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철 절식 가운데 으뜸인 두견주
우리 풍속에 햇볕 따스하고 봄바람이 살랑대는 3월이면 하루 날을 잡고 장소를 골라 즐겨 노는 민속놀이로 ‘꽃놀이’와 ‘화류놀이’가 있다. 제각기 좋아하는 음식을 장만하여 약속한 장소에 와서 서로 나누며 즐기는데 남성들은 시조창이나 단가를 부르거나 시를 짓고 술을 마시며, 부녀자들은 진달래꽃을 따서 화전을 부쳐 먹으며 꽃노래를 불렀다. 놀이가 끝날 즈음, 소년 소녀들은 꽃을 꺾어 꽃방망이를 만들어 어깨에 둘러메고 꽃노래를 부르며 마을로 돌아오는 꽃놀이가 전국적으로 행해졌는데, 그 중심에 ‘진달래꽃’이 있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진달래를 좋아하게 된 이유로, 진달래가 생동하는 봄의 정취를 한껏 돋궈주는 꽃이면서 식용이 가능하여 화전이나 술을 빚어 마심으로써 봄의 시작을 자연과 더불어 즐기는 신명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봄이 되면 방방곡곡의 야산은 물론이고 심심산천을 온통 연분홍으로 물들이는 꽃이 진달래꽃이라면, 이 땅에 사는 우리 겨레의 가슴과 볼에 연분홍의 꽃물을 들이던 술이 두견주(杜鵑酒)이다.
문헌에 수록된 두견주는 옛 문헌인 『술 만드는 법』을 비롯하여 『양주방』, 『술방문』, 『규합총서』, 『김승지댁주방문』, 『시의전서』,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 『한국민속대관』 등 18종의 문헌에 21차례나 등장한다. 1800년대의 기록인 『홍씨주방문』을 비롯한 고문헌에 수록된 두견주 주방문은 대개가 멥쌀가루와 끓는 물을 섞어 범벅을 만들어 누룩과 섞어 밑술을 빚은 후, 다시 멥쌀과 찹쌀을 동량으로 하여 고두밥을 짓고 끓는 물과 합하여 진고두밥을 만들어 누룩과 섞어 술밑을 빚는데, 진달래꽃을 먼저 안치고 그 위에 술밑을 안치는 방법으로 이루어진다. 두견주와 달리 민간의 전승주이자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충남 지방의 면천두견주(沔川杜鵑酒)는 두 번에 걸쳐 찹쌀로 고두밥을 짓고 식혀서 누룩과 물을 섞어 술을 빚는데, 덧술을 할 때에 진달래꽃을 함께 버무려 넣고, 술을 안친 다음에 맨 위에 진달래꽃으로 덮어두는 제조방법으로 이뤄진다. 면천두견주의 술 빚는 방법이 훨씬 간편화된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후대로 내려오면서 양조방법의 간편화와 함께 식량 증산이 이뤄지면서 주재료인 쌀의 고급화를 추구하게 된 것으로 여겨진다.
면천두견주의 설화에 담긴 뜻
면천두견주와 같이 찹쌀 중심으로 빚은 진달래술은 끈적거릴 정도로 단맛이 강하고 진달래꽃의 빛깔이 그대로 술에 녹아들어 엷은 담황색을 자랑하는데, 특히 재료로 사용되는 꽃 특유의 독특한 향취를 간직하고 있어 우리나라 가향주(佳香酒)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
예부터 “두견주 석 잔에 5리를 못 간다”는 말이 전해 오는데, 이는 면천두견주가 처음 마실 때의 부드러움과는 달리 알코올 도수가 높아 마신 후에 은근하게 취기가 올라오기 때문이다.
명주(名酒)가 갖춰야 할 조건으로, 과일과 꽃향기로 대변되는 풍부한 방향(芳香)을 으뜸으로 하고, 달고 시고 쓰고 떫고 매운 맛이 고루 느껴지면서도 깔끔한 오미(五味), 그리고 목 넘김이 부드러우면서도 여운이 남는 맛의 지속성, 끝으로 맑고 깨끗하면서도 밝은 황금빛 색깔을 말하는데, 두견주는 그 어느 것 한 가지도 부족함이 없다 할 수 있다.
면천두견주의 가치는 무엇보다 오랜 역사와 전통성, 주재료의 선택, 그리고 지극한 효성의 마음이 탄생시킨 술이라는 점에서 여느 전통주들과는 차별화된다. 우선, 면천두견주가 처음으로 등장하는 1200년 전의 구전설화(口傳說話)에 따르면 “면천에 있는 동안 복지겸의 병세가 날로 악화되고 회복의 기미가 보이지 않자, 당시 열일곱 살이던 그의 딸 영랑이 아미산에 올라가서 지극한 정성으로 백일기도를 드렸는데, 그 기도가 끝나는 마지막 날밤 꿈에 신령으로부터 두견주에 대한 계시를 받았다. 복지겸의 딸 영랑이 신령의 계시대로 진달래꽃술을 빚어 복지겸의 병을 고치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물론, 면천두견주의 등장 배경은 설화에서 보듯 ‘원인 모를 중병을 앓고 있는 부친의 건강을 되찾고 싶어 했던 딸의 지극한 효성(孝誠)의 발로(發露)’였다. 우리 민족의 부자자효(父子慈孝) 사상을 엿볼 수 있거니와, 전통 양조방법이나 목적이 다름 아닌 필요에 의해서 제조되고 자가소비를 목적으로 생산되었다는 가양주의 등장 배경과 잇닿아 있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에게서만 찾아볼 수 있는 ‘약식동원(藥食同源, 약과 음식은 그 근원이 같다)’으로서 바로 술은 ‘백약지장(百藥之長)’이라는 의식을 확인할 수 있는 배경이 된다고 하겠다.
설화를 바탕으로 등장하는 여러 가지 조건과 시간적 공간으로서, 당시 영랑이 올라가 기도했다고 하는 ‘아미산’은 해발 349.5m로, 당진군 내 최고봉의 산이다. 아미산의 위치는 행정구역상 면천면과 순성면의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사실적으로는 면천면을 안고 있는 산이다. 그리고 면천두견주에 사용되었다고 하는 진달래꽃은 바로 이 아미산에서 채취한 것임을 추측할 수 있으며, 아직도 아미산 자락에는 진달래 군락지가 존재한다. 또한 영랑이 심었다는 은행나무 두 그루는 면천면의 상징이 된 지 오래이다. 현재 이 은행나무는 면천초등학교 교정에 자리하고 있으며, 당진군 내 최고 수령(樹齡)으로 복지겸의 딸 영랑이 살았던 시대에 심은 나무라고 한다.
여기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사실 가운데 하나는 면천면 사람들은 아직까지도 진달래꽃을 이용한 두견주를 빚어 즐기고, 이러한 풍습은 이 지역의 전통문화 중 하나로 뿌리를 내려왔다는 점이다. 가양주의 특징은 한 개인이나 한 집안에서 출발하여 부락의 술이 되고 향리를 대표하는 술이 된다. 그러다가 이 가양주가 좀 더 멀리 원근의 고을에까지 알려지게 되고, 그 지방을 대표하는 명주로 자리 잡게 되면 곧 그 나라의 전통문화가 된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우리나라만의 고유한 전통문화의 하나라고 할 수 있는 가양주로서 가향주(加香·佳香酒)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를 엿볼 수 있는 술이 면천두견주인 셈이다.
가양주가 한 집안의 전승주라는 사실을 바탕에 깔고, 여기에 더하여 진달래와 같은 약용과 가향 목적의 양조가 이루어졌다고 하는 사실은, 세계의 양조 역사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경우라고 할 수 있다.
글 박록담(숙명여대 전통문화예술대학원 객원교수, 한국전통주연구소장)
문화재청 작성일 2014-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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