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은논공단지 앞 영강(가은천)변에 핀 버들강아지..... 11:19:31
비온 뒤 견탄3리 불정계곡의 운해... 09:53:49
구랑리 철로자전거 역을 지나며.... 10:03:00
하내리 입구의 추모비 10:06:45
下乃里 慶州 金門 光濟 用濟 東旭 義煥 先生 追慕碑
(하내리 경주 김문 광제, 용제, 동욱, 의환 선생 추모비)
(측면-뒷면)
이 碑는 한말과 일제강점기 그리고 해방 공간에 걸친 하내리 慶州金氏 문중 선조들의 애국활동을 기록하고 후대에 그 정신을 전하고자 정부의 ‘문화마을’ 지정을 계기로 2016년 마을에서 건립한다. 대한제국 시기 문경지방의 현감을 지냈던 김광제(金光濟) 공은 1882년 무관에 登第한 후 경상감영의 中軍으로 활약하다 1901년 文班 正三品 通政大夫로 승임(陞任)되어 함창군수로 임명되었고 그 해 다시 문경군수(용궁군수겸임)로 전임되었다. 이때 공은 구국의 이념을 정치에 구현시키려 진력을 다하였다. 부패한 정치 관행을 바꿔보려던 공의 뜻은 좌절되어 1903년 6월 끝내 사임하였다. 공의 爲民 정신은 구한국관보의 치적 평-“捐俸修廨하니 民將息肩이요, 刷賦從繩하니 吏相察眉함”-에 잘 드러나 있다. 하지만 경술국치 이후 병을 얻어 1916년 4월 향년 58세로 타계하였다. 그 후 1991년 중국 거주 후손이 고향에 와서 묘비를 세웠다. 한편 공의 사촌형님 金用濟는 운강 이강년 의병부대 砲將으로 1907년 8월초 마고산성 전투에서 일본군에 맞서 싸웠다. 공의 둘째 아들인 金東旭은 1897년 1월에 태어나 1915년 3월 문경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문경읍사무소에 근무하였다. 1919년 4월13일 문경 갈평에서 일어난 3·1만세운동을 목격하고 그 해 서울을 거쳐 상해로 망명하였다. 1919년 말부터 중국에서 독립운동의 길로 나섰으며 상해임시정부와 만주를 오가며 군자금 모금에 나섰다. 또한 북간도 독립운동단체 ‘대한국민회’의 경호원이 되어 제25지회장인 朴敏秀 등과 함께 만주 일대를 누볐다. 또한 日警에 의해 ‘絶對獨立’ 지향의 요시찰 인물로 지목되어, 병욱· 아일·영기라는 가명으로 활동하였다. 1924년에는 陸大壁이라는 이름으로 황포군관학교 1기에 입교하여 군사교육을 받기도 하였다. 이후 동포들의 정착촌 건설과 군자금 확보의 방편으로 북만주에서 東麗醫院을 경영하며 농장을 개척하기도 하였다. 1930년대 들어서는 친일 밀정과 일본인들을 매수하는 한편 은밀히 북만주 지역의 독립운동 단체에 자금을 지원하였다. 해방 이후 중국 공산당 정부가 북만주에 들어오자 1949년 1월 서울로 귀환하였다. 좌우로 갈린 정국과 동족상잔의 비극인 6·25전쟁을 겪은 후 1961년 2월 서울에서 향년 65세로 타계하고 고향 선산에 묻혔다. 그는 독립운동사 연구에 지대한 업적을 남긴 조카 金義煥교수(부경대,신라대 및 일본九州大)를 소년시절부터 아들처럼 키웠다. 김의환은 1925년 1월생으로 마성국민학교를 졸업하자 백부 김동욱의 지원으로 만주국 수도인 新京(長春)에 있는 상급학교에서 공부를 계속하였고 해방 후 귀국하여 동국대학교에 입학하여 역사학 연구를 시작하였다. 동학농민운동과 의병운동을 비롯 방대한 한일 관계사 연구는 한국근대사 연구의 기념비적인 업적이라고 평가 받고 있다. 1992년 6월 타계한 후에 후학들이 一週忌 추모비를 건립하고 추모록을 헌정하였다. 아! 해방 후 70여년의 세월이 지나 선조들의 事績을 기리는 비를 우여곡절 끝에 세우니 감개무량하다. 이 비석 건립을 계기로 國難期 선조들의 愛國精神을 배우고 앞으로 인류 문명과 문화 발전에 기여할 棟樑이 하내마을 후손에서 우후죽순처럼 샘솟길 기원한다.
후손 金應鎬 謹撰(근찬:삼가 짓다)
건립일자 : 2016년 11월19일
※ 登第=登科, 中軍 : 대장의 직할 군대, 捐俸修廨(연봉수해), 民將息肩(민장식견)
刷賦從繩(쇄부종승), 吏相察眉(이상찰미), 棟樑(동량), 謹撰(근찬: 삼가 짓다)
철교와 다리 아래를 지나서 포장길을 걷는다...
안개가 피어 오르는 수려한 경관을 보면서...
아름다운 산수화같은 풍경....
돌출한 암벽이 일품인 갱빈에서...
오른쪽 위에 비 가리개를 한 철로자전거가 미끄러지듯 나아간다...
철로자전거를 건너서 동화나라 같은 나무 위에 집이 있는 쉼터.... 10:33:36
아담하고 정감이 넘치는 팬션.....
부실한 교량을 건너면 저음리와 가은 왕릉리로 길이 갈린다. 10:42:06
통행 제한 공고
구간 : 문경시 가은읍 갈전리 갈저교
금지, 제한의 대상 : 총중량 1톤 이상 차량 및 건설기계
기간 : 2020년 11월 17일부터 해재 시 까지
갈저교에서 올라 온 길을 내려 보니, 본래 냇가의 풍경이 추억 속에서 살아난다..
가은 가는 길에 농장(돈모아 농장)이 크게 지어져 있다...
길 위쪽에 마음의 고향인 조상의 분묘가 시대에 따라 모습이 바뀌고 있다.
( 慶州 金氏 宣敎郞公派 27대 達西以下 家族 墓園 )
과수원의 관리가 잘되어 사열을 받는 기분으로 지니간다....
갈마교를 건너며..... 10:55:05
총연장 120m 교폭 9m 설계하중 DB-24ton 공사기간 2004년 12월 17일 ~ 2005년 9월 12일
발주자 문경시 시공자 윤석건설(주) 설계자 (주)청우컨설탄트 설계책임자 최동광 공사감독자 박병하
현장대리인 김형대 준공검사자 안광범
갈마교 위의 풍경은 동양화의 멋스러움과 아름다움의 극치를 이룬다...
비온 뒤의 도로는 먼지도 없고, 산에서 피어 오른 안개는 꿈을 꾸는 세상 같다...
(주)에코제이피 공장을 돌아서 청량한 공기를 마시며...
골짜기 마다 피어 오르는 안개와 강바닥의 황금빛 물결이 아름답다...
가은논공단지 마지막에 위치한 가은하수종말처리장.....
논공단지에서 바라 본 옥녀봉의 추억이 새롭다.... 11:17:26
나무가지에 물방울이 얼어서 영롱하고. 골짜기의 얼음 위로 안개가 피어 오르며
냇가에는 황금빛 물결이 가득하다....
갈마교 옆의 정자에서 충분히 쉬면서 간식을 즐기고..... 11:38:45
철교와 교량이 놓인 위로 뾰족한 산이 내려본다.
깨끗한 민박집이 정겹다....
하내리 입구에서
하내마을 유래
1592년 임진왜란 때 경주 김씨 만손(萬遜)의 부인이 아들 유상(有祥)을 업고 이곳으로 피난을 와 현재의 마을이 형성되었습니다. 정착 당시 마을 전체가 다래 덩굴로 덮여 있었다하여 나(蘿)실 마을이 되었고 윗나실인 상내리와 아랫나살인 하내리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1899년에 간행된 문경현지에 보면 身南面 乃西川里로 기록되어 있었는데 1914년 일제강점기 당시 행정구역이 통폐합되면서 下乃里로 변경되었습니다. 현재 141가구 221명이 살고 있으며 인심 좋고 살기 좋은 마을로 소문나 귀촌인도 많이 늘고 있습니다. 마을 역사와 같이 한 참샘은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으며 겨울에는 얼지 않고 여름철에도 시원하여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蘿(나: 담쟁이덩굴 나)
하내리 입구 이정표
(하내리 방면)
보건지소 0.8km 한성연구원 1.1km 전통음식체험관 1.2km 상내교회 2.4km 도농교류관 2.6km
황토민박체험 2.7km 나실소공원 4.7km 백화산용주사 5km 백화산만덕사 5.3km 광교선원 6.2km
(저음리 방면)
나실체험마을 0.3km 강촌농원 0.1km
출발했던 주차장에 도착 .....수고하셨습니다. 12:42:07
첫댓글 하내리에서 가은천을 따라 올라 가는 길은 냇가의 옛 모습을 간직하고 풍경이 좋고, 물가에 백로와 외가리가를 보면서 위쪽으로 철로자전거가 지나가는 곳에 나무 위에 집을 지어 쉼터로는 예쁘게 꾸며서 마음이 편안하였고, 갈저교는 교량을 빠른 시간 내에 새로 놓아야겠다. 갈마교를 건너면서 안개낀 풍경은 엄청 좋았고 옥녀봉을 보니 추억이 새로롭고. 가은논공단지 냇가에 핀 버들강아지가 반가웠다. 비 온 뒤에 산에 피어 오르는 안개는 잠시 속세를 떠난 풍경으로 흡족한 탐방이 되어 감사합니다.
惡天候로 인하여 마양산 둘레길(下乃里~王陵里 加恩線 鐵道가 江邊을 돌아 가는 길)로 急旋回 하게 되었다.나실마을 앞 삼거리에 새로 조성된 慶州金氏 영웅들의 追慕碑를 탐독해보니 先烈들의 고귀한 희생에 저절로 고개 숙여진다.더구나 이 名文을 후손 金應鎬 謹撰하였다니 尊敬해마지 않는다.鐵橋아래로 전개되는 갱빈길은 바위절벽과 뒹구는 바윗돌,백로와 왜가리 무리가 水盤위에 노니는 듯 仙境을 수 놓아서 絶景을 이룬다.구랑리 水石은 수십년전부터 名物로 알려졌는데 지금도 채집하는듯 세워놓은 수석들이 이채롭다.廢 線路를 따라 그림같은 편션들이 줄지어선 來歷이 보인다.潛水橋가 위태로운 猪音里 갈림길부턴 加恩邑에서 조성한 도로답게 2차선이 힘차다.그러나 외진곳이라고 돼지축사를 함부로 조성하여 惡臭를 풍기고 있다.汚廢水는 그대로 潁江으로 쏟아부어 우리 食水源이 汚染되고 있으니 시급히 시정할 일이다.먹뱀이 마을은 廢洞되었다.그래도 이곳에서 金鐘國도 出生된 곳인데....鐵道따라 곧게 뻗은 도로를 따라 내달리니 加恩農工團地에 닿는다.얼음속에 버들게지가 예쁘게도 피었다.元點回歸하는 길은 낯익어서 훨씬 쉬웠다.다음번 안불정~저음리~갈전리~산수동 길이 벌써 기대된다. 여름에는 수렵도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