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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9.10 서울대공원 코스모스 257 사진/함동진
목줄기에 흐르던 땀이 마르고 시끄럽기까지 하던 매미울음 마저 잠잠해지면
하늘이 높아지고 맑아진다.
파아란 하늘아래 동네 어귀나 도로변에는 가녀린 코스모스 꽃이 한창이다.
나는 코스모스를 보면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이탈리아의 천재 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가
피렌체의 부호 프란체스코 죠콘다를 위해 그의 부인 엘리자베타를 그린 초상화
모나리자의 미소를 떠올린다.
코스모스 꽃의 모습은 강렬하지도 않고 맹숭맹숭하지도 않게 편안함 자체,
곧 미소처럼 안심할 수 있는 차분한 감정을 이르켜 주는 꽃이다.
나의 총각시절에 일하고 있던 전주의 J신문사 옆 S버스운수사에는
언제나 말이 없고 모나리자의 미소만을 간직한 처녀가 일하고 있었다.
업무적인 일 외에는 절대로 말을 하지 않았다.
과수원에서 살고 있는 한 친구가 나에게, 추석을 지내고 빠알간 사과를 가지고 와
주기에 그 처녀에게 큰 것으로 두개 나누어주었더니
목례만 할뿐 여전히 모나리자의 미소를 보내왔다.
그 미소 때문에 많은 관심을 갖게 하고 마음까지 사로잡히게 되었다.
나는 추석이 지난지 1개월도 못되어 징집영장을 받고 군에 입대하게 되었다.
전주역에서 논산 훈련소로 향하는 군용열차 차창 밖으로
철로 변과 도로변에는 온통 하늘거리는 코스모스 꽃으로 넘실거렸다.
이 꽃 모두가 S사의 처녀모습 같았고, 그녀의 미소를 보는 듯 하였다.
그후부터는 코스모스의 계절이 오면 그 처녀의 아리따움과
모나리자의 미소를 떠올리게 되었고,
그 꽃의 개화시기 까지 관찰하게 되었다.
20세기말인 1999년 금년은, 6․25전쟁이 있었던 1950년의 여름기후와 흡사하였다.
봄부터 마른 가뭄이 계속되어 연일 기온이 30℃를 웃돌며
따가운 햇볕은 지상의 모든 것을 태워 버릴 것만 같았다.
혹은 이러한 가뭄과 이상고온 현상이 엘리뇨와 라니냐 때문이라 하기도 한다.
최근 「눈과 얼음 연구 세계기상기구 위원회」는 히말라야 빙하가 40년 내에
완전히 해빙하므로 해수면이 급상승할 것이며,
어쩌면 몰디브제도나 마셜제도 같은 아름다운 산호섬들이
물 속에 잠겨지게 될 것이라는 예견을 내어놓았다.
월초부터 때 이른 코스모스 꽃이 여기저기 피어나 꽃의
개화시기에 따른 시비가 엇갈리고 있다.
시중 일간지의 신문들은 7월에 코스모스가 개화한 것은,
아침저녁 가을 같은 신선한 날씨 때문에 개화시기가 두 달 정도 빨라졌다고 보도하였었다.
이에 반하여 경남 함안의 한 고등학교 농업교사인 Y씨는
, 때 이른 코스모스의 개화에 대한 소견을 이렇게 펼치었다.
“코스모스는 원래 일조시간이 일정시간 이하가 되면 개화가 촉진되는
단일식물(短日植物)로 우리 나라 만생종 품종은 가을 꽃길을 장식하여 왔다.
그러나 최근 도로변에 개화한 코스모스는 한계일장(限界日長)이 긴
조생종 품종(베르사유등)으로
봄에 파종하면 우리 나라의 한계일장과 무관하게 6~7월에 개화한다.
결코 기상이변에 의해 개화시기가 앞당겨진 것이 아니므로……”라 하였다.
필자의 경험과 관찰의 결과는 전자들과 다르다. 코스모스의 정상적인 만개시기는
9월 하순에서 10월 초순으로 기온이 15℃ 안 밖일 때가 개화적기가 된다.
그러나 이변이 발견되기도 한다. 농업전문 교사인 Y씨의 주장대로
만생종과 조생종이 각각 실존은 하겠으나
6~7월에 개화한 코스모스 꽃이 결코 조생종만은 아니다.
생물에게는 종족보존의 본능이 있다.
이 본능이 식물에 있어서는 더 강렬한 것 같다.
비정상적인 생장환경에서 더 뚜렷이 관찰된다.
때 이른 코스모스 꽃은(다른 식물도 같은 원리로 관찰됨)
땅이 메마르고 황량하여진데 그 원인을 두고 보아야 한다.
강렬한 태양 아래 사질토양으로서 메마른 땅에는 생장에 필요한
습도와 거름기가 없기 마련이다.
이러한 조건으로는 코스모스가 성장할 수 없기 때문에 조로(早老) 현상으로,
종족보존 본능에 의하여 죽기 전에 때 이른 개화를 하며 결실 하려 하는 결과일 뿐이다.
반대로 음습하고 거름기가 많은 곳에 심어진 코스모스는 늦가을 아니 겨울이 와도
계속 성장하므로 개화를 하는 둥 마는 둥 봉우리 없이 무성한 채
꽃을 피우지 못하고 얼어죽기까지 한다.
코스모스는 국화과의 1년생 초본으로 멕시코가 원산지이다.
키가 1~2m 까지 자라며 곁가지가 많이 돋고 가는 실 모양을 하고 있다.
꽃은 흰색, 연분홍색, 진분홍색 등 여러 가지의 빛깔이 있고 겹꽃으로 피는 것 등 변종도 있다.
우리 나라에서는 ‘살사리꽃’이라는 별도의 이름을 갖고 있기도 하며
꽃말은 ‘사랑과 의리’로 되어 있다.
다른 꽃들과는 달리 꽃에 얽힌 신화나 전설이 없다.
다만 신이 이 세상에서 가장 먼저 만들었다는 알송달송한 이야기만이 전해져 올뿐이다.
코스모스가 우리 나라에 들어온 것은 1910년대로 기독교 선교사들에 의해
종자로 들여와 퍼트려졌다고 한다.
유럽에는 18세기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중국에서는 화요법(花療法)으로서 심신이 지친 환자에게 생약으로 사용된다고 한다.
다시 코스모스의 계절이 왔다. 코스모스 꽃이 만개하던
전주-삼례-익산-논산을 잇는 그 너른 들의 도로에 나서고 싶다.
아직도 그곳에 허리 잘록한 가녀린 처녀가 모나리자의 미소를 짓고 서있지나 않는지?
코스모스 꽃의 아리따운 물결 속으로 그녀의 미소를 건지러 뛰어들고 싶다.
인디아의 아가씨를 닮은 가무잡잡한 피부와 까만 눈동자의 삼단머리 결 처녀,
지금은 뉘 집 아낙으로 모나리자의 웃음 닮은 딸을 낳아 기르고 있을까?
그리움의 계절에 모나리자의 미소가 석양빛에 불타는 코스모스 꽃 위로 오버랩 되어 온다.
아, 추억앓이로 몸살을 겪는 회억의 계절이여! ((1999. 12. 1 <오늘의문학>겨울호),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