이었습니다. 야고보서 1:114-15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이 시험을 당하는 것은 각각 자기의 욕심에 이끌려서, 꾐에 빠지기 때문입니다.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죄가 자라면 죽음을 낳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욕심 때문에 하나님께 대드는 죄를 지었습니다. 그 죄의 결과는 참으로 참담한 것이었습니다. 주님께서 백성들에게 불뱀을 보내셨습니다. 불뱀은 물리면 불에 타는 것처럼 열이 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불뱀이 사람들을 물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많이 죽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거친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지켜주셨는데, 그것을 너무나 잘 아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이 광야에서 우리를 죽이려고 하느냐고 원망하고 불평했을 때, 그들의 불평이 그들에게 그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불평은 불뱀과도 같아서 불평하는 사람 자신을 죽입니다. 그리고 그 불평을 듣는 사람까지도 상하게 합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불뱀은 사실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초한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불뱀은 하나님이 보내신 것이라기보다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평 그 자체였는지도 모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내뱉은 불평의 말들이 거꾸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물고 찌르고 죽인 겁니다.
불평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서도 그렇지만, 우리 신앙에 있어서 피해야 할 함정입니다. 불평하기 시작하면, 우리가 그 불평에 빠져서 점점 더 불평거리가 많아지고, 그러다보면 거기서 헤어 나오지 못해서 스스로 불평에 파묻혀버리게 됩니다. 불평은 마치 밑 없는 늪과 같아서, 한번 발을 들여놓으면 헤어 나올 수가 없습니다. 게다가 불평은 습관성입니다. 한번 두 번 불평하다 보면, 불평이 입에 붙게 되고, 말마다 불평이 되고 우리 삶 자체가 불평이 됩니다. 모든 게 불만스럽고 만족할 줄 모르게 되고 삶에 기쁨이 없어집니다. 불평은 처음에는 조그만 점 하나에 불과하지만, 거기 집착하게 되면 그게 온통 벽을 가득 채워버리게 되는 겁니다. 더구나 불평은 자기 자신만 불행하게 만드는데서 그치지 않고, 함께 있는 사람들, 그 불평의 말을 듣는 다른 사람들까지 불편하게 만들고 불행하게 만들어버리는 무서운 독인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불평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많이 가지고 가득 채우면 불평이 없어질까요? 불평은 실제로 뭐가 부족하고 많이 가지지 못해서 생기는 게 아니기 때문에, 그건 아무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불평하지 않으려면 만족할 줄 알아야 합니다. 만족하기 위해서는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내 욕망을 채워야 만족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내 욕심을 비워야 만족하게 됩니다.
욕심을 버리려면, 감사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렇게 불평하고 불만스러워했던 이유가, 감사할 줄 몰랐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그들을 지키시고 인도하셨는데도 감사할 줄 몰랐기에 그들은 모든 게 불만이었습니다. 그래서 늘 이집트로 돌아가자고 하고, 늘 배고프고 늘 목마르고 늘 초조했던 겁니다. 감사할 줄 모르니까 다른 사람이 나에게 해준 건 기억도 나지 않고, 모든 걸 자기 혼자 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감사할 줄 모르니까 자기가 가진 건 보이지도 않고 남에게 있는 것만 보이게 됩니다.
아까 어떤 해외 한인교회 사모님 이야기를 했었는데,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답니다. 그날도 교회에서 행사가 있어서 교인들이 음식을 하나씩 만들어 왔는데, 한 집사님이 좀 늦게 가지고 왔답니다. 사모님은 다짜고짜 화를 내면서, 집사가 도대체 뭐하는 사람이냐, 이제 가지고 오면 어떻게 하느냐, 자기가 맡은 일도 제대로 못하면서 무슨 집사냐 하고 막 몰아붙였다는 겁니다. 그 집사님은 잠자코 듣고 있더니, 자기가 오늘 도저히 교회에 올 수 없는 형편이었는데, 다른 사람 편에 음식만 보내려고 하다가 그래도 사모님 얼굴이라도 보고 가려고 굳이 왔노라고 하고는 돌아갔답니다. 그 후로 그분 가족들을 교회에서 볼 수 없게 되었다고 합니다. 해외 생활하면서 그렇게 바쁘고 힘든 상황에서 그래도 교회 일이니까 최선을 다해서 봉사하려고 하는 교인들을 보면서, 고마운 줄 알고 감사해야 할 텐데, 감사할 줄 모르면 마땅히 감사하고 고마워해야 할 일 까지도 불만스럽고 불평하게 됩니다. 우리가 불평하는 건 감사할 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먼저 감사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있으면 있어서 감사하고, 없으면 없어서 더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건강하면 건강해서 감사하고, 아프면 아파서 감사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어떤 외국 아이가 이런 글을 썼습니다. 오늘 나는 버스 안에서 아름다운 금발 소녀를 보았어요. 소녀는 무척 쾌활해 보였고, 나도 저렇게 예뻤으면 하고 부러워하며 생각했어요. 그런데 버스에서 내리려는지 급히 자리에서 일어난 소녀가 한쪽 목발을 짚은 채 통로를 절뚝거리며 걸어갔어요. 소녀는 통로를 지나가며 가만히 웃었어요. 오, 하나님, 제가 투덜거리거든 용서하세요. 제게는 다리가 두 개나 있어요. 세상에 부러울 게 없잖아요.
난 사탕을 사려고 걸음을 멈추었어요. 사탕 파는 소년이 매력적이었어요. 말을 걸자 소년은 무척 기뻐하는 것 같았어요. 혹시 내가 지각하더라도 그리 나쁠 것 같지는 않았어요. 그러다가 내가 떠나려 할 때 소년이 말했어요. “고마워, 친절하게 대해주어서... 너랑 이야기하면 정말 즐거워. 알다시피 난 볼 수가 없어.” 오, 하나님, 제가 투덜거리거든 용서하세요. 제게는 눈이 두 개나 있어요. 세상에 부러울 게 없잖아요.
그후 거리를 지나가다가 눈이 파란 아이를 보았어요. 그 아이는 뛰노는 아이들을 바라보았어요. 아이는 어찌해야 좋을지 모르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나는 걸음을 멈추고 말했지요. “얘야, 너도 가서 아이들과 놀지 그러니?” 아이는 앞만 뚫어지게 바라보았어요. 그제서야 난 아이가 듣지 못한다는 걸 알았어요. 오, 하나님, 제가 투덜거리거든 용서하세요. 제게는 귀가 두 개나 있어 세상에 부러울 게 없잖아요.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갈 수 있는 다리가 있고 타오르는 저녁노을을 볼 수 있는 눈이 있고 듣고 싶은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가 있으니 오, 하나님, 제가 투덜거리거든 용서하세요.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고, 나에게 필요한 것을 아시고, 채워주십니다. 이 사실을 믿고 감사해야 합니다. 감사하지 못하는 건 하나님을 믿지 않기 때문이지요. 나에게 필요하지도 않고 나에게 해로운 것을 주시지 않았다고 불평하고 투덜대고 원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혹시 나에게 무엇인가가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간구하면 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면 하나님께서 주실 것이고, 주시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필요하지 않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어떤 것도 불평할 이유, 원망할 근거는 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뱀에 물려서 많이 죽게 되자 백성이 모세에게 와서 간구합니다. “주님과 어른을 원망함으로써 우리가 죄를 지었습니다. 이 뱀이 우리에게서 물러가게 해달라고 주님께 기도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모세가 하나님께 백성들을 살려달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불뱀의 모양을 만들어서 기둥 위에 달아놓고서, 뱀에 물린 사람이 그것을 보면 살게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모세는 구리로 뱀의 모양을 만들어서 기둥 위에 달아놓았고, 뱀에게 물린 사람이 구리로 만든 그 뱀을 쳐다보면 살아났습니다.
우리는 언제 불평을 합니까? 언제나 지금 우리가 있는 환경이나 우리의 모습을 보고 불평합니다. 먼 장래를 내다보며 불평하지는 않습니다. 지금 당장 내 주변의 모습이나 나 자신의 모습이 만족스럽지 않고, 우리 욕심 같지 않아서 불평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고개를 들어 높이 달린 불뱀을 바라보라고 하십니다. 더 멀리, 더 높이 바라보는 사람은 불평을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사람은 불평할 이유가 없어집니다. 지금 당장의 모습이 구차하고 부족해도, 지금 당장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운동선수가 훈련을 하면서 힘들고 지쳐도 불평하지 않는 것은, 경기에서 우승할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소망을 갖지 못한 채 그냥 훈련만 하고 있다면 오래 가지 못해 지쳐서 포기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렇게 불평을 늘어놓은 것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리라는 소망을 굳게 지키지 못하고, 당장 광야 생활의 어려움만 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도, 지금 당장 우리에게 일어나고 있는 힘들고 어려운 일들만 생각하면 불평하게 됩니다. 그런 일들이 좀 오래 계속되면 지치고 초조해지게 되고, 우리의 불평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갑니다. 결국 신앙을 포기하고 주저앉는 사람들도 나오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소망이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까지도 우리를 지키시고 은혜 안에 살게 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시고 복주시며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시리라는 소망이 우리에게는 있습니다. 한 겨울의 추위를 이겨낼 수 있는 것은 곧 봄이 오리라는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가 겪는 아픔과 슬픔을 이겨낼 수 있는 것은 아픔이나 슬픔이 금방 지나가리라는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더 이상 아픔도 없고 눈물도 없는 하나님 나라로 우리를 인도하신다는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소망 때문에 우리는 불평할 수 없습니다. 불평해서는 안 되는 겁니다. 소망이 우리가 불평하지 않는 이유입니다.
신앙생활에서 그리고 우리의 교회 생활에서 우리는 불평하지 맙시다. 불평은 자기도 다치게 하고 다른 사람도 상하게 하는 독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오직 감사뿐입니다. 우리 삶이 고달프고 누추하다고 불평하지 맙시다. 그것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입니다. 우리가 가진 것이 많지 않고 부족한 것 투성이라고 불평하지 맙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하나님께서 채워주시고, 우리를 만족하게 해주십니다. 일이 잘 안 풀리고 억울하고 속상하다고 불평하지 맙시다. 하나님은 이미 다 아시고, 우리가 갈 길을 열어놓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우리가 할 일은 불평이 아니라 감사입니다. 우리가 가질 것은 불평이 아니라 소망입니다. 소망 가운데 범사에 감사하며 살아가시는 성도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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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은혜로운 향기 원문보기 글쓴이: 경이로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