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이 한려해상 국립공원이라니!
한려해상 국립공원에서 가장 존재감 없는 행정구역은 경상남도 사천시와 하동군이다. 사천과 하동 앞바다도 한려해상 국립공원에 포함되긴 하지만 거제・통영・남해・여수처럼 상징성 있는 장소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사천에 가게 된 건 단지 내 고향인 창원과 가깝기 때문이라고 하겠다. 하지만 사천이 볼 것이 아주 없다고 하냐면 꼭 그런 것도 아니다. 전국 곳곳에 우후죽순처럼 생기는 케이블카도 사천에서 볼 수 있으며, 케이블카를 타고 각산 정상에 올라서면 한려해상국립공원 사천지구가 한눈에 보인다. 남해에 위치한 이점 때문에 한려해상국립공원이 아니더라도 에메랄드빛 바다를 볼 수 있는 해안가가 사천 곳곳에 있다. 비록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사천 또한 한 번쯤 가 볼만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국립공원 이야기 21 - 사천 (泗川)
사천시는 경상남도 남서부에 위치한 도시로, 1995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사천군과 삼천포시가 통합하여 만들어졌다. 2020년 5월 기준으로 면적은 398.64㎢, 인구는 111,268명이며, 북쪽으로 진주시, 서쪽으로 하동군, 동쪽으로 고성군, 남쪽으로는 남해군과 접하고 있다.
사천의 옛 지도
신라 초기에는 사물현(史勿縣)이었으며, 경덕왕 때 사수현(泗水縣)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고려 시대에는 사수현 또는 사주(泗州)로 불렸다. 조선 시대에는 사천현이었다가, 1895년에 사천군이 되었다. 1914년에 구 곤양군을 편입하였고, 1931년에 삼천포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1956년에 삼천포읍과 남양면이 삼천포시로 분리되었고, 사천면이 사천읍으로 승격되었다.
1995년에 통합된 사천군과 삼천포시
분리된 지 거의 40년이 지난 1995년에 사천군과 삼천포시는 다시 통합되어 하나가 되었다. 하지만 사천군의 중심인 사천읍과 삼천포시청이 있던 삼천포시내 모두 한쪽으로 치우쳐 있어 2007년 4월에 사천시청을 용현면으로 이전하였다. 용현면은 개발되지 않은 농촌 지역이라 시청이 지어질 당시에 많은 불편이 있었으나 현재 시청 주변은 행정타운으로 개발되어 형편이 나아졌다.응답하라 1994에서 묘사가 된 것처럼 사천읍과 삼천포시는 통합 당시에도 많은 갈등이 있었다. 통합시의 이름을 정할 때부터 이어진 갈등은 현재까지 이어져 삼천포에 사는 사람들 중 삼천포 출신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많다.
남해도와 사천을 잇는 삼천포대교
삼천포는 옛부터 어업이 발달해 1956년에 시로 승격될만큼 수산업이 번성했던 곳이다. 어업 외에 사천시의 경제를 지탱하는 산업은 항공 관련 제조업이다. 한국항공우주산업과 항공국가산업단지가 조성된 사천시는 국내 항공우주산업의 메카로 여겨지고 있다. 사천공항에 위치한 공군 제3훈련비행단에서는 매년 경남 사천 항공 우주엑스포를 개최하고 있을 정도다.
구 삼천포 해안을 따라가는 여행
응답하라 1994를 보면 삼천포가 사천 앞바다에서 윤진이에게 고백하는 장면이 나온다. 촬영 장소는 아마 사천 앞바다가 아니겠지만 그 장면을 보고 사천에 가고 싶다고 생각한 사람은 많을 것이다. 사천의 아름다운 바다는 한려해상 국립공원과 그 근교라고 할 수 있다. 에메랄드 빛깔을 뽐내는 바다는 통합되기 전 사천군이 아닌 삼천포시에 속해있었다. 사천군은 농업이 발달한 내륙지방이라면 삼천포는 어업이 발달한 어항 (漁港)인 것이다. 사천 바다 케이블카와 대방진굴항, 남일대 해수욕장와 같이 사천의 유명한 관광 명소는 모두 구 (舊) 삼천포에 속해있는 지역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솔사와 같은 절은 구 (舊) 사천군에 속해있지만 아직도 남아있는 사천시민들의 지역감정만큼이나 삼천포와 멀기 때문에 이번 여행 일정에 포함시키지는 못 했다.
초양도를 돌아 나오는 사천바다케이블카
여행 중 가장 먼저 들린 곳은 사천바다케이블카다. 2018년 4월부터 운행을 시작한 사천 케이블카는 삼천포대교 옆 대방 정류장에 출발해 바다를 건너 초양도에서 돌아와 각산 중턱에 있는 각산 정류장까지 운행한다. 통영케이블카는 산을, 여수케이블카는 바다를 운행하는 케이블카지만, 사천바다케이블카는 바다와 산을 모두 운행하는 점이 특이하다. 초양도에 아라마루 아쿠아리움이 개장하면 초양도에서도 내릴 수 있기 때문에 중간 정차지점이 생기는 것도 주목할 만한 점이다.
케이블카를 보면 가장 먼저 보이는 절경은 삼천포에서 남해도로 가는 삼천포대교다. 삼천포-초양도-늑도-남해도로 이어지는 삼천포 대교는 세 개의 조그만 섬을 거치는 특이한 구조의 다리다. 삼천포 대교 너머로 이름모를 섬들이 한려해상 곳곳에 박혀 있는 걸 볼 수 있으며, 대한민국에서 다섯 번째로 크다는 남해도는 손에 잡힐 것처럼 가깝다. 케이블카는 삼천포대교 옆을 지나 초양도를 한 바퀴 돌아 승차장인 대방 정류소로 돌아간다.
한 바퀴 돌고 끝날 줄 알았던 케이블카가 시시하다고 느껴질 때면 케이블카는 속도를 내어 급경사인 각산을 오르기 시작한다. 뒤를 돌아보면 남해도와 삼천포대교, 그리고 한려수도가 병풍처럼 펼쳐진 절경을 볼 수 있다. 케이블카에 사람이 많아 풍경을 못 봤다고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각산 중턱에서 내려 15분 정도 걸으면 각산 정상에 올라 더 멋진 풍경을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각산에 위치한 초가집
사천 화력발전소
완만한 길을 따라 걸으면 미륵산 정상까지 오를 수 있는 통영 케이블카와 달리 각산 정류장에서 정상까지 가는 길은 가파르고 험하다. 이 때문에 몇몇 나이드신 분들은 정상에 오르지 않고 중턱에서 한려수도의 절경을 볼 수 있는 것으로 만족하기도 한다. 평소에 등산을 즐겨 하는 나이기에 각산 정상도 반드시 오르고 싶다는 마음이 있어 열심히 발걸음을 옮겼다. 각산에서 보는 풍경은 남해 금산이나 통영 미륵산에서 보는 풍경만큼 아름다웠다. 사천이 통영과 남해만큼 유명하지는 않지만 한려수도의 아름다운 풍경을 간직한 곳임은 분명했던 것이다.
대방진 굴항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와 삼천포시내 방향으로 향하면 대방진굴항이 보인다. 대방진굴항은 조선시대 말경 순조 재위 시절에 왜구의 침입을 방비하기 위해 만들어진 대방선진(大芳船鎭)에 건설된 항구다. 선진에는 병선의 정박지로 사용하기 위해 둑을 쌓아 활처럼 굽은 만을 만들고 굴항(掘項)을 설치했다. 진주관아 73개 면민이 동원되어 1820년 경에 완공되었으며, 굴항 북편에는 수군촌 (水軍村)과 쌀을 보관한 선진창(船鎭倉)이 있었다고 한다. 현재도 어민들이 사용하고 있는 대방진 굴항은 조선시대 축조기술을 확인할 수 있는 역사적 장소로 남아있다.
삼천포 수산시장에서 먹은 회
옛날부터 이름난 어촌 기지인 삼천포까지 왔으면 회를 안 먹고 갈 수 없다. 삼천포 수산시장에 가면 다양한 물고기를 만날 수 있으며, 신선한 회를 적당한 가격에 먹을 수 있다. 시장에서 물고기를 사서 인근 가게로 가면 상차림비만 내고 다양한 반찬과 함께 식사를 즐길 수 있다. 평소엔 즐겨 먹지 못하는 회를 먹는 것만으로도 삼천포에 온 가치는 충분하다.
카페정미소
삼천포에서 사천읍으로 가는 길에 위치한 카페정미소는 실제 정미소로 사용되었던 건물을 되살려 카페로 만든 멋진 곳이다. 아인슈페너와 인절미 토스트가 유명하며, 커피를 마시며 쉬어갈 수 있을 뿐 아니라 갤러리에 들러 미술 감상도 할 수 있다. 카페 공간도 옛 정미소에서 사용한 다양한 물건이 곳곳을 장식하고 있어 눈을 쉴 틈이 없다.
남일대 해수욕장
삼천포 시가지를 벗어나 고성으로 향하는 길에 남일대 해수욕장을 만날 수 있다. 남일대 해수욕장은 다양한 기암괴석을 볼 수 있으며 고운 모래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사천시 제일의 해수욕장이라 할 만하다. 남일대 해수욕장의 상징은 코끼리 바위다. 홍도의 남문바위를 이 곳에 옮겨온 것처럼 두 바위의 생김새는 너무나 똑같다. 자연이 만든 아름다운 예술품을 앞에 두니 감탄을 할 수밖에 없다. 다만 오래 전부터 삼천포에서 유명했던 해수욕장이라 낡은 시설로 인해 사람들의 발길이 점점 줄어든다는 점에서 안타까움을 더한다.
길고 길었던 한려해상 국립공원 여행기
사천을 끝으로 길었던 한려해상 국립공원 여행도 끝을 맺게 되었다. 한려해상 국립공원에 속한 아름다운 섬들 중 내 발길이 닿지 못한 곳도 많다. 한산도 역사길과 비진도 산호길은 걸어보지도 못 했고, 연대도 지겟길은 단독으로 쓰기엔 양이 너무 적어 차마 소개하기 부끄럽다. 후에 욕지도와 연화도와 같이 국립공원에 속하지 않은 섬 여행기를 쓸 기회가 있다면 함께 소개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한려해상 국립공원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장소 대부분을 소개할 수 있어 기뻤다.
변산반도 국립공원의 격포 해수욕장
다음으로 소개할 국립공원은 변산반도 국립공원이다. 아무리 아름다운 바다지만 계속 보고 있으면 질릴 것이다. 대한민국 국립공원은 산악형・해상형・사적형 국립공원으로 나뉘는데, 변산반도 국립공원은 산과 바다가 어우러진 대한민국 유일의 국립공원이다. 바다에서 산으로 바로 넘어가면 여행의 전개가 급속도로 바뀌기 때문에 변산반도 국립공원 이후로 대한민국의 아름다운 산들을 이어서 소개하고자 한다. 비록 이틀밖에 보내지 않은데다 날씨도 좋지 않았지만 그냥 넘어가기엔 너무나 아쉬운 아름다운 국립공원이 바로 변산반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