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로시마의 숙소에서는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진 사실에 대해서 여러 사람들과 격렬한 논쟁이 있었다. 일단 논쟁을 접고, 히로시마 시내를 구경하기 위해서 숙소의 친구들과 작별을 고했다. 그리고 홀로 히로시마역으로 향했다.
히로시마 시내는 노면전차가 시 중심가를 가르고, 건물들도 반듯하게 들어서 있어서 예상 외로 상당히 정돈된 모습이다. 머릿속에 자리 잡은 히로시마의 이미지는 이미 깨어지고 있었다.
1945년 8월6일 8시 15분, 일본과 태평양에서 치열한 격전을 치르던 미국은 일본 히로시마(廣島)에 세계 최초로 원자폭탄을 투하한다. 당시 히로시마는 이 원자폭탄으로 인해 도시 전체가 말 그대로 초토화되었고, 지상의 건조물은 모두 무너져 버렸다.
그 후 일본의 경제 부흥과 함께 히로시마 성 등 히로시마의 명소들이 다시 복구되었지만, 현대에 재건된 것들이라서 이름난 건축의 향기는 풍기지 않는다. 다만 일본의 명승으로 지정된 슛케이엔(縮景園)은 파괴될 곳이 많지 않은 연못과 구릉으로 이루어졌기에, 재건된 정자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정원 조경이 그 당시의 모습으로 많이 남아 있다.
히로시마 동쪽에 위치한 히로시마역에서 아주 가까운 슛케이엔은 히로시마역의 미나미구치(南口)에서 걸어가면 15분이 걸린다. 히로시마역에서 교바시가와(京橋川) 위에 놓인 사카에바시(榮橋)를 건너자, 오른편의 우거진 숲 속에 약 4만㎡ 넓이의 슛케이엔이 나타난다. 히로시마의 명소인 히로시마 성과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도 모두 이 주변에 몰려 있다.
슛케이엔은 1620년에 히로시마의 다이묘(大名)였던 아사노나가아키라(淺野長晟)가 지은 별장의 정원이다. 다이묘 정원은 16세기 이후에 당시의 번(藩)을 다스리던 다이묘들에 의해 만들어진 정원인데, 17∼18세기에는 일본 내에 내전이 거의 없어서 일본의 다이묘들 사이에서는 이러한 정원 축조가 하나의 유행이었다. 이러한 시대 분위기 속에서 만들어진 정원을 대표하는 곳이 바로 이 슛케이엔이다.
슛케이엔은 '경치를 축소시킨 정원'이라는 뜻이니, 여러 개의 경승지를 한 곳에 축소하여 모아두었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 이름 자체가 자연을 축소시켜 표현하는 일본정원의 독특한 회유식(回遊式) 정원을 표현하고 있다.
이 슛케이엔은 인공적으로 연못을 만들고, 주변에 기암괴석을 배치하며, 정원의 감상 포인트에 다실(茶室)을 만드는 정원 만들기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리고 이 정원은 교바시가와(京橋川) 기슭에 세워졌기에, 경내의 연못과 개울에 공급하는 물을 이 교바시가와에서 끌어들여 사용하고 있다.
| | ▲ 히로시마 슛케이엔 원경 | | ⓒ2004 노시경 | | 정원 중앙에는 다쿠에이치(濯纓池)라고 하는 큰 연못이 있으며, 연못 주위를 돌면서 경치의 변화를 즐길 수 있다. 다쿠에이치 연못과 절묘하게 꾸며진 낮은 동산이 조화를 이루는 곳이 이 정원의 감상 포인트이다. 연못 주변의 숲 속에는 겉치장이 없는 정자와 다실, 다리가 배치되어 있고, 연못 안에는 10개 이상의 작은 섬이 만들어져 있다.
정원의 산책로로 발길을 옮기자 독특한 석등과 다리가 나타난다. 산책로 중간에 나타나는 석등은 중국의 미인인 양귀비의 몸매를 형상화하고 있다. 정원의 중앙에는 무지개 같이 아름다운 아치형 돌다리, 고쿄(虹橋)가 놓여 있고, 여러 개의 반원형 다리받침으로 연결된 다리인 다이코바시(太鼓橋)가 이어진다.
그런데 이 정원은 중국의 경승지인 항저우(杭州)의 서호(西湖)를 모방하였다고 한다. 슛케이엔 다쿠에이치(濯纓池)라는 연못은 바로 서호의 호수를 동경하는 곳이다. 중국의 서호는 산과 계곡, 호수의 자연미에 다리, 정자, 누각, 탑 등의 예술미가 조화를 이루는 아름다운 곳이다.
다쿠에이치와 조화를 이루는 낮은 동산은 바로 서호의 삼면을 둘러싼 산을 본뜬 것이다. 슛케이엔 다쿠에이치에 인공으로 만들어진 크고 작은 10개의 섬도 서호의 소영주(小瀛洲), 호심정(湖心亭), 완공돈(阮公墩) 등 3개의 섬을 흉내낸 것이다. 서호에 있는 총 6개의 다리는 이 곳 슛케이엔 돌다리와 반원형 다리의 원형이 되었다.
당시 서호는 동양의 식자층들에게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명성이 자자한 곳이었다. 일본은 중국과 직접 교류하면서 서호를 유람하게 된 사람들이 늘어났고, 이 서호의 절경은 히로시마 다이묘의 귀에까지 들어갔던 것이다.
이곳의 다이묘였던 아사노나가아키라가 직접 중국까지 가서 서호를 구경하지는 못하였을 것이다. 그는 일본 땅에서 내전이 잦아들고 평화의 시대가 찾아오자 자신이 휴식을 취하는 별장의 정원을 호화롭게 꾸미는 데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당시 정원조경의 선진국이었던 중국의 조경술을 이곳에 축소시켜서 재현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 | ▲ 슛케이엔 다쿠에이치 | | ⓒ2004 노시경 | | 아무래도 이 정원의 제철은 봄일 것 같다. 정원 안에는 벚꽃나무, 매화나무, 단풍나무와 모란 관목, 철쭉 관목이 많이 자리잡고 있다. 지금은 여름이지만, 봄이 되면 철쭉에 붉은 꽃이 피고, 흰 벚꽃은 흐드러진 자태를 연못 위에 흩뿌릴 것이다. 봄철의 꽃놀이 시기에는 이곳에서 차를 음미하는 다도회도 열린다고 한다.
수십 년은 된 듯한 거대한 대나무 숲 사이의 산책로를 걸어본다. 산책로 앞 연못 속에서는 무시무시하게 큰 비단 잉어가 헤엄치고, 연못의 섬 주변으로는 작은 자라들이 몰려다니고 있다. 빵이나 과자 부스러기를 이들에게 던져주면 연못 주변은 금세 소란스러워진다.
| | ▲ 슛케이엔 다쿠에이치의 연못과 섬 | | ⓒ2004 노시경 | | 정원 구석구석에 무서울 정도로 정갈한 사람의 손길이 느껴진다. 정원의 나무들은 분재 나무가 거대하게 자라난 것 같은 오밀조밀한 모습을 하고 있다. 내가 이 정원의 나무 한 그루, 잔디 풀 한 포기를 건드렸다가는 그들의 작품에 무언가 흠집을 남길 것 같은 부담이 생긴다. 아름다움을 모두 이곳에 축약하려는 것인지 현란한 작품들이 연못의 이곳저곳에 너무 많이 들어서 있다.
거의 완벽한 미의 절정을 향해 치닫는 정원이지만, 마음이 그리 편안해지지 않는 것은 무슨 연유일까? 이 정원이 아름답다고 느끼면서도 '이게 아닌데…'라는 생각이 마음 한 편에 자리하고 있다. 이곳에는 서울의 창덕궁 후원에 자리한 부용지(芙蓉池) 같은 자연스런 아늑함이 없기 때문이다. 슛케이엔은 너무 인공적이고 너무 많은 것을 축약하려고 하고 있다.
연못의 물은 미동도 하지 않고 잔잔하다. 이 정자에 앉아 호수를 바라보며 차 한잔 음미하는 것이 정석인데, 이 정원 내에는 이 곳을 구경하러 온 사람들이 너무 많다. 다이묘가 만들어 놓은 것과 같은 모습의 슛케이엔이지만, 현대인들이 느끼는 정원의 감상은 완전히 다르다. 이 정원에서 다이묘가 느끼던 한적함은 도저히 기대할 수가 없으니 말이다.
정원의 외양은 같지만, 과거에 정원 내에 흐르던 절경에 대한 감상과 차 한 잔의 여유는 더 이상 바랄 수 없는 것이다. 정원의 모습은 같지만, 다이묘가 이곳에서 느끼고자 했던 정원의 알맹이는 빠져 있는 것이다.
이 정원은 그리 큰 규모가 아니기에 급히 둘러볼 필요는 없다. 그래서 연못가 정자에 앉아 휴식을 취하며 피곤한 다리를 쉬어본다. 혼자 하는 답사이기에 마음대로 활보하고, 쉬고 싶은 곳에서 쉬지만, 가족이 함께 하지 않아서 뭔가 허전하다.
너무 더운 날이다. 이마에 맺혔던 땀방울이 볼을 타고 흘러내린다. 정자 밖의 햇볕 쪽으로 얼굴을 내밀면 괴로움을 느낄 정도로 햇살이 따갑다. 아! 정자 밖으로 다시 나서서 또 답사의 길을 나서야 하나? 일본의 북쪽에서 남쪽으로 내려올수록, 태평양 고기압의 습기와 결합된 일본의 무더위는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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