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인권보고서 첫 공개! 임산부 사형, 장애인 생체실험 등 충격 실태 조갑제닷컴
2023 북한인권보고서 다운로드
충격적인 북한 인권 상황이 담긴 정부 차원의 실태보고서가 31일 처음으로 공개됐다. 통일부가 공개한 ‘2023 북한인권보고서’에 따르면 김정은 집권 후에도 18세 미만 아동과 임산부까지 사형에 처하는 등 광범위하게 사형이 집행되고 있으며, 사법절차를 거치지 않고 처형당하는 등 주민들의 생명권이 여전히 위협받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북한인권보고서는 북한인권법이 제정된 이듬해인 2017년부터 매년 발간돼 왔지만 문재인 정부는 북한의 반발을 우려해 5년 간 일반에 공개하지 않았다. 통일부는 북한의 참혹한 인권 실태를 정확하게 알린다는 차원에서 올해부터는 보고서를 공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북한이탈주민 508명의 증언을 바탕으로 작성된 약 450쪽 분량의 보고서는 ▲시민적·정치적 권리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 ▲취약계층 ▲정치범수용소·국군포로·납북자·이산가족 등 크게 4개 장으로 구성됐다.
보고서는 “북한에서는 공권력에 의한 자의적 생명 박탈이 존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즉결 처형’ 사례에 대한 증언이 지속적으로 수집됐다고 밝혔다. 구금시설에서 수형자가 도주하다가 붙잡혀 공개처형되거나 피구금자가 구금시설에서 출산한 아기를 기관원이 살해한 사례, 18세 미만 아동과 임산부에게 사형이 집행된 사례도 있었다.
살인 같은 강력범죄가 아닌 마약범죄, 한국영상물 시청·유포, 종교·미신행위 등에도 사형이 집행되는 것으로 드러났다.
청소년이 한국 영상물을 봤다는 이유로 처형되는 일도 있었다. 2015년 원산시에서 16∼17세 청소년 6명이 한국 영상물을 시청하고 아편을 사용했다는 이유로 사형을 선고받고 곧바로 총살됐다는 증언이 있었다.
2017년에는 집에서 춤추는 한 여성의 동영상이 시중에 유포됐는데, 당시 임신 6개월인 이 여성은 손가락으로 김일성의 초상화를 가리키는 동작이 문제가 돼 공개 처형됐다고 한다.
보고서는 가부장적인 분위기의 북한 사회에서 여성은 가정, 학교, 군대, 구금시설 등에서 각종 폭력에 노출돼 있었다고 지적했다. 구금시설에서 소지품을 검사한다며 나체 검사를 하는가 하면 여성의 질 내부까지 직접 확인하고 남성 계호원에 의한 자궁 검사까지 자행되고 있다는 증언도 나왔다.
아울러 생체실험이 당사자 동의 없이 실시되고 있다는 증언도 있었는데, 생체실험은 주로 83호 병원 또는 83호 관리소로 불리는 곳에서 조현병 등 정신질환자나 지적장애인을 대상으로 이뤄졌다고 보고서는 밝혔다.
정치적 사유로, 남한정보 접촉, 마약 밀매 등을 이유로 강제이주 조치도 시행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밖에도 종교행위, 체제비판, 인신매매 등의 다양한 사유로 북한당국에 의해 체포된 후 행방을 알 수 없는 경우인 강제실종 사례들도 지속적으로 수집됐다. 강제실종된 사례의 대다수는 생사를 알 수 없었거나 정치범수용소에 수감된 것으로 추정되는 경우였다.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는 총 11곳이며, 현재 5곳이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는데, 수용자들은 ▲말반동(부적절한 언행) ▲김일성·김정일 권위 훼손 ▲간첩행위 ▲종교활동 ▲탈북 적발 ▲한국과의 전화통화 등이 적발돼 수용소로 끌려간 것으로 조사됐다.
정치범수용소 수용민에 대한 처형과 강제노동이 이뤄지고 있고, 국군포로·납북자·이산가족은 감시와 차별에 시달리는 등 심각한 인권 침해가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함경북도 무산군과 함경남도 단천시에 수십 명의 국군포로가 거주하고 있다는 진술도 있었다.
통일부는 보고서에서 “북한은 국군포로를 ‘43호’ 대상으로 따로 관리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어 “본인은 물론 직계가족까지도 감시하고 있었으며 자녀의 대학진학, 직장배치와 승진, 입당 등 거의 모든 면에서 차별을 받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덧붙였다.
보고서에 따르면 증언에 참여한 탈북민은 여성 53%, 남성 47%였다. 지역은 함경북도·양강도 출신이 76%로 대부분을 차지했고, 이례적으로 평양출신도 11%로 다소 높게 나왔다. 이는 ‘코로나19′ 이후 북한의 국경이 통제됨에 따라 해외파견노동자가 탈북민 중 차지하는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아졌으며 해외파견 노동자는 평양 출신이 많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