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으, 왜 이러지? ”
해빈이는 두팔로 자기 몸을 묶을 듯이 배를 움켜잡으며 온몸을 구부렸다. 갑자기 배가 이상하고 눈앞이 핑 돈다. 급히 낡은 현관문을 밀치고 화장실로 뛰어들었다. 아픈 건지 어지러운 건지 구별이 안 된다. 방향이 왼쪽으로 사르륵 도는 것 같기도 하고 오른쪽으로 사르륵 도는 것 같기도 하다. ‘아, 아’ 소리 없는 비명을 질러본다. 뱃속 어딘가를 슬그머니 찌른다.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어 두 손으로 배를 움켜쥘 뿐이다.
‘벌써 몇 번째야? ’ 그러고 보니 우편함을 들여다볼 때마다 배가 아팠던 것 같다. 우편함을 본체만체 ‘흥’하고 들어오면 괜찮을까? ‘말도 안 돼.’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었다.
“왜, 또 배 아퍼? 그러게 아침에 화장실 꼭 가라 했 자 녀.”
어느새 다가온 할머니가 벌줌이 열린 문틈에 대고 커다란 목소리로 버럭 한다. 곧이어 ‘푸웅’ 소리가 뒤따른다. 할머니가 소리를 지를 때나, 커다란 소쿠리를 내려 놓을 때나, 급히 발걸음을 재촉할 때 자주 들을 수 있는 소리다. 할머니는 작은 오토바이 배기통을 달고 다닌다. 처음엔 악 소리 지르며 코를 틀어 잡았지만 눈에 보이지도 않고 별반 냄새도 없다.
“그게 아니야, 할머 니이.”
덩달아 해빈이 목소리도 커진다.
큰 목소리에 비해 마르고 작은 몸집의 할머니. 억척스럽고 일손도 빨라서 해빈 할머니는 동네에서 ‘번개 할머니’라 불린다. 할머니가 들어가도 될만한 커다란 소쿠리에 산나물이 그득하다. 소쿠리를 거실 바닥에 내려놓고 할머니는 이리저리 분주하다. 번개 할머니는 급히 흰 죽을 쑤어냈다. 구수한 냄새가 집안에 퍼진다.
“으이구, 어린 것이 먹기라도 해야. 어여 와, 뜨끈할 때 좀 먹어 봐.”
식탁 위에 흰 죽이 모락모락 김을 피운다.
할머니는 해빈이를 재촉하고 손은 쉴 새 없이 산나물들을 다듬고 있다
“ 방풍나물, 취나물, 머우나물... 해풍 맞은 맛난 나물들 듬뿍듬뿍 먹어주면 여간 좋아? ”
냄새 따라 식탁에 앉은 해빈이는 몇 숟갈 뜨다가 말았다. 혀가 깔깔하고 도통 입맛이 없다. 숟가락으로 죽그릇만 휘젓다가 말았다. 힘없이 다시 제 방으로 들어간 해빈이는 책상 맨 밑 서랍을 열었다. 해바라기 머리를 한 헝겊 인형이 깔고 앉은 편지 한 통.
‘ ....................................................... 엄마가 편지 할게.’
짧은 편지, 얼마나 열고 닫았는지 편지 뚜껑이 밖으로 둥글게 말려있다. 해바라기 인형의 입은 웃고 있지만 왠지 슬퍼 보인다. 손을 많이 탄 헝겊 인형 볼이 거무스레하다.
이른 봄날 번개 할머니 집에 가자고 나선 엄마는 할머니가 차려준 저녁밥을 먹는 내내 말이 없었다. 엄마의 말수가 없어진 건 오래 되었다. 언제나 씩씩하던 번개 할머니도 기운 없이 가는 한숨만 내쉬었다.
“ 속 시끄러울 때 그 죽이라도 먹으면 편할 텐데, 아직 날이 쌀쌀해서... ”
“..........”
엄마는 말이 없고 번개 할머니 혼자 말을 이어간다.
“ 에미가 손재주는 있다만 타국 땅에서 음식이나 입에 맞을지. 츳츳 ”
“ 삼봉 아재가 하는 공장이니, 해빈이를 위해서라도 열심히... ”
멀리서 들리는 자장가처럼 엄마의 말소리는 낮고 흐리다. 무슨 소린지 알아 들을려고 무거운 눈꺼풀 대신 귀 기울이다가 까부룩 잠이 들었다. 다음 날 해빈이가 곤하게 자고 일어나 보니 엄마는 보이지 않았다. 작은 방 책상 위에 올려놓은 세모 지붕 우편함 속에 짧은 편지 한 통만을 남겼다. 할머니 집에 해빈이를 두고 사라진 엄마.
“ 엄마는 저 바다 건너 삼봉 아재네로 갔으니 금시 올겨. ”
힘겹게 허리를 편 번개 할머니가 둔덕 저 멀리, 뻘 너머 흐린 바다를 보며 웅얼거리듯 한 말이다. 그러구선 번개 할머니는 우편함을 들어다가 대문옆 낮은 담장 위에 올렸다. 구멍 뚫린 시멘트 벽돌 사이로 노끈을 몇바퀴 둘러 단단히 묶었다.
“ 암, 금시 올겨. ”
‘ 해빈아 엄마가 일을 좀 해야 해. ...... 학교 잘 다니고, 밥 잘 먹고, 할머니 말씀 잘 듣고...... 사랑한다, 우리딸 해빈아. ’
해빈이는 학교 가는 길에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먼바다를 쳐다보며 엄마가 남기고 간 말을 되새긴다. ‘ 분명히 편지한다고 했는데. ’
“ 아빠, 엄지공주 집처럼 작고 예쁘다. ”
“ 맘에 들어? 이 집은 좋은 소식을 전해줄 거야. ”
세모 지붕을 머리에 인 우편함은 아빠가 일하는 공구상에서 재활용품을 활용해 만든 것이다. 해빈이네가 사는 빌라 대문 옆 낮은 담장 위에 올렸다. 세모 지붕은 노란색으로 칠해서 가로등처럼 환했다.
“ 엄마, 벌써 배달왔어. 내 생일 선물. ”
해빈이의 들뜬 소리를 듣고 엄마 아빠는 서로 쳐다보며 눈을 찡긋했다. 세모 지붕 우편함에는 예쁜 선물이 들어 있었다. 엄마가 헌 옷가지를 오려서 손바느질로 만든 해바라기 인형이다. 아직 해빈이가 ‘ 해빈, 엄마, 아빠 ’만 더듬더듬 읽을 때다. 엄마가 대신 읽어주는 편지 “ 해님처럼 예쁜 해빈아, 생일 축하해! 엄마아빠가 ”√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아빠가 하늘나라로 떠나버린 건 해빈이 학교에 들어갈 무렵이었다.√슬픔에 젖을 겨를도 없이 엄마는 마트로 식당으로 일거리를 쫓아 분주했다. 지쳐서 집에 돌아온 엄마는 불도 켜지 않은채 어슴프레한 창밖으로 노란 세모 지붕만 바라볼 뿐이었다.
“ 엄마, 나 내일 체험 학습 가. ”
“ 엄마, 엄마... ”
몇 번씩 큰소리로 말해도 ‘ 으응...’ 할 뿐 말소리 듣기가 어렵더니
그렇게 힘겹게 몇 년을 버티다가 번개 할머니 집으로 왔다. 급하게 부친 택배 속에는 약간의 책과 옷가지, 그리고 해빈이가 우겨서 챙긴 노란 세모 지붕 우편함.√
‘ 분명히 학교 잘 다니고, 번개 할머니 말씀도 잘 듣고 있는데. 엄마도 내가 궁금할 텐데 왜 편지가 없을까? 우체부 아저씨가 다른 집에 편지를 돌리다가 빠뜨렸을까? ’
‘아아~배가 ’
오늘도 컴컴한 빈 우편함을 들여다보는 해빈이는 또 배 속 어딘가 아픈건지 속이 어지럽다. 손으로 만져보면 크지 않은 작은 배. 어지러운 배 속은 깊고 멀고 짐작이 안된다.
우편함은 돌보지 않은 지 오래되었고 비에 삭아서 시커멓다. 자그마한 세모 지붕은 빛이 바래고 누르스름하다. 지붕 아래 창문처럼 뚫린 곳으로 몇 번을 들여다 보아도 텅 비어 어둑하다.
.......................................
아름이랑 집으로 오는 둔덕길로 들어서는데, 뒤에서 떠들며 오는 남자 애들이 바닥에 자갈들을 걷어차 가끔은 아름이, 해빈이 근처까지 날아온다. 왁자한 남자애들 속에서 달식이 목소리가 튄다.
“ 야, 쟤도 엄마 없대. ”
“ 쟤네 엄마 도망간 거 아냐? ”
누군가 작게 목소리를 낮추었지만 다 들으라고 말하는 심보다. 해빈이 눈과 귀 언저리가 화끈 달아올라 입을 앙 다문다.
‘ 아냐, 우리 엄마 일하러 갔어. ’ 외치려 하나 숨만 들이키며 마른 침을 삼킨다.
아름이가 휙 돌아보며 성큼성큼 다가갔다. 남자애들이 슬금슬금 흩어지고 달식이는 엉거주춤한다.
“ 아니거든. ”
아름이 어깨가 달식이 어깨 위를 눌러 밀치며 말했다.
“ 어 어, 에이 씨. ” 하며 달식이는 넘어지려다 땅바닥을 짚으며 일어섰다. 겅중대며 낄낄대는 남자애들 무리로 달아났다.
빛바랜 세모 지붕 위에 연한 엷은 연두빛을 띈 박새가 앉아있다. 고개를 좌로 우로 얄밉게 까딱대며 해빈이를 살피다가 ‘휘리릭’ 목련 나뭇가지 위로 날아갔다. 무슨 볼일이 있는지 움트는 나뭇가지를 건드리며 가지 주변을 이리저리 옮겨 다닌다.
아름이의 걱정스런 눈빛을 받으며 집으로 들어선 해빈이는
“ 어여 온. ” 하고
반기는 할머니를 스치며 제 방으로 들어갔다. 해빈이는 맨 밑 서랍에서 엄마 편지를 꺼내 찌익, 찍 찢어버렸다. 그리곤 두꺼운 책으로 짓눌렀다. 서랍을 '쾅' 하며 마음도 닫았다.
“ 해빈아 아직도 배 아파? 뭘 좀 먹어야 나을겨. ”
수척한 해빈이를 보며 번개 할머니의 애간장이 탄다.
“ 배 아플까봐 못 먹겠어.”
“ 먹어야 안아픈겨. ”
며칠 볕이 좋고 따뜻한 날, 번개 할머니는 꼬부라진 허리 뒤를 잡고 섰다. 굽혔다 폈다, 여러 번 몸을 펴보던 번개 할머니는 작은 망태기를 허리에 차고 집 뒤 둔덕을 오른다. 곧이어 ‘푸웅’ 소리가 뒤따른다. 할머니의 작은 배기통이 할머니를 밀어 올린다. 양지바른 곳에 소복히 자란 부추를 잽싸게 움켜잡아 뜯어서 한 망태기 채운다. 할머니만의 비밀 장소에서 자라는 약 부추다.
번개 할머니가 끓여 준 부추된장죽은 흰죽과는 맛이 좀 달랐다. 쌉싸릅 상큼하면서도 구수하게 입맛을 당겼다. 며칠 제대로 먹지 못해 기진하여 누워있던 해빈이 부추된장죽을 한 그릇 뚝딱 비우면서 기운을 차렸다.
아름이가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 해빈아, 오늘은 학교 갈 수 있니? 가방 내가 들어줄까? ”
“ 걱정마, 나 이제 괜찮아. ”
학교가 파하고 해빈이는 교실 뒷정리 당번인 아름이와 함께 가려고 복도에서 기다린다. 이웃집에 사는 아름이는 처음부터 전학 온 해빈이에게 말도 잘 걸어주고, 빠뜨린 준비물도 함께 쓰며 친해졌다. 덩치 큰 아름이가 해빈이와 단짝으로 다니면서 짓궂은 남자애들도 은근 조심하는 눈치다.
아름이도 할머니 집에서 살고 있다. 둘이 함께 바닷바람을 맞으며 집으로 돌아오는 양지바른 길가에 어느새 햇빛을 받아 노란 민들레가 두 아이를 바라보며 피어있었다. 해빈이와 아름이는 서로 동그란 얼굴을 치켜들고 방글방글 웃으며 흉내 지었다. 강아지풀을 뜯어 콧잔등을 간지럽히다가 아름이가 말했다.
“ 오늘 날씨도 따뜻한데 바닷가에 갈까? ”
“ 아름아! 이리 와봐, 조개 많아. ”
해빈이 말하며 돌아보니 아름이는 모래사장 끝 데크 계단에 앉아있다. 하염없이 바다 저 멀리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다. 해빈이 얼른 몇 걸음 뛰어가 소리친다.
“ 뭐해? 얼른 이리 와 봐. ”
“ 난 여기 앉아 파도 소리 듣는 게 너무 좋아. 나한테 말 해 주거든. ”
“ 무슨 말? 쏴아 쏴아 파도 소리 뿐인데, ”
“ 많은 소리 들려. 엄마 아빠 잔소리, 큭. ‘ 잘 자거라, 잘 먹어라, 잘 놀아라.’ ”
“ 어, 정말. 소곤소곤 들리네. 우리 아빠 잔소리도 들려, 신기해. ”
해빈이 웃으며 왼손으로 귓바퀴를 감싸고 파도 소리를 듣는다.
“ 삼봉 아재네 일하러 간 엄마 잔소리도 들려. ”
...................
“ 우리 바지락 주워서 할머니 갖다 주자 ”
“ 그래, 얼른 조금만 주워가자 ”
파도 소리는 점점 더 크게 달려오고 모래에 숨은 바지락을 줍는게 너무 재미있다.
“ 조심해, 너무 멀리 파도 가까이 가면 안돼 ”
바지락 줍기에 정신이 팔린 해빈이를 돌아보며 아름이가 말했다. 파도가 점점 다가오는 걸 모른다.
“ 해빈아, 얼른 이리와. 금방 물 때 닥친단 말이야. ”
“ 조금만 더 ”
아름이가 급히 와서 해빈이 손을 낚아채 데크 쪽으로 달려간다. 손바닥에 움켜쥐고 있던 바지락 몇 개가 흩어졌다. 어느새 바닷물이 성큼 다가와 있다.
........................................................
“ 넌 왜 할머니랑 살아? ”
저녁노을을 어깨에 두르고 조용히 다가오는 바다를 바라보던 해빈이 물었다. 하늘 높이 폭을 넓혀가는 노을빛을 받아 바다에 붉은빛이 반짝인다. 아름이의 시선은 먼바다 끝을 바라보고 있다.
“ 엄마 아빠가 배를 몰고 바다에 나가서 돌아오지 않았어. ”
시선은 바다 끝닿은 데 둔 채로 아름이가 한참 만에 담담하게 말했다.
“ 그, 그래. 난 몰랐어, 미안해. ”
“괜찮아, 이젠. 가끔 이렇게 와서 엄마 아빠 잔소리 듣거든. ”
‘ 맞아, 엄마 아빠 잔소리는 꼭 필요해. 흐흐 ’??
이제 해빈이는 우편함을 외면한 채 집으로 들어가려한다.
‘ 치, 내가 쳐다볼 줄 알고. ’
뾰로통하며 들어가려 하는데, 박새가 노란 세모 지붕 밑으로 들락날락하는 모습이 분주하다. 부리에 가느다란 지푸라기도 물고 오고, 바람에 날아갈 듯한 솜털도 보인다. 두 마리 박새가 번갈아 가며 쉴 새 없이 마른 풀과 가는 나뭇가지들을 물고 들락거린다. 틈을 보아 들여다 보니 동그랗게 둥지를 만들고 있다. 맞춤한 방처럼 아담하다. 엄마 아빠 박새 같다.
‘ 엄마 소식도 없는데 그 세모 지붕 우편함 내가 빌려 줄게. ’
................................................................................................................................어미새가 둥지에서 알을 품고 새끼가 태어나고 벌레를 물어 나르며 새끼를 키우는 상황 묘사 보충
“ 지들 집처럼 새끼들을 키워내다니. 좋은 소식 오려나 보다.”
번개 할머니가 ‘ 푸웅 ’소리와 함께 혼잣말을 했다.
‘ 우리 엄마가 만든거야. 밤에 조금 덜 추울거야. ’
해빈이는 손수건과 해바라기 헝겊 인형을 조심조심 구석 자리에 넣어주었다. 그리고 큰 글씨로 메모한 종이도 세모 지붕 위에 붙였다.
‘ 편지는 마당에 던져 주세요.^^’
오가며 먼발치로 살펴보면 박새 두 마리가 쉴 새 없이 입에 벌레를 물고 들락거린다. ‘ 비비 맘맘 ’ 조잘대는 소리가 보채는 아기 같아 해빈이 마음도 분주하다.
“ 저눔, 저눔이 우리 해빈이 박새를... ”
번개 할머니는 막 담장으로 기어오르려는 뱀을 보고 번개같이 들고 있던 나무작대기를 휘둘렀다. 저 건너 달식이네 할머니와 품앗이로 텃밭에 콩을 심고 같이 점심 먹자고 집으로 들어오던 참이다. 작대기에 꼬리를 맞은 뱀은 비틀대다가 쏜살같이 길섶의 풀 속으로 사라졌다.
“ 어이쿠, 허리야. ”
마음이 앞섰던 번개 할머니는 미끌어지며 넘어졌다.
“ 아이구, 이를 어쩌나. 조심조심 나를 잡아요. ”
달식 할머니가 번개 할머니를 부축해서 힘겹게 방으로 들어갔다.
해빈이는 아름이네서 숙제 하다가 평소보다 조금 늦게 집에 왔다. 그런데 대문 옆 박새 집 앞을 달식이가 얼찐거리는 모습이다.
“ 야, 너 뭐해? 왜 여기 있어? ” 지난번 일이 생각나 언잖은 마음을 내비쳤다.
“ 아무것도 아니야. 번개 할머니 다쳤다고 우리 할매가 가보랬어. ”
“ 뭐라고, 할머니!” 해빈이 소리치며 집안으로 뛰어들었다.
한참 후 달식이 부르는 소리에 문 앞에 나오니 작은 비닐 봉지를 내민다. 담배 잎이 든 봉지다.
“ 뱀 못 오게 박새집 담장밑 에 뿌렸으니 나중에 한번 더 써.” 하고는 부리나케 달려갔다.
" 고마워." 해빈이 아주 작게 말했다.
따뜻한 봄날, ‘ 삐리릭 삐비박 ’ 말 많던 어느 날. 어미 새가 앞장서 날아오르니 씩씩한 맏이 가 그 뒤를 따른다. 한 마리, 또 한 마리 날아 오른다. 막내가 난간에서 비틀대자 어미새가 다가온다. ‘ 엄마처럼 해봐 ’ 하며 천천히 둥글게 큰 원을 돌다가 날아오른다. 막내도 주변을 허둥지둥 돌다가 이내 솟구친다. 끝없는 푸른 하늘을 향해 날아오른다. 날개를 펼치고 날아가는 새들은 작지만 당차고 씩씩해 보인다.
‘저 작은새들은 어디로 날아갈까? 저 넓은 하늘에서도 엄마를 찾을 수 있을까?’
고개를 뒤로 제치고 한참을 바라보던 해빈이는 한 점 점으로도 찾을 수 없는 박새들이 어디론가 넓고 먼 하늘을 향해 날아간 것을 알았다. 눈을 가늘게 뜨고 바라보는 해빈이 입가에 대견한 미소가 번진다.
해빈이는 방으로 들어와 두꺼운 책으로 눌러둔 편지를 꺼냈다. 네 조각으로 찢어진 편지를 책상 위에 펼치고 조각을 맞추었다. 스카치테이프를 짧게 잘라서 여러 군데 조심스럽게 붙였다.
“ 엄마, 편지 기다릴게. ”
해빈이는 뒷산 둔덕에 올라 한참 돋아나기 시작한 약부추를 한 망태기 뜯어왔다. 엉덩방아를 찧은 후 자주 드러눕는 번개 할머니께 부추된장죽을 쑤어 드릴 생각이다. 쌀 한 줌을 퍼서 여러 번 씻고 물에 불린다. 엷게 된장을 풀고 불린 흰쌀을 넣어 먼저 뭉근하게 끓인다. 흰쌀이 다 퍼지면 총총 썬 부추를 넣고 한소끔 더 끓인다. 그리고 국간장, 백김치와 함께 식탁에 차렸다.
“ 할머니 어여 부추된장죽 먹어봐. 먹어야 기운 차리지. ”
“ 그려, 우리 해빈이 다 컸네. ”
그날 밤 해빈이는 잠 속에서 훈훈한 바닷바람을 타고 날아오는 팔랑이는 새를 보았다. 새는 박새들이 떠나간 우편함 속으로 사뿐히 내려 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