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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알바트로스
제39차 정기합평회
(2022. 1. 13.)
순서 | 제목 | 작가 | 합평 담당 |
1 | 주로 이 차만 나오셨네요 | 이미란 | 노아영 |
2 | 부모 졸업 | 최선화 | 백금태 |
3 | 괜찮아요 | 옥경자 | 변미순 |
4 | 흑싸리 쭉디기 | 채정순 | 서소희 |
5 | 힘을 빼다 | 백금태 | 안연미 |
6 | 도전 | 서소희 | 엄옥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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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이 차만 나오셨네요. / 이미란
1.결혼이라는 커다란 명제를 앞에 두고 쌍방간 서로를 파악하느라 부모님은 부모님들대로, 당사자들은 당사자들대로 머리를 굴렸다. 맞선을 본다는 어색한 자리가 나도 점차 선수가 되어갔다. 매번 서로 주산 알 굴리는 소리가 요란하였다.
2. 당시 나는 멀리 떨어진 시골 학교에 근무 중이라 주말에 집에 오면 연례적으로 한 두 번은 치루는 행사였다. 종갓집 종손녀와 국립 사대 출신이라는 신분이 선보는 시장에서는 나름대로 프리미엄이 붙었다.
3. 서울에 한 번 불려 가면 서울에 살고 있는 숙모님들, 고모님, 이모님들이 추천하는 선 자리를 이리저리 자리를 옮겨가며 하루에 대여섯 번은 기본이었다. 처음에는 상대의 얼굴도 거의 기억나지 않았다. 나는 보는 것이 아니고 보여주는 상태로 어색하기만 하던 그 역할이 점점 단련이 되어 실력 있는 선수가 되었다. 점차 나도 여유를 가지고 상대를 관찰하여 내 나름 계산을 하게 되었다.
4. 친척 할머니들, 숙모님들이 자기 친정 쪽으로 연결하려고 은근히 경쟁이 되었다. 한번은 종조모 친정 조카와 예약되어 있었는데 마침 당사자가 시험이 있어 자리가 비게 되었다. 제종조모가 급하게 자기 언니에게 연락하여 생질을 친정집으로 선보러 오게 자리를 만들었다.
5. 선보러 오는 총각도 아무 생각 없이 자기 이모 집에 온다는 엄마의 기사로 따라왔었다. 총각은 집에서 반대하는 아가씨가 있어 사전에 알리지 못했다고 한다. 당연히 옷도 갖추지 않고 잠바 차림이었다. 총각의 폼새는 눍수그레한 아저씨로 보였다.
6. 잠바를 한 손에 쥐고 들어오는데 ‘도대체 이 사람이 예의란 것을 외출시켰나.’라는 생각이 들어 맘이 편하지 않았다. 나도 이미 선보는 데는 갈고 닦은 베타랑 선수였고 더구나 그 장소가 우리 집 마루였다. ‘똥개도 자기 집에서는 50점 딴다는데’ 이미 칼자루는 내 손에 들어있었다.
7. 안채 대청에 처녀, 총각과 양갓집 모친하고 중매하시는 제종조모까지 5명이 둘러앉아 서로의 잣대를 재기 시작했다. 사랑채에서는 친척 아지매들이 문종이를 뚫고 구경하느라 야단이었다. 19세기 촌극이 벌어지고 있었다. 우리 마을은 집성촌으로 서로의 일을 자기 일처럼 관심이 많았다.
8. 나의 잣대는 이미 아니올시다로 기울고 있었다. 이유는 눈을 치뜨는 습관으로 인해 이마에는 3선 주름이 뚜렷하고 자리 잡혀 있었다. 게다가 파리가 들어갔다가 한 바퀴 돌고 나올 정도로 커다란 콧구멍이 많이 거슬렸다. 그 외 여러 가지의 총점은 ‘아니다.’로 굳어졌다.
9. 할머니 체면치레나 하면 된다는 결론을 짓고 보니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상대편의 세세한 것이 다 보이고 주산도 잘 퉁겨졌다. 뻔한 이야기가 오가고 헤어지면서 이튿날 다방에서 둘만 만나보라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10. 할머니 체면을 봐서 최소한 두세 번만 만나준다는 나대로의 답안지 작성은 끝나있었다. 다방에 들어가니 어제보다는 입성을 갖추고 나와 있었다. 워낙에 말이 없는 사람이었고 나는 이미 요조숙녀 역할을 할 필요가 없는 상태니 모든 대화는 내가 이끌어갔다.
11. 상대편 인상이 곱슬머리에 옹니, 게다가 눈꼬리가 촉 쳐져 있는 것이 성질깨나 있어 보였다. D 중, D 고, Y 대를 나왔다는 학력을 듣고 “주로 이차만 나오셨네요.”라고 훅을 한 방 날렸다. 최소한 얼굴색이라도 변해야 하는데 아무 반응이 없었다. ‘성질은 괜찮은 편인가? ‘ 머리를 굴려보았다.
12. 겨우 한다는 말이 답답하니 바람 쐴 겸 동화사나 한 번 가자고 했다. ‘8cm 높이의 하이힐은 신었는데 어디를 가자꼬.’ ‘왜지?’ ‘한번 가보지 뭐’ ‘그러면 의무 미팅 2번은 채운다. 이제 끝이다.’
13. 초등학교부터 중학교까지 십 리의 등하굣길을 걸어 다녔고, 뿐만 아니라, 소 먹이러 산을 평지처럼 오르내리며 갈고 닦아 다져진 내 다리 근육이었다. 하이힐을 신었지만, 거뜬히 운동화 신고 요조숙녀인 체하는 아가씨들보다 쉽게 올라갈 수 있었다. 이 정도면 의무 미팅도 다했고 총각이 덤으로 후포까지 자가용으로 데려다 주었다. 숙제를 다 했다는 개운한 마음과 나의 탐색전에 만족해하면서 기분 좋게 헤어졌다.
14. 그런데 여기서 상대편은 자기들대로 종합적인 탐색전이 치열했었다고 했다. 다방에서는 시아버지뿐 아니라 시누이들까지 총동원되어 나를 요리조리 재고 있는 줄은 까맣게 몰랐다. 나의 건방진 태도가 얼마나 거슬렸을까. 게다가 동화사 등반은 나의 건강 상태를 조사하기 위한 탐색전이었다고 하니 고수한테 당했다. 탐색전의 성적 합계는 내가 패자였다.
15. 옆에서 자고 있는 아저씨 얼굴의 콧구멍은 아무리 보아도 크다.
부모 졸업 /최선화
1. 카톡이 발걸음을 재촉한다. 동기가 막내아들의 혼사소식을 알려준다. 전자 청첩장을 여니 복사꽃처럼 화사한 신부와 조각상 같은 신랑이 나타난다. 속살이 비치는 웨딩드레스와 턱시도의 모습도 있다. 사진을 쓰윽 밀었더니 전통 한복치레를 한 청춘 남녀가 눈길을 붙든다. 세상에 이 보다 더 고운 사람들이 있을까 싶다.
2. 청첩장에는 부모와 신랑 신부의 이름이 도톰하게 돌출되어 있다. 안팎으로 잘 알고 있는 사이라서 그런지 유달리 돋보인다. 목판에 조각도로 새긴 글자 이상으로 도드라져 보인다. 종이 청첩장보다 익숙한 이미지들을 이리 밀고 저리 밀며 다시 보기를 얼마나 했는지 모른다. 도저히 강건너 불구경이 안된다. 나름대로 자제해 보지만 억지춘향에 불과하다. 그것도 약했는지 혼주와 신랑신부의 이름자가 또 다시 양각이 되어 눈앞을 맴돈다. 마음은 또 다시 돌무덤이 된다.
3. 부럽다는 말로 도배한 답장을 보낸다. 자식 농사를 제법 잘 지은걸 알기에 진심어린 덕담까지 얹어 보낸다. 보내자마자 어떻게 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는 겸손의 답장이 날아온다. 요즘처럼 비 혼주의자가 넘치는데 가주는 것만 해도 복이 터진 거라며 또 다시 추켜세운다.
4. 순간 동기는 조금 전과 달리 심드렁하다. 반응이 오히려 회색에 가깝다. 아무래도 무슨 일이 있었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자식을 결혼시킨다는 사실 하나만 해도 부러워했던 찰나에 불만에 가득 찬 혼주를 만난격이다. 무언가 복잡한 이야기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아 카톡 대신 전화를 건다.
5. 무슨 일이냐 했더니 기다린 듯이 푸념이 쏟아진다. 아들은 결혼과 동시에 그 여자의 남편이더라며 쇠소리가 날아온다. 듣고보니 아들은 내 자식은 커녕 내 편이 아니라는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실은 평소에 질리도록 들은 이야기다. 하지만 사람이 어디 다 똑같을까 라며 흘렸던데 내 생각을 뒤집는 이야기가 태산이다. 딱한 생각이 들어 귀동냥만 주구장창 한다.
6. 듣다가 듣다가 이유를 물어본다. 들은 이야기는 지인들의 축하는 혼자 다 받은 것 같은데 멀쩡한 자식을 지인들 앞에 내세울 준비가 이것이 진짜 다란 말이냐며 오히려 되묻는다. 결혼자금을 찾아와 아들 통장에 넣어준 것 이외에 바쁜 것은 없더라는 불평도 덧붙인다. 허깨비를 본 듯 하다며 주저리주저리 쏟아내는데 목이 메케해져 전화기를 은근 슬쩍 귀에서 떼 냈다가 가까이하기를 반복한다.
7. 동기는 아들에게 꽤나 섭섭했던 모양이다. 그러니까 자식의 혼사를 앞두고 이삿짐 센터라도 차릴 생각이었던지 알 수가 없다. 아니면 헉헉거리며 뛰어다닐 생각을 했던걸까. 아마도 그랬던 모양이다. 하지만 시시콜콜 의논을 구해오거나 셍각을 묻는것 조차 드물다보니 본인의 몸값이 평가 절하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본다. 아들이 내 도움을 구하지 않는 것이 열에 하나 내 존재의 이유가 없어졌다거나 엷어진 걸로 가 닿았다는 말이다. 세월 따라 생각들이 바뀐 것을 알기는 한데 막상 본인의 일이 되고 보니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게 문제였으리라.
8. 결혼적령기 마저 늦어진 이 시절의 청춘남녀가 가정을 이루겠다며 의논을 구해오면 삶의 지혜를 풀어내주면 된다. 사사건건 내 손을 거쳐야하고 내 발품을 팔아야 직성이 풀린다는 건 애먼 소리가 아닐까. 하지만 전화선 너머에는 전하지 않는다. 불난 집에 부채질할 용기가 없어서다.
9. 항간에는 태어날 적부터 성장기 중간 중간에 부모로서 보람을 느끼게 해 준걸로 만족해야 한다고들 한다. 죽을 때까지 치마폭에 싸안고 살 생각이나 본인 주변을 맴맴 도는 캥거루족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리라. 이는 곧 부모로서의 역할도 어느 순간부터는 서서히 줄여야 한다는 말이자 무한 리필을 하려고 해서는 곤란하다는 뜻이다. 즉, 반듯하고 건강한 사회인으로 자리 메김 하도록 키우고 영양분을 주었으면 되었다는 것이기도 하다.
10. 자식은 내 소유물이 아니라는 말도 있다. 아니 흔하다. 모 종교인은 여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독립한 자녀는 내 가족이 아니라고 공공연히 강의하는걸 들은 적이 있다. 옹골찬 도전을 축하해주고 더 이상 요구하거나 기대를 하지 말라는 뜻이다. 그러다보면 상호간에 건강한 항체가 생길 줄 안다고도 했다. 그러다가 구질구질하게 미련을 떨지 말라며 목소리를 꽤나 높혔었다. 처음 들었을 때는 너무 각박한것도 같고 나무의 표피같은 질감으로 와닿아 불편했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이는 자연의 진리로 보였으며 어느 순간부터는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11. 아무리 생각해도 결혼준비를 하는데 부모의 힘을 빌지 않았다는 건 자랑이다. 본인이 각본을 안 짜도, 그들이 미리 알아서 분리작업에 들어가 주었다는 것이니 복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부모는 단지 독립을 아낌없이 축하해 주고 부모라는 직업에서 졸업할 날을 자축하는것만이 남았으니 축복 바로 그 자체가 아닐지.
12. 그러니까 혹여 자식들의 공간이 빈자리가 되면 내 자신을 충전시키면서 시간과 삶을 재정비하면 될 것이다. 간담이 서늘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자식과 원가정이 건강한 뿌리를 내릴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하지만 혼사 소식을 보내 온 동기에게는 끝까지 말문을 닫는다. 미혼의 자식 둘을 둔 입장에서 무슨 말을 할 자격이 있을까 싶어서다.
13. 졸업! 부모로서의 졸업을 한 세상 사람들이 오늘따라 더더욱 부럽다. 사람 욕심은 끝이 없나보다.
괜찮아요 / 옥 경 자
(1) 의사표현이 되지 않는 딸은 지적장애로 인지능력이 서너 살 아이에 머물러 있다. 미열이 있는 것 같아서 병원에서 3일치 약을 처방 받아왔었다. 의사의 말로는 감기기운이 좀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다른 때와 별다른 증상은 없고 그냥 미열만 계속됐다. 잘 먹고 잘 자고 해서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않았었다.
(2) 그래도 열이 계속 나는지라 사위에게 전화를 했다. 사위는 둘째 딸의 남편으로 종합병원 마취통증과 의사이다. 복부에 무슨 문제가 생긴 것 같다고 CT를 찍어보자고 했다. 결과는 맹장이 터져 복막염이 됐고 장기의 유착이 심하여 위험한 순간이라 했다. 담당의사는 정말 많이 아팠을 텐데 어떻게 참았을까 하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3) 그때가 오후 3시, 수술이 시급한 상황이었지만 점심을 먹어서 저녁 8시까지 기다려 수술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아이의 하루하루가 아무리 내 마음을 힘들게 했어도 아파도 아프다고 표현 할 수 없던 이 순간보다 힘들었을까. 이런 내가 엄마란 자격이 있을까 하는 자책이 들기도 하고 뭐라고 표현 할 수 없는 원망 같은 서러움이 훅 가슴을 깎아 내린다.
(4) 억겁(億劫)의 인연이 쌓이고 쌓여 부모와 자식의 연을 맺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몇 십 년 동안 내 삶의 대부분이 너로 인해 묶여 있을 때도, 속이 상할 때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았지만 강인한 엄마여야 한다고 온통 무장을 하고 울지 못했다. 허나 지금은 하늘이 들리도록 큰 소리로 울고 싶다. 간혹 같이 죽자고 모진 말들을 할 때도 있었지만 그것은 참을성이 없는 나에게 던지는 스스로의 자책이었다. 딸아이가 미워서도 귀찮아서도 아니었다고 고백을 하면서 기다리는 시간은 망망대해에서 구조를 기다리는 것과 같았다.
(5) 멈춘 듯 했던 시간이 그래도 흘렀다. 수술을 집도한 의사가 나왔다. 긴장한 마음을 읽었는지 싱긋 한 번 웃어주었다. 사람은 누구나 할 것 없이 병원에 오면 주눅이 든다. 더구나 수술실 앞에서야 오죽하리오. 수술은 잘 됐지만 상태는 지켜봐야 할 것이고 환자가 표현을 못하니 수술 후가 더 걱정이라 했다. 맹장수술은 쉬운 수술이기도 하지만 이런 경우가 되면 가장 어려운 수술이 된다고 했다. 장기가 유착되어 염증이 심해서 그것들을 정리하느라 수술시간이 많이 길어진 것이라고 덧붙인다. 뒤이어 나온 딸은 마취가 덜 풀려 “괜찮아요. 괜찮아요.”를 잠꼬대처럼 뱉고 또 다시 깊은 잠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6) 링거가 주렁주렁 매달린 딸의 손등이 퉁퉁 부었다. 아프냐고 물어도 괜찮다고만 했다. 도대체 얼마나 아파야 아프다고 할 건지 답답하기도 하고 짠하기도 했다. 며칠 동안 금식이라 배가 고플 것이었다. 왜 밥을 못 먹게 하느냐는 하소연을 하느라 문병 오는 사람만 보면 울기부터 했다. 링거가 밥이다 해도 소용없고 상황을 설명해도 알아듣지를 못하니 문제는 먹지 못하는 설움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뱃속에서 맹장이 곪아터져도 끼니를 찾던 아이가 아니던가.
(7) 간호사를 불러 링거를 다른 손에다 옮기고 퉁퉁 부은 손등을 만져본다. 가슴이 찌릿하게 아파온다. 아픈 몸보다 입에 들어가는 것이 우선인 딸아이의 생각은 온통 먹을 것에만 집중해 있었다.
(8) 딸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다. 나도 먹어야 살기에 여기저기 복도에서 숨어서 먹을 공간을 찾았다. 배고프다고 징징대는 딸아이 앞에서는 먹을 수가 없었다. 누가 보면 참으로 이상한 광경 같지만 슈퍼마켓에서 파는 밥을 전자레인지에 데워서 사람들의 왕래가 없는 곳을 찾아서 고추장에 멸치만으로 후다닥 먹었다. 그러고는 안 먹은 척을 해야만 했다.
(9) 가스가 나와야 죽이라도 먹을 텐데 표현이 안 되니 나도 미칠 지경이다. 아니 벌써 가스가 나왔는지도 모를 일이다. 옆 침대의 아줌마는 어제부터 가스가 나왔는데 먼저 수술한 아이는 표현을 못하니 “괜찮아요. 괜찮아요.”만 연발한다. 그것은 밥을 먹어도 괜찮다는 표현이다.
(10) 담당의사는 옆에서 잠시도 자리를 비우지 말라고 하면서 조금만 기다려 보다가 표현이 안 되니 CT를 한 번 더 찍어보고 밥을 줄 것 인지를 결정하자고 했다.
(11) 간호사가 주사를 놓는 사이에 들리는 확실한 방귀소리에 간호사와 나는 환호성을 질렀다. 병실에 있던 모든 사람들도 축하의 박수를 보냈다. 오늘의 위기는 이렇게 또 마무리를 지었다. 내일은 또 내일의 해가 뜨리니 나도 괜찮다는 말로 안도의 한숨을 쉬어본다.
흑싸리 쭉디기 / 채정순
딸이 네 살짜리 외손자의 밥상머리 버릇을 고친다고 부산하다. 아이의 종아리엔 회초리가 소나기처럼 지나가 지렁이가 붙은 듯 그 자국이 섬뜩하다. 맞은 곳을 어루만지며 흐느끼는 어린 것이 측은하다. 사나운 그림을 보고 있으니 내 속이 다 터져나간다. ‘
매 삼아 때린 철사 옷걸이를 쓰레기통에 마구 꾸겨 넣는다. 아이의 울음소리가 듣기 싫어 현관문을 박차고 나온다. 따라 나오는 딸의 숨결도 떨쳐 버린다. 사나운 마음을 가라앉히려 훌렁훌렁 임도를 향해 걷는다.
마음이 먼저 내 달아 햇살이 잠깐 졸고 있는 산언덕에 올랐다. 고사목 등걸에 기대어 차오른 숨을 부리는데, 벼랑 아래 그득한 싸리나무 그루들이 반갑다. 계란형의 작은 잎사귀 사이로 케이크용 촛불 같은 꽃들이 주위를 오목하게 밝히고 있다. 왈칵 눈물이 쏟아진다. 시집살이하던 때의 곤욕이 되살아 나서다.
시집에서 내 별명은 ’흑싸리 쭉디기'였다. 고스톱 화투판에 흑싸리 쭉디기는 어느 짝에도 쓸모가 없다. 병약해 누운 날이 많은 내가 쓸데가 별로 없어서였다. 아버님이 당신 손주들이 내 품을 찾으면 냉소를 보냈다. “흑사리쭉디기 같은 네 엄마가 좋냐고, 그 말을 들으면 깊은 곳에서 오기가 솟아 올랐다.
조카 백일 날이었다. 나는 백화점에서 아기 원피스를 사서 동서에게 선물했다. 일가 여자들이 모인 방에서 나를 불렀다. 음식을 더 청하나 싶어 갔더니 백일 선물을 펴놓고 구경하던 중이었다. 그중 한 어른이 내가 선물한 옷이 촌스럽다고 바꿔 오라고 했다. 자존감이 바닥을 치는데 옷 색깔 하며 무늬도 내 꼴인 싸리꽃이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하얀 바탕에 홍자색 싸리꽃 무늬가 박힌 심플한 원피스가 마음에 들었다.
싸리나무는 빗자루를 만들어 싹싹 쓴다고 하여 붙어진 이름이다. 싸리나무는 우리 인간의 생활 구석구석을 책임지는 작은키나무다. 집 기둥과 울타리로 쓰일 뿐 아니라 채반, 방구리, 광주리, 소통망태, 바지게, 윷, 등 오늘이 있기까지 간구한 살림의 한 부분도 맡고 있었다. 순은 나물로 묻혀 먹고 잎과 가지는 해열, 이뇨, 폐에 좋다. 뿌리 역시 호자자근(胡子紫根)이란 이름으로 약으로 쓰인다.
나 역시 엄벙해 보이는 허우대지만 내 집에서는 쓰임이 많다. 새댁 때는 맏며느리라 전기공사를 나가시는 아버님 전업사를 맡았다. 아버님 타개 후에는 동서 가게의 직원으로 일했다. 이슥한 나이가 되어서는 슈퍼마켓을 차려서 했다. 없는 살림이라 손톱에 여물을 쓸듯 맞벌이로 살아가며 살림을 일으켰다.
자식 농사는 순조로운 편이었다. 딸과 아들은 과외 하나 시키지 못했지만, 학업을 잘 쌓았다. 물론 나름의 철학이 들고 가치관이 서기까지 유리알을 다루듯 조심스럽긴 했다. 이름 모를 싹에 물과 햇볕 쬐는 방법을 몰라 시행착오를 겪기도 했다. 아들이 전공을 마다하고 물꼬를 다른 곳으로 터는 바람에 가슴을 태웠다. 하지만 다른 분야에서 우뚝 서 대견스럽다.
인생의 가을인 지금도 분주하긴 마찬가지다. 딸이 맞벌이하는 바람에 외손주들을 돌보느라 두 집을 오간다. 자식들이 떠나가고 손주들이 태어나기 전 찾아온 빈둥지증후군 덕으로 자기 계발도 한다. 친구 따라갔다가 문학에 입문하여 개발괴발 쉼 없이 긁적이고 있다. 글로 나를 담다 보니 허전함과 우울감은 찾아들지 않는다.
사분거리는 싸리나무 꽃잎들이 가난한 시절을 불러와 소박한 삶을 오근자근 들려준다. 아이러니하게도 대나 댑싸리 빗자루보다 싸리비가 지나간 골과 골 사이의 흔적이 더 정갈해 보였다. 몽땅 싸리비로 싹싹 쓸어주는데 등을 대고 가만히 있던 소도 떠오른다. 둔탁하지 않고 사그락거리며 떨어지는 윷가치도 정감이 갔다.
싸리나무는 꽃이 화려하지 않다. 몸이라도 우람하면 동량(棟梁)으로 쓰겠지만 기껏해야 사립문이다. 약하기 그지없어 어디에도 쓸모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질기고 매서운 탓에 이리저리 많이 쓰인다. 특히 회초리로 교육 고양에 일조하여 사람을 인간으로 만드는 공로는 가장 크다.
전지가위를 잡고 늘씬하고 매끈한 줄기 몇 개를 끊는다. 모자간에 질척거리고 있는 살풍경을 바라보는 것보다 이 선택이 백번 났다. 이제부터 그 집 매는 내가 담당하기로 정하니 마음이 기꺼워진다. 흑싸리쭉디기지만 한 쓸모 하겠다.
힘을 빼다 / 백금태
1) 파크골프를 친다. 채를 잡은 손에 힘을 빼고 티박스에 올려진 공에 눈을 맞춘다. 천천히 채를 들어 자세를 잡은 후 재바르게 공을 향해 포물선을 그린다. 채를 만난 공은 미끄러지듯 잔디 위를 굴러간다. 성공이다! 왼쪽으로도, 오른쪽으로도 기울어지지 않은 채 홀을 향해 똑바로 굴러간다. 손맛이 짜릿하다.
2) 파크골프를 시작한 지 이 년이 다 되어간다. 코로나로 중간중간 쉬기도 했지만 그래도 구력의 햇수는 여 축 없이 쌓여간다. 운동신경이 둔한 탓에 처음이나 지금이나 실력은 별반 다를 바 없다. 팔과 어깨의 힘을 빼라는 구장 선배들의 잔소리가 귀에 목이 박히도록 들었건만 채를 드는 순간 바짝 힘이 들어간 팔과 뻣뻣해진 어깨로 공을 날린다. 공은 왼쪽 오른쪽 경계선을 넘나들며 오비를 내기 일쑤다. 곰곰이 생각해 본다. 팔에, 어깨에 잔뜩 힘을 실은 것은 바로 욕심 때문이다. 더 잘 치고 싶다는 욕심이다. 장거리 코스에서는 더 힘이 들어간다. 더 멀리 보내고 싶은 욕심이 앞선 탓이다. 우리의 삶은 살아가는 자체가 욕심일지도 모른다.
3) 며칠 전, 구장에서 언짢은 일이 벌어졌다. 우리 팀 4명이 앞 홀에서 공을 치는데 뒤 팀이 우리 뒤를 바짝 뒤따라오고 있었다. 뒤 팀은 모자와 마스크 사이로 빼꼼히 보이는 눈빛으로 짐작건대 우리보다는 대여섯 살은 높은 듯 보였다. 몇 홀 지나지 않아 뒤 팀의 잔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꾸물거리지 말고 빨리 치고 나가라는 것이었다. 심지어는 앞 팀이 아직 홀 마무리도 하지 못한 상태에서 우리 더러 공을 치란다. 거기까지 공이 갈 리 없다며 우리의 실력까지 운운하며 조롱하는 듯한 말투였다. 혹시 실수로 공이 멀리 간다면 앞 사람이 맞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파크골프 공은 아이의 주먹만한 크기에 돌덩이처럼 딱딱하다. 채에 맞은 공이 흉기로 변해 사람을 다치게 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그래서 앞 팀이 홀을 완전히 빠져나간 후 뒤 팀이 공을 쳐야 하는 것이 불문율로 되어있다. 그런데 그것을 기다리지 못하고 재촉하는 성질 급한 사람들을 종종 만난다.
4) 파크골프는 시니어들을 위한 운동이다. 이때까지 바쁘게 살아온 삶을 내려놓고 여유롭게 건강을 챙기는 시니어들이 대부분이다. 그렇게 바쁠 것도, 챙길 것도 없는 사람들이다. 조금 빨리 치면 어떻고, 한발 늦게 가면 어떤가. 다섯 홀 칠 것을 네 홀 치면 될 것이고, 오늘 못 치면 내일 또 치면 될 것을. 아무래도 우리 팀이 뒤 팀보다는 실력이 달리는 게 분명했다. 그러다 보니 치는 시간이 지체되는 때도 있었다. 연세 드신 분들이니 우리가 참자며 서둘러 홀을 빠져나오며 안 부딪히려 애썼다.
5) 그런데 일은 터지고 말았다. 100m가 넘는 장거리 홀에서였다. 우리가 먼저 치고 나가고 뒤 팀은 티박스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팀원의 공이 오비를 내면서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언제 날아올지 모를 뒤 팀의 성화에 신경이 쓰여 뒤를 힐끔힐끔 돌아보며 길게 자란 잔디에 몸을 숨긴 공을 찾느라 분주했다. 아니나 다를까. 고함이 뒤통수로 날아들었다. “우리가 먼저 쳐 나갈게요.” 파크골프장은 협소해서 앞 팀이 나가기 전에 뒤 팀이 치면 피할 공간이 별로 없다. 우리를 홀 가운데 두고 공을 치겠다는 것이었다.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공이 어디로 날아갈지 모르는데 말이다. 공은 금방 찾았다. 일이 분도 채 걸리지 않은 시간이었는데 그 사람들한테는 십 분 이십 분처럼 길게 느껴졌나 보다. 우리의 인내도 바닥이 난 걸까. 연거푸 들리는 소리에 대꾸도 하지 않았다. 양보할 생각은 더더욱 없었다. 못 들은 척 천천히 마무리하고 다음 홀로 갔다. 그들의 부아를 돋우고 싶은 마음도 깔려 있었다.
6) 다음 홀에서 그 사람들과 맞닥뜨렸다. “어찌 그렇게 배려심도 없어요. 그래도 저희보다는 오래 치신 것 같은데요.” 팀원 한 사람이 올라오는 분노를 꾹꾹 억누르며 조용히 따졌다. 그러나 싸늘한 반말이 돌아왔다. “한번 말할 때 반성해야지. 왜 앞에서 얼쩡거리노.” 그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두 팀은 이판사판이 되었다. 4대4의 싸움이었다. 고성에 구장이 들썩거렸다. 나뭇가지에 앉았던 한 무리의 새들도 놀란 듯 푸드덕 날아갔다. 순식간에 수많은 눈의 구경거리가 되고 가십거리가 되었다.
7) 그 일이 있고 난 후 우리는 한참 동안 그 구장에 가지 않았다. 너무 부끄러웠다. 구장에서는 종종 싸움이 일어난다. 서로에 대한 배려와 양보심이 부족한 탓이다. 다른 사람이 그럴 때는 성인군자인 양 말한다. 막상 자기 일이 되면 양보도 배려도 팽개친 채 욕심이 앞선다. 시니어들의 삶을 다시 돌아본다. 지나온 세월보다는 남은 시간이 훨씬 적으리라. 그래서 너나 할 것 없이 자꾸만 조급해지는 걸까?
8) 채를 쥐고 힘을 뺀다. 그리고 채를 부드럽게 공에 갖다 댄다. ‘딱’ 공이 경쾌한 소리를 내며 잔디 위로 미끄러져 간다. 공이 편안해 보인다. 내 팔과 어깨도 친 듯, 안친 듯 편안하다. 힘을 빼라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 것 같다.
9) 우리의 삶에도 힘을 빼야 할 곳이 참 많다. 구장에서의 싸움도 서로 힘을 빼지 못해 일어났다. 감정의 힘을 빼지 못했고, 고집의 힘을 빼지 못했고, 욕심의 힘을 빼지 못했다. 남을 탓하기 전에 나부터 힘을 빼는 연습을 해야 한다. 다시 샷을 날린다. 공이 잔디를 간질이며 가볍게 굴러간다.
도전 / 서소희
1.바람과 함께 금호강변을 달린다. 한낮의 시간,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강변에 나와 있다. 바람 때문일까. 기분이 좋다. 자전거를 끌고 나오기를 잘한 것 같다. 왜 이 좋을 것을 진작 하지 않았을까. 살짝 후회가 밀려온다.
2.한 대의 자전거가 ‘휙’하며 나를 추월한다. 뒷모습을 바라보니 옷 밖으로 드러난 팔뚝과 다리가 새까맣다. 얼마나 열심히 자전거를 탔던 것일까. 무엇인가에 열심히 하는 사람을 보면 부럽다. 저렇게 한번 자전거 타기에 미쳐보고 싶다.
3.강변 풍경과 함께 달리다 보니 강정고령보다. 이곳에는 사람들이 더 많다. 이번 일정은 여기까지다. 풀밭에 자리를 잡고 혼자 커피를 마신다. 날씨가 좋다는 생각과 커피가 맛있다는 생각을 한다.
4.혼자만의 짧은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다시 자전거에 오른다. 너무 멀리까지 갔던 것일까 힘이 든다. 날씨도 더 더워진 듯 하다. 등줄기로 땀이 비 오듯 흐른다. 자전거 도로를 벗어나고 아파트가 보인다. 이때부터 오르막길이다. 내려 올 때는 무임승차였는데 오를 때는 값을 두 배 치르는 느낌이다. 허벅지가 터질 것 같다. ‘그래 한번 해보자’ 마음먹으며 잇몸을 꽉 깨문다. 입속에 거품이 부글부글 이는 것 같다.
5.드디어 도착이다. 자전거를 거치대에 세워놓고 걸으니 무릎이 푹푹 꺾인다. 겨우 집에 도착해 거실바닥에 벌러덩 눕는다. 몸이 텅 비어있는 풍선 같다. 뾰족한 무엇이 닿기라도 하면 펑하고 터져버릴지 모른다. 터져버릴 것 같은 몸을 붙들기 위해 깊은 호흡을 한다. 이내 몸과 마음이 편안해지고기분 좋은 나른함이 찾아온다.
6.사십대에 들어서며 자전거를 배웠다. 자전거 타는 것은 생각보다 쉬웠다. 또한 자전거를 타고 쌩쌩 달리면 기분이 좋았다. 바람이 뺨을 어루만질 때는 ‘사는 것에 이런 재미가 있구나’ 하고 감탄도 했다. 배울 때는 빨리 달리지 않아서 넘어지지도 않았다. 그래서 자만했던 것일까. 두 번 아주 심하게 넘어진 적이 있다. 사고는 항상 자만하는 순간에 찾아온다.
7.처음 자전거를 타다 넘어졌을 때 너무 아팠고 창피했다. 거기다가 남편의 화난 잔소리는 심장까지 전달되었다. 엎어져 있고 싶었지만 억지로 몸을 세웠다. 다행히 뼈는 부러진 곳이 없었다. 찰과상과 근육이 놀랐을 뿐이었다. 한 이주 정도 한의원에 침을 맞으며 절뚝거리며 걸었다. 그때는 젊었다. 아마 젊은 덕을 본 것인지 몰랐다. 그리고 자전거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8.이 삼년의 시간이 흐른 후, 이상하게 또 자전거가 눈에 들어왔다. 다시 안장위에 올랐다. 넘어지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없지는 않았지만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이든 넘어지면서 배우는 것이라 주문을 외웠다. 자전거 위에 올라보니 쉽게 예전의 속도감을 되찾았다. 넘어진 기억의 두려움보다 바람을 가르며 달리는 재미가 더 좋았다. 여러 번 지나다닌 길은 가파른 내리막길이어도 두렵지 않았다. 지나친 자신감은 화를 부른다고 했던가.
9.내리막길을 신나게 내려오는 중에 자전거가 팽 도는 느낌이 들었다. 아마 얕은 턱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거짓말처럼 눈 깜짝할 사이 저전거가 옆으로 미끄러지며 몸이 앞으로 튕겼다. 바닥에 손이 먼저 닿았다. 그 다음 윗입술이 디딜방아처럼 땅을 찧었다. 짧은 순간이었다.
10.누군가 자전거 타다 이가 몽땅 부러졌다는 말이 이명처럼 들려왔다. 아, 내 이빨······. 아마 조금만 더 세게 땅바닥과 부딪혔다면 앞 이빨이 다 부러졌을지 몰랐다. 바지가 찢어지고 무릎에 피가 흘렀다. 얼굴과 손바닥도 마찬가지였다.
11.그날 밤 무릎 생채기에서 열이 펄펄 났다. 너무 아파 진통제를 먹어야 했다. 다음 날 치과에 먼저 갔다. 앞 이빨이 미세하게 금이 가 버렸다. 언젠가는 성한 이보다 먼저 치료를 받아야 할 것이다. 한의원에도 들렀다. 한의사는 침을 놓으며 “자전거를 타다 영구장애를 입은 사람을 여럿 보았다”고 했다. 그만큼 자전거를 탄다는 것은 무서운 것이니 타지 말라는 조언까지 해 주었다. 그날의 아픔은 여름날의 땡볕마냥 강렬했고 질기게 머물렀다.
12.그렇게 또 몇 년의 시간이 흘렀다. 시간이 지나면 육체적인 고통은 퇴색되기 마련이다. 이번에도 조심스럽게 또 자전거에 올랐다. ‘아주 위험한 일’이라는 한의사의 말이 귓속에서 자꾸 부스럭 거렸다. 자전거를 타는 것은 분명 위험한 것일지 모른다. 하지만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는 삶은 의미가 없다.
13.자전거에 오를 때 넘어지던 날의 기억이 불쑥 찾아왔다. 그 퇴색되지 않는 기억, 또 넘어질 것 같은 두려움에 겁도 났다. 두려움을 없애는 방법 한 가지 뿐이다. 자꾸 경험해서 익숙해지는 것이다. 세상만사 겁을 먹으면 되는 일이 없다. 도전하고 경험해야 세상 일이 만만하고 편안해진다.
14.누구에게나 도전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나 또한 이번처럼 다시 자전거 타기를 실행에 옮기기 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일단 아침을 먹고, 할까 말까 많이 망설였다. 생각이 많으면 머리가 아프기마련이다. 행동으로 옮기기도 전에 마음이 먼저 지쳐 포기하기 일수였다. 포기는 ‘할 걸’ 하는 미련을 남겼다. 그 씁쓰레한 미련은 생각보다 오래갔다.
15.미련의 씁쓰레함을 몇 번 맛보아야만 도전은 실행의 단계로 간다. 결심이 확고해지면 마지막으로 믹스커피를 한잔 마시며 카페인의 힘도 빌린다. 이상하게 그것을 마시면 순간적인 힘이 솟는다. 살아가는 것이 조금이라도 만만하고 즐거워질 그날을 상상하며 오른손을 살짝 든다. 그리고는 허공에다 대고 나는 ‘도전’을 외친다.
16.도전을 위해 집 밖을 나오기만 하면 반은 성공 한 셈이다. 갈등하던 일은 막상 해보면 아무것도 아니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긴다. 그러니 두 번째부터는 더 쉬워지는 법이다. 두 번 세 번 하다보면 도전은 만만해진다.
17.오늘의 도전은 자전거 타고 강변도로를 달리는 것이었다. 도전, 그리고 완수! 흐뭇하다. 작은 도전이 미칠 영향은 어디까지 일까. 일단 내일은 자전거를 타고 걸어서 사십분 거리에 있는 수영장까지 가 볼 작정이다. (2020년 6월)
그 후; 수영장을 갈 때는 항상 자전거를 탄다. 자전거를 타고 거리를 달릴 때는 절로 콧노래가 나온다. 그리고 아직 넘어지지는 않았다. 만약 한 번만 더 넘어지면 그때는 자전거 타는 것을 접을 작정이다.
그 후, 또 그 후; 가을 날 젖은 낙엽 때문인지 또 넘어졌다. 일 년을 넘게 탔는데도 아직 초보인 모양이다. 자전거를 타는 것이 무섭지만 여전히 자전거를 타고 수영장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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