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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이 허용된 게시물입니다.
백제 토론방 웅진시대,한강유역은 백제의 영향력 하에 있었다.
똥깡 추천 0 조회 554 11.04.24 21:38 댓글 7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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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1.04.25 14:41

    첫댓글 백제의 강역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습니다.
    현재까지 발굴된 가장 확실한 부분은 무녕왕릉이 전부라 할 수 있고, 나머지는 믿을 수 없다고 보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편일 것입니다.
    삼국사기 위덕왕조와 성왕조를 살펴보면 백제가 요동까지 진출하여 있음을 보여주는 기사가 보입니다.
    또한 신구당서를 살펴보면 백제는 멸망하여 신라와 발해말갈로 나뉘었다는 기사가 이를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동성왕과 북위의 전쟁도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지 가늠하지 못하는데 기존의 주장을 되풀이 하는 것은 그리 바람직하지는 않는 듯 합니다.

  • 11.04.25 15:46

    신구당서에 백제가 멸망하여 신라와 발해말갈로 나뉘었다는건 웅진도독부가 요동으로 옮겨젔는데 발해가 요동을 차지하게 되어서 그렇게 적은걸로 알고있습니다.

  • 작성자 11.04.26 00:21

    정선생, 저는 삼국사기 기록을 믿는 사람입니다. 무령왕의 고분이 공주에서 발견되었다고해서 백제와 고구려의 국경을 지금의 공주인근이라고 생각하시는 것은 아니겠지요. 제글에서 밝혔듯이 성왕대까지 백제가 한강유역을 경영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첨삭을 하겠지요. 하지만 그것은 한계가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 11.04.26 11:21

    다음백과사전에 의하면 웅진도독부를 백제 멸망 후 당나라에서 옛 백제 땅에 설치했던 지배기관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백제가 요동을 점거했다는 기록은 삼국사기 백제본기 위덕왕과 무왕기에도 그 흔적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당나라가 웅진도독부를 설치한 목적은 신라가 백제의 영토를 삼키려는 것을 방해하고 백제유민을 수습하여 대항하려는 목적으로 설치한 것으로써 백제 유민이 없는 지역에 설치하였다고 한다면 무슨 효과가 있겠습니까? 자신의 터전인 농토를 버리고 도망올 백제 유민들이 얼마나 될 까요?

  • 11.04.26 13:15

    정성일 님// 삼국사기 위덕왕와 무왕 대의 기록에서 백제가 요동을 지배했다는 흔적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인용을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 11.04.28 11:43

    정성일님/ 혹시 위덕왕과 무왕이 수에게 고구려 정벌의 향도가 되겠다는 기록을 염두한 것인지요?

  • 11.04.26 09:46

    무녕왕릉은 백제사를 연구함에 있어 전환점이 되는 발굴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무녕왕릉 지석을 살펴보면 매지권에 관란 기록이라든지 율령을 따르지 않는다던지 석연치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남당유고 신라사초에는 백제왕이 붕어하면 신라가 조문사절을 보내는데, 무녕왕(사마)의 경우 장례를 치렀다는 특이한 기록이 보입니다.
    아직도 계속 생각중에 있으며, 과연 공주가 백제의 영토일까 고심하고 있습니다.
    백제의 도읍이었던 웅진은 항구도시이고 큰규모의 시장이 있었던 도시입니다.
    한강유역이 지리적여건상 고대국가가 있었던 위치가 아니라는 것을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백제 위치 선정에 신중하자는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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