洛川淸疏 2023. 11. 12
북한의 인민위원회 선거법 개정 뉴스를 보고
松溪 박 희 용
10일 티비 화면 아래에서 ‘북한이 지난 8월에 선거에서 복수추천제와 선거운동을 허가하도록 인민회의선거법을 개정했다’라는 뉴스를 보았다. 해설자와 북한문제 전문가가 ‘체제선전용 선거법 개정’이라고 가볍게 말하곤 지나갔다. 이어서 후속 보도가 각 언론에서 보도하는지를 유심히 살펴보았는데 전혀 없었다.
그러나 나는 이것은 앞으로 북한의 정치와 사회의 변화를 추측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변화의 실마리라고 생각한다. 잘 알다시피 북한은 건국부터 지금까지 노동당이 추천하는 1인 후보에 대한 찬반을 묻는 흑백함 투표제이다. 국가의 근본인 노동당이 인민위원회 후보 선택과 선거의 전권을 행사한다. 당의 선택이 곧 인민의 선택이 된다. 그러므로 흑백함 투표제는 옥상옥이자 불필요한 형식일 뿐이다. 그러나 개정된 선거법에서는 추천은 당이 하되 1인이 아니라 2인으로 함으로써 선택권을 인민에게 주도록 하였다. 그러니 흑백함 투표가 아니라 단일 투표함 투표가 된다. 개정 선거법에서는 후보가 2인이므로 각 후보에 대한 소개와 선전이 없을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정견발표 기회를 갖지 않을 수 없고, 따라서 각 후보가 직간접적으로 자기를 광고할 수 있는 방법을 갖게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한국이나 구미 국가들처럼 거창하고 요란한 선거운동을 허가할 순 없지만 사회 질서와 공정선거 확고하게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최소한의 선거운동을 허가한 것 같다.
이러한 작은 변화가 서구적 관점에서 보면 별 것 아니지만 북한이라는 특수사회적 관점에서 보면 대단한 변화가 된다. 이 작은 변화가 북한 사회를 움직이게 하는 하나의 충격이 될 수 있다. 노동당으로서는 당원인 두 후보 간의 경쟁을 통해 관습적이고 고답적인 정체 상태를 혁신할 수 있는 동력을 얻을 수 있고, 사회 전체적으로는 인민의 선택권 확대를 통해 움직이는 당과 변화하는 체제에 대한 관심과 기여를 이끌어낼 수 있다. 또한 당이 감지하지 못할 수도 있는 일정 부분 불만의 목소리도 수렴하는 효과도 있을 것이다.
남한은 자유주의, 자본주의, 개인주의로 대표되는 자유민주주의 체제이고, 북한은 사회주의, 공산주의, 전체주의로 대표되는 인민민주주의 체제이다. 둘 다 ‘민주주의’와 ‘선거’를 말하지만, 각각의 개념이 다르다. 남한은 ‘자유’란 말 그대로 모든 분야에서 자유이다. 선거에서도 누구나 자유롭게 출마할 수 있고 자유롭게 선거 운동을 할 수 있다. 유권자들도 자유롭게 선택하여 투표할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은 자유보다는 인민 전체의 선택을 중요시한다. 인민 전체의 선택이 집결된 곳이 노동당이다. 그래서 노동당이 선택한 한 인물은 인민적 선택의 정당성을 갖는다. 선거할 필요가 없다. 그러니 흑백 투표함 제도 자체가 형식적인 절차이다. 그러나 이번 선거법 개정을 통해, 일차적으로 당이 인물을 두 명 선택하고, 최종 한 명 선택은 인민에게 직접 하도록 함으로써 선거가 낱말 그대로의 실제 의미를 갖도록 하였다. 그러므로 선거가 필요하고, 이어서 투표함이 필요하다. 이로써 당이 인민의 신임을 절대적으로 받고 있지만 일정 부분 인민의 직접선거권을 보장함으로써 인민의 가치를 현실화하였다. 또한 ‘인민민주주의’에 들어 있는 ‘민주주의’의 보편적 가치에 어느 정도 부합하게 되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번 선거법의 개정은 전번에 북한 고위층 인사들이 지금까지 ‘남조선 당국’이라고 호칭하던 것과 다르게 ‘대한민국 정부’라고 부른 사실과 함께 앞으로의 남북관계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기를 바라는, 수성기를 넘어 안정기로 접어들고자 하는 북한 지도층의 생각이 담긴 리트머스 시험지와 같다고 볼 수 있다.
비록 작은 변화이지만 이 변화의 기미를 정확하게 포착하여 남북관계 발전의 빌미로 삼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물론 북한을 대대로 불구대천의 원수로 표적 삼아 이를 간다면야 이러한 변화의 기미가 아무런 소용이 없겠지만, 금수강산 한반도에서 다시는 전쟁 없이 함께 공존해야 할 인접국이고, 언젠가는 반드시 평화적인 민족통합과 국토통일을 해야 할 동족이라고 여긴다면 이 작은 변화의 기미를 제대로 활용하여야 할 것이다. 이것이 이 시대를 사는 기성세대의 의무이요 책임이 아니겠는가. 이것이 국민으로부터 5년 동안 정권을 위임받은 대통령의 의무요 책임이 아니겠는가.
2023년 11월 12일
안동 說樂然齋에서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