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여름이다!'라는 유행가에도 있듯 여름은 항상 사람들을 설레게 만든다. 라디오에서 연신 여름노래가 나오는 것을 보니 계절은 참 솔직하기도 하다. 봄이 온 듯하더니 이내 여름이 찾아오고 말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여름철 가장 많이 찾는 관광지가 바로 동해라고 한다. 이번엔 동해 바다에서 관세음보살을 만나기 위해서 조금 일찍 길을 나섰다.
관세음보살이 있는 곳은 대부분 바다 근처다. 우리가 알고 있는 보타락가산도 바다 옆에 있고 또한 우리나라의 주요 관음성지도 모두 해안에 위치한다. 그러니 분명 동해에 가면 관음보살을 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을 안고 간절한 소망을 품은 채 동해로 향했다.
이번에 가 본 곳은 바로 양양의 휴휴암(休休庵)이다. ‘휴휴'란 말에 나타나듯 쉬고 또 쉬었다가 가는 곳이라는 뜻이다. 휴휴암은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속초 방향으로 틀어서 동해고속도로를 탄 뒤 현남IC로 나와 조금 더 가다보니 휴휴암이 보였다.
도착 후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법당 쪽으로 향했다. 세상에! 도로에서는 잘 보이지 않던 안쪽으로는 매우 큰 규모의 법당과 전각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 아래에는 바다가 보였다.
이곳을 찾은 날도 많은 이들이 기도를 위해 이곳에 와 있었다. 어떤 이들은 한 회사에서 단체로 이곳을 찾았다.
우리나라에서 한 회사가 단체로 불교색을 띄며 절에 기도하러 오는 것은 예삿일이 아닌데 대구의 모 회사에서 왔다는 이들은 한 사무실 직원 모두가 다 불교신자라고 했다. 같은 종교의 사람들이 함께 답사하는 등의 활동을 통해 일의 능률을 올린다는 말을 들으니 참 복받은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따뜻하게 이들을 맞는 종무실 여직원들도 이곳을 찾는 이들이 주로 하룻밤 이상 자고 가기 때문에 편안히 기도할 수 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쉬고 또 쉴 수 있다는 말이구나'란 생각도 들었다.
우리는 누구나 옛날 영험기를 믿지만 현대의 영험에는 인색한 감이 있다. 하지만 가피와 영험은 오늘날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일어나고 있지 않는가! 이곳 휴휴암도 가피와 영험으로 새로 만들어진 사찰이다.
묘적전에 삼배를 하고 일어나니 이곳만의 독특함이 하나둘 눈에 들어왔다. 그 하나는 바로 멧돼지 상이다. 돌로 만들어진 코끼리상을 볼 수 있는 일반 절과 달리 이곳에는 멧돼지라니! 그것도 뿔이 뾰족하게 나온 멧돼지 형상이 두 마리나 법당 앞을 지키고 있었다.
사무실 직원에게 그 이유를 물었더니 이와 관련된 일화를 설명해 주었다. 그에 따르면 묘적전을 지은 뒤 천수천안관세음보살상을 봉안할 때 모든 비용을 시주한 사람이 있었다. 어느날 그가 경영하는 강릉시내 호텔에 멧돼지 두 마리가 나타났다. 사람들이 위험한 멧돼지를 잡기 위해 경찰을 부르는 등의 한바탕 소동을 벌이자 멧돼지는 홀연히 사라졌다. 그 다음날 휴휴암 묘적전 법당 쪽에 수많은 멧돼지 발자국이 발견됐다. 절에서는 이에 관세음보살이 멧돼지로 나투셔서 인사한 것이 아닌가 생각하고 묘적전 앞을 지키는 신중처럼 멧돼지 형상을 만들었던 것이다.
또 하나는 바로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연화법당이다. 연화법당은 바다에 자리한 커다란 바위 법당을 이르는데 이곳에서는 관세음보살의 와상이 보인다. 이 절의 주지 스님인 홍법 스님이 처음 절을 짓기 위해서 바닷가를 다니던 중 이곳 포구가 너무 아름다워 정착하기로 했다고 한다.
이곳은 원래 ‘어무당골'로 바다 항해 시 별탈없이 잘 돌아오게 해 달라고 기도를 드리던 곳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휴휴암을 지은 뒤 주지 스님이 지속적으로 발원을 하니 바다에 계속해서 무지개가 생겼다. 그 무지개가 가리키는 곳을 연화법당에서 보니 그곳에 관세음보살님이 누워있는 것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물론 처음에는 반신반의했지만 스님의 간절한 발원으로 진짜 관세음보살임을 증명한 뒤 사람들도 많이 모여들고 지금과 같은 바다 앞의 법당이 됐다는 것이다.
번민 내러놓고 쉬고 가는 절 연화법당 와불·거북바위 유명
연화법당에 가면 방생할 수 있는 물고기들이 있다. 거기에서 방생하는 물고기들은 우럭과 항어 두 종류인데 이는 동해에 어족수를 늘리기 위해서 관청에서 정식으로 허가를 한 것들이다. 또한 여기서는 물고기를 풀어주기만 할 뿐 근처에 이 물고기들을 잡는 음식점들을 허가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이곳에서의 낚시는 물론 금지다. 방생의 공덕이야 굳이 부연 설명하지 않아도 다 알겠지만 요즘은 방생하면 옆에서 그 방생 고기를 다시 잡아들이는 상황들도 왕왕 일어나기도 한다. 그에 비하면 이곳은 관청에서 어족을 정해주고, 그 어족을 풀어줌으로써 바다자원을 보호하는 의미까지도 가졌다.
연화법당은 그야말로 바다 위에 펼쳐놓은 연꽃잎이다. 그 자리에 서면 바다 너머에 보관을 쓰고 계신 관세음보살이 보인다.
물론 사람에 따라서 그저 바위 형상일 뿐, 관세음보살이 아니라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휴휴암에서 기도를 하고 내려오는 사람들에게 그 바위는 바위가 아니라 관세음보살 모습 그대로이리라.
관세음보살 와상은 보관을 쓰고 좌대에 누워서 한 손에는 연꽃 줄기를 들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그리고 관음바위 앞에는 거북바위가 있다. 이 바위도 거북이가 관세음을 향해서 엎드려 기도하는 모습을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연화법당은 ‘손바닥 바위', ‘발바닥 바위', ‘발가락 바위'라고 불리는 신기한 형태의 바위들로 둘러싸여 있다.
연화법당을 둘러싸고 있는 이 바위들은 관세음보살의 몸의 일부분들이 바위형상으로 나타난 것이라고 한다. 그 바위들이 실제로 그런 것이든 아니면 사람들의 생각이 그렇게 만든 것이든 간에 이는 분명히 관세음의 가피를 받고자 하는 사람들의 간절한 마음을 그대로 표현해놓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연화법당은 바다 바로 옆이라 위험할 수도 있기 때문에 저녁 8시까지만 개방한다. 일찍 와서 일출을 보고 바다냄새를 맡아보는 것도 참으로 행복할 것 같다.
연화법당을 둘러보고 나오는데 조금 전에는 못 보고 지나쳤던 포대화상이 껄껄 웃고 있었다. 그것도 배에 시커멓게 사람 손을 탄 채로 말이다. 사람들이 관세음보살에게 간절히 무엇인가를 바라고도 또 다른 이에게 바라려는 것은 아마 자연스러운 일이겠지.
자은림/불교연구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