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매기
줄거리(사이버 문학광장 제공)
훈(薰)은 피난 내려왔던 부산서 중학교 교사 자리를 얻어 칠 년째 일을 하고 있다. 칠 년이 되었으니 이제는 훈네도 피난민이 아니었다. 애기를 안고 길가에 나와 섰던 이웃집 아주머니들도 제법 그와 인사를 나누게 되었고, 배에서 돌아오는 사람들도 대바구니 속에서 도미나 소라를 집어 소바우 위에 놓고 지나가곤 하였다. 지극히 단순한 생활이였다. 아침에 일어나 칫솔을 물고 마당으로 내려가면 바둑이가 그의 흰 고무신 뒤축을 질근질근 씹어 대고 암탉이 감나무 잎을 쪼고 있다. 조반이 끝나면 훈은 한 손에는 가방을 들고 또 한 손에는 국민학교 이학년인 딸의 손목을 끌며 대문을 나온다. 바둑이가 배웅을 하고 바둑이가 돌아서 돌길을 껑충껑충 뛰어 집으로 오면 아내와 종은 바둑이를 앞세우고 문 안으로 들어간다.
훈네 집에서 거리에까지 가는 도중에는 중간쯤에 아주 초라한 오막살이가 있는데 그 곳에는 노인 거지가 세 사람 살고 있었고 훈네는 그들을 신선이라고 불렀다. 이들 노인은 나이가 거의 육십이 다 되었을 듯한 동년배들인데 할 일이 없어 종일 바다만 바라보며 지냈다. 그들은 걸식을 해도 결코 떼를 쓰는 법이 없었으며 또 자기네 사이에 무슨 정해진 바가 있는 듯, 같은 집에 두 사람이 들어가는 법도 없다.
훈네 집에 늘 오는 사람은 신선 1호, 서 노인이였고 아내는 이 노인을 위해 밥을 준비하곤 했다. 언젠가 사흘 동안이나 서 노인이 들르지 않은 때가 있었는데 이상하다고 생각하여 그 날 저녁 이 학년인 딸과 종과 바둑이가 우유죽 그릇을 들고 오막살이로 갔다. 다음 날엔 서노인이 일 년을 방안에서 키웠다는 다람쥐를 훈의 아들인 종에게 주면서 매일 캐러멀 갑에 도토리를 가득 채워 종에게 주기도 하였다.
포구에는 이름이 '갈매기'인 다방이 한 집 있었다. 다방이라야 왜인이 살다 간 목조 건물 이층을, 피난 온 젊은 부부가 약간 뜯어고친 곳으로 훈은 때때로 이 다방에 들르곤 했다. 다방 안은 대개 비어 있었고 심지어는 주인마저 없는 때가 많았다. 훈은 언제나 정해 두고 앉는 창가로 가서 맞은편을 바라보곤 한다. 오늘도 훈은 삐걱삐걱 소리를 내는 층계를 올라 다방으로 들어가 앉았다. 주인은 장님이었고 훈은 그가 외롭게 슬프게 살아가는 것을 알았다. 그는 두 등대에 불이 들어올 때쯤 해서 색소폰을 불어 대었고 훈은 그 소리를 들으며 별이 뿌려진 밤하늘을 쳐다보곤 했었다. 훈은 마음 한 구석에 어쩌다 추억의 그늘이 스며들 때면 왜 그런지 지금 그의 앞에 고요히 감은 그 슬픈 긴 속눈썹이 보고 싶어지는 것이다. 종은 배를 참 좋아하여서 아침에 연락선이 떠날 때나 저녁에 연락선이 돌아 들어올 때면 종의 위치는 소바우 잔등으로 정해진다. 부우웅 하고 고동이 울리기만 하면 밥을 먹다가도 술을 던지고 대문 밖으로 뛰어가 다섯 살짜리 치고는 너무나 조숙한 포즈로 않아 연락선을 지켜본다.
또 오후 네시 반이면 돌아 들어오는 배가 붕 하고 고동을 울리면 종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던지 곧 수평선을 향해 서곤 하였다. 그럴 때 종의 두 눈은 반짝 빛을 발한다. 선객들이 섬에서 내려서고 짐짝들이 굴러 떨어지고 한참 복작거리던 사람들이 다 흩어져 간 뒤 갈매기만이 깩깩 외마디 울음을 지을 때까지 종은 꼼짝도 않고 어느 동화 속의 소년처럼 꿈을 보는 것이다. 연락선이 부두에 닿자 훈은 물끄러미 부두를 내려다보고 앉았고 커피 잔을 받쳐 든 주인댁이 창 밖을 바라보며 "선생님 아드님은 여전하군요. 고것 봐."라고 말한다. 훈은 바둑이를 안고 있는 종을 쳐다보았다. "저도 봅니다. 연락선의 고동소리를 들으면 저도 저기 바위 위에 두 무릎을 딱 안고 앉은 소년의 모습을 볼 수 있지요"하면서 다방 주인은 긴 손가락으로 창 밖을 멀리 가리킨다. 그의 손은 정확히 한 점을 지시하고 있다. 훈이 자기 아들은 배를 참 좋아한다고 말을 하자 "제가 색소폰을 좋아하는 것처럼....., 그도 무언가 그리운 게 아닌가요?"라고 대답한다. 나흘 있으면 추석이다. 집채같은 파도가 밀려들었고 훈네 집 앞 돌길은 완전히 바다 속에 잠겼고 포구 가장자리에도 파도가 한 길은 넘게 올라왔다. 이틀 후에야 파도는 갔고 훈은 학교 사환애에게 다방 '갈매기'의 부부가 죽었다는 슬픈 소식을 접했다. 그 파도가 무섭던 날 밤밖에 나왔던 다방 주인이 잘못하여 물에 휩쓸려 들어가자 그를 구한다는 게 그만 부인마저 빠졌단다.
훈은 수업을 하면서도 문득문득 눈을 창 밖의 바다로 띄웠다. 그 때마다 훈은 꼭 껴안고 물로 뛰어드는 젊은 부부를 생각했다. 그러나 아마도 그들의 과거를 모르던 것처럼 또 이젠 아무도 그들의 죽음의 진상을 몰랐다. 추석날 오후 훈이 마루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을 때 일찍 서노인이 새 옥양목 적삼을 입고 찾아왔다. 서노인은 "선생님, 아들이 왔습네다."라고 하면서 대문 밖으로 안내했다. 거기 젊은 군인이 군모를 벗어 들고 서 있었다. 눈이 서글서글 큰 군인은 육군 대위 계급장을 달고선 꾸벅 절을 하였다.
아들은 단둘이 살고 있다가 국민 방위군에 소집되어 나갔었는데 후에 돌아가 보니 집은 잿더미가 되었고 아무도 서 노인의 행방을 몰라 기적을 바라는 마음으로 찾고 다녔다고 했다. 그는 이 섬의 경비를 맡게 되었고 시장 앞다리를 건널 때 길에 사람들이 모여 서 있길래 차를 세웠는데 그 곳에는 물에 빠져 죽은 시체가 있었더란다. 아버지를 잃은 뒤로는 어쩐지 횡사한 시체를 들여다보게 되었고 그 시체가 젊은 부부의 시체인 것을 안 그는 커다란 안도감과 함께 그 어떤 엷은 실망을 느끼며 돌아섰다. 그 때 발 앞에 그는 기적과 마주 섰더라 했다. 그 길로 서노인은 아들의 부대로 떠났다. 마악 차가 움직이는 때 서노인이 황급히 목을 차 밖으로 내밀고 "선생님! 애기, 잘 있어라. 다람쥐 도토리는 뒷산에......, 아니 산엔 가지마. 그러구 박 노인 김노인....."하며 사라져 갔다. 훈은 마당으로 내려섰다. 어느 새 달은 꽤 높이 솟아올랐다. 어디선가 색소폰의 그 목쉰 소리가 들려 오는 것 같다. 훈은 맞은 쪽 언제나 빤히 불이 켜져 있던 이층 창문을 건너다보았다. 어쩐지 이제 자기도 이 포구를 떠나가야만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밤에 어디로 가는 것일까, 갈매기가 두 마리 훨훨 달을 향해 저 앞으로 날아간다.
출처:(한국현대문학대사전, 2004. 2. 25., 권영민)
갈매기[common gull]
몸길이는 대개 약 40cm이고, 날개를 폈을 때의 길이는 119∼122cm이다. 가늘면서 노란빛을 띤 녹색의 다리와 물갈퀴가 달린 발이 특징이다. 암수가 서로 비슷하지만 수컷이 약간 큰 편이다. 등과 날개는 회색이고, 머리는 순백색이며, 부리는 푸른빛을 띤 노란색이다. 구애행동은 암컷이 몸을 쪼그리고서 수컷에게 먹이를 받아먹는 것이다. 암컷은 작은 언덕이나 바위 등에 해조류, 작은 나뭇가지, 나무껍질 등을 이용해 둥지를 짓는다. 알은 밝은 갈색 또는 올리브빛 갈색이며 암수가 교대로 알을 품는다. 부화하는 데 3∼4주일이 걸린다. 새끼의 깃털은 갈색으로 노란빛을 띤 갈색의 반점이 있고, 부리는 분홍색 바탕에 검은색이다. 새끼가 어른과 같은 깃털로 바뀌려면 27개월 정도가 걸린다. 주된 서식지는 해안과 조수가 밀려드는 강 하구, 내륙의 호수, 축축한 늪지 등으로 육지로부터 그리 멀리 벗어나지 않는다. 식성은 잡식성으로 물고기나 그 밖의 해산물은 물론 벌레나 쥐, 작은 새, 식물의 열매, 곡물 등을 먹는다. 야생에서 24년 이상을 산 기록이 있다. 한국에서는 겨울에 월동하며 아시아와 유럽, 북아메리카, 북아프리카 등에 분포한다.
출처:(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2024-06-01 작성자 청해명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