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간의 청산도 슬로우 걷기를 마치고 오늘은 욕지도로 섬산행을 떠나는 날이다.
배타는 시간과 산타는 시간은 청산도와 비슷한데 차타는 시간이 청산도의 반밖에 안 된다.
그러니 얼마나 가까운 곳이냐, 청산도에 비하면 새발의 피, 욕지도 가는 건 일도 아니다.
마음도 가볍지만 몸도 가볍게 간단하게 도시락과 뜨거운 물 한 병 챙겨 들고 집을 나왔다.
바람이 쌀랑쌀랑, 봄이라고 말 한지가 벌써 두 달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바람이 매우 차다.
아이구 지겨워라, 이넘의 방한모자는 언제쯤 벗어도 될랑가?
겨우 가라앉혀 놓은 감기 다시 들고 일어날까봐 모자를 첩첩이 썼더니 목이 안 돌아간다.
(통영 동호항 거북선 앞에서)
4월 한 달 내내 청산도만 다니다가 가까운 욕지도로 오게 되니 자꾸 청산도와 비교하게 된다.
같은 11시 배를 타도 청산도 가는 배를 타려면 화장실 가는 시간도 줄이고 달려야 되는데,
가까운 통영으로 오니 시간이 넉넉하여 마음이 태평이다.
(통영 동호항 거북선 앞에서)
통영 동호항에 들러 통영의 명물 꿀빵 한 통 사고, 충무김밥 한 통 사고, 거북선 관람하고,
멋쟁이 아줌마 아저씨, 언니 오빠, 직장 동료들, 모두 불러서 사진 한 장씩 찍어 주고,
바쁠 때는 화장실도 그리 급하더니 시간이 넉넉하니 아무리 먹어도 화장실도 안가고 싶다.
(배타고 욕지도 가는 길)
부웅~ 기적을 울리며 배는 출발했다.
한 달 내내 바다만 보고 또 보는데 무엇이 그리도 신기할까?
갈 때 다르고 올 때 다른 바다가 신기하고, 바다 한복판에 둥둥 떠 있는 섬들이 신기하다.
(욕지도 일주 순환도로)
선실 맨 앞자리에 앉아서 물 한 잔 마시고, 지난밤에 꾸었던 꿈 나름대로 해몽 하고,
그리고 어디까지 왔나 보려고 일어서니 다 왔다고 내릴 준비하란다.
바로 행동으로 이어져 후다닥 척척척, 마을버스 타고 혼곡 언덕까지 올라왔다.
(대기봉 가는 길)
바람은 쌀랑해도 촉감은 부드럽다.
혼곡 고개 넘으면서 숨이 차서 헉헉거리고 땀을 줄줄 흘리니 바람이 와서 싹 말려주고 간다.
움직이지 않아서 추웠지, 걷기 시작하니 바람이 선들선들, 산행하기에는 그저그만인 날씨다.
이제 쑥도 키가 커서 발목까지 올라오고, 나무마다 물이 올라 연두에서 초록으로 변해가고,
상큼한 바닷바람을 등지고 숲에서 나오는 피톤치드를 마시면서 행복감을 느끼며 걷는다.
(대기봉 100m 전방에서 본 경관)
대기봉 100m 전방이다.
뒤를 돌아 정면으로 욕지도의 아름다움이 쫙 펼쳐진다.
볼 때마다 말하지만 바닷물이 어쩌면 저렇게 예쁠까?
코발트색 맑고 푸른 바다를 보니 덕지덕지 붙어 있던 세속의 때가 싹 씻겨지는 기분이다.
벌름벌름, 발밑에 더덕이 있는지 바닷바람을 타고 진한 더덕향이 날아와 코를 찌른다.
속이 시원한 푸른바다, 진하고 상큼한 더덕향, 그로인해 맑아지고 따뜻해지는 머리와 가슴,
욕지도 앞바다는 수심이 얕고 물이 맑아 스킨스쿠버 하는 사람들이 실습장소로 많이 이용하고,
산 좋고 물 좋고 공기가 좋아 도회지에서 찌들린 사람들이 심신수양으로 욕지도를 많이 찾는다.
유동마을에 가면 딸의 간암치료를 위해 바다를 보고 성경속의 에덴동산을 짓고 사는 모녀가 있다.
(대기봉 100m 전방에서 본 경관)
뒤를 돌아 왼쪽 편으로는 농협과 마을이 있고, 그 뒤로 언덕의 붉은 밭은 전부 고구마밭이다.
조금 있으면 고구마 순 잘라서 모종하고 가을이면 고구마가 생산된다.
욕지도 고구마는 대한민국에서 아니,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고구마다.
당분이 많아 달달하고, 살이 폭신폭신하고 부드럽고, 심줄 하나 없이 몰캉몰캉하고 맛있다.
(더위를 마셔 바로 서지 못하여 엉금엉금)
여기까지 올라오면 숨도 차고 땀도 줄줄 흐르기 때문에 누구나 다 발걸음 멈추고 한 숨 쉰다.
그리고 뒤를 돌아 내가 걸어온 길을 바라보면서 사진도 찍고, 바다 감상도 하고, 생각도 하고,
그러나 오늘은 혼자라 사진은 못 찍고 내가 걸어온 길 바라보면서 욕지도의 첫산행을 생각했다.
앞의 사진은 어느 해 여름, 그 해 들어 가장 덥다고 하는 날 욕지도 대기봉을 오르는 사진이다.
푹푹 찌는 가마솥더위(33.8℃)에 그늘 하나 없는 저 바위를 오르면서 얼마나 숨이 차던지,
허리 펴고 고개 들고 올라와도 되는 길인데 더위를 마셔 맥을 못 추고 엉금엉금 기는 모습이다.
너무 덥고 힘들어 다시는 안 가지 했는데 돌아서면 다시 그리워 또 가고, 또 가고, 오늘 또 왔다.
(우등 쾌속선 샹그리라)
그때는 또 샹그리라라고 하여 속력이 일반 여객선 3배가 넘는 아주 빠른 쾌속선이 있었다.
구석진 곳까지 다 찾아보는 답사산행을 다니다보니 교통비, 숙박비, 식비가 얼마나 많이 들던지,
그거 아낀다고 웬만하면 걷고, 뛰고, 시간 꼭꼭 맞춰 한푼이라도 적게 드는 쪽을 이용하고 그랬다.
그런데 그날은 일반선이 없다고 하여 저 우등 쾌속선 샹그리라를 탔다.
나중에 통영까지 나와서 알았는데 매표원이 요금 비싼 표를 팔려고 나를 속였던 것이었다.
매표원에게 욕을 바가지바가지 끌어 붓고, 그러나 지나고 보니 그렇게 안타면 언제 타 볼 건데?
지금은 저 샹그리라 수지가 안 맞아서 없애버렸다. 이제는 타보고 싶어도 없어서 못 탄다.
(삼백리 한려수도 그림 같구나)
좋다!
밖에만 나오면 이렇게 좋은 것을!
바다 한복판에 점점이 떠 있는 저 섬들은 마치 하늘에서 누가 비행기를 타고 가면서 하나씩
뚝 뚝 뚝 떨어뜨려 놓고 간 것 같다.
정말 아름답다.
방방곡곡 구름을 타고 다니면서 환상을 먹고 사는 나는, 저 섬들을 다 건너 다녀보고 싶다.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마실가듯, 그렇게 살랑살랑 이 섬에서 저 섬으로 마실을 다니고 싶다.
(저수지와 고구마밭)
황토밭을 보고 서 있으니 갑자기 고구마가 먹고 싶다.
욕지도에서 나무가 없고 발간 황토만 보이는 땅은 전부 고구마밭이다.
전국을 다니면서 고구마란 고구마는 다 먹어 보았는데 욕지도 고구마가 제일 맛있더라.
(연두에서 초록으로)
아무리 좋아도 오래 머물 수 없는 것이 여행에서 가장 큰 아쉬움이다.
돌아서 대기봉을 향해 올라가는데 이제 한창 물이 올라 자라는 나무들이 너무 싱그럽다.
새파란 나무가 좋고, 맑고 신선한 공기가 좋고, 아름다운 경치가 좋고, 여유가 있어서 좋고,
보는 것 마다 신기하고, 대하는 것 마다 감사하고, 느끼는 것 마다 감동이다.
(천황봉)
대기봉에 올라와서 점심 먹고, 맑은 공기 듬뿍 마시고, 세상사는 이야기도 듣고,
더덕, 머위쌈, 왕포도, 직접 만든 빵까지, 부지런하고 재주 많은 친구들의 맛난 음식도 얻어먹고,
즐거운 식사,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발걸음도 가볍게 달랑달랑 휘파람 불면서 천황봉으로 왔다.
저기 천황봉에 올라가면 욕지도가 한눈에 다 보인다.
삼백리 한려수도 그림 같은 욕지도가 어렵고 힘들고 복잡한 머리를 말끔하게 싹 씻어준다.
옛날에는 해군 레이더기지라고 출입통제를 했는데 몇 년 전부터 민간인에게도 개방을 했다.
(태고암)
저기 태고암 뒤로 초록색은 초록색이되 층층이 다른 초록색을 띄고 있는 나뭇잎 좀 봐라.
정말 싱그럽지 아니한가? 정말 푸른 힘이 펄펄 솟아나는 느낌이 들지 않는가?
나뭇잎 끝 순이 올라오는 저 포로소롬한 연두색은 우리 어머니가 제일 좋아하는 색깔이다.
저 푸른 녹음을 보니 "5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라는 어린이날 노래도 생각나고,
그러고 보니 5월은 가정의 달, 하늘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은 어버이 은헤, 감사 없는 스승의 날,
그 외 또 무엇이 있더라, 5.16 군사쿠데타(혁명), 5.18 광주 민주화운동, 5.24 노무현대통령 서거.
아, 또 하나 있다. 5.13 갓난아기 때부터 업고 산으로 들로 데리고 다녔던 동생의 아들 탄생일.
(고등어)
그렇게 설렁설렁 산도 푸르고 마음도 푸르게 산길을 따라 섬을 한 바퀴 휭 돌았다.
마을에 내려오니 몇 년 전부터 새로 생긴 욕지도의 명물 고등어가 어항에서 뱅뱅 돌고 있다.
쳐다보니 어지럽다. "고등어야 돌지 말고 바로 가면 안 될까?"
그러나 고등어는 뱅뱅 돌아서 가지 절대 바로 가는 법이 없는 물고기다.
유동리에 가면 고등어 양식장이 있는데 바다에 올림픽 오륜기가 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동생 말에 의하면 고등어가 살이 질기지 않고 부드러워 이빨도 안 아프고 맛있더라고 하는데,
나는 아직까지 이가 성해서 그런지, 씹히는 것 없이 살이 물렁물렁하여 촉감이 이상하더라.
아직은 꼬들꼬들하고 쫄깃쫄깃 씹히는 맛이 있는 다금바리, 광어, 우럭, 도다리, 등이 맛있더라.
(욕지마을)
먼저 내려온 사람들 배 시간 기다린다고 마을 화단에 걸터앉아 있다.
섬 산행은 배 시간 맞추는 게 보통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니다.
조금 일찍 내려와서 미리 기다리고 있으면 출발시간보다 더 늦게 출발하고,
늦다 싶어서 헐레벌떡 죽을힘을 다하여 달려오면 출발시간 보다 더 빨리 출발해 버린다.
괜히 내 잘났니, 네 잘났니, 따지지 말고 일찌감치 와서 죽치고 앉아서 기다리는 것이 수다.
후진국으로 여행다니면 세 시간이고 네 시간이고 사람 모일 때까지 비행기 기다리는 것처럼
좀 답답하고 지루하지만 먼저 내려와서 태평치고 앉아서 기다리고 있어야 된다.
(욕지도 선착장)
또 오늘이 다 갔다.
붕~ 다시 기적을 울리며 배는 육지로 향하고, 멀어지는 욕지도를 바라보며 집으로 간다.
고구마가 유명하고, 고등어 양식장이 있고, 산 좋고 물 좋고 공기 좋아 심신이 편한 욕지도,
휴양의 섬 욕지도, 아름다운 섬 욕지도에서 여유롭게 5월의 첫 푸르름을 만끽한 하루였다.
첫댓글 작년에 다녀온 욕지도 생각이 나네요 나나 님이 마당바위에서 찍은 사진보며 아주 높은바위를 올라가야 하나보다고 지레 겁을 먹었었지요 막상가보니 아니던데~~ㅋ 고구마는 아쉽게도 먹어보지 못했지만 아름다운 경치는 눈에 선합니다
사진은 일부분만 보여 주기 때문에 그런가 봐요.
그런데 본인은 마당바위가 무섭게 나온 사진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도 잘 모르겠어요.
워낙 많이 다니다보니까 갔다오면 금방 잊어버리고 그래요.
아무튼 욕지도는 산 좋고 물 좋고 공기 좋고 풍광이 아름다운 곳.
만약 가을 고구마 수확철에 가게 되면 고구마 한 박스 사올테니까.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그때를 한번 기다려봅시다.
건강하시고 산에서 또 만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