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퇴직한 김모(60)씨는 최근 건강보험공단에서 날라온 건강보험료 고지서를 받고 깜짝 놀랐다. 건강보험 지역가입자로 편입돼 고지 금액이 무려 40만원이 나온 것이다. 월 300만원 정도를 급여로 받을 때는 한 달에 10만원 정도만 냈었다고 한다. 김씨가 공단에 문의해보니 살고 있는 서울 송파구 아파트와 5년 전 어머니 사망 시 상속받은 부동산이 지역가입자의 보험료 산정 대상에 포함돼 금액이 많이 나왔다고 했다. 은퇴 후 별다른 소득이 없는 김씨는 매달 부과되는 건보료가 부담스러워 이를 줄일 방법이 없는지 알아보고 있다.
기획재정부와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국민건강보험은 내년 1조4000억원 적자를 기록해 6년 뒤인 2028년엔 공단의 적립금이 바닥 날 것으로 예측됐다. 내년 처음 7%대(7.09%)로 올라서는 건강보험료율이 결국 매년 상승할 수밖에 없어서 결국 그에 대한 부담은 소득과 재산이 있는 국민에게 전가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올해 9월부터 피부양자를 유지할 수 있는 소득기준이 기존 3400만원 이하에서 2000만원 이하로 강화돼 많은 은퇴자가 지역가입자로 편입된다. 보통 은퇴 후에는 직장을 다니는 자녀의 피부양자로 등록돼 건보료 부담이 줄어드는데, 이번 개편으로 갑자기 지역가입자로 전환될 수 있게 된 것이다.
예를 들어 연간 금융소득(이자+배당소득)이 1100만원이고 국민연금 연간 수령액이 1080만원(월 90만원)뿐인 은퇴자라면 연 소득이 2000만원이 넘어 9월부터 피부양자에서 탈락해 지역가입자로 전환된다. 강화된 내용은 이미 시행됐지만 국세청의 소득 파악과 지자체의 재산 파악 내역이 건보공단에 통보되는 시간 차를 고려하면 피부양자에서 탈락하거나 건보료가 오르는 사례는 앞으로 더 많이 생길 것으로 예상된다.
◇퇴직 후 3달, 임의계속가입제도 골든타임
임의계속가입제도는 1년 이상 근무했던 직장가입자가 퇴사 후 지역가입자로 전환됐을 때, 퇴직 전 직장에서 부담하던 수준의 보험료로 최대 36개월간 납부할 수 있게 하는 제도다. 퇴직 이후 최초로 지역가입자로 부과된 보험료 납부 기한의 2개월 이내에 신청할 수 있다. 고지서가 퇴직 다음 달에 나오고, 월말까지 납부해야 하는 경우가 많으니 사실상 퇴직 후 3개월 내에 임의계속가입을 신청할 수 있는 셈이다. 퇴직 후 다음 달 고지받은 지역가입자 건보료가 직장에서 부담하던 보험료보다 높다면 주소지의 건보공단 지사에 임의계속가입을 신청하는 것이 유리하다.
은퇴자가 비교적 가격이 높은 부동산을 갖고 있다면 직장가입자가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지역가입자는 건보료를 기본적으로 소득과 부동산 및 자동차에 대해서 부과하지만, 직장가입자는 오로지 소득에 대해서만 부과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공시가격 12억원의 아파트와 월 200만원의 사업소득금액이 있는 지역가입자 A씨는 건보료로 월 37만원을 부담하지만, 공시가격 12억원의 아파트와 월 200만원의 근로소득이 있는 B씨는 월 7만8000원을 부담한다.
은퇴 후 소득을 낮춰서라도 근로자로 재취업하는 것이 낫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건보료를 줄이려고 지인 회사에 실제로는 일하지 않으면서 근로자로 올린다면, 추후 건보공단 조사에서 발각 시 건보료를 추징당할 수 있다.
◇1인 법인 세워 직장가입자 건보료 유지
은퇴 후 하고 싶었던 일이 있는데 이것이 소소하게 수익을 창출할 수 있고 당장은 종업원이 필요없다면, 이왕이면 개인사업자보다는 법인으로 창업하는 것이 나을 수 있다. 피부양자가 개인사업자등록을 하고 수익이 발생하면 다음 해에는 무조건 지역가입자로 편입되기 때문이다. 직장가입자가 되고 싶다면 1인 법인을 세우는 것도 고려해 볼 만하다. 즉 내가 법인을 세워서 나를 고용하고 월급을 주는 것이다. 이럴 경우 법인 대표로서 월급을 받으니 직장가입자가 된다. 또 1년 이상 법인을 운영해보고 폐업하더라도 향후 3년간 임의계속가입제도를 활용해 과거 직장가입자로서 건보료를 유지할 수 있다.
피부양자를 유지하기 위해 소득과 재산을 조정할 수도 있다. 그러나 무리해서 재산을 처분하거나 소득을 줄이는 것은 권유하지 않는다. 부동산 또는 사업을 가족에게 증여하거나 금융소득과 공적연금소득의 귀속 시기를 조절하는 것도 방법이다. 지역가입자인데 4000만원을 훌쩍 넘는 좋은 자동차를 몰고 싶다면 내 명의로 구입하기 보다는 리스나 렌트가 유리할 수 있다.
현재 금융소득이 1000만원이 넘거나, 공적연금소득의 경우 건보료 소득기준에 포함된다. 사적연금소득은 제외된다. 사적연금의 대표적인 것이 퇴직연금과 연금저축 수령액이다. 공적연금소득과의 형평성 논란 때문에 향후 사적연금도 건보료에 포함시키자는 논의가 있지만 현재까지는 제외이다. 비과세 소득은 건보료 부과 대상에서 제외되므로 노후에는 최대한 비과세 소득을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 장기저축성보험이 대표적이며 일시납은 보험료 1억원 한도, 월 적립식은 월 150만원 한도로 가입이 가능하다. 요건 충족 후 향후 수령 시 소득세가 과세되지 않고 건강보험료 부과 대상 소득에서도 제외되는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