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가을에 / 기형도 * *
잎 진 빈 가지에
이제는 무엇이 매달려 있나.
밤이면 幽靈처럼
벌레 소리여.
네가 내 슬픔을 대신 울어줄까.
내 音聲을 만들어 줄까.
잠들지 못해 여윈 이 가슴엔
밤새 네 울음 소리에 할퀴운 자국.
홀로 된 아픔을 아는가.
우수수 떨어지는 노을에도 소스라쳐
멍든 가슴에서 주르르르
네 소리.
잎 진 빈 가지에
내가 매달려 울어볼까.
찬바람에 떨어지고
땅에 부딪쳐 부서질지라도
내가 죽으면
내 이름을 위하여 빈 가지가 흔들리면
네 울음에 섞이어 긴 밤을 잠들 수 있을까.
* * *
밤 12시, 양재에서 회원님들과 반가운 인사 나누고 우리의 애마는 능숙하게 어둠 속을 헤쳐나아간다.
우리는 오늘도 단속원의 눈길을 피하기 위해 무박산행을 떠난다. 수면안대를 하고 잠을 청하지만 이런저런 생각으로 머릿속은 복잡하다.
관리공단에 보내기 위해 써나가던 글을 되새기며 정리해 본다.
백두대간이 한반도를 품어 키운 이 땅의 등줄기이지만 백두대간을 걷는 일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도상거리 약 690km, 실제 거리 약 1,000km라는 긴 거리 때문이기도 하지만, 백두대간에 대한 국립공원관리공단의 출입통제 때문이다.
백두대간이 이 땅을 품어 키운 이 땅의 등줄기라는 것을 받아들인다면, 우리의 조상들이 백두대간이 품은 산들에 기대어 마을을 형성하고
살아왔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면, 백두대간은 당연히 이 땅에 몸 붙이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자랑이고 긍지이고 정신인 것이다.
그러므로 마땅히 백두대간은 이 땅의 사람들에게 돌려져야 하는 것이다.
이 땅의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백두대간의 마루금을 지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이 땅에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권리이자 의무인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생태계를 보호하기 위한 국립공원관리공단의 정책으로 인해 곳곳이 출입 제한 지역으로 묶여 있다.
생태계를 보호하고 숲을 보호한다는데 이의를 달 사람은 아무도 없다. 특히 산을 사랑해서 산을 다니는 사람들이라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생태계의 주인은 생태계에서 살아가는 모든 생명들이다. 자연의 주인 역시 자연 그 자체이며 숲의 주인 또한 숲 자체일 뿐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무엇인가. 어디에 속해 살아가고 있는가.
사람 또한 생태계의 일원으로 살아가고 있다. 자연의 일원으로 숲의 한 부분으로 살아가고 있다. 숲과 사람은 떼어 낼 수 없는 한 몸이다.
그런데 관리공단은 사람과 숲을 떼어놓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하려하고 있다. 물론 숲과 생태계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그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관리 방식이 잘못되었다.
산길은 누구에게나 개방되어야 한다. 더욱이 백두대간은 이 민족의 자랑거리요 자긍심의 원천이 되는 이 땅의 등줄기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그렇기에 관리공단은 관리 방식을 변경해야 한다. 출입을 통제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이 땅의 사람들로 하여금 이 땅의 산들을 사랑하고
더 나아가 백두대간을 사랑하고 보존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서라도 막힌 산길을 열어야 한다.
산을 사랑하여 산을 다니는 사람들은 산을 파괴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산을 살리는 사람들이다.
관계 당국은 생태계를 보존하고 숲을 보존하기 위한 노력을 홀로 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산을 찾는 사람들과 함께 해야 한다. 이들은 그 누구보다도 헌신적으로 산을 지키고 숲을 가꾸는데 헌신적인 노력을 기울일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만이 아니다. 많은 국민들과 함께 해야 한다. 서로 생각을 나누고 소통하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기울여야 한다. 산과 숲을 사랑하는 국민들의 지혜와
높은 의식을 믿어야 한다. 그런 노력이 꾸준히 이루어질 때 우리의 숲은 더욱 아름답게 보존되고 풍성해질 것이다.
** 백두대간 2기 30구간 **
죽령 - 삼형제봉 - 도솔봉 - 묘적봉 - 묘적령 - 모시골 - 솔봉 - 뱀재 - 흙목 - 싸리재 - 단양 유황온천 (도상거리 약 17km)
새벽 3시 20분경 5번국도가 지나는 죽령에서 하차, 출석부 작성하고 서둘러 출입을 막고 서있는 목책을 넘어선다.
[영주와 단양을 잇는 죽령(689m)은 158년(아달라왕5년)에 신라의 죽죽(竹竹)이 처음으로 길을 열었다.
고개의 나이가 무려 1580살 가까이 된다. 기록상으로 백두대간 분수령에서 두 번째로 열린 고갯길이다.
첫 고갯길은 죽령보다 2년전인 156년에 열린 계립령, 곧 지금의 하늘재다. 삼국시대에 이 죽령은 하늘재와 더불어
고구려,신라가 피 튀기는 싸움을 벌이며 패권을 다투던 곳 이었다. 영춘의 온달산성이 그 흔적이다.
조선시대 죽령은 문경 - 충주의 새재, 영동 - 김천의 추풍령과 함께 영남과 한양을 연결하는 3대 관문에 속했다.
잠깐 죽령에 얽힌 이야기를 들어보자.
백두대간의 큰 고개인 죽령은 나라에서도 귀하게 여겼다. 그래서 신라시대엔 봄, 가을로 나라에서 맡은 제사(國行祭)를 지냈다.
조선시대에도 죽령사(竹嶺祠)라는 산신사당이 있었고, 말기엔 죽령 주변의 단양,영춘,풍기의 세 군수가 제주가 되어 관행제(官行祭)를 지냈다.
허나 죽령 산신제는 일제강점기에 폐지 되면서 마을사람들의 동제로 축수되고 말았다. 지금도 죽령의 매바우마을 주민들은 매년 3월과 9월의 정사일(丁巳日)에
산신제를 정성 들여 지낸다.
죽령 산신당은 매바우와 텃골마을 사이의 고속도로 건너편에 있다.
죽령을 지키는 산신은 '다자구 할머니'다. 마을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한다.
아주 오랜 옛날, 죽령에 도둑 떼의 횡포가 심하여 행인들이 많은 피해를 보게 되자 조정에서는 산적 소탕령을 내렸다.
그러나 관군은 죽령의 날랜 산적들을 잡는데 번번이 실패하였다. 당시 죽령폭포 근처엔 산적에게 두 아들을 잃은 한 노파가 살고 있었다.
노파는 관군에게 협조하여 그들을 매복 시킨 후 암호를 정했다. "다자구"하면 공격하고 "들자구"하면 계속 매복하라는 신호였다.
'다자구'는 '모두 잔다'는 뜻이고 '들자구'는 '아직 덜 자고 있다'는 뜻이다.
마침내 산적이 모두 술 취해 잠 든 사이 노파의 "다자구" 소리를 신호로 관군이 덮쳐 산적을 섬멸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할머니는 안타깝게도 전투중에 목숨을 잃고 말았다. 조정에서는 할머니를 위해 사당을 세우고 죽령 산신당 이라 하였다.
주민들은 '다자구 할머니 산신당'이라고 한다.] '백두대간 가는 길' 중에서
안개 자욱한 숲 길은 습도가 높아 낙엽이 젖어선지 먼지가 일지않아 숨쉬기엔 좋다.
어느사이 모두 멀어지고 너와나님만 남았다. 조상래씨는 날 배려하기 위함인지 오늘은 중간팀을 보겠다며 앞서가고,
출발전 한남경씨에게 "오늘은 후미를 좀 지켜달라" 얘기 했더니 뒤에 머물러 주지만 걸음이 마득잖아 보여 "그냥 가도 좋다"며 보냈다.
너와나님 이젠 오름에서도 빠르진 않지만 묵묵히 쉬지않고 오를만큼 잘 간다.
안개가 나무가지에 매달려 이슬을 맺은게 비처럼 떨어진다.
날이 추웠으면 아름다운 얼음꽃 상고대로 피어났을텐데....한동안 보지 못했던 산죽밭도 만난다. 이것 때문에 죽령인가 ?
이쯤이 삼형제봉인 것 같은데 어둠과 안개 속이니 미루어 짐작할 수 밖에 없다.
잠시 내려선 뒤 다시 오르막길을 올라 어느 봉우리에 오른다. 하지만 굵직한 능선을 탄다는 느낌을 받기도 전에 다시 길은 아래로 곤두박질 치기 시작한다.
아득하게 아래로 향해 내려가는 발걸음이 유쾌하진 않다.
계단을 밟고 올라선 봉우리에 도솔봉(1,315.6m) 정상석이 있고 한 켠에 돌탑도 서있다.
이곳에서의 조망은 장쾌한 소백의 등줄기가 한눈에 들어 오는데 오늘은 보지 못하고 정상석 옆에서 기념사진 한장 남긴다.
덕유산에서 소백산까지 이어지는 200여㎞의 백두대간 능선은 800∼1000m의 고만고만한 산들만을 거느리고 있다.
삼도봉(1172m), 황학산(1111m) 같은 곳에서 대간으로서의 체면을 간신히 유지하고 있을 뿐이며, 이 구간의 국립공원이자 명산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속리산조차 1057m로서 높이에서는 내세울 게 없다. 하지만 백두대간은 소백산 산군으로 들어선 후에는 1300∼1400m대를 유지함으로써 지금까지와는 사뭇 다른 산세를 보인다.
소백산 산군의 남쪽 입구를 지키며 서 있는 도솔봉(1314m)은 그 위풍당당한 산세가 시작되는 산이다.
도솔봉 일대의 백두대간 능선은 높이에 걸맞게 동쪽과 서쪽으로 여러 골짜기와 가지 능선들을 빚어 놓고 있다.
백두대간이 남북으로 뻗어가며 솔봉, 묘적봉, 도솔봉, 삼형제봉을 세워 놓고, 이 산줄기를 경계로 동쪽의 경상북도 영주시 봉현면과 풍기읍, 예천시 상리면,
서쪽의 충청북도 단양군 대강면을 가르고 있다. 너른 산세와 수계를 가진 도솔봉 일대는 묘적봉 아래의 묘적령을 경계로 하여 소백산국립공원의 남쪽 끝을 이루고 있기도 하다.
도솔봉 정상 일대에는 바위지대가 잘 발달해 있다. 소백산하면 떠오르는 부드러운 능선길이나 드넓은 초원과는 거리가 먼 지형적 특성을 보이는 셈이다.
고도만이 1300m를 넘는 것이 아니라 바위 성으로 이루어졌다 할 만큼 일대에는 바위가 많기 때문에 도솔봉 일대의 백두대간 능선은 신갈나무가 주종을 이루고 있는 가운데 느릅나무, 당단풍나무, 물푸레나무, 느릅나무, 소나무 등의 키큰 나무가 섞여서 숲을 이루고 있다.
선계(仙界)가 따로 없다. 이곳이 바로 신선이 사는 세상이 아니고 무엇이겠가 !!
'신선이 사는 세상이 따로 있을까. 사람 사는 세상 또한 아주 오랜 옛날에는 그러했을 것을… 사람이 그것을 알지 못하고 있었을 뿐…
사람 사는 세상이라고 어찌 처음에는 이 산과 골짜기처럼 아름답지 않았을까. 신비롭지 않았을까. 사람들이 제 욕심에 마음 빼앗겨
그 아름다움과 신비로움을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하여 지키지 못한 것일 뿐... 이 아름다운 산중도 제 마음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 지나기 시작하면
언젠가는 사람 사는 세상처럼 아름다움을 잃어가겠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터벅터벅 능선을 걷는다.
이렇게 걸으면 둘이 걸어도 셋이 있어도 혼자만의 걸음이 된다. 내 자신을 찾아 내면의 세계로 가는 것이다.
도솔천 이란, 석가모니 부처 이후 새로이 중생을 제도하러 올 미륵보살이 거처하는 곳이 도솔천이다.
도솔천에 왕생 하거나, 미륵불이 현세에 와 설법하는 용화회상(龍華會上)을 기다리는 미륵신앙은 이 땅에 삼국시대 이래 전래되어 오고 있다.
이번구간에 나서기전 공부를 하다가 49재에 대한 불교적 의미를 배웠다.
그동안 사람이 죽으면 49재를 지내는걸 보면서 왜 49일인가가 궁금했었는데 저승으로 가는 길에 심판을 받고 떠나가는 영혼과 마지막 작별의 의식이었다.
도솔천에 이르기 위하여 우리는 사바세계에서 죄짓지 말고 착하게 살아야 한다.
사후에 49일의 심판을 받아 이승을 떠도는 귀신이 되지말고 도솔천에 들기 바라는 마음으로 49재에 대한 내용을 옮겨본다.
49재는 일곱의식을 말한다.
인간은 죽은 후 49일 동안 일곱 번에 걸쳐 죄를 심판 받는다고 한다.
그 과정은 다음과 같이 진행된다.
1칠일(7일간)에는 제1진광대왕 앞에서 눈으로 지은 안업(眼業)을 심판 받는다
2칠일(7일간)에는 제2초광대왕 앞에서 귀로 지은 이업(耳業)을 심판 받는다.
3칠일(7일간)에는 제3대광대왕 앞에서 코로 지은 비업(鼻業)을 심판 받는다.
4칠일(7일간)에는 제4송재대왕 앞에서 말로 지은 구업(口業)을 심판 받는다.
5칠일(7일간)에는 제5염라대왕 앞에서 몸으로 지은 殺. 盜. 淫행의 신업(身業)을 심판 받는다.
6칠일(7일간)에는 변성대왕 앞에서 뜻으로 지은 (貪 瞋 痴) 의업(意業)을 심판 받는다.
7칠일(7일간)에는 제7태산대왕 앞에서 말뢰야식을 재판 받는다.
49일에 걸친 심판이 끝나면 영혼들은 도솔천에 가거나 윤회한다.
7식까지 심판을 받고도 도솔천에 가지 못하거나 윤회하지 못하는 귀신은 극악무도한 자 이거나 한이 많은 억울한 영혼으로 사후 100일 때 제8평등대왕에게 심판 받고.
1년이 되어도 소생되지 못하는 영혼은 제9 도시대왕이 심판하고, 2년이 되어도 소상하지 못하는 고혼은 제10 전륜대왕이 심판한다.
안개에 젖어있던 숲에 햇살이 깃들고 있다. 숲을 감싸고 있던 안개는 빠르게 사라지고 안개 그득하여 보이지 않던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운무 피어 오른 골과 골은 서로를 부르며 일어나 부둥켜안은 듯 산줄기는 그대로 선경이었다. 마음을 내려놓을 수만 있다면 그곳에 내려놓고 싶었다.
너와나님 마주오는 산객만 보면 선두들이 어디쯤 지나고 있는지를 계속 묻는다.
반짝거리는 두 눈을 보며 이제 큰오름은 없으니 달려가 그들과 함께 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짐작된다.
"묘적봉 넘으면 아침이나 먹고 가라" 하며 부지런히 걷는다.
묘적령 지나 나무의자에 상차려 아침밥 먹으며 이별주 나누고 떠나 보낸다.
맘 떠난 사람 붙들고 있어봐야 불편만할 뿐, 때가 되면 떠나는게 당연한 이치지 ㅠㅠ (^_^)
이제부터 혼자만의 시간이다. 발 아래 떨어진 가을을 밟고 가는 행복한 산책로다. 이곳엔 벌써 가을이 저물고 있다.
갈색 카펫이 깔린 곳에서 뒹굴어도 보고 낙엽을 무릎위에 쌓고 앉아 갈색의 커피를 마신다.
지금 숲 속은 숲과 더불어 순환하고 영속하는 온갖 생명의 삶이 일구어 가는 자연의 파노라마가 생생하게 펼쳐져 있다.
해서 번다한 잡념을 버리고 마음을 비운다면 자신도 모르게 오감(五感)이 새록새록 깨어나 숲과 그 숲을 이루는 나무, 풀, 새, 벌레, 흙, 바람, 비, 햇빛이
연출하는 무궁무진한 자연의 노래와 생명의 율동에 동참하는 각별한 경험을 맛볼 수 있을 것도 같다.
* * *
보이시는가
저기, 푸른하늘에
두둥실 떠 있는 한조각 뜬구름
그저, 바람 부는대로 흘러 가지만
그 얼마나 여유롭고 아름다운가
진정 여유있는 삶이란
나, 가진만큼으로 만족하고
누구의 가슴 아프지 않게 하고
오직 사랑하나 가슴에 담고
물 흐르듯, 구름 가듯
그냥 그렇게 살아 가는 것 이라네
* * *
차분히 무릎보호대 하고 미리 진통제 챙겨먹고 속도를 높여 조금이라도 시간간격을 줄여보려 열심히 걷는다.
유두봉을 마주보는 마지막 봉우리에서 유두봉의 실체를 사진찍고 있는데 낯익은 모습들이 보인다.
경기 무지개 산악회 회원들이다. 한참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만났던 얼굴들이라 반갑게 인사 나눈다. 한번 걸러서 우리보다 한구간 늦단다.
산오르미님의 사진 찍어 올려주었던 '산사내'란 닉을 가진분이 내사진도 찍어주고 같이 서서 찍기도 하며 정겨운 인사 나누고 헤어진다.
싸리재에서 탈출로 따라 단양유황온천 쪽으로 내려선다.
2주 사이 많이 달라졌다. 그땐 단풍도 매달려 있었는데.. 빨간색이 유난해 늦깍이 단풍인가 싶어 사진 찍으러 다가갔는데 산수유다.
산에서 무얼 채취한다는건 내가 세운 금기인데 여기선 의지를 잃고 산수유 열매를 땄다. 가지가 상하지 않게 따려니 시간이 많이 더디다.
그래도 이게 내년 가을쯤엔 우리의 보약술이 되어 등장할 것입니다. (^&^)
오후 1시 30분경 온천주차장 도착,
늘 꼴찌로 박수를 받으며 버스에 올랐지만 오늘은 혼자여서인지 쑥스럽다.
그래도 여러 갈등속에 나선 대간길 무사히 마칠 수 있어서 기분은 아주 좋다.
소백산관광목장에서의 뒤풀이도 아주 좋았다. 내가 내려했는데 진표씨의 고집에 진 척하며 빠졌다. ㅎㅎ
오늘 함께한 여러분 고맙습니다. 특히 김판섭씨 옆지기 '천지인'님 덕분에 카페가 더 활발해 진것 같습니다. 계속 함께 할 수 있기를..
바쁜 일이 갑자기 생겨 이틀 집을 비우느라 산행기이제 올립니다. 두분의 산행기가 너무 구수하고 자세한 코스 설명이 있어 공부한 것들만 올렸습니다.
안녕 !!!
첫댓글 ㅎㅎ 서운하셨겠습니다 제가 먼저 떠나와서 ... 그러나 긴~만남 짧은 이별이니 서운치는 마세요 ㅎ뜬구름님을 오랫동안 후미에서 동고동락 했기에 지금까지 산행기를 통해서 님을 말할수 있었고 그리고 그날도 믿고 사색하시라고 저는 저만의 기량을 넓혔습니다 둥지를 떠나보니 첨엔 자유였지만 그다음에는 두려움과 홀로서기에 적잖은 외로움과 예쁜 표식기를 볼때는 또다른 그리움도 있었습니다 ㅎㅎ감사했구요 그어둠에서 알바할뻔 할때는 징징 울어도 보면서 믿고 의지하고 투덜도 대지만 항상 님은 화 한번 내지않으시고 엷은 웃음만 ~ 죄송하고 송구합니다 앞으로 조금이나마 제가 도움이 되는 그날을 생각하며 열심히 걷겠습니다 ^^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대나무밭에 외친 소리가 온 세상에 퍼진거 아시면서 다른곳에 올린 글에 무의식 중에 저 늦는 이유를 암시한 듯.. (^*^) 조심합시다.
???무슨뜻인지요 ??? 제가 뜬구름님께 실수 했나요 ??뭘 조심하라시는 건지요 ?? 알려 주세요 저도 모르는 오핸 싫어요 ~~^^
조금 늦으면 어떻습니까....무사히 완주 하셨으니 훌륭하지요....무릎 보호 잘 하셔서 마지막 구간까지 꼭 완주 하시기를 바랍니다....후기글 잘 읽었습니다...수고 많으셨습니다.
이젠 오르미님의 글만으로도 대간기록은 충분할 듯.. 제가 꼬리글로 보충설명은 올리지요. (^&^) 책은 꼭 만들겁니다. 난 홀로 외로운 길은 절대 못갑니다. ㅎㅎ
몇몇 구절을 보면 어두운 구름으로 가려진것 같고, 어쨋든 삶 자체가 외로운것 아닐럴지요. 밝게 웃어 보시지요 뜬구름님 도솔천에 49제에 항상 배우고 갑니다. 담에 산수유인지 구기자인지 확인후 다시 가르켜 주시길 바라며
봄에 노란꽃 피우는 산수유가 맞구요. 구기자는 그간 몇구간에서 보았던 넝쿨을 터널형태로 키우던 농장을 지나쳤을텐데.. 넝쿨식물 이구요. 오미자는 떨기식물로 키작은 사철나무 같은 모양에 검붉은 열매가 열리지요. 그리고 가을은 사나이라면 가슴 한쪽이 휑하니 찬바람이 훑고 지나가는 그런 계절이잖아요. 대간길 두번 세번 지나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얼른 오세요.
잘 알았습니다.
항상 재미있는 산행기 잘 읽고 갑니다...
함께 해주는 모습만으로도 늘 감사합니다. 언제나 모든것에 앞장 서주심에 2기팀 원활히 잘 돌아갑니다. 감사..
잘 읽고 갑니다..
늘 말없이 건네주시는 사랑 고맙습니다. 근데 은행은 어떻게 먹어야 하나요. 껍질을 어떻게 까는지 암담하네요. 한개씩 돌 위에 올려 놓고 또 하니의 돌로 깨는지 아님 이빨로 물어 띁는지..ㅎㅎ (^&^)
은행 먹는 법...울 딸래미가 인터넷에서 뒤져보더니 왈....작은 우유팩에 약 20알 정도씩(?) 넣고 약 1~2분 전자랜즈에 돌리면 탁탁 거리며 우유팩 안에서 터지면서 구워진데요....정말 신기하게 잘 구워집디다...요즘은 시골에서 농사지어온 날땅콩도 은행처럼 응용해서 우유팩에 구워 먹는데 너무 편리해요....ㅎㅎ 은행은 하루에 5알 이상은 먹지 말래나 뭐래나....ㅎㅎ
우유팩 위를 안막고 1분 30초를 맞춰놨더니 일부는 팝콘처럼 터져서 전자렌지 내부천정에도 달라붙고 난리가 아니네요. 전에 까놓은 걸 사다가 참기름에 볶아 먹었었는데 이 맛도 별미네요. 감사 !! (^&^)
훗날 저의 친구들이 각자 어느정도 시간의 여유를 갖게될 즈음에 몇년이 걸리더라도 유유자적하며 백두대간을 다시 걸어보려고 합니다. 그때 이 산행기들을 품고 대간길을 갈겁니다. 아마도 많은 추억들이 발걸음을 즐겁게 해 주겠지요. 함께하지 못해도 이해해 주시고...... 산행기가 발간되면 꼭 제것도 챙겨주세요. ㅎㅎㅎ 주옥같은 글 잘 읽었습니다. 건강하세요.
두 여류작가의 사인까지 받아서 꼭 챙겨 드리겠습니다. 호산님의 응원에 세사람 신이 났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