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일시: 2019년 07월 07일
☞ 산행날씨: 맑은 날씨에 약간 추위를 느낄 정도의 션한 바람
☞ 산행거리: 도상거리18.8km / 8시간 05분 소요
☞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 산행코스: 접산 임도-825.3봉-접산-817봉-810.4봉-풍력발전기 관리동-임도-묘지-765.7봉
임도-770봉-안부-안테나봉-갈림길-쉼터-803.2봉-안부-785봉-안부-송이골-안부
557봉-611.7봉-안부-583봉-안부-606.9봉-655봉-분덕재-이동통신탑-524.4봉
묘지-무명봉-안부-545봉-안부-십자 안부-시루산 갈림길-543.1봉-548봉-쉼터봉
안부-장릉 갈림길-무명봉-안부-돌탑-조망바위-암봉-암봉-발산-676.1봉-조망바위
쉼터-안부-돌탑-영월2터널 위-451봉-영모전 갈림길-330.8봉-영월우체국-서부시장
영월초교-영월공고 동문회관-하송리 은행나무-실내체육관-동강/서강 합수점
☞ 소 재 지: 강원도 영월군 북면, 영월읍
산꾼 후배하고 들머리의 거리가 6km가 넘어 접근이 상당히 힘든 만월지맥 첫구간을 을 가기로 했는데
갑자기 약속이 변경되는 바람에 마땅히 갈 데가 없다...이리 저리 생각을 해봐도 별 뾰족한 수가 없어 보인다.
남쪽으로 가자니 폭염으로 인해 개고생을 할 것 같아서 자료를 검색하다보니 지난해 6월 수술전에
6구간을 끝내고 미뤄놨던 주왕지맥 마지막 구간을 끝내기 위해 이른 아침에 동서울 터미널로 향한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동서울발 → 영월행 버스표
영월행 첫 차는 07시라서 집에서 느긋하게 아침 식사까지 마치고 터미널에 도착하니 06시 50분이다.
잠시 후 버스를 타고 영월로 향하는데 제천을 지나면서 구름이 잔뜩 끼어서 비가 오지 않을까 걱정이다
고속도로가 크게 붐비지 않았던 탓인지 생각보다 조금 빠른 09시에 영월 터미널에 도착한다
영월 터미널(09:00)
원래 계획은 이곳에서 평창군 미탄면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영월군 북면 면소재지가 있는 마차리에서
북면택시를 타고 접산 임도로 가기로 했는데 미탄가는 버스를 알아보니 11시 45분 차란다.
거기다가 북면 택시는 손님이 없어 지금 북면에는 택시가 없다고 한다.
하는 수 없이 터미널 맞은편에 택시를 타고 접산 임도로 향한다
영월 택시를 타고 윤지교에서 접산 임도로 가야 하는데 택시가 초반에 엉뚱한 길로 들어서 한참을 헤매는
바람에 시간이 생각보다 지체됐다...다시 되돌아 와서 윤지교 다라옆 임도를 따라서 올라가는데 포장된
임도이기는 하나 구절양장의 급경사 오르막이라 못 간다고 하면 3km이상을 걸어 올라와야 하기에
이곳까지 택시가 올라와 주는 것만으로도 그저 고맙고 황송할 따름이다.
요금이 28.000원 나왔는데 초반에 자기가 버벅거렸다고 25,000원만 달라고 하는게 아닌가
양심적인 분인 것 같아 30,000원을 주었더니 몇번이고 고맙다고 하면서 영월로 향한다
접산 임도(09:45)
택시에서 내려 산행을 준비하는데 이곳이 해발 800m가 넘는 곳이라서 그런지 상당히 춥다.
거기다가 잔뜩 먹구름이 끼여서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은 느낌이 들지만 오랜
산행 경험으로 볼 때 지금부는 바람으로는 비가 오질 않을 것 같은 확신이 든다
산행을 시작하다(09:50)
오르막 등로에는 산딸기와 잡풀이 수북하기는 하나 그런대로 걸을 만 하다.
등로에는 동자꽃과 눈개승마 꽃들이 많이 보이고 농익은 산딸기가 참으로 많이 보인다
동자꽃(꽃말: 기다림)
아주 먼 옛날 깊고 깊은 강원도 산골짜기에 조그마한 암자있었는데 그 곳에는 스님 한 분과 어린 동자가
살고 있었는데 동자는 스님이 마을에 갔다가 부모를 잃고 헤메는
것을 불쌍히 여겨 데려온 소년이었다.
강원도 지방에는 겨울이 유난히 일찍 찾아온다. 그래서 가을 추수도 다른 곳보다 훨씬 빠르게한다.
동짓달 무렵, 겨울 채비가 덜 된 것을 걱정한 스님은 어린 동자와 겨울을 보낼 준비를 하기 위해 마을로
내려갔다... 단숨에 마을에 갔다 온다고 동자에게 이르고 암자를 나섰지만 험한 산간 지역이므로
몇 십리를 가야 겨우 인가를 볼 수 있었다.
스님은 허겁지겁 준비를 했지만 하루 해는 짧기만 하였다. 그런데 스님이 산을 내려온 뒤 산에는 많은 눈이
내리기 시작하여 저녁 무렵에 이르러서는 눈이 한 길이나 쌓이고 말았는데 도저히 스님이 암자로 돌아갈 수
없는 형편이었다. 스님은 오직 하늘만 바라볼 뿐이었다. 그러나 강원 지방은 겨울에 한번 눈이 쌓이면 겨울
내내 녹지 않고 있다가 늦은 봄 4~5월이 되어야 눈이
녹는다.
암자의 어린 동자는 눈이 많이 와서 스님이 못 온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어린 동자는 추위와 배고픔을 참으며 마을로 내려간 스님이
이제나 저제나 오기를 기다릴 뿐이었다.
스님이 내려간 언덕만 바라보던 동자는 마침내 앉은 채로 얼어 죽고 말았다.
마을에 머물고
있던 스님도 발만 동동 구를 뿐이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드디어 추운 겨울도 지나가고 쌓였던 눈이 녹기 시작하였다.
스님은 서둘러 암자를 향해 길을 떠났다. 암자에 도착한 스님은
마당 끝 언덕에 오뚝하게 앉아서 죽은 동자를 발견하였다.
스님은 죽은 동자를 바로 그자리에 곱게 묻어 주었다.
그 해....
여름이 되자 동자의 무덤가에 이름 모를 풀들이
자라났다.
그리고 한여름이 되니 꼭 동자의 얼굴같은 붉은색의 꽃들이
마을로 가는 길을 향하여 피어나기 시작하였다.
이
때부터 사람들도 죽은 동자를 생각하여 이 꽃을 동자꽃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한다
서서히 고도를 높혀가기 시작한다
참새가 방앗간 그냘 지나가랴... 산딸기를 따 먹느라 정신이 없다
백색 눈개승마
핑크색 눈개승마
능선에 올라선다
825.3봉(10:05)
지도상에 이곳에 삼각점이 있다고 표기가 되어 있어 한참동안 숲을 혜쳐
보았지만 삼각점 찾기에 실패를 하고 좌측으로 꺽어져 접산 정상으로 향한다
등로 주위는 온통 산딸기밭이다
간간이 보인는 선답자의 흔적들
접산(接山:835.3m:10:10)
강원도 영월군 북면 마차리와 영월읍 거운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동강을 품고 북쪽에 있는 평창 청옥산을
母山으로 하는 접산(接山)은 석회석 침식에 의한 돌리네 현상으로 땅이 꺼져 사다리꼴 모양으로 겹쳐있기
때문에 겹산으로 부르며, 서쪽에 있는 마차리에서 올려다 보면 두루 펑퍼짐한 것이 마치 봉분처럼 생겼다
하여 묘봉(墓峰) 또는 요봉이라고 한다
이정목 맞은편에는 작고하신 한현우님의 3,000산 표지기가 보인다.
북면 마차리의 지도
등로에서 마차리(磨磋里)의 모습
영월군 북면에 있는 마차리는 밭농사가 주로 행해지는 농촌으로 북면의 면소재지로 마을로 거운리,
문산리와 접하고 서쪽에는 연덕리와 문곡리가 있으며 남으로는 삼옥리, 영흥리와 연결되고 북으로는
공기리와 평창군 미탄면과 맛닿아 있다.골마차, 절골, 분덕이, 솔치, 학전이 등의 자연부락이 있다
영월광업소 마차탄광이 전성기였을 때는 종업원이 4,000여명에 달했으며 연간 8만톤 이상의 무연탄을
생산하였으며, 콩, 옥수수, 감자 농사를 지으면서 생활하고 있다.
접산 정상 아래에 있는 돌리네 지형
암석은 극히 미량만 물에 용해되지만, 그 용해성은 암석의 화학 구조에 의해 크게 달라진다.
석회암은 탄산칼슘으로 되어 있어 다른 암석에 비해 물에 대한 용해성이 높다.
석회암이 물의 흐름에 의해 침식되어서 바위가 조금씩 물에 녹아 돌리네, 종유동등의 특수한
지형이 형성되며, 이러한 특징적인 지형을 카르스트 지형이라고 한다.
산딸기로 체력을 보충하고...
능선에 부는 바람이 寒氣를 느낄 정도로 춥다
능선 가운데는 후손들이 돌보지 않은 방치된 묘지가 보인다
희미한 등로가 보이고 산딸기 나무들이 상당히 성가시게 군다
시원한 바람이 추위를 느낄정도로 불고 공기는 참으로 맑고 깨끗하다
직진의 등로라 알바할 곳은 없어 보인다
빨간 딱총나무 열매가 간간히 보인다.
우리의 전통 민속놀이 중에 딱총놀이가 있다. 이대로 긴 통을 만들어 나무 열매나 씨앗
총알을 넣고 그 안에 물에 적신 종이를 채워 압력을 가하면 총알이 날아가는 장난감이다.
그래서 딱총의 옛 이름은 지총(紙銃), 혹은 지포(紙砲)다. 근세에 들어서면서 딱총은 화약을
쌀알만큼 종이로 싸서 장난감 권총에 장전하여 충격으로 소리가 나는 형태로 발전했다
딱총나무는 딱총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생각된다.
이 나무줄기의 가운데에 있는 골속은 다른 나무에서는 찾아볼 수 없을 만큼 크다.
골속은 마치 스펀지처럼 생겼다. 수수깡과 같다고 생각하면 크게 차이가 없다.
새끼손가락 굵기만 한 골속은 꺼내서 수수깡처럼 장난감을 만들 수 있다.
이것을 분지르면 ‘딱!’ 하고 딱총소리가 난다고 하여 딱총나무라고 이름을
붙였다.
또 골속은 현미경 실험에 빠지지 않은 재료였으며 가는 뿌리나 나뭇잎 등의 세포를 현미경으로
관찰하기 위하여 두께 0.02밀리미터 정도의 얇은 절단편(切斷片)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대로는
너무 부드러워 자르기가 어려우므로 골속에다 끼워 넣어 절단했다.
요즈음이야 얼마든지 좋은 보강 재료가 있어서 이 방법을 쓰지 않지만, 1980년대에는
식물학 책에도 소개될 정도였다.
딱총나무의 또 다른 이름은 접골목이다. 옛날 사람들은 뼈가 어긋나거나 부러지면 딱총나무의 가지를
까맣게 태워서 가루를 내고 식초를 섞어 환부에 두껍게 바르고 부목을 대어 묶어두는 방법으로 치료를 했다.
딱총나무는 부러진 뼈를 붙이는 나무로 널리 알려져 우리나라, 중국, 일본 모두 접골목이란 이름을 쓴다.
뼈붙이기 이외에도 신경통, 이뇨작용, 위장약 등 여러 가지 병 증상의 약재로 쓰인다.
유럽에서 자라는 서양딱총나무 역시 약으로 쓰이며, 열매로 만든 술은
엘더베리
와인(elderberry wine)이라 하여 상품화까지 되어 있다
곤드레 나물들이 많이 보인다
다시 산딸기 넝쿨의 저항을 받으면서 걷다보니 상당한 높이의 안테나가 있는 봉우리에 도착한다
817봉(10:30)
편안한 등로를 이어간다
잡목의 저항은 시작되고...
풍력발전기가 보이기 시작한다
잡풀이 수북한 임도에서 임도를 버리고 좌측으로 오른다
잡풀에 묻혀버린 이정표에서 탄광 문화촌 방향으로 향한다
뒤돌아 보니 주왕(평창)지맥이 시작되는 계방산은 아련하게 멀게만 보인다
접산 풍력발전소 단지에 들어선다
접산에는 풍력발전기 5기와 관리동 건물이 보인다
풍력 발전기 옆에는 한반도의 산들이 형성된 과정을 적은 빛바랜 안내판이 보인다.
내용을 보면
한반도를 포함하여 부근의 중국 땅은 4억년 전까지 적도지역에 위치하고 있었다.
이런 땅덩어리가 점점 북쪽으로 움직여서 약 1억5천만년 전인 중생대 쥐라기 시대에
아시아의 거대한 대륙과 부딪히게 되었다.
그 결과 우리나라 땅덩어리는 많은 힘을 받아서 큰 지각변동이 있었으며 그 때 수많은 습곡과
단층이 이루어졌다.
이 기간동안 땅덩어리는 점차 높이 올라가 산을 이루게 되었으며 지질학자들은 이를 대보조산운동이라 부른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높은 산들은 중생대 쥐라기 시대의 조산 운동 때 높이 올라온 후에 오랜 세월동안 비와
바람에 꺽이면서 계곡이 만들어 지고 높은 산맥들이 이루어 졌다
북동쪽으로는 오대산과 황병산이 아련히 보이고...
풍력발전기 쪽으로 향한다
810.4봉(10:37)
북서쪽으로 보이는 산은 아마도 새덕산인 듯 싶다
810.4봉 정상에서 풍력발전기 관리동쪽으로
내려간다
조그만 풍력 발전기 5기도 보인다
810.4봉 정상에서 바라본 동강 어라연 계곡의 모습
래프팅 장소로 유명한 어라연(漁羅淵)은 조선조 비운의 왕이었던 6대 단종의 영혼이
신선으로 머물고자 하니 물고기들이 모두 나와 단종을 반기었다는 전설이 깃든 곳이다
풍력발전기 관리동(10:40)
관리동 우측으로 이정표(←정상 1.0km, ↓탄광문화촌3.0km)가 있다.
잡목이 무성하여 등로는 아예 보이지도 않는다
원칙적인 맥길 고집하다가 아주 개고생을 했다.
후답자들은 많이 돌긴 하지만 직진을 하여 뚜렸한 임도로 돌아 가시길...
관리동 옆에도 산딸기들이 너무 많다...오늘 비타민 보충 제대로 한다
나보다도 더 키가 큰 쑥대밭을 헤치고 내려간다
멀쩡한 집 나두고 뭔 지랄인지?...나도 나를 모르겠다
천신만고 끝에 임도로 내려선다.
내려온 길을 뒤돌아 본다
임도(10:50)
이정표에는 탄광 문화촌이 유난히도 많이 등장하는데 산꾼들에겐 아무런 도움이 안되는 이정표다.
영월군 북면 마차리에 있는 탄광 문화촌은 한참 석탄이 국가의 중요한 산업이었던 60년대와 70년대
탄광촌을 모습을 재현한 일종의 박물관인데 크게 탄광촌 생활관과 갱도, 그리고 야외전시 등 몇 개로
나눠져 있는데 탄광촌 생활관에서는 광부들의 삶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란다.
좌측 능선이 등로이나 올라가 보니 우거진 잡목으로 인해 도저히 갈 수가 없어 그냥 임도로 향한다
산딸기가 갈 길 바쁜 산꾼의 발길을 붙잡는다
강원도 명품 자전거길 이정표가 나오고...
임도를 버리고 좌측 능선으로 올라간다
묘지(10:55)
묘지에서 우측으로 올라서니...
이정표가 나온다
765.7봉(10:58)
765.7봉 정상에는 묘지 1기가 있고 지맥길은 직진이나 대부분 산꾼들이 우측으로 갔는지
시그널이 우측으로 걸려있다...우측은 조금전에 헤어진 MTB자전거 길이다
원칙대로 직진길로 가니 묘지 1기가 나온다
급경사의 내리막길
등로는 보이질 않고...
개고생을 하면서 임도로 내려서는데 선답자들이 임도로 간 이유를 알 것만 같다
임도(11:07)
영월군 북면 마차리에서 영월읍 거운리로 이어지는 임도인데 차량이 다닐만큼 넓은 임도이다
임도에서 바라본 마차리쪽의 모습
거운리쪽은 조그만 팔각정이 보이고 1톤 트럭이 서 있다.
아침을 일찍 먹은 탓인지 허기도 지고하여 간식을 먹으려고 팔각정을 향하는데
50대쯤 되어 보이는 남여가 멀쩡한 대낮에 사랑놀음을 하고 있는게 아닌가.
얼른 눈길을 돌려 되돌아 온다...남의 사랑놀음에 방해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임도를 따라서...
임도를 버리고 다시 능선으로 올라간다
등로는 아예 보이지도 않는다...바람은 션하게 불고 이곳에서 베낭을 내려놓고 간식을 먹으며 휴식을 취한다
다시 길을 떠나 능선으로 올라선다
커다란 엄나무를 만나고...
770봉(11:30)
좌측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안부(11:38)
소나무에 ‘→덕안사 방향’이란 낡은 표지판이 걸려있다.
다시 능선으로 올라간다
안테나봉(11:43)
어디에 사용되는 건지는 모르겠으나 최근에 설치한 모양이다
또 다시 등로가 조금씩 거칠어지기 시작한다
우산나물 군락지를 지난다
우산나물은 국화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 풀로, 생약명은 토아산(兎兒傘)이며
주로 어린잎과 줄기를 나물로 이용해 왔으며, 옛적에 중요한 구황식물이었다.
다른이름으로는 우산채,우산초, 일파산, 파양산,남천선, 철양산 등의 이름이 있고,
모두 우산의
모습과 관계있는 우산
산(傘)자를 넣어
부르고
있다.
토아산(兎兒傘)이라고 하는데, 문자 그대로 어린 토끼의 우산이라는 뜻이다.
우산나물의 새순은 그대로 우산을 접어논 모습이고 ,우산을 펴는 형상으로
성장한다.
우산나물은 한편 삿갓나물로도 불리고 있는데, 삿갓나물에는 국화과의 우산나물과
백합과의 삿갓나물(생약명 : 조휴)의 2종류가 있는 셈이다
우산나물의 효능
우산나물은 염증을 줄여주고, 통증을 완화해주는 작용을 하며, 한방에서는 진통, 거풍, 소종, 해독
효능을 가지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 거풍 : 질병의 원인이 되는 바람을 흐트러뜨려서 사라지게 하는 것
※ 소종 : 부은 종기나 상처를 치료하는 것
※ 관절염, 뼈마디가 쑤시는 증세, 근육이 굳어 감각이 없어지는 증세, 악성종기 등
※ 독사에 물렸을 때 해독약으로 쓰임
갈림길(11:50)
지맥길은 우측으로 이어지나 직진으로 조금 더 가면 족보가 있는 803.2봉이 있다.
오늘은 날머리가 영월 읍내라 서울가는 차를 타는데 문제가 없을 듯 하여 803.2봉으로 향한다
오름길에는 산딸기를 비롯한 가시식물들의 태클이 상당히 심하다
고라니 침소
베낭속의 음악소리에 놀라 서둘러 도망을 간다
쉼터(11:58)
803.2봉에 도착한다
803.2봉(12:00)
다시 갈림길로 되돌아 와서 좌측으로 내려간다
안부(12:10)
좌측 사면길을 버리고 낙엽이 수북한 직진길로 올라간다
785봉(12:11)
다시 좌측으로 내려간다
알광대버섯
맹독성의 버섯으로 식용으로 사용할 수가 없다
안부(12:15)
멧돼지 놀이터
션한 바람을 맞으며 능선을 걷는데 좌측으로 조금전에 오른 803.2봉이 보인다
벌목지 임도 내리막길이 나온다
벌목지 아랫쪽엔 영월군 북면 마차리에 있는 덕안사가 아련히 보인다
등로 우측에 있는 벌목지의 모습
송이골(488m:12:33)
영월군 영월읍 삼옥리 송이골에서 북면 마차리 절골로 가는 고개로 송이골이란
지명은 송이골 마을에서 따온 듯 하다... 벌말 북쪽에 있는 소나무 숲이 무성한 곳으로
이 곳은 자식에게도 안 가르쳐 준다는 송이밭이 있어서 '송이골'이라고 한다.
송이골 나무에 걸려있는 안내판
송이골 오르막길에서 베낭을 내려놓고 약간의 휴식을 취한다
송이골 오르막에서 바라본 육백마지기와 청옥산의 모습
청옥산(靑玉山:1255.7m)은
강원도 평창군 미탄면과 정선군 정선읍에 걸쳐 있는 산으로 정상에는 표지석과 이정표
삼각점이 있고 가리왕산(1,561m)에서 주왕산(중왕산1,371m)으로 이어지는 남쪽 능선
끝에 솟은 산으로 능선이 비교적 평탄하며 산세가 육중하다
지명의 유래는 청옥(靑玉)이라는 산나물이
많이 자생하는 데서 유래하였다고 하며
청옥산 정상에서 약 0.5km 거리에는 면적이 볍씨
600두락이나 된다 하여 육백마지기라
불리는 곳이 있는데 증갈이무를 비롯하여 주로 고랭지 채소를 재배하는 곳이다
나홀로 산행길에 유일한 동반자인 라디오
다시 오르막길로 올라 가는데 꼬리진달래가 지금 피기 시작한다
꼬리 진달래(꽃말:사랑의 기쁨)
잎은 어긋나기하고 도란상 타원형 또는 거꿀피침형이며 첨두 예형이고 길이 2 ~ 3.5cm로,
표면은 녹색이고 흰색 점이 있으며, 뒷면은 갈색 비늘조각이 밀생하고 잎자루 길이는
1 ~ 5mm로 짧은 털과 비늘조각이 있다.
꽃은 6 ~ 8월에 피며, 총상꽃차례에 20개씩 꽃이 모여 달리고, 포는 넓은 달걀모양이고,
꽃대 길이 6 ~ 8mm로 흰색 샘이 있으며, 꽃받침조각은 작으며 샘이 있고 밑부분에 2개의
작은포가 있으며 꽃부리는 깔때기모양이고 지름 1cm정도로 흰색이며, 멸종위기종 2급 식물이다
능선으로 올라간다
안부(12:45)
저 북쪽이면 아마 주왕산(중앙산), 백적산, 잠두산 정도인 듯 싶다
우측의 벌목지를 바라 보면서 능선으로 올라간다
557봉(12:55)
좌측으로는 봉래산 별마로천문대가 보인다
멸종 희귀식물이라는 꼬리진달래 군락지를 지난다
능선에 올라 지맥길은 좌측으로 꺽어진다
611.7봉(13:10)
611.7봉 정상에는 사르리님과 백두사랑 시그널이 바람에 휘날린다
점심식사(13:15~25)
베낭 무게를 줄이기 위해 오늘 점심은 감자와 우유, 디저트로는 참외이다
식사를 끝내고 급경사의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안부(13:30)
583봉(13:33)
다시 내리막길
안부(13:38)
다시 능선으로 올라간다
606.9봉(13:50)
안부로 내려갔다가 완만한 능선을 따른다
희미한 등로를 따라서 걷다가 보니 삼각점이 있는 655봉에 도착한다
655봉(14:12)
655봉 정상 삼각점(△영월 424 / 2004 재설)
655봉 정상에서 급하게 우측으로 꺽어져서 지맥길을 이어간다
등로는 잘 보이지 않으나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간간히 보인다
내리막길로 내려오니 관리가 되지 않는 묘지가 보인다
소나무숲을 따라서 내려온다
플랑카드로 둘러싸인 묘지가 나오고...
영월읍에서 북면으로 이어지는 2차선 도로가 지나가는 9번 군도로 내려선다
분덕재(分德峙:472m:14:30)
영월군 북면 분덕이 마을에서 영월읍 속골로 넘어가는 고개로 9번 군도가 지나간다
마차탄광에서 영월 화력발전소까지 삭도를 이용하여 케이블카(솔개바가지)로 무연탄을
수송하였는데, 그 거리는 12km나 되었고 이를 떠받치는 철탑은 48개나 되었다.
삭도는 우목골 입구와 분덕치, 속골입구, 덕포리 역앞의 축강둑에 있었다.
「영월부읍지」에 『分德峙在付北距十里』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마차광업소가 한창 호황을 누릴 때는
영월에서 물건을 사 삭도의 케이블카로 물건을 운반했는데 이는 영월에서만 볼 수 있었던 풍경이었다.
케이블카는 1943년 영월 화력 발전소 건설 때 만들어져서 1973년말에 없어졌다.
케이블카는 높은 하늘에 떠있는 솔개(새매)같다고 해서 솔개바가지라고 했다.
분덕재에 있는 수준점
분덕재에서 10분 가까이 휴식을 취한 다음에 다시 길을 떠난다
임도를 따라서 올라간다
벌통이 있는 넓은 공터에서 좌측으로 꺽어진다...벌통 뒷쪽으로 보이는 능선이 지맥길이다
잡풀이 무성한 임도로 올라간다
지나온 접산과 풍력발전기가 보인다
숲속으로 들어선다
이동통신탑(14:42)
능선으로 올라선다
524.4봉(14:50)
524.4봉을 내려서니 좌측 아랫쪽으로 고사리밭이 보인다
직진으로 맥길을 이어가는데 우측 나뭇가지 사이로 시루봉이 보인다
묘지(14:55)
묘지옆에 있는 뫳돼지 놀이터
좌측 사면의 뚜렸한 등로를 버리고 우측으로 올라간다
무명봉(14:58)
다시 내리막길
안부(15:00)
다시 오르막길...격려 감사드립니다
545봉(15:05)
등로는 잘 보이지 않는다
안부(15:10)
완만한 능선
십자 안부(15:14)
좌측으로는 영월읍 영흥리쪽이고 우측으로는 시루봉으로 이어지는데 맥길은 직진이다
완만한 능선으로 올라간다
시루산 갈림길(15:20)
이정표(↑발산 1.0km ↓분덕치 1.2km →시루산(마차)1.64km)가 있다
시간상 시루산을 같다 오기는 무리일 듯 싶어 포기를 한다
발산 1.0km는 엉터리 표기이다...이곳에서 발산까지 3km 가까이 된다
543.1봉(15:21)
외롭게 피어있는 엉퀑퀴
편안한 등로를 따라서 걷는다
완만한 오르막길
548봉(15:24)
내리막길에서 우측으로 살짝 꺽어진다
발산가는 길
쉼터봉(15:29)
등로 좌측 아랫쪽에는 사과밭이 보인다
앙증맞은 원추리(꽃말: 기다리는 마음)
좌측으로 꺽어지고...
안부(15:32)
벌목지를 지나 다시 오르막길
안부에서 바라본 물안골(水岩洞)의 모습
이 골짜기는 장마철이 되면 많은 물이 땅속에서 쏟아져 나오므로
'수암동' 또는 '물안골→무랑골'이라고 하며 그 뒤에 시루봉이 있다.
골짜기 안에는 새로 조성한 듯한 사과밭이 있는데 이 추운
영월에도 사과가 되는 모양이다
지맥길에서 벗어나 있는 시루산(688m)의 모습
영월군 북면 마차리에 있는 산으로 산 아래로 유유히 흐르는 평창강이 영월읍을
목전에 두고 서강으로 지명이 바뀌는 그 강변에 우뚝솟은 산이 시루산이다.
예로부터 시루, 옥녀, 향로, 노인, 국사, 깃대라는 지명이 들어간 봉우리는 무조건
산(山)이 되지 못하고 봉(峰)이 되었는데 하지만 영월에 있는 이 산은 당당히 시루산이다
영월의 시루산에 대한 지명의 유래는 알 길이 없다.
쭉쭉빵빵 팔등신 소나무 숲을 걸으며 마음껏 힐링을
즐긴다
능선에 올라 우측으로 꺽어지니...
이정표 2개가 서 있는 능선 갈림길에 올라선다
장릉 갈림길(15:50)
우측으로는 엄홍도 기념관과 장릉으로 가는 길이고 맥길은 발산 방향으로 이어진다.
단종이 삼촌인 세조에게 왕위를 찬탈 당하고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영월에 유배되었다가
1457년 영월읍 관풍헌에서 비참하게 살해되어 동강에 시신이 버려졌는데 이 시신을 몰래
수습하여 암장한 분이 당시 영월호장((寧越戶長:조선 시대 향리직의 우두머리) 엄홍도였다.
1457년 10월 24일 단종은 조정에서 내려진 사약을 받고 승하하여 그 옥체가 동강에 버려지자
단종의 시신의 거두는 자는 삼족(三族)을 멸하다는 어명에도 불구하고 가족과 함께 시신을
암장하여 후대에 충신으로 추앙받고 있는 인물이다
장릉(莊陵:사적 제196호)...사진 인용
강원도 영월군에 있는 조선 6대 임금인 단종의 능으로 영월읍 영흥4리에 있으며,단종이 세조의
왕위찬탈로 1457년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영월에 유배되었다가 상왕복위계획이 탄로되어 죽음을
당하자 영월호장 엄흥도가 비밀리에 장례를 치렀다.
선조 때 김성일(金誠一)·정철 등의 장계로 묘역을 수축하고 표석을 세웠다.
1610년(광해군 2) 노릉암이라 했으며 1668년(현종 9)에 수호하는
참봉 2명을 두었다.
1681년(숙종 7)
대군으로 추봉되었으며 1698년 복위되어 묘호를 단종, 능호를 장릉이라 했다.
상설은 추봉된 정릉의 예에 따라 난간과 무석을 설하지 않았고, 양식은 간단하게 작은 후릉 석물의 것을 따랐다.
따라서 장릉의 석물은 숙종·영조 연간에 만들어진 왜소하면서도 간단한 능석물의 선구를 이루는 것이며,
명릉(숙종의 능) 이래 만들어지는 4각옥형의 장명등은 장릉에서 그 첫선을 보이게 되었다
사진 인용
숙부인 세조에게 왕위를 찬탈 당하고 청령포에서 사약을 받고 죽임을 당한 단종은 역사상
슬프고도 애환이 많았던지 단종의 능은 조선조 다른 왕의 능에 비해 다른 것이 많다
조선시대 임금의 능은 한양 백리 안에 모시는 것이 관례였지만 지방에 모셔진 유일한 왕릉이며
낮은 구릉에 조성된 다른 왕릉에 비해 높은 곳에 조성되어 있으며, 대부분의 왕릉이 봉분, 정자각
참도, 홍살문이 일직선상에 조영되지만 단종릉의 봉분은
신좌을향(辛坐乙向:
향해 절을 할 수 밖에 없는 구조이다.
왕이 되지 않았다면 편안한 삶을 살 수 있었던 단종은 야욕에 눈이 먼 숙부인 세조에게 왕위를 찬탈
당하고 어린나이에 영월로 유배되어 생을 마감한다..당대에 세조를 쫒아 권력을 탐하던 한명회의
무리들...왕위를 찬탈하고 조카의 목숨까지 빼앗은 세조가 권력을 위해 동원할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폭력과 위선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요즘의 현실과도 이리도 비슷한 지...
전 정권의 적폐청산을 한다면서 많은 사람들을 괴롭히고 민초들을 힘들게 하는 것이...
전 세계적으로 잘 나가는 1류 기업들을 시민이라고는 한명도 없는 시민단체들을 내세워
옥죄고, 노동계는 맨날 데모만 하고...민초들은 남의 담장 벽돌 한장만 부쉐도 감빵을 가는데
어느 노동 단체는 국회 담장을 때려 부수어도 아무 벌도 안받는 세상...이게 나라냐
장릉쪽을 바라보면 늘 역사는 승자의 것이라는 걸 실감하며 발산으로
향한다
노루발(꽃말:소녀의 기도)
무명봉(15:54)
안부(15:56)
돌탑(15:58)
앙증 돌탑...바람이 불면 안 넘어질라나?
발산가는 길
조망바위(16:00)
조망바위에서 오늘 내가 걸어온 능선을 뒤돌아 본다.
참으로 감회가 깊다...범여의 숏다리가 저 능선을 걸었다니...
영월에서 정선으로 넘어가는 고개 너머로 죽렴(석항)지맥 능선에 있는 고고산과
완택산도 보이는데 언젠가는 걸어봐야 할텐데 그때까지 체력이 따라줄런지?
맞은편의 봉래산 정상에는 별마로천문대가 보인다. 별마로는 별+마루(정상)+로(고요할로)의
합성어로 “별을 보는 고요한 정상”이라는 뜻이라는데 봉래산(798.5m)에는 천문대와
패러글라이딩장이 있고 자동차로 정상까지 오를 수 있다고
한다.
암봉(16:03)
다시 내리막길로 내려간다...지나온 시루산 갈림길의 이정표에 ‘발산 1.6km’는 완전 엉터리다
암릉구간의 능선에 올라선다
암봉(16:08)
암봉 능선에 올라서니 바로 앞에는 단종의 애환이 묻어있는 청령포가 보이고 그 너머로는
2014년 12월 나홀로 걸었던 영월지맥 2구간인 국지산, 삼태산(누에머리봉)이 아련히 보인다
다시 안부로 내려선다
오르막을 오르는데 뚜렸한 사면길을 버리고 좌측 능선으로 올라간다
힘들고 치고 올라서니 이곳이 지도상의 발산인데 조망도 없고 볼 품도 없다
발산(鉢山:674.4m:16:14)
지도상에는 이곳이 영월읍의 진산이라는 “발산”이라고 하는데 진산치고는 참으로 볼 품이 없다
바닥에 있는 삼각점은 다른 지역 삼각점과도 다르고 판독도 불가능한데 조금 더 가면 가짜 발산이 있다
오리지널 발산을 보고 다시 길을 떠난다
조금전 오르막길에서 헤어진 사면길을 다시 만난다.
다시 완만한 내리막길
안부에서 다시 다시 오르막을 올라서니 발산 정상석이 2개나 있고 정상 형세를 하는 676.1봉 나온다.
어쨌던가에 나 역시 이곳을 발산이라 생각하고 자료를 정리한다.
발산(鉢山:676.1m:16:25)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와 북면 문곡리 경계에 위치한 산으로, 영월읍에서 올려다보면 삼각형으로
보여 삼각산이라고도 하며, 지도에 따라 발산(鉢山) · 발본산(鉢本山)으로 표기되어 있는 경우가 있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발산(鉢山)으로 기재되어 있는데 "군의 북쪽에 있는 진산(鎭山)이다."라고 쓰고 있다.
『영월군읍지』에는 "군의 북쪽 5리에 있다. 평창 두만산의 서편에서 뻗어 나와 읍의 주산(主山)이 되었다.
장릉 밖 청룡(靑龍)에 해당된다."고 쓰고 있으며 『여지도서』와 『영월부읍지』에도 같은 내용이 나온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발산(鉢山)이라 표기하고 "군의 북쪽 5리에 있는 진산(鎭山)이다."
라고 설명하고 있다.
『1872년지방지도』에는 발본산으로 표시되어 있고, 산에는 장릉과 함께 서쪽 계곡에 668년(신라 문무왕 8)에
창건한 보덕사가 있고, 1517년(중종 12) 단종을 추모하기 위하여 세운 영모전, 그리고 단종이 이곳에 대한
꿈을 꾸고 지은 금몽암(禁夢庵) 등이 있다.
『조선지지자료』에는 발산으로 나오는데, 군내면 영흥리에 있다고 쓰고 있다
다른 자료에는 매봉산이란 지명도 보인다
인증샷
충절의 고장이자 단종의 애환과 김삿갓의 발자취가 서려있는 영월의 모습
강원남부 내륙의 관문인 영월은 1970년대까지 곳곳에 산재한 탄광이 호황을 누리며 번성했던
사실상 탄전도시였으나1970년 12만3000여 명에 달하던 인구는 석탄산업 합리화 조치 이후 급격히
줄기 시작해 2000년대 들어서는 겨우 4만 명 선에 턱걸이하고 있다.
영월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바로 비운의 왕 단종의 애사가 서려있는 장릉(莊陵)이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장릉은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청령포에 유배됐던
단종(조선 제6대)이 17세 되던 해(1457년) 사약을 받고 묻힌 곳이다.
대부분의 조선왕릉군이 서울, 경기 일원 평지에 있는데 반해, 거리가 먼 강원 영월의 언덕배기 위에
외롭게 자리 잡고 있는 것이 이채로운데 무신상이나 석호등이 없는 점은 조선왕실의 법도에 따라
모셔진 다른 왕릉들과는 달리 유배라는 특수상황에서 조성됐음을 쉽게 짐작케 한다
장릉옆에 있는 정려각은 ‘삼족을 멸한다’는 어명에도 불구하고 목숨을 내걸고 단종의 시신을 수습해 장릉에
몰래 모신 영월 호장 엄흥도의 혼을 기리는 곳으로 영월이 ‘충절의 고장’으로 불리게 된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다.
‘참배를 하면 좋은 일이 생긴다’는 속설로 인해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던 장릉은 요즘 더욱 북적거린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이후 종전보다 15~20%가량 많은 관광객들이 장릉을 찾고 있기 때문이다.
장릉 경내엔 단종 관련 유품을 비롯, 사육신과 생육신의 위패 등 각종 사료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단종역사관도 자리 잡고 있다.
역사 향취 속 자연의 파노라마 (신택리지, 최승현, 경향신문) 인용
단종과 함께 영월의 역사와 문화를 대변하는 것은 방랑시인 김삿갓의 유적지다.
영월읍에서 27㎞가량 떨어져 있어 김삿갓면(옛지명:하동면) 와석리는 난고 김삿갓 선생의 문학세계와
시대정신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으로 읍내에서 승용차로 30분 거리여서 방문객이 많은 편이다.
이곳에는 김삿갓의 묘와 생가를 비롯해 시비와 문학관, 문학의 거리가 조성돼 있다.
문학관 내에는 김삿갓의 친필과 장원급제 시 등 다양한 자료들이 전시돼 난고 선생의 해학과 풍류를
간접적으로나마 엿볼 수 있으며 조상을 욕되게 하는 글로 장원급제를 했다는 자책감에 22세부터 전국
방방곳곳을 떠돌아다니며 시대상을 반영한 수많은 시들을 남기고 57세(1863년)에 세상을 등진 김삿갓은
당초 전라도 화순에 묻혔었다. 이후 차남 익균에 의하여 유년시절을 보낸 영월군 하동면 노루목 계곡으로
이장되면서 이곳에 유적지가 조성된 것이다.
秋美哀歌靜晨竝(추미애가정신병)
雅霧來到迷親然(아무래도미친년)
凱發小發皆雙然(개발소발개쌍년)
愛悲哀美竹一然(애비애미죽일년)
퍼지니 우아한 안개가 홀연히 드리운다.
기세 좋은
것이나, 소박한 것이나
모두가 자연이라 사랑은 슬프며,
애잔함은 아름다우니 하나로 연연하다
서당내조지(書堂乃早知)
서당을 일찍 알았으니,
방중개존물(房中開尊物) 방안에는 존귀한 물건들이라,
생도제미십(生徒諸未十)
배우는 자는 통 털어 열 명도 안 되는데,
선생내불알(先生來不謁) 선생이 와도 인사마저 없더라...
이 시는 김병연(김삿갓)이 서당 훈장한테
하루 밤만 재워 달라는 요청을 야박하게 거절 하자,
김삿갓이 훈장을 조롱하는 욕시(辱詩) 내용이다. 대문장가였던 방랑시인 김삿갓도 화순땅의
절경에 반해서 마지막 생을 마감한
종명(終命)지가 바로 화순군이다.
발산에서 바라본 영월읍내의
모습
발산에서 바라본 별마로 천문대가 있는 봉래산의 모습
봉래산(799m)은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와,
삼옥리사이에,
있는
산으로,
영월읍의
북동쪽에
있다,
봉래산은, 사육신(의 한 사람인, 성삼문(成三問)이, 단종 복위에 실패 한 후, 처형장으로 끌려가면서,
읆은 시조(時調)에, 나오는 산으로도, 유명하며, 또 영월팔경(寧越八景)의 하나인, 봉래채운(蓬萊彩雲)은,
봉래산 기슭을 휘감아 도는 운무(雲霧)모습을 말 하는 것으로 봉래산 아래로는, 어라연(魚羅淵)을 거처,
흘러온, 동강의 물줄기가 유유히 흐르고 있으며, 봉래산 아래 동강변(東江邊)에 있는, 금강정(錦江亭)과
낙화암은(落花巖), 단종애사(端宗哀史)를 고이 간직한, 장소( 場所 )이기도 하다
봉래산 기슭인 속골에는, 송산사(松山寺)라는 절이 있으며 이 절이 있는 곳에, 소나무가 울창하여,
절 이름을 송산사라고 하였다고 하였으며 또한 일본 강점기 시절, 영월의 신사(神社)를 관리하던,
일본인 후쿠다(福田)가, 봉래산에다 쇠못을 박아, 영월의 혈( 穴 )을 끊기도 하였던 산이다.
봉래산가(蓬萊山歌)...성삼문
발산 정상에서 영월읍을 바라보며 휴식을 취한 다음에 합수점을 향해 다시 길을 떠난다
급경사의 내리막길
봉래산 저 너머 멀리 보이는 능선이 백두대간이 지나는 태백산쯤이렸다
2104년 11월 영월지맥 첫구간을 홀로 걸었던 태화산이 뚜렸하게 보인다
아찔할 정도의 급경사 내리막이다
영월경찰서장이 접근금지란 팻말이 붙어있는 건물을 지난다.
우측으로 안전한 길이란 팻말이 붙어있는 우회로가 나온다
그럼 직진길은 위험한 길이란 뜻인가?...위험한 장사가 마진이
좋다고 했던가...직진으로 내려간다
급경사로 내려서니...
나무 사다리가 나오고...
암릉 사이로 내려간다
조금전에 헤어졌던 안전한 길이라는 우회길을 만난다
이곳부터는 편안한 길이다
사육신 성삼문의 詩에 등장하는 봉래산을 다시한번 바라본다
성삼문은 서기 1418년(태종 18년) 충청도 홍주 적동리 노은동(현재 충청남도 홍성군 홍북면 노은리)
외가에서 태어났으며, 태어날 때 공중에서 '낳았느냐'고 묻는 소리가 세 번이나 들렸다 하여 이름을
'삼문(三問)'이라 지었다고 한다.
성삼문이 39세의 짧은 생애동안 남긴 발자취와 업적을 살펴보면 충절과
의리의 삶을 본보기로 보여준 점이다.
성삼문은 수양대군의 왕위찬탈을
불의로 규정하고 단종의 왕위 회복을 도모하다가 발각되어 마침내 혹독한
고문을 받았고, 이에 굴하지 아니하고 자신의 충절과 의리를 끝까지 주장하다가 처참한 최후를 맞았던 것이다.
그의 가족은 남김없이 죽임을 당했고 가산은 몰수되었으니 의리를 지킨 대가는 너무도 컸다.
당시 성삼문도 수양대군에게 협력을 했더라면
부귀영화가 보장되고 자신의 인생도 순탄대로의
행복을 누렸을 것이다.
그러나 성삼문은 수양대군의 행위를 정권의 도둑질로 보고 이에 협력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올바름이라는 가치, 정의라는 가치를 위하여 한 목숨을 바친 것이다
성삼문은 신숙주와 함께 세종을 도와 훈민정음 창제에 바친 그의 학문적 업적을 들 수 있다
앙증맞은 돌탑
능선 아랫쪽에는 제천에서 사북으로 이어지는 38번 국도가 지나가는 봉래터널이 보인다
조망바위(16:43)
조망바위에서 바라본 영월읍내
쉼터(16:45)
안부(16:46)
돌탑(16:50)
안부로 내려와서...
우측 능선으로 가야 하는데 금방 내려와야 하기에...
눈팅이 짓만 하고 사면길을 따른다
봉우리에서 내려오는 길과 금방 만나 쉼터로 내려선다
영월 2터널 위(16:58)
이 능선 아래로 38번 국도 영월2터널이 지나는 곳이다
451봉(17:00)
완만한 내리막길
등로 주위에는 묘지들을 자주 만난다
좌측에서 내려오는 등로와 합류한다
영모전 갈림길(17:06)
이정표(←발산 L=1.9km ↑영모전 L=0.3km →삼호아파트 L=0.3km)가 서 있다
영월의 대표적 서낭당이었던 영모전(永慕殿)은 조선 제 6대 임금인 단종과 추익한(秋益漢) 충신을 모신 곳이다.
정면 세 칸 측면 두 칸의 5량 구조로 된 목조 기와집이며 외벌대의 자연석 기단에 자연석 초석을 사용했고,
그 위에 각기둥을 세웠다. 벽의 정면은 트여있고, 측면과 배면은 막혀 있다. 중인방을 기준으로 벽의 아래는
자연석을 쌓은 화방벽으로 하고, 위는 홍살창으로 되어 있다.
영모전은 원래 영월의 읍치 성황사로, 성황신을 모시던 곳이다.
건립 시기는 정확하지 않으나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성황사가
군 북쪽 3리에 있었다는 기록과 지금 영모전의 위치와 일치하며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56호이다
체육시설이 있는 쉼터에서 우측의 편안길을 버리고 직진길로 향한다
등로는 어지럽고 폐TV 안테나가 많이 보인다
330.8봉(17:09)
또다른 폐 송전탑 자리가 보이고...
영월읍을 바라보며 등로가 없는 곳을 내려선다
지적도근점이 자주 보인다
급경사의 내리막길
철조망에서 좌측으로 내려간다
잡목에 얼굴을 할키고 개고생을 하면서 내려 선 다음에...
밭 가운데로 내려간다
주택가 좁은 길을 빠져나와...
도로로 내려선다
도로 좌측에 영월 성폭력상담소가 보인다
대우보일러 골목쪽으로 간다
영월 우체국(17:25)
영월경찰서를 좌측으로 끼고 걸어간다
도로를 무단횡단하여 영월서부시장 안으로 들어간다
서부시장으로 들어가서 좌측으로 나오니...영월초등학교 정문이 나온다
영월초등학교(17:30)
서부시장 주차장을 지난 다음에...
도로를 건너 대성렉카 골목으로 향한다
영월공고 동문회관(17:32)
영월세무서 앞 교차로를 지난다
상동막국수를 지나니...
이화장 모텔이 나오고...
태화스크린 골프장 골목 안으로 향한다
영월샛별교회 앞 골목으로 들어간다
골목안으로 들어간 다음에 우측으로 꺽어진다
하송리 은행나무(천연기념물 제76호:17:40)
이 나무는 높이가 23m, 가슴 높이의 줄기 둘레가 14.5m, 밑둥 둘레가 13.8m에 이르는 큰 나무로
가지는 동.서로 22.5m, 남.북으로 22m 정도 퍼졌으며 나무의 나이는 1,000년(최대 1,200년)
이상으로 추정된다
전설에 의하면 이 나무속에 신통한 뱀이 살고 있어 개미, 닭, 개 등과 같은 곤충과 동물들이
접근하지 못하며 아이들이 이 나무에서 떨어져도 큰 상처를 입지 않는다고 전해진다.
또한 마을 사람들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은행나무라고 믿고 있으며, 예로부터 이 나무를
신령스러운 나무로 여겨 음력 7월 12일에 치성을 드리면 아이를 얻을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영월 실내 체육관(17:45)
실내 체육관 주차장을 지나...
합수점이 보이기 시작한다
데크목 계단을 지나 합수점으로 향한다
도롯가 옆에는...
개망초가 군락을 이루고 있는데 마치 메밀밭에 온 느낌이다
밭 가운데를 지나 합수점에 도착한다
좌측으로는 동강이 흘러 들어오고...
동강(東江)은 정선군 정선읍의 남쪽 가수리에서 영월군에 이르는 강으로 총 길이 약 65㎞이다.
영월읍 동쪽을 흐르는 남한강의 별명인데, 동강이라는 하천 지명은 현지 주민이 부르는 것으로
영월읍 동쪽을 흐르는 하천이라는 뜻으로 동강은 남한강 수계에 속하며 정선, 평창 일대 깊은
골짜기를 흘러내린 물들이 정선읍내에 이르면 조양강이라 부르고, 이 조양강에 동남천 물줄기가
합해지는 정선읍 남쪽 가수리부터 영월에 이르기까지의 51km 구간을 '동강'이라 부른다.
우측으로는 서강이 흘러들어...
서강(西江)은 평창강과 주천강이 만나는 영월군 한반도면 옹정리부터 동강과 서강이 만나는
영월읍까지의 구간을 말하며 ‘영월군을 동서로 가르며 흐른다’ 하여 동쪽을 동강, 서쪽을 서강으로 부른다.
그러나 이는 속칭일 뿐 공식적인 하천명은 ‘평창강’인데 이 강은 평창강 하류에 해당되는데, 동강과는
달리 유속이 느리고 하천 폭이 넓으며 강변을 끼고 많은 마을들이 위치해 있다.
서강(西江)은 영월군 한반도면 옹정리 선암마을에서 시작하여 단종의 첫
유배지인 청령포를
감싸안으며 영월읍 합수머리에서 동강과 만나 남한강으로 흐르는데 동강을 물길이 험한 남성적
상징의 수강이라고 한다면,서강은 물길이 순한 여성적 상징의 암강으로 표현되며 사람의 발길이
잦지 않아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고이 간직하고 있다
합류한 다음에 남한강으로 향한다
동강과 서강이 만나는 합수점(17:55)
한강기맥 계방산(1577m)의 동쪽 2.3km(1462m 삼각점에서 동쪽 210m 지점)에서 출발하여
도상거리 약 83.1km를 걸어서 영월읍 하송리 동강과 서강이 합수하는 지점에서 맥이
입수하면서 같이 걸어왔던 범여 발걸음도 베낭을 이곳에서 내려놓으며 맥길을 마무리 한다.
버스 정류장으로 가는 길에서 바라본 발산(좌측)과 봉래산(우)의 모습
영월시외버스 터미널(18:20)
합수점에 걸어서 터미널에 도착하니 동서울 터미널로 가는 19시 40분 막차만 남아 있다.
일단 표를 예매하고 터미널 맞은편에 있는 영월 서부시장에 들려 국밥 한그릇으로 저녁을
해결하고 시장 안의 화장실 문을 잠그고 깔끔하게 씻고 옷을 갈아입고 터미널로 향한다
영월시외버스 터미널 버스 시간표
시장에서 터미널로 와서도 40분 이상을 기다린 다음에 동서울로 가는 막차에 몸을 싣는다
첫댓글 멋진낭만에 산꾼님 멋지십니다.
솜낭자! 혼자 개고생 산꾼을 멋있다니...대간길 한번 따라 나서고 싶다마는 저질 체력이라 무박은
엄두도 안 날뿐더러 어둠속에 걷는 건 딱 질색이고 수술이후 산행 속도가 나질 않아
민폐를 끼칠까봐 엄두도 못내고 있습니다
평창지맥 갈무리를 축하드립니다. 길도없는길을,,,산딸기덕분에 기력회복하고,,먼길 고생많으셨습니다. ^^)
감사! 산딸기로 기력보다는 팔각정의 사랑놀음 몰래 본 것이 큰 수확이었습니다
나홀로 산행의 묘미가 이렇게 좋을줄은 미쳐 몰랐습니다...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