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이후 주택 시장의 특징은 새 아파트 분양가가 기존 아파트 시세보다 비싸진 것이다. 분양가 자율화가 그렇게 만들었다. 대부분의 지역에서 분양가가 주변 시세보다 10~20% 비싸게 나오고 있다. 이래서 아파트가 분양되면 기존 집값을 들쑤신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그런데 서울 강남권에서 반대의 일이 벌어졌다. 분양가가 주변 시세보다 20% 이상 싼 아파트가 나오는 것이다. 반포동 미주아파트를 재건축하는 반포힐스테이트 단지다. 주택시장이 침체되자 분양이 잘 되지 않을 것을 우려한 시공사와 재건축조합이 몸값을 낮췄다.
이 아파트가 주택시장을 선도해 온 강남권 단지라는 점에서 앞으로 나올 재개발•재건축 단지 분양가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7일 서초구청과
현대건설에 따르면 이달 중순 청약 신청을 받는 반포힐스테이트의 일반분양 분양가는 3.3㎡당 평균 3050만원으로 정해졌다. 이는 인접한 래미안퍼스티지 아파트 실거래가(3.3㎡당 평균 4000만원 선)의 76% 수준이다.
반포힐스테이트는 396가구로, 일반분양 물량은 전용 59㎡ 80가구, 84㎡형 30가구 등 117가구다. 총 분양가는 59㎡형이 7억~8억1400만원, 84㎡형이 10억800만~11억1300만원 선이다. 래미안퍼스티지 59㎡형은 9억원, 84㎡형은 13억~14억원 정도에 거래된다.
반포동 토마토공인 김성균 사장은 “84㎡형은 연초 15억원대에 거래되다 최근 값이 떨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힐스테이트 분양가는 지난 2008년 10월 나온 래미안 퍼스티지 전용 84㎡형 분양가(3.3㎡당 평균 3250만원)보다 싸다.
초기 분양률 높이려 분양가 낮춰
반포힐스테이트는 2444가구의 래미안퍼스티지보다 단지 규모는 작지만 입지여건은 비슷하다. 래미안퍼스티지 바로 옆에 들어서고, 브랜드 인지도도 래미안과 큰 차이가 없다. 시공사인
현대건설 김진현 분양소장은 “평면이나 시설 등 품질이 래미안퍼스티지보다 떨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단지는 상한제 적용 대상이 아니어서 시공사와 조합이 분양가를 마음대로 책정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격을 낮출 수밖에 없는 것은 초기 분양률을 높이기 위해서다.
미주재건축조합 주춘택 조합장은 “가격 경쟁력을 갖추지 못하면 장기 미분양될 가능성이 있다"며 "강남권에서 미분양되면 아파트 이미지가 추락할 수 있으므로 분양가를 현실적으로 책정하자는 의견이 많았다”고 전했다.
실제 지난해 강동구에서 나온 한 재건축 단지는 시세보다 비싼 분양가 때문에 미분양에 시달리다 올 들어 최고 1억원이나 깎아서 팔고 있다.
강남권 재건축 단지의 이 같은 분양가 인하 바람은 강북권 재개발 단지로도 확산될 전망이다. 용산구에서 재개발 단지 분양을 준비 중인 대형 건설사 임원은 “인기 지역인 강남권에서조차 분양가를 낮추지 않으면 팔리지 않는 상황이 됐다"며 "조합을 설득해 분양가를 내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 분양을 앞두고 있는 반포힐스테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