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회고록6막50장(2부-3)
나주이모는 작년에 돌아가신 장모님과 흡사 하였다.
너무나 자상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온몸에 배여서인지 아내와 내가 집에 갈시면 차에 한가득 시골 찬거리를 주신것이였다.
파,양파, 마늘, 심지어는 시주 들어온 쌀까지 싸 주셨다.
푸짐한 대접에 한보따리 차에 싣고 나주를 떠날시는 그흔한 나주곰탕도 못먹고 가게 되였다.
그리고 스님과 이모님은 "후"한테 이빨치료를 받는다며 광주로 나들이를 가신곤 하였다.
"후"가 참 침착해.
차근차근하고 꼼꼼한게 앞으로 좋은 의사가 될꺼야하며 칭찬하시곤 하였다.
그러나 최근래 나주이모님과 스님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나는 서글펐다.
13년후인 지금에 미리 두분의 이야기를 다루는 것은 시기상조이나 나로서는 나주이모님과 스님과 맛나게 먹은 "오리들깨백숙"과 "풍천민물장어"가 생각나 글을 쓰다보니 13년후의 오늘 현황을 미리 이야기하여 혼돈을 야기시킨점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스님은 노환으로 작년에 돌아가셨고, 이모님은 당뇨 합병증으로 주기적으로 신장투석을 받아야하며 경제활동이 전무한 이모님은 절과 기거하는 주택을 지인한테 부탁하고 추후 내가 죽은후 명도하기로 하고 조금씩 생활비를 받아 근근히 살아가신다고 하였다.
더구나 나를 놀라게 한것은 스님의 사후 유언이였다.
스님은 내가 죽은후 내 육신을 전남대 의대에 시신기증을 하여 의학발전에 도모하고져 한다며 유언을 남기셨다니..
우리가 범적할수 없는 불지의 스님이셨다.
자신의 육신을 헛되이 버리지 않고 후손들의 의학발전에 기여코저 한이는 내주위에서 들어보지 못한 고귀한분이셨다.
나는 지금도 생각한다.
장어 한판 숯불에 구어먹으며 별빛아래 웃음꽃 피운 그 시절은 영영 돌아오지 않겠지.
스님!
좋은곳에서 편안하소서.
스님의 환한 얼굴과 미소
평생 잊지 않겠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