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대통령의 명언
역사는 언제나
난관을 극복하려는
의지와 용기가 있는 국민에게
발전과 영광을 안겨다 주었다.
바르게 알도록 하고
바르게 판단 하도록 하고
바르게 행동 하도록 하는 무거운 책임이
바로 우리 언론에 있다.
전쟁을 좋아하는 국민은 망하게 마련이지만,
전쟁을 잊어버리는 국민도 위험하다.
100가지 중에서 하나라도 가능성이 있다면
거기에 대해서
그야말로 만전을 기하는 것,
이것이 국방이다.
시대와 환경의 변천에 관계없이
노동은
인간이 가진 가장 근원적인 생활 무기이다.
우리 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하여
적어도 일세기라는 시간을 잃었다.
이제 더 잃을 시간의 여유가 없다.
남이 한 가지 일을 할 때
우리는 열 가지 일을 해야 하겠고
남이 쉴 때
우리는 행동하고 실천해야 하겠다.
농사는
하늘이 지어 주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지혜와 노력으로서 짓는 것이다.
우리는
자유 민주 체제보다 더 훌륭한 제도를 아직 갖지 못했다.
그러나
아무리 훌륭한 제도라 하더라도
이를 지킬 수 있는 능력이 없을 때에는
이 민주 제도처럼 취약한 제도도 또한 없는 것이다.
우리의 후손들이,
오늘에 사는 우리 세대가,
그들을 위해 무엇을 했고
조국을 위해 어떠한 일을 했느냐고 물을 때우리는 서슴지 않고
조국 근대화의 신앙을 가지고
일하고 또 일했다고 떳떳하게 대답할 수 있게 합시다.
우리의 전진을 가로막는 장해가 있다면
그것은
아직도 우리 주위에 잔재하는
수구(守舊)와 파쟁(派爭)이며,시기와 모함이며,독선과 아집이며,
단견(短見)과 무정견(無定見) 등
전 근대적이며 비 생산적인 요소이다.
제자가 스승을 우습게 여기는
교권(敎權)없는 학원에서
진정한 교육은 이루어 질 수 없다.
체육은 인간을 강건하게 만들고
규율과 질서와 협동을 존중하는
슬기롭고 애국적인 시민을 만들어 준다.
실로 체육은 심신을 연마하고
조화시키는 사회 교육이라 하겠다.
한 세대의 생존은 유한하나
조국과 민족의 생명은 영원한 것.
오늘 우리 세대가 땀흘려 이룩하는 모든 것이
결코 오늘을 잘 살고자 함이 아니요.
이를 내일의 세대 앞에 물려주어
길이 겨레의 영원한 생명을 생동케 하고자 함이다
글(엥카 컴나라)에서 옴김
박정희 대통령 프로필
☞성명 박정희 朴正熙
☞생년월일 1917년 11월 14일
☞출생지 경북 선산군 구미면 상모리
☞가족관계
= 배우자 육영수(陸英修)[1925년 11월 29일(음 10월 14일)생]
= 자녀 1남 2녀
육영수 여사의 프로필
☞1925년11월29일 육영수 여사 탄생
☞1932년04월02일 옥천 공립보통학교(현 죽향국민학교)에 입학
☞1938년03월15일 배화여자고등여학교 선발시험에 합격
☞1942년03월09일 배화여자고등학교 졸업
☞1950년07월13일 6.25동란 발발후 부산으로 피난
☞1950년12월12일 결혼실 대구 계산동(桂山洞)(박정희중령과)
☞1951년05월10일 혼인 후 처음으로 가정생활을 시작함
☞1953년07월00일 서울 동숭동에 셋방을 얻어 이사
☞1953년10월00일 고사북동에 단층집 독채를 얻어 이사
☞1955년07월01일 노량진에서의 셋방살이
☞1961년05월16일 5.16혁명전야의 행적
☞1961년08월16일 장충체육관 건너편 의장공관으로 이사
☞1961년09월00일 최초의 민원-사랑과 봉사의 첫걸음
☞1961년10월01일 박정희 최고회의의장과 국군의날 기념식에 참석
☞1962년01월06일 육영수여사의 평소 신념에 관해 기자와의 대화
☞1962년03월24일 퍼스트 레이디의 생활 시작
☞1962년08월00일 향림원을 방문, 고아들을 위로·격려
☞1962년09월00일 시립 아동 보호소를 방문하여 위로·격려
☞1962년09월06일 주한미대사부인과 함께 여군 훈련소 교육장 순시
☞1962년12월15일 대방동 재활용사촌을 방문
☞1963년12월18일 최고회의 의장공관에서 청와대로 이사
☞1963년12월30일 이영희(한국일보 문화부장)기자와의 회견
☞1964년01월04일 생계유지로 향학의 꿈을 접으려는 학생을 도와줌
☞1964년01월04일 용산구 이촌동 난민촌을 방문 격려
☞1964년01월06일 서대문구 북가좌동 난민촌을 방문
☞1964년01월08일 한국일보 문화부 여기자와 대화
☞1964년01월11일 인천시 주안동에 위치한 인천 양로원을 방문
☞1964년02월24일 박정희장군배 쟁탈 여자 농구대회를 참관
☞1964년02월25일 진해시 진해 보육원을 방문
☞1964년03월00일 내핍생활에 관한 메시지를 발표
☞1964년04월01일 400여명의 난민들에게빵과 국수를 나누어 줌
☞1964년05월18일 박재덕씨의 생활고 호소의 서신을 받고 도움을 줌
☞1964년06월13일 청와대 생활 첫날부터 밥짓는 쌀 절약
1964년07월00일 '있는 그대로의 자기를 나타내는' 당당함 강조
☞1964년09월25일 제2회 전국여성대회 참석
☞1964년11월04일 대한적십자 특별봉사대를 조직
☞1964년11월05일 부산 아동결핵 요양소 신축 낙성식에 참석 연설
☞1964년12월06일 독일 방문길에 오름
☞1964년12월10일 여자실업학교, 고아원과 함보른 탄광방문
☞1964년12월17일 양지회 발족
☞1964년12월22일 양지회관 기공식에 참석 치사
☞1964년12월23일 서독방문후 여원지 민숙현 기자와 인터뷰
☞1964년12월28일 양지회 주최로 첫 '자선 음악의 밤'을 개최
☞1965년01월00일 부산 처녀기술원을 방문, 필요한 교육 보조 자료 기증
☞1965년01월20일 원호병원 및 고아원 방문, 위로·격려
☞1965년02월10일 옥화사 보세공장 시찰
☞1965년02월24일 대구 여성회관 건립 모금 자선의 밤 참석
☞1965년02월25일 태풍 피해 이재민에게 금일봉 하사
☞1965년02월26일 양지회 제2차 월례회 참석
☞1965년03월00일 부산, 제주의 육군병원과 고아원 등 방문
☞1965년03월05일 자선의 밤 모금액, 부산시장에게 전달
☞1965년03월06일 부산 아동병원 방문
☞1965년03월11일 전남 강진 군수에게 마을문고 준비금 전달
☞1965년03월13일 경기여고 교사 화재 복구기금 성금 전달
☞1965년04월00일 9곳의 나병원에 꽃씨 9상자 전달
☞1965년04월08일 인천항에서 출정하는 파월 장병을 위문 격려
☞1965년05월15일 황연대씨의 서신 받고 친서 보내어 격려
☞1965년05월16일 존슨대통령 초청으로 박정희대통령과 방미
☞1965년05월20일 박정희대통령과 뉴욕 세계박람회장 관람
☞1965년06월09일 양수기 보내기 운동에 양수기 전달
☞1965년06월14일 서울지구 파월장병 가족 청와대 초청 다과회
☞1965년06월16일 화재 피해 주민을 위한 주택 건립 입주식
☞1965년06월28일 양지회 제2차 정기총회 참석
☞1965년07월22일 자녀들에게 자선사업 참여 유도
☞1965년07월24일 양지회원들의 방문을 받고 훈시
☞1965년08월03일 양지회 사업으로 백령도에 아동문고를 설치
☞1965년08월20일 부산 여성회관 기공식에 참석 축사
☞1965년09월02일 진달래호(어업훈련선) 명명식에 참여
☞1965년09월06일 여군창설 제5주년 기념식에 참석 전축을 기증
☞1965년09월23일 구로동에 위치한 국립각심원을 방문
☞1965년10월07일 자사국민학교와 용성국민학교에 도서 기증
☞1965년10월09일 제9회 밀양문화제 참석
☞1965년11월02일 서해의 낙도 어린이와 교직원 청와대 초청
☞1965년11월09일 월남 키수상부인의 청와대 예방 받음
☞1965년11월15일 시립 양지회관 준공식에 참석 축사
☞1965년11월30일 영식의 펜팔친구 안봉춘의 편지를 통해 도움을 줌
☞1965년12월07일 양지회주최로 개최된 자선음악행사에 참석
☞1965년12월10일 야전병원 방문 위로 격려
☞1965년12월16일 일선 장병에게 보낼 위문품 포장 작업 참가
☞1965년12월18일 성탄절을 맞아 위문대 1천 개를 국방부에 전달
☞1965년12월28일 전국 양로원 고아원에 연말 선물을 전달
☞1966년02월00일 각 도에 아동문고 6좌씩 5좌를 전달
☞1966년02월07일 박정희대통령과 12일간의 동남아 3개국 순방
☞1966년02월08일 레이디 템플러 결핵병원, 고아원을 시찰
☞1966년02월11일 태국적십자회를 방문하여 적십자 훈장 받음
☞1966년02월15일 장개석총통은 영부인에게 서운대훈장을 수여
☞1966년02월16일 반공부녀연합회와 국산품 진열장 시찰
☞1966년03월31일 영식(지만)의 펜팔사연을 통해 도움을 줌
☞1966년05월02일 양지회 사랑의 열매 가도판매에 참여
☞1966년05월07일 덕수궁에서 개최된 어머니 헌장탑 제막식에 참석
☞1966년05월08일 꽃씨 9상자 보사부 전달
☞1966년05월10일 대한소녀원 창립 20주년 기념식에 참석
☞1966년05월18일 정신의 통일을 위하여 묵화를 시작
☞1966년05월30일 양지회원들과 함께 인천에 있는 보세공장을 시찰
☞1966년05월31일 사랑의 열매 모금을 위한 자선파티에 참석
☞ 1966년06월14일 외상부인들을 청와대에 초청
☞1966년07월04일 성북구 도봉동 양지 진료소 개관식에 참석
☞1966년08월09일 진해 통합병원을 방문
☞1966년09월13일 '양지의 집'을 건립개관
☞1966년09월30일 해군병원을 위문함
☞1966년10월10일 제주도 모범 잠수부 일행 청와대 초청
☞1966년10월13일 부산 여성회관 준공식에 참석, 축사
☞1966년10월29일 존슨대통령과 버드여사의 워커힐 숙소 점검
☞1966년11월00일 태국 챙마이매킨 나병원에 국산 피아노 기증
☞1966년11월11일 양지의 집에서 개최된 양지회 정기총회에 참석
☞1966년11월19일 광주 여성회관 건립을 위한 자선음악회에 참석
☞1966년12월08일 대전 여성회관 건립을 위한 모금행사 참석
☞1966년12월09일 충남 여성회관 기공식에 참석, 연설
☞1966년12월12일 양지회 주최 자선바자에 참석
☞1966년12월15일 일선장병에게 보낼 위문품 포장작업 참가
☞1966년12월17일 일선장병 방문과 현애원 목욕탕 건립기금 전달
☞1966년16월21일 원호처 산하 수원원호원 방문 시찰
☞1967년01월01일 어린이 월간잡지 '어깨동무'를 창간
☞1967년01월18일 적십자 봉사작업 참가
☞1967년01월31일 대구 여성단체 대표들의 예방을 맞아 접견
☞1967년02월04일 구 양지회원들에게 기념품(금반지) 전달
☞1967년02월10일 영동 어린이도서실을 방문
☞1967년02월13일 양지회 간사회의 참석
☞1967년03월10일 광주 여성회관 기공식에 참석
☞1967년03월14일 돈암동 어린이 도서실 개관식에 참석, 테이프 절단
☞1967년03월16일 전북 여성회관 기공식에 참석
☞1967년03월25일 전남 우이도 서리국민학교 어린이 청와대 초청
☞1967년03월31일 충북 여성회관 기공식 참석, 축사
☞1967년04월00일 여류시인 김남조여사와 함께 동아방송 방송대담을 함
☞1967년04월02일 보광동에 설치된 어린이 아동문고를 방문
☞1967년04월04일 사병급식소를 방문
☞1967년04월05일 제22회 식목일 기념식에 참석
☞1967년04월07일 자라 홀트 호주수상부인의 예방을 받고 환담
☞1967년04월13일 사당동 양지진료소 및 어린이 도서실을 방문
☞1967년04월18일 서울사대 부속국민학교 선생님 25명 청와대 초청
☞1967년04월19일 박정희 대통령 유세장 몰래 참석
☞1967년05월00일 세대지와의 인터뷰
☞1967년05월08일 제12회 어머니날 행사에 참석, 축사
☞1967년05월10일 걸스카웃 창립 21주년 기념식에 참석, 치사
☞1967년05월15일 스승의 날을 맞아 청와대로 은사님 초청
☞1967년05월19일 옥천문화원 개원식에 참석
☞1967년05월23일 양지회원들과 함께 국립묘지 송충이 잡이에 참가
☞1967년05월29일 수도 육군병원 앞길에 장미나무 심음
☞1967년06월05일 Y.W.C.A. 45주년 기념식 참석
☞1967년07월00일 고 이승만 대통령 부인 프란체스카 여사를 접견
☞1967년07월10일 양지회원들과 함께 '사랑의 열매' 가두모금
☞1967년07월22일 노량진 어린이 도서실 개관식에 참석
☞1967년07월22일 양지회 총회 및 간사회의에 참석
☞1967년08월31일 메르데카배 축구대회에서 우승을 한 선수단 치하
☞1967년09월06일 거여동에 어린이 도서실을 설립
☞1967년09월27일 관악구 신림6동 354번지의 양지진료소를 시찰
☞1967년09월28일 한국여성단체협의회에서 주최한 전국여성대회에 참석
☞1967년09월29일 K.B.S의 바자회에서 양지회 명의로 물품을 기증
☞1967년10월04일 서울 나들이를 온 전남 신도 어린이 환대
☞1967년10월12일 대한소녀단 중앙연합회 회관기공식에 참석
☞1967년10월13일 숙명여자대학교 여류 초청 강연에 첫 연사로 초청
☞1967년10월23일 한국순교 복자기념성당 및 기념관 낙성식에 참석
☞1967년11월04일 일선장병에게 보낼 추석위문 영화 필름을 국방부 전달
☞1967년11월17일 양지회 자선 바자에 참석
☞1967년11월20일 최순자여인의 소식에 친서와 100만원 하사
☞1967년11월24일 대구 여성회관 개관식에 참석, 축사 후 기자회견
☞1967년11월27일 대구 공군기지 병원을 방문 위문, 위문품을 전달
☞1967년12월09일 저축생활 여성대회에 참석, 치사
☞1967년12월11일 일선장병 위문대 1천개를 만들어 국방부에 전달
☞1967년12월15일 전남 광주 여성회관 준공식에 참석, 치사
☞1968년01월00일 어깨동무지와 월간 어원지에 새해 메시지를 전함
☞1968년01월14일 조선일보 퍼스트레이디 여성관 특집에서 의견 피력
☞1968년01월26일 여성강좌 1,2회 수료생 102명 강평회를 청와대 개최
☞1968년02월16일 여성강좌 3, 4, 5회 수료생 강평회를 개최(청와대)
☞1968년03월05일 여기자 55명을 초청
☞1968년03월06일 공군장교 부인회 바자에 참석
☞1968년03월08일 여성강좌 수강생 및 조동필, 김형석 교수와 강평회
☞1968년03월15일 청와대에서 개최된 양지회 간사회의에 참석
☞1968년03월18일 광주 통합병원을 방문, 위로 격려
☞1968년03월27일 양지회원들과 함께 육군 참모총장 공관을 방문
☞1968년04월00일 박준규 교수에게 국제정치에 관한 강의 요청
☞1968년04월12일 제1회 살림 잘하는 주부상 수상자 청와대로 초청
☞1968년04월20일 이성환씨의 민원서신을 받고 금일봉 하사, 격려
☞1968년04월26일 공화당 훈련원 제6기 여당원 훈련생 입소식에 참석
☞1968년05월10일 '희망의 등불'을 발간
☞1968년05월16일 서울대에 장학금 1천만원 하사, 정영사 건립 기증
☞1968년05월25일 재해민 구호를 위한 사랑의 열매 가두모금 판매 참가
☞1968년05월27일 이재민을 돕기 위한 양지회 주최 자선의 밤 참석
☞1968년07월03일 춘천 여성회관 기공식에 참석, 치사
☞1968년07월11일 월남장병에게 보내는 위문대 3만개를 국방부에 전달
☞1968년07월13일 전남 나주군 공산면 화성리 한해지구 방문, 격려
☞1968년07월15일 오류동 탁아소 아동을 위하여 도서 10권을 하사
☞1968년08월09일 일선장병에게 보내는 라면을 국방부에 전달
☞1968년08월10일 고양군청의 양지회 어린이 도서실 개관식 참석
☞1968년08월11일 한해지구인 광주지역을 시찰, 주민들 격려
☞1968년08월25일 주간한국과 인터뷰를 함
☞1968년09월04일 한해민에게 보낼 구호품 봉사작업 참가
☞1968년09월15일 박정희 대통령, 근혜와 호주, 뉴질랜드 방문
☞1968년09월17일 메리미드 아동 보호소와 참전용사 원호병원 방문
☞1968년09월20일 전쟁기념비에 도착하여 헌화
☞1968년09월21일 박정희 대통령과 존스톤 농장을 시찰
☞1968년09월25일 하와이 호놀롤루 기착
☞1968년10월05일 월남장병에게 보낼 실내화 925족을 국방부에 전달
☞1968년10월26일 제2회 여성 저축대회에 참석, 치사
☞1968년11월08일 양지회자선바자 수익금 중 일부 재해대책본부 전달
☞1968년11월12일 여성회관 준공식에 참석, 축사
☞1968년11월13일 육군 제2795부대에 라면 1,700개를 하사
☞1968년11월14일 한국외국어대학 유네스코 학생회 초청에 동교방문
☞1968년11월17일 양지회 주최 자선 바자에 참석
☞1968년11월20일 충북 여성회관 준공식에 참석, 축사
☞1968년11월21일 고려대학교 유네스코 학생회 초청으로 방문
☞1968년11월28일 양지회 제13회 정기총회에 참석
☞1968년12월02일 양지회 연말 선물 보내기, 동 내의 포장 작업에 참가
☞1968년12월08일 원호병원, 상이용사의 집 방문, 선물 하사
☞1968년12월11일 예비군에게 양말 1천 켤레 전달
☞1968년12월12일 연세의료원 부속 재활원 바자회 참석, 환자 격려
☞1969년01월00일 서울에서 개최된 구나 자선파티에 금일봉을 하사
☞1969년01월03일 한일합섬 공장 방문 시찰
☞1969년01월10일 송병찬, 지영자 부부에게 밀가루 3포 하사
☞1969년01월25일 신춘 시화전 및 춘원 유품전을 관람
☞1969년01월28일 용산역에 있는 휴가 장병 휴게소를 방문
☞1969년03월11일 '알뜰한 주부 수상자' 청와대 초청
☞1969년03월12일 적십자병원에서 붕대접기 의료봉사 참석
☞1969년03월24일 박팔바우씨의 결혼소식을 듣고 친서와 금일봉 하사
☞1969년03월25일 여·야 국회의원 부인 120명을 초청
☞1969년03월28일 박정희 대통령과 KIST건설현장을 시찰
☞1969년04월03일 중앙당 훈련원 방문, 부녀 교육생 격려
☞1969년04월05일 식목일 기념행사에 참석
☞1969년04월09일 강원도 여성회관 준공식에 참석
☞1969년04월14일 재단법인 육영재단을 설립
☞1969년04월18일 양지회 전국 어린이 문고 보내기 운동에 참여
☞1969년04월28일 424회 충무공 탄신 기념식 및 현충사 중건식 참석
☞1969년05월14일 서울 대학교 가정대학 창립 기념식에 참석, 축사
☞1969년05월19일 사랑의 열매 가두판매에 참가
☞1969년05월22일 '해봉연서회전'을 참관
☞1969년05월27일 박정희 대통령과 월남대통령의 방한 리셉션 개최
☞1969년06월03일 충남 여성회관 준공식에 참석, 축사
☞1969년06월05일 강원도 내 5개 국민학교에 아동문고 및 책상 전달
☞1969년06월06일 박정희 대통령과 현충일 추념식에 참석
☞1969년06월12일 학생 농촌진료반에 후생보조금을 전달
☞1969년06월20일 희망의 등불 제2집을 발간
☞1969년06월27일 고대 기독교학생 연합회원 25명을 접견
☞1969년07월02일 신사임당 수상자의 예방을 받고 환담
☞1969년09월22일 위문영화 필름 전달
☞1969년09월23일 죽향국민학교에 어린이문고 기증
☞1969년10월00일 오류동 병원을 방문, 위로, 격려
☞1969년10월00일 창의력 개발 가정생활 전시회 참관
☞1969년10월03일 충북 예술제 참석, 축사
☞1969년10월07일 박정희 대통령과 삼풍상가 개관식에 참석
☞1969년10월10일 양지회 주최 자선 바자회에 참석
☞1969년10월13일 제주도 여성회관 준공 및 개관식에 참석 축사
☞1969년11월15일 가락동에 어린이 도서관을 설치하고 도서 700권 기증
☞1969년11월29일 '알뜰한 생활을 통한 저축운동'에 대하여 말씀
☞1969년12월03일 일선장병들 위문품 포장, 국방부 장관에게 전달
☞1969년12월05일 양지회 연말선물 포장 및 배부 작업에 참가
☞1969년12월10일 경부고속도로 천안-대전간의 개통식에 참석
☞1969년12월21일 시인 20명을 청와대에 초청, 오찬을 베품
☞1970년01월00일 여원지 이 탄 기자와 새해 인터뷰를 함
☞1970년01월12일 강원도 나환자 정착촌 경천농원을 방문
☞1970년02월11일 한국비료공장 시찰
☞1970년02월18일 성동구 세곡동에 설치된 어린이 도서실 개관식에 참석
☞1970년02월27일 강화도 하도면 상비군중대를 방문
☞1970년03월23일 '희망의 등불 제3집'을 발간
☞1970년04월05일 양지회원들과 함께 수도육군병원 앞에 꽃 심음
☞1970년04월09일 모교인 배화여고에 마이크로폰을 기증
☞1970년04월29일 안양시민회관에 설치된 '어린이도서실'현판식 참석
☞1970년04월30일 서울시내의 일간신문,통신사 여기자 청와대 초청
☞1970년05월01일 숙명여자대학교 가정대학 개설 기념식 참석
☞1970년05월05일 남산 어린이회관 상량식에 참석
☞1970년05월11일 '사랑의 열매' 가두판매모금 운동
☞1970년05월12일 한국 걸스카웃 연맹창립 제24주년 기념식 참석
☞1970년05월13일 성생농원을 방문
☞1970년05월15일 이화여자대학교 학생회 초청에 이화여대를 방문
☞1970년06월02일 양지회원들과 함께 5사단 26연대를 방문, 위문
☞1970년06월09일 재해대책협의회가 주최한 '자선의 밤'에 참석
☞1970년06월19일 중앙당 훈련원을 방문
☞1970년06월21일 자녀들과 함께 태릉 국제수영장을 방문
☞1970년06월25일 6관구 휘한 간첩토벌 군경 예비군 위문
☞1970년06월26일 경기도 고양군 청내 '어린이 도서실' 설치에 참석
☞1970년07월07일 박정희 대통령, 근혜와 경부고속도로 개통식 참석
☞1970년07월08일 고속도로개통식 참석
☞1970년07월25일 박정희 대통령과 남산 어린이회관 개관식 참석
☞1970년09월10일 우수상품과 함께 전시된 불량상품 전시회 참관
☞1970년09월23일 서울대 부속병원에서 봉사활동을 함
☞1970년09월24일 전국여성대회에 참석, 축사
☞1970년10월00일 식중독으로 입원한 어린이들 방문
☞1970년10월02일 음성 나환자 정착촌의 미감아 아동들 청와대 초청
☞1970년10월08일 공주사범대학 목련사 준공식에 참석, 축사를 함
☞1970년10월14일 '신사임당' 동상 제막식에 참석
☞1970년10월15일 중앙대학교 개교52주년 기념행사에 참석
☞1970년10월30일 박정희 대통령과 공주 교육대학장과 학생들을 접견
☞1970년11월00일 웅양국민학교 어린이들을 도움
☞1970년11월00일 서울시내 에틴져 마을을 방문, 주민들을 위로 격려
☞1970년11월03일 임광농장을 방문 나환자들을 위로 격려
☞1970년11월06일 제4회 여성저축생활촉진대회에 참석, 치사
☞1970년11월13일 경기도 여성회관 준공식에 참석
☞1970년11월17일 라디오 방송을 통해 불우한 선생에게 금일봉 전달
☞1970년11월28일 동진농원을 방문, 격려
☞1970년12월11일 연말 위문대 포장, 국방부에 전달
☞1970년12월17일 박대통령과 86명의 여교사를 접견
☞1970년12월18일 불우시설 수용자에게 보낼 동내외 포장, 발송
☞1970년12월21일 주촌국민학교 어린이들 소식 들음
☞1970년12월24일 부산 불우 시민에게 동내의를 선물
☞1970년12월26일 성탄절을 맞아 8개 보호시설에 내의 872점을 보냄
☞1970년12월28일 원호병원 및 의용촌을 방문, 위로
☞1971년01월00일 신년 인터뷰
☞1971년01월01일 경향신문과의 기자회견을 통하여 의견 피력
☞1971년01월31일 대한나협회 이학송 회장에게 금일봉 하사
☞1971년02월00일 신촌 농원에 종돈 10마리를 하사
☞1971년02월18일 새싹 어린이의 집을 방문
☞1971년02월23일 시아주버니 병문안을 위해 방문
☞1971년02월25일 간석농장을 방문
☞1971년02월26일 조선일보 소년기자(부산지사) 50명을 접견
☞1971년02월28일 '희망의 등불'제4집 발간. 초봄 정수직업훈련원 건립
☞1971년03월00일 길가에 떨어진 미나리 한 줄기를 심고 유심히 관찰
☞1971년03월16일 홀트 유아원을 방문, 원아들과 담소 격려
☞1971년03월26일 경남 여성회관 준공식 참석
☞1971년03월26일 여성회관 준공식 후 마산 양로원을 방문, 위문
☞1971년03월30일 박대통령과 육군사관학교 졸업식에 참석
☞1971년03월31일 4.27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기자회견을 가짐
☞1971년04월06일 박대통령과 주한외교사절 70여명을 초청
☞1971년04월10일 박정희 대통령의 대전유세장에 참석
☞1971년04월12일 7백의총 보수, 정화 준공식 참석
☞1971년04월14일 적십자병원 혈액원에서 240cc의 헌혈
☞1971년04월24일 신성교통주식회사 노동조합(갈현동)에 도서 42권 하사
☞1971년05월00일 대한 나협회 기관지인 '새빛'지를 후원
☞1971년05월00일 나환자 정착촌 세 곳에 각각 TV 1대씩 하사
☞1971년05월10일 광주 교육대학 생활지도관 현반 휘호(은행사) 하사
☞1971년06월00일 경천원에 텔레비젼 1대 하사
☞1971년06월08일 '세계 우수 완구 전시회'에 참석, 관람
☞1971년06월15일 서교동 '새마을 수퍼체인' 개점식에 참석
☞1971년06월21일 '사랑의 열매' 수익금 2억원 재해대책협의회 전달
☞1971년07월00일 신문에서 홍연례 여인의 기사를 보고 방문, 위로
☞1971년07월01일 기자회견
☞1971년07월07일 약병 병마개의 불량을 보시고 시정 조치
☞1971년07월16일 양지회원들과 함께 구호품 정리작업에 참가
☞1971년07월18일 영등포, 사당동, 봉천동 일대 수재민 1가구 방문
☞1971년07월20일 우석대학교 여름 농촌 봉사자 청와대 초청
☞1971년07월22일 나환자 정착촌 광명원에 라디오와 서적 기증
☞1971년07월23일 성나자로원에 건립된 '정결의 집' 준공식 참석
☞1971년07월26일 나환자 정착촌 소혜원에 텔레비젼 1대를 기증
☞1971년08월06일 식생활 개선에 대한 '전국 주부 궐기대회'에 참석
☞1971년08월16일 동 파키스탄 난민에게 보낼 의류 전달
☞1971년08월27일 제1회 대통령영부인배 쟁탈 전국여자 테니스대회 참석
☞1971년08월31일 '어린이 문고' 45개 함을 전국 마을문고 전달
☞1971년09월24일 나환자들에게 양돈 권장 계획 세움
☞1971년09월25일 양지의 집에서 결혼한 신혼부부에게 라디오1대 하사
☞1971년09월29일 일선 장병 위한 위문 영화 필름 25편 국방부 전달
☞1971년10월02일 어린이회관에서 개최된 제14회 세계아동미술전에 참석
☞1971년10월06일 경기도내 5개 국민학교에 아동도서 및 책상 전달
☞1971년10월16일 추석을 맞이하여 위문영화 5편을 국방부에 전달
☞1971년10월27일 대한적십자사 창립22주년 기념식에 참석(드라마센타)
☞1971년10월29일 제9회 전국여성대회에 참석, 치사
☞1971년10월30일 여의도 아파트 준공 기념식에 참석
☞1971년11월24일 수도통합병원을 방문 위로, 격려
☞1971년11월28일 동진농원(경기도 용인군)을 방문 위로, 격려
☞1971년12월01일 영동고속도로 개통식에 참석
☞1971년12월05일 전국 나환자 정착촌 37개소 선정, 종돈 하사
☞1971년12월07일 일선 장병에게 보낼 위문대 전달
☞1971년12월10일 전국 122개 양로원, 고아원 등에 양말 전달
☞1971년12월13일 불우이웃돕기 연말 선물 동내의 포장 작업 참가
☞1971년12월15일 재활용사촌을 방문, 위로품 전달
☞1971년12월17일 현애원을 방문, 위문품 전달 위로, 격려
☞1971년12월24일 박대통령과 리틀엔젤스 무용단원 접견
☞1971년12월29일 동대문 근로자 합숙소를 방문
☞1972년01월00일 연례적인 신춘 기자회견을 중지
☞1972년01월01일 새해를 맞아 청와대를 예방한 어린이들과 담소
☞1972년01월06일 양지회원들과 함께 화재민 지역을 방문
☞1972년01월22일 양지의 집에서 결혼한 신혼부부에게 라디오 하사
☞1972년02월16일 '희망의 등불' 제5집을 발간
☞1972년02월16일 영국 흄 외상부인을 접견 환담
☞1972년04월12일 영남대학 방문, 학생들과 좌담회를 가짐
☞1972년04월18일 제7회 대한민국사공미전에 참석,관람(디자인포장센타)
☞1972년04월19일 국립교향악단을 초청, 접견, 환담
☞1972년04월20일 Y.W.C.A.창립 50주년 기념예배에 참석, 축사
☞1972년04월21일 양지회원들과 남산 팔각정 녹지대에 잣나무500주 심음
☞1972년04월25일 전국 새마을 담당 장학사 및 연구사 209명 접견
☞1972년04월28일 모범 새마을 사업장인 3개 마을을 방문
☞1972년05월00일 월간 새빛에 공개서한 기고
☞1972년05월01일 제5회 대통령을 위한 조찬 기도회에 참석
☞1972년05월05일 남산어린이회관에서 개최된 제50회 어린이날행사 참석
☞1972년05월08일 제1회 대통령영부인배 전국 여자 탁구대회를 참관
☞1972년05월12일 경희대학교 학생회 초청에 동교 방문, 좌담회 가짐
☞1972년05월15일 서울대 정영사 개관 기념일에 참석
☞1972년05월16일 제11회 5.16 민족상 시상식 참석
☞1972년05월23일 새마을운동 제1회 어머니합창대회에 참석(장충체육관)
☞1972년05월24일 '자활공장' 준공식 참석
☞1972년05월26일 양지회 '사랑의 열매' 가두 모금 판매운동에 참석
☞1972년06월00일 농수산부에서 주최한 '식생활 개선대회'에 참석
☞1972년06월01일 서울대학교 사범대 부설 교육행정연수원생164명 접견
☞1972년06월09일 제1회 새마을 양잠대회에 참석, 치사
☞1972년06월13일 다리 준공, 개통 소식에 친서 보내어 격려
☞1972년06월16일 국립묘지 참배
☞1972년06월20일 사치분교 어린이 농구팀의 예방을 받고 접견
☞1972년06월22일 재해민 구호기금 마련을 위한 자선파티 음식 마련
☞1972년06월23일 재해민 구호기금모금을 위한 자선 파티 참석
☞1972년06월26일 새농민지 선정 모범 새마을 부인들을 접견
☞1972년07월05일 전국 여성단체의 '새마을 운동 촉진대회'에 참석
☞1972년07월06일 상공부가 주최한 '세계 우수상품 전시회'를 참관
☞1972년07월13일 영부인께서는 새마을 지도자 153명(제1기)을 접견
☞1972년08월13일 동 파키스탄에 보낼 구호의류 봉제작업 참가
☞1972년08월15일 모국을 방문한 해외교포들과 환담
☞1972년08월17일 청와대에서 해외교포들을 초청
☞1972년08월18일 부산직할시 어깨동무 합창단을 접견하시고 환담
☞1972년08월21일 수재민 방문
☞1972년08월22일 수재민들에게 발송할 구호 의류 포장작업 참가
☞1972년08월23일 '국제 척수장애자 체육대회'에 참가한 선수단 접견
☞1972년08월25일 여성저축생활중앙회 250명을 접견
☞1972년09월01일 새마을 지도자 156명(제4기)을 접견
☞1972년09월06일 나환자 정착촌인 상지원 방문
☞1972년09월06일 모범 새마을 부락인 북참마을 방문
☞1972년09월08일 박대통령과 국립과학관 개관식에 참석
☞1972년09월12일 '밀레 특별전'을 참관(덕수궁)
☞1972년09월15일 박대통령 컵 쟁탈 전국여자 테니스대회에 참석
☞1972년09월16일 추석을 앞두고 동대문 근로자 합숙소 방문, 격려
☞1972년09월19일 서울에 온 전남 흑산도 성모중학교 학생 접견
☞1972년09월29일 부산 어린이회관 기공식에 참석, 축사
☞1972년10월05일 어린이회관에서 개최된 제15회 세계아동미술전 참석
☞1972년10월08일 상지원(전북 익산군 함열면 흘산리) 방문,TV 1대 하사
☞1972년10월17일 '대통령부인컵 쟁탈 제2회어머니 배구대회' 참관
☞1972년10월20일 새마을 지도자 152명(제5기)을 접견
☞1972년10월27일 자혜학교 준공식 참석
☞1972년11월00일 보문사를 방문, 법당 건립기금 하사
☞1972년11월01일 양지회 교양강좌에서 인사 말씀을 함
☞1972년11월03일 어린이 대공원 기공식에 참석, 축사
☞1972년11월07일 용인정신병원을 방문
☞1972년11월10일 한양대학교 학생회 초청으로 방문
☞1972년11월13일 대한나협회 및 보사부관계 담당자와 간담
☞1972년11월14일 '도시가스 남부공장 준공식' 참석
☞1972년11월15일 '새마을 음악회' 참석
☞1972년11월27일 월남 대통령부인이 주최, 연례 바자회 지원품 전달
☞1972년12월04일 어린이 회관을 활용, 첫 월요경로일 잔치 참석
☞1972년12월08일 위문대 1천대를 포장하여 국방부 전달
☞1972년12월11일 '세계 민예품 콜렉션전'에 참석
☞1972년12월12일 영동 시영 주택단지 준공식에 참석
☞1972년12월14일 전국 불우시설에 보낼 구호품 포장작업 참가
☞1972년12월19일 '아시아 탁구 선수권 대회'에 참가한 선수단 치하
☞1972년12월28일 불우 청소년 청와대로 초청
☞1973년01월00일 월간 '새빛'지에 새해 메세지 전달
☞1973년01월00일 동진원에 가마니 짜는 동력기계와 새끼 기계 기증
☞1973년01월00일 '주부생활'의 신년인터뷰에서 신년휘호 중용지덕 하사
☞1973년01월01일 '어깨동무'지에 새해 메시지를 전함
☞1973년01월08일 어깨동무사를 방문, 시찰하고 직원들 격려
☞1973년01월13일 한국이민70주년 경축행사에 영애를 대신 참석케 함
☞1973년01월26일 어깨동무 창간 6주년 기념식에 참석
☞1973년02월20일 선명회 어린이 합창단 단원 34명을 접견, 치하
☞1973년02월28일 양지회 제18회 정기총회에 참석
☞1973년03월15일 나환자 정착촌인 상지원을 방문, 위로 격려
☞1973년03월27일 어린이예능센타,리틀엔젤스예술학교 기공식 참석
☞1973년04월02일 바이올리스트 정경화양과 동생 정명훈군 접견
☞1973년04월03일 어린이대공원에 벚꽃과 매화 심음
☞1973년04월20일 Y.W.C.A. 창립50주년 기념예배에 참석, 치사
☞1973년05월05일 '어린이대공원 개원식'에 참석, 축사
☞1973년05월18일 강원도 내 5개 국민학교에 아동도서 선물
☞1973년05월21일 경기도내 5개 국민학교에 아동도서, 책 탁자 선물
☞1973년05월25일 충청남도내 5개 국민학교에 어린이문고 등 선물
☞1973년06월05일 제2회 양잠 대회에 참석
☞1973년06월09일 새마을 누에치기 시범대회 참가
☞1973년06월15일 프란체스카 여사 초청
☞1973년06월26일 양지회 주최, 자선파티 참석
☞1973년07월11일 '재해민 구호용 의류 만들기'봉사작업 참석
☞1973년07월25일 남산 어린이회관을 인계
☞1973년08월18일 오자순씨의 서신을 받고 친서 보내어 격려
☞1973년09월00일 국립나병원 및 전국 정착촌에 생선 등 하사
☞1973년09월25일 재일 대한부인회 모국 방문단 38명을 접견
☞1973년10월02일 나병치유자 4명 접견
☞1973년10월05일 '제16회 세계아동 미술전'을 참관
☞1973년10월17일 '정수직업훈련원 개원식'에 참석, 치사
☞1973년10월25일 '전국 새마을 여성 경진대회' 참석, 치사
☞1973년11월10일 충청남도내 5개 국민학교에 어린이 문고 5구좌를 하사
☞1973년11월15일 '소년의 집' 및 '구호병원'을 방문, 위로 격려
☞1973년11월16일 유대웅군의 글을 보고 격려편지와 먹 선물
☞1973년12월00일 영등포 노동자 합숙소를 방문
☞1973년12월02일 미망인 최미자여인에게 10만원을 하사
☞1973년12월10일 일선장병에게 보낼 연말위문대 국방부에 전달
☞1973년12월18일 전국 불우시설 아동들에게 보낼 연말선물 보냄
☞1974년01월01일 새해를 맞아 어깨동무 창간7주년 기념 휘호 하사
☞1974년02월05일 양지회 간사 7명을 접견, 환담
☞1974년04월09일 제22기 해군사관학교 졸업식에 참석
☞1974년04월10일 경주 불국사, 석굴암에 관한 연구 지시
☞1974년05월02일 진용준군의 사정을 듣고 도와줌
☞1974년05월14일 한국자연보존협회 임원을 초청, 오찬을 베품
☞1974년05월21일 계명대학교 개교 20주년 기념식 및 좌담회 참석
☞1974년05월23일 노인회에 5만원을 하사
☞1974년05월24일 전몰군경 미망인 자활공장 준공식 참석, 치사
☞1974년05월28일 '제3회 새마을 양잠 시범대회'에 참석, 치사
☞1974년05월29일 '삼육아동재활원' 방문,위로,격려
☞1974년05월30일 오미 국민학교 천호분교 학생 접견
1974년06월01일 졸업과 함께 정영사를 떠나는 회원들 초청
☞1974년06월12일 유지윤씨의 아내의 민원서신을 받고 도와줌
☞1974년06월16일 천신부락 사업장을 방문. 책, 의류 등을 전달
☞1974년06월25일 '방위성금 모으기 바자회'에 참석
☞1974년06월28일 수출 선박 명명식에 참석
☞1974년07월00일 전국 87개 정착촌에 옷감과 의류 등을 하사
☞1974년07월01일 '주부 백일장 수상자' 54명 접견, 치하
☞1974년07월06일 애중원을 방문, 무의탁 노인들을 위로 격려
☞1974년07월15일 양지회 기념관 기공식 참석
☞1974년07월18일 대한적십자사 수요봉사회에 참석(마지막 봉사활동)
☞1974년08월00일 충남 부지사실 여직원의 진정서를 받고 도와줌
☞1974년08월01일 내장산과 백양산 일대에 종합학술 조사를 실시
☞1974년08월09일 국제척수장애자체육대회에 출전한 선수,임원 접견
☞1974년08월13일 '새마을권잠실'현판,부산어린이회관 기념비문 기증
☞1974년08월14일 최진희양 모녀를 접견, 치하
☞1974년08월15일 북괴간첩의 흉탄에 의해 서거
☞박 대통령은 물욕이 없었고 하물며 재산에 대한 욕심은 조금도 없는 분으로, 이 사실은 서거 후 모든 국민이 실감하고 있는 바와 같다. 나는 그 많은 현장확인과 현장지도의 길에 항상 박 대통령을 자동차 또는 헬리콥터편으로 수행하였다. 아마 나만큼 민간인으로서 헬리콥터를 많이 탄 사람도 전무후무할 것이다.
박 대통령은 헬리콥터 기상에서 여기저기 우뚝 솟은 아파트 단지, 아름다운 농촌 주택, 크고 작은 공장들과 대규모 다목적 댐과 방조제, 그리고 간척지 등을 내려다 보며 마치 대통령 자신의 아파트나 집과 공장들이 늘어나고 대통령 소유 농장의 구조물이 이것 저것 늘어나는 듯 기뻐했다. 박 대통령은 자기개인의 재산에는 하등 관심이 없고 오로지 나라의 경제와 살림살이와 잘 되는 것만 바라고 또 기뻐했다.
나는 박 대통령 집무실에 있던 파리채를 기억한다.
박대통령이 살던 본관 2층과 집무하던 1층에는 에어컨이 없었다. 전기를 아끼려는 뜻이었다. 선풍기는 있었지만 박 대통령은 그것조차 돌리지 않았다. 한여름에 열기가 닥치면 박 대통령은 창문을 열었고 열린 문으로 파리가 날아들어 오곤 했는데 박 대통령은 파리를 잡기 위해 파리채를 휘두르곤 하였다. 2층 서쪽 구석에 있는 내방은 오후 내내 뜨거운 햇볕으로 달구어졌다. 땀이 많이 흘렀지만 대통령이 틀지 않는데 내가 선풍기를 돌릴 수는 없었다.
박 대통령은 아침 저녁으로 밥을 먹을 때 꼭 30%는 보리를 섞었다. 지금처럼 건강식으로 먹는 것이 아니라 부족한 쌀을 아끼려고 혼식을 몸소 실천한 것이다. 특별한 행사가 없으면 점심은 멸치나 고깃국물에 만 기계국수였다. 영부인 육영수 여사와 나, 의전수석, 비서실장보좌관 등 본관 식구들은 똑같이 국수를 먹었다. 장관들도 청와대에서 회의를 하는 날이면 점심은 국수였다.
박 대통령은 솔선해서 국산품을 애용했는데 일상용품 중 넥타이,만년필,전기면도기 세 가지를 빼고는 양복,외투,내의,구두 등 모든 것을 국산품을 썼다. 세 가지 외제품 사용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넥타이는 매듭이 풀리지 않게 하는 납처리기술이 중요한데 우리나라가 이를 도입하려면 비싼 로열티를 주어야 했다. 그래서 박 대통령은 대사들이 귀국해서 외국산 넥타이 2-3개씩을 선물하면 이를 주로 맸다. 만년필도 국산 빠이롯트회사를 적극 지원했으나 외국의 일류품에는 미치지 못했다. 전기면도기도 독일 브라운사의 명제품처럼 만들어보라고 했으나 국내기술로는 역부족이었다. 국산이 멋있게 성공한 경우도 있다. 두산산업이 ‘마주앙’이라는 상표로 백포도주와 적포도주를 생산해 냈을 때 박 대통령은 무척 기뻐했다.
하루는 포도주 생산국 출신으로 국내에 살고 있는 외국인 신부와 수녀를 청와대로 초청해 시음회를 가졌다. 국산상표라는 것을 숨기고 외국산 일류 포도주와 비교해 보도록 한 것이다. 외국인들은 “백마주앙은 세계 일류에 비해 전혀 손색이 없으나 적마주앙은 좀 떨어진다‘고 품평했다. 그 후 박대통령은 국빈을 대접할 때 백포도주는 국산 마주앙을 썼다. 한편 한식을 대접할 때는 적포도주 대신 경주법주를 애용했다.(당시 대통령 비서실장 역임했던 김정렴씨 저서에서) <출처: http://kr.blog.yahoo.com/nanumial/14 >
박정희 그는 실천했다, 그리고 평가 받았다!
나의 혁명은 경제개혁이다. 인간은 우선먹고, 숨쉬고 나서 비로소 정치, 사회, 문화에 관심을 가질 수 있다.
그는 이렇게 외치며 자신을 민족의 제단(祭壇)에 바친다며 언행에 책임을 지는, 실천하는 정치가였다.
박정희를 아무리 짓밟아도, 김일성처럼 개인 우상화를 위해 공들인적 없으며, 김정일처럼 정권 유지를 위해 군사력 강화로 경제를 망쳐도탄속의 인민들이 굶주림을 못 견뎌 나라를 탈출하게 한 정치가가 아니었다.
박정희! 학력차별해서, 고졸자, 판사 변호사 못 되게 막은 적없고, 정치적 반대자 였던 김영삼, 김대중에게 반대만 말라고, 입막은 적은 있으나 척결하지 않았고, 그들 모두는 박정희 보다 잘 한 점 없다.
누구처럼 돈 퍼줘가며, 위장평화 구걸한 적 없고, 개인과 일신의 명예를 위해 상받기를 노린 적도 없었고, 오직 잘 살면 통일온다며, 민족의 통일을 이룬다며, 실력을 갖추자고 외치고, 자주국방하자며, 허리띠를 졸라매고 열심히 마음모아 일하자고 솔선수범한 죄 밖에 없다.
박정희 아무리 독재라고 했어도, 북한 공산주의식 적화획책하는 자나, 이를 편들고, 협조한 자 외는 핍박하지 않았다.
그는 독재했어도, 히틀러나 스탈린처럼 수 많은 타민족 살해하고, 전쟁하고, 영토팽창 획책하고, 강제이주시키며 힘 자랑한 적 없다.
박정희 비리를 아무리 물고 늘어져도, 그가 돈 꼬불쳐 자기 포켓에 넣지 않은 것 국민들 다 안다.
박정희 아무리 친일로 매도해도 열우당 핵심 정치인 중의 친일파 조상들 보다 민족에게 악랄한 짓 한 적 없다.
박정희 죽이려는 무리들이 잘못 짚어도 한참 잘못 짚는 것이 바로 이러한 점들이다.
잘 사는 친일파 3대 박정희와는 거리 멀다. 박정희 당대를 잘 살았나? 2대가 잘살았나? 그 선조들이 잘 살았나?
목숨걸고 구국의 혁명을 일으켜 국민들 살게하고 당대에서 아내와 자신의 목숨을 나라에 바친 분이다. 그의 조상은 밑바닥 농민이었다.
대다수 국민들은 이런 것들을 너무나 잘안다.
박정희 공이 크다는 82% 국민은 친일파 후손도 아니고, 매국노도 아니며 그저 평범하게 살아가는 민초들이다!!
민초는 교단, 강단에서 박정희 잘못만 탓하며 진보인체, 깨끗한 체 뻔한 거짓말로 후학들을 왜곡해서 부정적인 것만 가르치며 지식인연 한 자들 보다 훨씬 양심적이고 바른 소리를 한다.
이것이 바로 민심이다.
헤겔은 말했다. 하인에게 영웅이 있을 수 없는 이유는 주인이 영웅이 아니어서가 아니다. 하인이 한갓 하인배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아래의 여러 유명인들이 말하는 박정희에 대한 평가를 들어보자. 어디에 왜곡이 있는지?
-조이제/전 시카고대학 교수-
김영삼 · 김대중은 박정희가 보여준 철학과 비젼, 국가관리 능력은 물론 도덕적 · 윤리적 수준에서도 그에 미치지 못했다. 이들 두 대통령은 직접기소되지는 않았지만, 자식들의 불법축재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이들은 국민의 사회적 근간과 국가의 목표들을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흐려 놓았다.
- 카터 에커트/하버드대학 교수-
박정희는 조국근대화에 확고한 철학과 원대한 비젼을 바탕으로 시의적절한 제도적 개혁을 단행했다. 매우 창의적이며 능률적이었다.
-리콴유(李光耀)/싱가폴 수상-
아시아에서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한 위대한 세 지도자로 일본의 요시다 시게루(吉田 茂), 중국의 덩 샤오 핑(鄧小平), 한국의 박정희(朴正熙)를 꼽고 싶다.
-폴 케네디/예일대학 교수-
세계 최빈국의 하나였던 한국이 박정희의 새마을운동을 시작으로 불과 20년만에 세계적인 무역국가로 되었음을 경이롭게 본다.
-엠스덴/MIT 정치경제학 교수-
박정희의 역사적 큰 공헌은 그의 뛰어난 지도력하에 한국을 저개발의 농업국가에서 고도로 성장시킨 공업국가로 변모시킨 것이다.
-맨스로프/러시아 안보연구소 교수-
박정희 정권 1 8년 동안의 목표는 자립경제력을 갖춘 현대국가의 건설이었다.박정희 대통령은 그 목표를 성공적으로 달성했다.
-베트남 출신 껑투웬(Cuong Tu Nguyen) 美 조지메이슨대 교수-
한국의 박정희는 번영(prosperity)의 기초를 놓았지만 베트남의 호치민은 빈곤(poverty)의 기초를 쌓았다." 이말을 들으면 북한과 친북세력의 모순이 절로 드러난다.
-등소평의 딸이자 퍼스트 레이디였던 등용 -
모택동이 7년만 먼저 죽었으면 오늘날의 한국은 없다. 즉, 박정희의 경제개발, 성장의 서두름이 없었다면 오늘날 발전한 한국경제는 없었다는 말이다.
분명한 것은 김일성/김정일 체제와 공조하겠다면서, 사상적, 이념적 체제를 그대로 두고 통일한 나라, 일찌기 역사에서 없었듯이 그들의 체제 두고 이 민족 통일없다. 우리가 꼭 명심해야 할 것은 한쪽 정치체제의 이념을 포기해야 통일이 온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선택은 뻔하다. 유일사상을 섬길 수는 없는 일이다. 북한의 불행을 보고 묵과할 수 없는 일이다.
더욱 분명한 것은 사회주의자들은 그들이 주도권 잡기를 포기한 민족문제, 분단국 통일문제 거론한 역사 없다. 위선과 거짓으로 내세우는 외세배격, 민족공조, 평화통일은 오직 그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기만일 뿐이다.
더 더욱 분명한 것은 세월이 흐를수록, 먼 훗날 이 나라의 역사에서 평가될 박정희는 위대해질 것이라는 점이다.
해방 후 우리의 현대사 60년이 역사책에서 지우개로 지우듯 지워없애지 않는 한, 그의 공은 더욱 높게 평가 받을 것이다.
후세에 욕먹지 않으려면 왜곡하지 말고, 있는 대로만 그를 평가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