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민은 예나 지금이나 참 의젓하다. <청연> 이후 배우로서 방향을 찾았다는 그녀가 <해부학교실>을 통해 새롭게 얻은 건 무엇일까?
한지민은 바쁘다. 드라마 '경성스캔들'의 촬영과 <해부학교실>의 홍보를 겸하느라 몸이 두세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다. '경성스캔들' 촬영장인 합천과 서울을 오가려면 <해부학교실>을 4번 보고도 남을 시간이 꼬박 걸린다. 하지만 지친 기색이 없다. 워낙 통뼈라 그런 건가 싶었더니, 연기하는 게 기쁘고 즐거워서란다.
입으론 “난요, 세상에서 연기가 제일 재밌어요”라고 말하고, 눈엔 ‘재밌긴 뭐가 재밌어. 인터뷰 빨리 끝내. 피곤해 죽겠어’라는 게 써 있는 식의 따분한 대답처럼 들리지만, 한지민의 얼굴을 보면 그런 의심을 품기 힘들다.
똘망똘망한 빛을 잔뜩 머금은 눈동자가 두세 번 좌우로 구르고 뛰는 걸 보고 있자니 덩달아 어깨가 들썩거린다. 틀림없다. 한지민은 지금 이 시간, 충무로에서 가장 기쁜 마음으로 연기하는 배우다.
처음엔 연기가 즐겁지 않았다
처음부터 이 일을 즐겼던 건 아니다. 연예계에 발을 들였을 때는 배우가 되겠다는 거창한 자의식 따윈 조금도 없었다. 그저 중학교 때 선생님 소개로 우연히 지금의 매니저를 알게 되고, 그 인연으로 광고와 뮤직비디오를 시작했을 뿐이다. 별로 재밌는 일이 아니었다. 낯설고 힘든 시간을 보낸 후 오디션을 통해 드라마 ‘올인’에 출연하게 됐다. 찍다보니 카메라가 조금 편해지는 기분은 들었지만 여전히 갈팡질팡 뭐가 뭔지 알 수 없었다. 어쨌든 한 살 차이밖에 나지 않는 송혜교의 아역을 연기한 덕분에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받았다.
이어서 출연한 드라마 ‘좋은 사람’은 좋지 못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재밌지도, 흥미롭지도 않고 그저 어렵기만 했던 거다. 처음으로 ‘이 길이 아닌가벼’ 싶었다. 계속 하느냐 마느냐 기로에서 드라마 ‘대장금’의 작은 조연 역할이 들어왔다. 잠시 망설이다가 이런 작은 역할을 통해 현장을 차근차근 배워보는 게 좋겠다는 데 생각이 닿았다. 그의 판단은 옳았다. ‘대장금’은 별 부담 없이 선배들과 어울리면서 현장과 친해질 수 있는 계기로 작용했다. 처음부터 새로 시작하는 기분이었다. 내친김에 ‘드라마시티’의 에피소드에 출연하는 등 기본기를 다지는 노력을 계속해나갔다. 그리고 운명처럼 한지민을 ‘배우’로 각성시킨 작품이 다가왔다. <청연>이었다.
<청연>과 <해부학교실>
윤종찬 감독의 <청연>은 한지민의 연기 인생에 있어 여러모로 전환점이었다. 우선 노력을 하면 연기도 늘 수 있다는 걸 처음 깨달았다. 연기로 표현할 수 있는 감정과 행동의 폭이 확장됐음을 스스로도 느낄 수 있었던 거다. 자신감이 붙고 나니 욕심도 배가 됐다. 신나고 즐겁게, 그리고 열심히 촬영했는데 결과적으로 영화에서 잘려나간 장면이 많아 마음 고생을 했지만 남는 게 많았던 작품이었다.
그 뒤론 시간이 참 빨리 흘렀다. 깊은 인상을 심어준 드마라 ‘부활’의 서은하 역할을 비롯, ‘늑대’ ‘위대한 유산’ ‘무적의 낙하산 요원’까지 정신없이 달려왔다. 두 번째 영화 출연작 <해부학교실>에서 한지민은 주연을 맡았다. 주위에서 일어나는 살인사건들에 괴로워하면서 감춰진 개인적 과거사의 공포와도 싸워야 하는 복잡한 성격의 인물 ‘선화’를 연기한다. <해부학교실> 출연은 이야기에 매료된 탓이 크다. 자신이 맡은 역할만 눈여겨보지 않고 전체 이야기를 염두하며 시나리오를 읽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분명 문자로만 표현됐을 때는 그 매력이 백 퍼센트 드러날 수 없는 이야기였음에도 불구하고, 한지민은 이야기 너머에 존재하는 공포, 보이지 않는 공포의 불안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 힘이 그녀를 잡아끌었다. 또래 연기자들과 함께할 수 있었던 것도 큰 도움이 됐다. 오태경, 온주완, 문원주, 소이, 채윤서와 어울려 상대 배우의 장단점과 캐릭터에 대해 토론하면서 또 다른 자유와 가능성을 느꼈던 것이다. 특히 “아, 얘들도 나와 똑같은 생각과 고민을 하고 있었구나”라는 실감은 여러모로 안도감을 줬다.
소통과 고민보다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데 더 익숙했던 한지민에게, <해부학교실>은 각성의 기회였다. 자칫 전형성의 틀 안에 가둬지기 쉬웠을 캐릭터를 한지민은 썩 잘 연기해냈다. 좀체 그렇게 행동하지 않을 것 같은 방향으로, 표정으로, 호흡으로 채워진 그의 캐릭터는 매 순간 의외의 모습을 보인다. 자칫 주변의 폭력에 휩쓸려 그에 따른 반작용으로만 채워지기 쉬웠을 캐릭터를 정확히 그 반대 지점에서 형상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연기는 관객으로 하여금 일말의 불편함을 느끼게 하는 동시에 캐릭터의 다층적인 내면을 드러내는 복선으로 작용한다.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
“한 그루 나무보다 전체 숲을 먼저 볼 줄 아는 감독님의 선택이 옳은 거죠.” 이런 가증스런 대답은 참 오랜만에 들어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걸 한지민의 눈과 입을 통해 듣고 있자니 맘에 없는 가식이라곤 도저히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새롭고 의젓하다. 마냥 반듯한 것도 아니고 수줍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경우가 없는 건 더욱 아닌데, 그 실체를 온전히 알 수 없는 무정형의 매력이 잡힐 듯 다가왔다.
하지만 그 이미지의 실체가 무엇이든 간에 한지민은 별 관심이 없는 눈치다. 관객들이 자신에게 무슨 느낌을 받을지, 예전엔 연연해했지만 지금은 그러거나 말거나다. “이 일을 하면서 이루고 싶다거나 성취하고 싶은 거, 그런 거 없어요. 그냥 진심으로 연기하고 캐릭터를 만들어낸다는 것의 쾌감을 이제 조금은 알 수 있어서, 그게 좋아서 계속 합니다. 그렇게 보면 배우가 어쩔 때는 부모님이나 친한 친구, 대통령보다 더 나은 거 같아요. 그들은 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기 어렵지만, 배우는 누군가를 연기함으로써 보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잖아요. 당장은 닮고 싶은 배우도, 올라서고 싶은 위치도 없다고요. 그냥 진심으로 무언가를 연기하고, 내 마음을 좇아 사람들의 마음이 움직이는 걸 보는 게 좋아요. 뭐가 문제겠어요. 난 정말이지, 급할 게 없는 배우랍니다.”
사진 김지양 허지웅 기자 |
첫댓글 히히 ^^*.. 차근차근.. 어여쁜배우 되세요..
한걸음씩 정상을 향해 차분히 오르고 계신 지민 누님의 모습.... 정말 아름다워요...^^*!!
한걸음씩 올라가시는데 왤케 이쁘셔 이쁘시니깐 바로 뜨시넼ㅋ
누나! 누나의 노력하는 모습이 무지 감동적이에요 ㅠ 전 요즘 공부도 안하고 머하는건지.. 누나 모습 보면서 저도 용기를 얻었어요 ㅎ
역시 지민씨 포인트는 눈이 아닐까..ㅎ 기자님두 그렇게 생각 하는거 같네..ㅋㄷ
지민누나의 매력은 무한대인가봐요ㅎㅎ 누나의 노력때문에 매력이 무한대가 되는거 같아요 건강하게 촬영 재미있게 하세요 사진도 이쁘네요ㅎㅎ
해부학교실 봤는데 캐 잼떠라구요 쿠쿠쿠 깜짝깜짝 놀라구 으흐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