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효 아키텍트-132] `빛나는 새로운 일상` 구현하는 건축가·건축교육자 천장환(下)
매일경제 2022.06.17
[효효 아키텍트-132] '찾아가는 동 주민센터'를 표방한 서울시는 주민과 맞부딪히는 대민 데스크를 비롯한 내부 인테리어 개선을 추진하였다. 강남구 대치1동 주민센터(2019년)의 일직선 데스크 라인을 곡선으로 바꾸는 안을 공무원들은 싫어하였다. 데스크톱 화면이 민원인들에게 보인다는 이유에서였다. 업무 시간이 끝나고 업무 공간에 루버를 설치, 주민센터 공간의 활용도를 높였다. 천장환은 센터를 잠시라도 방문하는 주민들이 카페처럼 느끼길 원해서였다.
서울 대치1동 주민센터 내부 / 사진 제공 = 천장환 건축가
1994년 준공된 한남1고가차도 하부 <한남뜨락>(2020년)은 어둠침침하고 음산해서 사람들이 찾지 않는 곳이었으나 서울시 예산 5억원과 건축가 천장환의 참여로 남산의 숲과 연계하면서 머무는 장소로 탈바꿈했다.
서울 중심부와 한강 이남을 연결하는 한남1고가차도는 주요 교통축으로서 행정구역상 용산구 한남동을 반으로 나누었다. 이곳은 한남대교 쪽 한남동과 구분, 북한남동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약 15평의 카페 드 블루는 꽃잎 모양 구조물과 같은 6각형의 투명한 유리 박스로 되어 있다. 카페는 인근 공연장인 블루스퀘어가 운영한다.
한남 1고가차도 하부 <한남뜨락> / 사진 제공 = 천장환 건축가
이곳은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거나 지나가는 보행객들에게 휴식 공간을 제공하고 기존 지형을 극복하기 위해 만든 건물 하부 계단은 만남, 거리 공연(버스킹·busking) 등의 공간으로 사용되도록 했다. 용산구는 인근 용산공예관과 연계해 시민들이 참여하는 플리마켓이나 버스킹을 주기적으로 개최할 예정으로 알려진다. 천장환의 소규모 공공 건축 작업들은 단순해 보이지만 사소하거나 당연하게 지나치는 관습들을 뒤집어 새로운 것을 만들었다.
이러한 시도들은 조달청 입찰로 들어온 건설사의 도면에 대한 낮은 이해도와 수준 이하의 시공능력, 사용자 및 공무원과의 마찰, 비합리적인 행정 절차, 내역 누락 등에 따른 공사비 부족 등으로 대부분의 프로젝트가 완공까지 힘든 과정을 겪었다.
서울 공예박물관 / 사진 제공 = 천장환 건축가
천장환은 2016년 '크래프트 그라운드(Craft Ground)'란 개념 아래 건축가 송하엽, 행림종합건축사사무소(대표 이용호)와 컨소시엄으로 서울 공예박물관(2021년) 현상설계에 당선되었다. 크래프트 그라운드는 인사동, 광화문 등 주변의 특성을 고려하고 광화문의 이순신 장군 동상처럼 그 자체가 안국동 사거리의 풍경이 된 풍문여고 건물의 가치를 살렸다. 현대건축물로 지어진 정보관을 단순화시켜 부속건물과의 연계가 가능토록 하였고 박물관 성격을 확실히 드러내어 관람객 동선을 효율적으로 계획하였으며, 건물을 저층의 여러 개 동으로 나누는 건축 규모를 제시했다.
심사위원회는 "대상지의 여건과 근대부터 현대까지 시간의 흐름을 현시하고 그 역사적 의미를 강조하는 설계 안이었다"라며 "주변 도로 및 부지와의 연계를 지혜롭게 해석했고 특히 건축물의 외형적인 과시를 절제하고 근대 흔적을 담아냈다"고 평가했다.
서울 공예 박물관 전시장 /사진 제공 = 천장환 건축가
대상지는 조선 말 고종 15년(1878)에 건립된 안동별궁(安洞別宮) 터이다. 1910년 망국 후 안동별궁은 일본의 궁내성(宮內省)에 소속된 이왕직(李王職) 소유가 되었다. 1936년에는 부지 일부를 넘겨받은 민대식이 이 자리에 지금의 풍문여중고의 전신인 휘문소학교를 세웠다. 크게 보면 동편에는 창덕궁, 서편에는 경복궁이 있고 위아래로는 인사동과 북촌이 이어진다. 천장환과 동료들은 이러한 흐름을 바탕으로 이곳을 21세기 예술 공공 공간이란 키워드 아래 시간과 공간을 엮는 플랫폼으로 만들고자 했다.
본관과 직물관을 연결하는 유리 아트리움은 윤보선길에서 꺾어 들어오자마자 보이는 부분으로 카페나 북스토어처럼 관객을 환대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계획해 발길이 이어지도록 했다. 역사미관지구 내 건물에 구조적으로나 디자인적으로 변화를 줄 수 있는 폭이 굉장히 좁았다. 건물 원형을 최대한 보존하고 필요한 새 기능만 제한적으로 추가하였다.
어린이공예박물관과 후정 / 사진 제공 = 천장환 건축가
본관을 기준으로 사람들로 붐벼 활기를 띠는 앞마당과 달리 후정(後庭)은 400년 된 은행나무가 공간의 주인공이 되도록 설계했다. 주변으로 형성된 야트막한 동산을 그대로 보존하면서 계단과 자연이 어우러진 화계(花階)를 조성하였다. 어린이공예박물관의 파사드가 독특하다. 기존의 구조체는 원형과 사각형이 어정쩡하게 결합된 모습이었다. 구조체를 그대로 두되 원형 건물의 입면 재료를 바꿔 새로운 이미지를 덧씌우고자 했다.
터의 역사적인 배경을 고려, 다소 무거우며 진중한 상징성을 드러내며 공공건축물 유지 관리의 특성을 감안, 구운 흙인 테라코타를 선택했다. 원형 구조를 그대로 보존하면서 '공예'를 표현하기 위해 연줄 감는데 쓰이는 얼레(a reel) 같은 속이 빈 테라코타관이 둥그렇게 말려 있는 텍스타일 디자인이기도 하다. 천장환과 동료들의 설계 핵심은 '땅의 회복'이었다. 감고당길과 윤보선길에서 새어 드는 흐름과 대상지 내부 건물 사이를 오가는 동선을 중요하게 봤다.
학교 본관은 1940년, 동관은 1961년, 북관은 1956년에 지어진 돌이나 벽돌로 벽을 쌓아 올린 조적조였기에 구조를 손대는 일이 어려웠다. 박물관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1㎡당 800㎏을 견뎌야 하기에 건물 외벽, 실내 계단 등 구조체만 남기고 새로운 프로그램에 맞게 공간을 다듬었다. 그럼에도 전체 높이나 창의 위치, 비율 등 풍문여고 건물의 이미지를 만들었던 요소는 지키려고 노력했다.
서울 공예박물관은 전임 고(故) 박원순 시장의 공약을 후임 오세훈 시장이 잘 마무리한 드문 경우이다. 건축가들은 디자인 의도가 끝까지 잘 구현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제주 서귀포시 호근동 주택 / 사진 제공 = 김용순
제주 서귀포시 호근동 주택(2017년)의 건축주는 '집 어디서든 문 섬과 밤 섬을 볼 수 있게 해달라'고 주문하였다. 용도는 세컨드 하우스였다. 창 높이를 미세하게 조절했고, 지역 특성인 현무암을 활용한 시공 과정 등에 참여했다. 동명(同名) 가요에서 유래된 '소양강 처녀' 조각상 앞 15미터 높이의 춘천호반 전망대(2022년)는 층마다 방향을 달리 설계했다. 자전거 보관소를 포함, 건물 전체를 타공판으로 둘러 사계절과 낮과 밤을 몸으로 경험토록 했다.
인근 닭갈비와 막국수 식당 등도 코로나 팬데믹이 끝나면서 새롭게 부상하는 건축적 명소를 찾는 관광객을 맞기 위해 음식의 질과 맛에 더욱 노력할 것으로 기대된다. 천장환은 건축가의 개입으로 시스템을 비틀고 순간에 틈을 만들어 이 틈을 통해 지루한 일상이 빛나는 새로운 일상으로 탈바꿈한다는 신념을 구현하는 데 최선을 다한다.
[효효 아키텍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