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한 편, 노래 한 곡] 심승혁의 시 <손금 안에 연어가 산다>, 강산에의 노래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
손금 안에 연어가 산다
심승혁
꿈이었을까
흰빛 튀어 오르는 강변에서
물이 멈췄다 흐르도록
나는 가끔
연어를 보았던 어릴 적이 된다
돌아갈 곳 있음의 다행과
그곳에서의 죽음이 두려워
붉어진 몸으로 뒤엉킨
나는 점점
옆구리 희미해지는 연어가 된다
선, 이미 손에 꼭 쥐고
빈, 옆구리 쓰다듬으며
긴, 시간 숨을 쉬었던가?
부레에서 허파로 허겁지겁
죽다가 살고 또 살고 그동안
나는 힘껏
사는 일이 꿈같은
손금을 거슬러 오르다가
깬다
(심승혁 시집, <손금 안에 연어가 산다>, 밥북, 2023)
[감상]
흰빛 튀어오르는 강변에 서니, 나도 몰래 나는 연어가 됩니다. 연어는 태어난 곳으로 돌아가려는 모천회귀(母川回歸) 본능이 있습니다. 강 상류에서 태어나 바다로 간 그들이 다시 강 상류로 돌아오는 것이 어찌 쉬운 일이겠습니까? 그러나 그들은 이상하게도(?)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고향까지 돌아오는 연어는 많지 않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더 큰 물고기에게 잡아먹히기도 하고, 학이나 두루미에게 잡아먹히기도 하며, 상류에 거의 다다라서는 곰에게 잡아먹힙니다. 댐이나 협곡, 폭포를 만나 뛰어오르다가 땅에 내동댕이쳐져 배나 옆구리가 터져 죽기도 하지요. 그럼에도 그들은 죽기 전까지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피투성이가 된 채로 그들은 모천으로 가고, 모천에 가서야 알을 낳습니다. 연어가 멸종되지 않고 있는 것을 보면, 그들의 모천회귀의 성공률은 낮으나 성공한 연어들은 분명히 있는 것이지요.
생각해보면,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스런 일입니다. 여행이 즐거운 것도 언젠가는 돌아갈 곳이 있어서일 겁니다. 여행 중에 돌아갈 곳이 없다면 마음도 정처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돌아갈 곳으로 가는 길은 거의 죽음의 길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돌아간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기도 합니다.
시인은 손금을 들여다봅니다. 손금의 선을 시인은 내가 가야 할 길이라고 생각한 것일까요.
선, 선은 손금의 선입니다. 그 선은 내비게이션의 길안내와도 같은 것이지요.
그 길을 따라가자니, 그것은 참으로 긴 고행길, 인생길입니다. 그 고행길이 손금에 새겨져 있는 것이고, 그 고행길을 연어는 거슬러오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시인에게는 손금 안에 연어가 살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연어의 모천회귀를 가만히 생각해봅니다. 연어는 왜 자신이 살던 곳으로 돌아올까요? 그들의 목적은 단 하나입니다. 종족의 번식입니다. 종족의 번식을 위해서는 깨끗한 물이 필요하고, 깨끗한 물이 있는 장소는 곧 자신들이 태어났던 그곳, 바로 그 청정구역입니다. 그 청정구역을 향해 그들은 필사의 행군을 계속하는 것입니다.
연어처럼 필사의 자세로 수행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이미지만은 항상 명상 속에 담습니다. 폭포가 쏟아지는 협곡을 수십번, 수백번을 뛰어오르는 연어처럼, 우리의 수행도 그렇게 끝날 때까지 반복해야 하는 것은 아닐지요? 분명한 것은 연어의 모천이 분명히 있듯이, 우리 수행의 모천, 불성 혹은 법신이 우리 마음 깊숙한 곳에, 아니 꼭 깊은 곳까지는 아닐 수 있는 우리 마음 속에 분명히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반드시 수행을 성취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연어처럼 협곡이건 폭포이건 반복해서 뛰어오르고 뛰어오르고, 추락했다가도 다시 뛰어오릅니다.
[노래 한 곡] 강산에의 노래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
https://youtu.be/Iamaxhyt-g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