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효 아키텍트-135] 이기옥의 건축언어 `따로 또 같이`(together and separately)(上)
매일경제 2022.07.15
[효효 아키텍트-135] 서울 인사동의 시작이자 끝이 되며, 북촌과 삼청동으로 오르는 길목인 안국동 로터리의 상징적 건물인 안국빌딩과 대비를 이루는 건물은 낮고 긴 수평성을 특징으로 하는 안국빌딩 신관(2010)이다.
안국빌딩 신관 / 사진 제공 = 윤준환 작가
안국빌딩 신관은 원래 지상 3층, 지하 1층의 규모의 붉은색 타일 건물이었다. 필립건축사사무소의 이기옥 건축가는 사람들의 눈높이로 마주할 건물 정면의 매스(덩어리)는 2층 높이 위로 띄워 위압적인 느낌을 피하려 했다. 건물 하부인 1, 2층의 경계를 허물면서 외부로 개방된 출입구 및 계단실을 두고 필로티를 활용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건축가는 1층에서 4층까지 곧바로 연결된 계단을 통해 마당의 기능을 제공하는 옥상 정원까지 시민들의 걸음이 닿길 바랐다. 별개의 건물이 아닌 매스디자인의 동쪽 연속선상에는 기계식 주차타워가 있다.
이기옥은 대학원을 졸업하던 1988년 참여한, 미국 MIT가 해외에 첫 개설한 서울국제설계학교(MIT - SNU)에서 많은 자극을 받았다. 미국의 명문대 학생들과 MIT 교수진을 접할 수 있었다. 1주일 단위로 비평이 행해졌고, 교수는 학생의 일거수일투족을 기억하는 커리큘럼은 흥미로웠다. 이기옥은 이때의 경험을 지금의 학교 수업에도 적용하고 있다. 건축가만큼이나 건축 교육자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5년제로 바뀌면서 모교의 교육 환경이 되레 경직되는 걸 보고 중앙대 예술대 디자인학부로 옮겨 20여 년째 강의하고 있다.
이기옥 건축가는 대형 사무소 근무 시절, 부동산 시장에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아파트 특화디자인 <동부센트레빌>, 매스와 외관 디자인 전문 프로젝트 등의 일을 하였다. 1995년 파트너와 같이 공동 창업한 사무소를 1999년 단독 체제로 전환했다. 설계 작업은 혼자서는 힘들고 외롭다. 아틀리에 사무소 경영체제가 대세이지만 건축가끼리의 연대는 건축설계 업계의 한 흐름이 되고 있다. 현상 공모에 당선되었으나 지어지지 않은 많은 아이디어가 체화되어 작품으로 구현된다고 본다.
한국건축의 자생력전 출품작(2003년) / 사진 제공 = 이기옥 건축가
2003년 <한국건축의 자생력전>에 출품한 작품은 팔각뿔의 정교한 매스가 구축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4면은 소쇄원도(1775년, 판화)와 같은 전개법으로 펼쳐진 입체도해, 나머지 4면은 전시 주제어인 '관계'를 문자나 공간, 영상을 통해 표현했다. 배운 목공 기술로 직접 모형을 제작하였다. 2006~2009년 대한민국 건축대전 전시 참여는 이후 건축 전시 기획자의 싹을 틔우게 되는 계기가 된다.
국립현대미술관 본관인 과천관의 증축 논의가 건축계 중심으로 논의되고 있다. 2009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당시 문화체육부 장관은 구 기무사 본관 해체 후 기념비적 미술관을 짓는다는 계획을 가진 의도로 용역을 발주했다. 그 용역, <구 기무사 본관의 국립미술관 활용에 대한 방향성 연구용역>에 연구진으로 참여했다. 이기옥은 해당 건축물이 국내 최초 중앙난방을 적용했으며 근대 건축의 출발인 바우하우스의 건축언어를 유지하며 기존에 알려진 수직 증축이 아닌 수평 증축이었음을 밝혀내었다.
이기옥의 연구는 한국에는 근대 건축 시기가 존재하지 않았다고 확신하던 장관의 마음을 돌려놓았고, 또한 여론을 구 기무사 본관을 보존하는 방향으로 전환시키는 데 기여하였다. 구 기무사 본관은 철근콘크리트 구조에 외벽은 벽돌조로, 내부 칸막이 벽은 목조심벽으로 구성되었다. 평활한 벽면, 수평창, 비대칭적 입면 등 초기 모더니즘 형식의 특징이 명확하다.
이기옥은 당시 남아 있던 경성의학전문대학교 부속의원 외래진료소 증축 공사 도면을 바탕으로 실증적으로 분석했다. 현관 홀은 넓은 대기 공간으로 구성하기 위해 이형 기둥을 사용하여 복도로부터 엘리베이터, 계단, 화장실로 구성된 코아를 거쳐 점차 폭을 넓혀가는 구조를 적용하였다.
이기옥 건축가는 최근 이동전화 번호를 011에서 010으로 변경했다. 30여 년 동안 쓰던 이메일 계정 유니텔도 바꾸었다. 시스템 자체가 바뀌면 어쩔 수 없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렇게 되었다. 그의 건축가로서의 철학은 일상에서도 실천적으로 나타난다. 2010년 모 조각가는 경기도 죽산면 용설리에 집과 갤러리, 부속 공간을 포함한 작업실(Sculpture Studio Haus)을 설계 의뢰하였다.
조각가인 건축주가 요구하는 프로그램을 합해보니 매스가 대지(200평)에 비해 과도하게 커졌다. 각 매스를 모듈화해 누적해나가는 개념을 적용했다. 맨 위쪽에 주거를, 아래쪽으로 작업실과 부속 공간, 갤러리를 두었다. 가장 큰 공간으로 천장고가 8미터인 작업실은 최대한 긴 스팬(span)을 갖도록 틀었다. 이기옥은 두 매스가 떨어져 보이도록 매스와 매스 사이에 보를 올리고 주거 부문은 2미터 상당의 캔틸레버를 넣었다.
용설리 조감도 / 사진제공 = 이기옥 건축가
설계한 집의 입면 패턴은 건축주인 조각가의 작품과 비슷하였다. 두꺼운 철판을 잘라 다시 원래 형태를 따라 붙이면서 기하학적인 틈을 만들어내는 조각가의 조형 성이 건축 외벽에 그대로 구현된 것이다. 이기옥은 입면도를 먼저 설계 후 평면도 작업을 하는 습성이 있다.
용설리 매스 개념도 / 사진 제공 = 이기옥 건축가
집 모형을 3D프린터로 만들어내었다. 당시 국내에서는 3D가 막 알려지기 시작하였고 제작 비용이 높았다. 스튜디오는 건축주의 예산, 인허가 문제로 인해 지어지지 않은 채 도면과 모형으로만 남았다. 이기옥은 이때의 콘셉트를 적용할 애니시 카푸어(Anish Kapoor·1954~ )와 같은 수준의 글로벌 작가를 만나길 기대한다. 2011년 한국건축가협회에서 선정하는 '올해의 건축 BEST 7'에 선정된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지노하우스(JINO HAUS)는, 박스형에 창문만 달린 주변 상가 건물과 달리, 여러 개의 구조체가 서로 끼워져 있는 느낌을 준다.
분당 지노하우스 / 사진 제공 = 윤준환 작가
지노하우스는 일반적인 상가주택 구성 방식인 1층 상가·2층 임대·3층 건축주 주택의 틀을 깼다. 2층의 2가구(임대) 중 1가구의 공간을 3층 건축주 가구와 연결하고, 주택면적의 40%로 규제된 1층 근린생활 시설면적 일부를 지하로 분산시켜 근생 2개 층과 주택 2개층 형태로 지상 3층짜리 점포주택을 설계했다. 건축주가 한 층에 더해 반 층을 추가로 사용하는 개념이다. 수직 이동 수단인 계단이나 엘리베이터 대신 전통 가옥에서 모티프를 가져온 섬돌, 툇마루를 집어 넣었다. 이기옥은 3D 프린터로 모형을 제작했다.
분당 지노하우스 실내 / 사진 제공 = 윤준환 작가
실내는 한옥 개념을 도입해 2층은 별채와 사랑채, 3층은 안채의 성격을 담았다. 툇마루 공간을 만들어 응접실로 사용토록 했다. 순 석재로 제작한 섬돌을 통한 진입, 안마당 역할의 선큰(Sunken) 공간, 사랑방을 연상케 하는 2층 서재 등 한국적 스타일의 공간 미학을 제시한다. 툇마루는 전통가옥 답사 때마다 앉아보고 체득한 가장 편안하게 느낄 수 있는 '높이 45㎝, 폭 50㎝' 길이를 적용했다. 이기옥은 "툇마루와 마당은 사교와 모임의 공간"이라며 "실제로 주인이 지인들과 함께 걸터앉아 차를 마시기도 한다"고 말한다.
사랑채 내부는 안마당과 손님방, 안쪽 작은방이 일렬로 열린 개념이다. 세 공간은 문짝 전체를 들어 걸쇠에 거는 들어열개처럼 창호를 자유롭게 여닫을 수 있다. 이기옥은 "전통 양식은 건축 소재나 디자인의 문제가 아니라 공간 개념으로 풀어야 한다"고 말한다.
누구든 어린 시절의 체험과 기억은 세월이 갈수록 선명해진다. 건축가 이기옥은 초등학교시절, 서울 성북구 보문동 한옥 집에서 보냈다. 집 안 안 마당과 툇마루를 오가며 놀았고, 놀러 간 인근 친구들 집 또한 비숫한 가옥 구조를 가졌다.
1층 면적이 줄면서 만들어진 옥외데크와 선큰은 실제로는 상업적 기능을 하기에 점포주택의 경제적 가치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되었다. 지노하우스는 판교신도시 점포 주택 용지에 처음으로 지하층을 설계한 사례가 되었고 이후 지역의 다른 점포주택 설계에도 영향을 주었다.
이기옥은 단면 설계를 먼저 했다. 매스 개념은, 내부 공간이 가진 단면 개념을 그대로 외부 형태로 표출시키고자 했다. 1층 점포가 가진 가벼운 필로티 구조로 육중해 보이는 2, 3층 매스를 띄워 노출 콘크리트로 마감하고 주인 세대의 실내 계단, 거실,임대 세대 세 개의 공간을 외부로 돌출시켜 코르텐 강판으로 마감했다.
[프리랜서 효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