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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변 살자 (1) – 문경자 수필가
2023-10-12 hcnews 1392호
장롱문을 열면 잠을 자는 것과 잘 때만이 아니라 밤낮으로 봉사하는 베개가 있다. 같은 이름으로 태어나도 주인에 따라 다른 삶을 살아간다. 주인을 잘 만나면 편안하고 대우를 받으며 호강을 하고, 싸움하는 주인을 만나면 실밥이 터지고 내장도 손상을 입는다. 영화를 보다 보면 소파에 얌전하게 있는 베개를 서로 던지며 장난을 치기도 한다. 베고 자는 기능도 중요하지만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역할도 한다.
사람들의 잠버릇도 가지각색이다. 이불도 둘둘 감고 자는 사람, 다리사이에 끼우고 잠드는 사람, 수난을 많이 겪었다. 베개도 작다 고 함부로 취급을 하였다. 베고 자는 것도 다르다. 어떤 사람은 머리에 베고, 또 다른 사람은 다리사이에 끼우고, 숨도 못 쉬게 질식사를 시켰다. 농사일을 끝내고 돌아온 옆집 호야 아버지는 막걸리 한잔 마시고 들어와 씻지 않고 땀에 밴 낡은 삼베바지 사이에 베개를 끼우고 금방 잠이 들었다. 꼭 끼인 상태로 숨이나 제대로 쉴 수 있을까! 코를 골며 밤잠을 자는 버릇을 보고 모기도 주위를 맴돌았다. 날이 밝아서 술이 깬 호야 아버지는 눈두덩이가 모기에게 물려 눈을 제대로 뜨지 못했다. 그 모습을 보고 지나가는 아이들도 웃었다. 장난감처럼 예쁜 베개는 여자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엄마가 정성껏 오색실로 십자수를 놓아 만들어 준 것을 가지고 놀았다. 장남감이 없던 시절에 가지고 놀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꼭 안아 주고, 업고 다니며 엄마놀이도 하였다. 나는 어릴 때 베개를 많이 업고 다녔다. 엄마는 내 등에 무명 천 띠를 매어 업혀주었다. 자랑삼아 밖으로 나와 골목을 돌아다니며, 어른들은 그런 모습의 나를 보고 놀려 주기도 하였다. “갱자는 베개를 업고 다니며 어른들 흉내도 잘 내네”하며 영순이 엄마는 물동이를 이고 지나갔다. 엄마는 동생이 울 때 엉덩이를 살짝 손대고 “추자야 울지 마 뚝 그치라”하고 달랬다. 동생은 계속 울어서 엄마가 업어주고 어르면 겨우 잠을 잤다. 그런 엄마의 모습을 보고 나도 베개를 토닥토닥 달래며‘자장자장 자장가’도 불렀다. 집에 들어와서 띠를 풀고 베개를 받쳐 주고 재우는 연습도 하였다. 자고 일어난 베개에게 세수를 시켰다. 가짜로 물을 묻혀 ‘코 힝’하고 흉내를 내며 놀이를 하였다. 내 또래 여자아이들은 그런 식으로 아이를 달래는 법, 재우는 법, 업는 법, 등을 익혀 둔 것은 아닌지, 지금 생각해보면 미소가 입가에 번진다.
아기들이 태어날 때부터 머리모양도 다르다. 요즘 아기들의 베개는 디자인, 색상, 소재, 무게, 세탁 등 선택해서 사용할 수가 있어 좋은 점이 많다. 엄마는 무명천에 좁쌀을 넣은 베개를 만들어 주었다. 납작하게 눌러 폭 들어간 베개를 베고 자랐다. 잘 울지도 않고, 순해서 그대로 잠을 자곤 하였다. 엄마는 온갖 정성을 다해 머리 모양을 잡아 주며 쓰다듬어 주고, 눈으로 확인을 하고, 왼쪽 오른쪽을 만져 보기도 하였다. 돌이 지나고 걸음마를 하고, 자라면서 머리 모양이 납작 하다며 놀렸다. 뒤통수가 납작하여 단발머리를 하면 미웠다. 그 말이 맞았는지 믿거나 말거나 공부도 못하고 똑똑하지 않았다. 동네 사람들은 머리를 쓰다듬으며, ‘재주는 별로 없겠다’하는 말을 자주 했다. 엄마에게 왜 그토록 정성을 다해서 내 머리모양을 만들어 주었는지 돌아가시기 전에 물어보는 것을 깜빡했다. 어린 마음에 자꾸만 그 말이 떠올랐다. 옆집에 사는 춘자는 뒤통수가 너무 튀어나와 머리를 묶을 때 모양이 나지 않았다. 옆머리를 잡아당겨 매면 머리카락이 갈라져 머리 밑 살갗이 보여 흉하였다. 머리모양만 예뻐도 남자나 여자나 미남, 미녀 축에 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순간 스쳤다. 내 머리를 손으로 더듬어 본다. 역시 납작한 뒤통수는 나이와 상관없이 변하지 않는구나 생각을 하니 웃음이 나왔다.
엄마는 얼마나 고생을 하면서 나를 키웠을까! 밤잠도 못 자고 새우잠을 자며 자식의 자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베개를 베지 않고 머리가 바닥에 떨어져 있으면, 왼손으로 받치고, 오른손으로 살짝 베개를 밀어 넣어 주었다. 엄마의 젖가슴이 얼굴에 닿을 때도 있어 엄마 냄새를 맡고, 꿀 잠에 빠진 날도 있었다.
높이나 넓이가 맞지 않으면 목이 아프거나 삐걱할 수도 있다. 잠을 잘못 자고 일어나면, 평소에 잘 베고 자던 베개를 천대하며 집어 던지거나 새것을 구입해야 한다며 베개 탓을 하였다. 베개는 묵묵히 아무 말도 없이 무겁거나 가볍거나, 머리를 받쳐 주면서 불평불만을 하는 일은 없었다. 사람들은 맘에 들지 않으며 새것으로 바꾸고, 천덕꾸러기가 된 베개를 인정사정없이 내다 버렸다. 베개가 말을 못해 그렇지, 만일에 말을 할 수가 있다면 얼마나 많은 사연을 뱉고 싶을까!
깨끗한 머리가 닿으면 기분이 좋고, 지저분한 머리를 감지도 않고 베고 자면, 짠 냄새를 맡아야 하는 기분을 알까! 깨끗하고 예쁜 아가의 머리 향기는 얼마나 좋은가! 더벅머리 남자의 머리가 닿으면 냄새가 진동하여 밉상으로 보여 받혀 주기도 싫었다. 제발 깨끗하고 반지르르한 머리면 대환영을 해주겠네. 모든 것들이 다 마음에 들기는 어렵다. 머리를 감을 때 샴푸에 따라 냄새가 달랐다. 샴푸가 없던 시절에는 집에서 만든 누런 비누를 사용하였다. 아무리 깨끗하게 헹궈도 비누냄새는 가시지 않았다. 베개는 온갖 냄새와 기름기 있는 머리, 비듬이 떨어지는 머리, 땀내 나는 머리 때문에 지독한 삶을 살아야 했다.
베개는 개인의 영혼이 머무는 중요한 것이라서 밟거나 차는 것을 금기했다. 할아버지가 공부를 하지 않는다며 혼을 냈다. 화가 나서 사랑방에 들어가 할아버지의 베개를 발로 찼다. 하필이면 방으로 들어오는 할아버지의 머리에 베개가 날아가서 혼이 난 적도 있었다.
베개의 종류도 많다. 수를 놓은 수침, 서랍이 있는 퇴침, 나무토막으로 만든 목침, 자기로 만든 도침, 쌀겨를 넣은 곡침, 부드러운 면침 등이 있는데 도침은 표면이 차갑기 때문에 여름에 많이 이용했다. 그만큼 숙면은 중요하고 필수적이었다. 요즘 스마트 폰이나 컴퓨터를 많이 사용하여 거북목과 일자목이 늘어나는 추세다. 베개는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베개를 베지 않고 딱딱한 방바닥이나 마룻바닥, 시멘트 바닥에 누워있으면 머리가 닿기만 해도 아프고 불편했다. 주위에 있는 화장지나 수건을 베기도 하였다. 그럴 때는 폭신하고 부드러운 감촉의 베개가 생각났다. 지금은 까마득한 일이 되었지만 베개에 대한 글을 쓰다 보니 생각나는 지난일이 문득 떠올랐다.
71세의 시어머니는 콩팥에 이상이 생겨 서울 중앙병원에서 7시간의 수술을 받아도 회복이 어려웠다. 구급차로 시골집으로 이송이 되었다. 밥알 하나도 넘기기 어려웠다. 숟가락으로 물을 떠 먹이면, 아무 반응이 없었다. 3개월을 견디다 무더운 여름 아침에 세상을 떠났다. 일곱형제의 큰며느리 노릇을 하느라 서울에서 내려와 어머니 간호를 계속하였다. 어린 아들 둘을 떼어놓고 어떻게 지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어머니의 사망소식을 전해들은 동네 친척 아재가 와서“남자가 여자의 몸을 만질 수 없으니, 큰며느리인 네가 해야 한다”는 말을 남기고 쌩하게 나가버렸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당혹스럽고 눈물이 핑 돌았다. 어찌나 무서운지 몸이 떨렸다. 죽은 사람을 처음 보았고 어떻게 그런 일을 시키는지 친척 아재가 원망스러웠다. 첫째는 베개를 만들어야 했다. 어머님이 손수 짜 놓은 삼베를 떨리는 손으로 가위를 잡고 대충 잘라 맞추어 꿰맸다. 살아있는 것처럼 보여 소름이 끼치도록 섬뜩하였다.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는 것처럼 느꼈다. 금방 일어나 호통을 칠 것 같아 바늘귀가 보이지 않았다. 겨우 무명실을 꿰어 모양만 만들었다. 그 안에 뭘 넣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고, 아무도 없는 방에서 베개를 베어 주어야 하는데 자꾸만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속으로 ‘어머니는 좋아하실 거야’ 하고 머리를 들어 베개를 받혀 주었다. 따듯한 온기가 느껴졌다. 머리를 만져 보고 나니 무서움도 사라지고 ‘어머니 마음에 안 들어도 편안하게 베고 가세요’라는 말로 인사를 하였다. 내 손으로 만들어 주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베개는 저승까지 따라가는 운명이었다.
김상희가 부른 어머니의 팔베개란 노래가 있다. 노래를 들을 때면 그리운 어머니의 팔베개가 생각났다. 누구나 어디서나 팔을 쭉 뻗으면 팔베개가 되었다. 어머니는 나를 팔베개하고, 먼 옛날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를 구수하게 들려주었다. 어느 때는 무릎을 베고, 귀속을 파주며 간지러워 웃다가, 시원해서 침을 흘리다 보면, 어머니의 정이 묻어났다. 한편으로는 다리가 후들거려 겁이 날 때도 있었다. 귀 후비개가 없을 때는, 성냥개비로 귀를 후벼 벌벌 떨리기도 하였다. 겁이 많다며 조금만 참으라고 해서 가만히 눈을 감고 있었다. 시원해서 어느새 잠이 들었다. 왕자님과 손을 잡고 노는 달콤한 꿈나라 여행도 하였다. 베고 있다는 것은 안정감이 있고 편안하였다.
시골에서 신혼 생활을 할 때였다. 아침에 시아버지가 풀을 뜯어먹게 하려고 매어 놓은 염소를 저녁이면 몰고 와야 했다. 저녁을 먹고 남편과 염소를 데리러 갔다. 무서움이 많은 두 마리 염소가 ‘음매’ 하고 우는 소리가 들렸다. 가는 길은 시원하고 망태기 꽃이 춤을 추며, 풀들도 한들한들 거리는 모습은 한가로웠다. 주위를 둘러보니 버들가지는 늘어지고, 매미는 맴맴 울고, 고추잠자리는 하늘높이 날아 올라 곡예를 하였다. 남편은 잠깐 쉬었다 가자 하고는 풀밭 위에 앉았다. 나는 벌레가 물까 봐 앉기가 싫었지만 내색은 하지 않았다. 어쩐 일일까 말도 없는 남편이 무릎을 베고 누워라 했다. 내일은 해가 북쪽으로 지는 것은 아닐까 하고 가슴이 뛰었다. 슬쩍 머리가 무릎에 닿기는 했지만 민망하기도 하였다. 연애도 못해보고 시집을 와서 남자의 무릎을 벤다는 자체가 편치 않았다. 남편은 느닷없이 노래를 불러 준다고 했다. 나는 달콤한 사랑노래, 아니면 연인들의 깊은 마음에 정이 담긴 노래를 기대했다. 아~아 목소리를 가다듬고‘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노래를 불러 주었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 빛//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강변도 아니고 들판에 나와 이런 노래를 들려주니 내 귀가 간지러웠다. 노래가 끝나자 내 얼굴을 쳐다보며 웃었다. 나도 모르게 피식 하고 웃음이 나왔다. 한편으로 도심에서는 느낄 수 없는 낭만이 있었다. 여자의 마음은 오락가락하는 장맛비와 같았다.
달콤한 신혼 생활도 얼마 지나니 남편도 슬슬 ‘팔이 아프다, 저리다, 무릎도 쥐가 난다.’ 하며 1분도 귀찮아 했다. 그런 남편의 눈치를 보느니 혼자 베개를 베고 뚝 떨어져 자는 것이 편했다. 신혼의 남편들은 아내에게 팔베개를 해주다 너무 아프고, 저려 혼이 났다는 말들이 한창 유행했던 때가 있었다. 신혼이니 젊어서 어지간하면 참아 주었다. 아기들이 태어나고 키우다 보니, 팔베개는 고사하고, 시집올 때 만들어 온 원앙금침? 도 필요 없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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