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안 리에 대한 두 번째 글입니다. 어렵사리 결혼에 성공한 후, 두 사람은 작은 임대아파트에 신접살림을 차리고 가난한 신혼생활을 했다. 조안은 낯선 외국 땅에서 직업소개소의 도움으로 직장을 구해 일하기 시작했는데, 이때의 경험은 훗날 그녀가 스타커뮤니케이션을 창업하는 데 크게 영향을 주었다. 케네스도 일리노이 공과대학교에서 강의하게 되었다. 케네스가 강의뿐 아니라 학교 발전기금 모금위원회 책임자까지 맡게 되면서 살림은 더욱 나아졌고, 조안은 일리노이 대학교/시카고 캠퍼스 대학원에서 (고등학교 시절부터 관심을 가졌던) 심리학을 공부하여 석사학위를 취득한다.
1970년에는 시카고에서 큰딸 안젤라(Angela)를, 1972년에는 캘리포니아에서 작은딸 에이미(Amy)를 낳았다. 조안은 병원에 가지 않고 집에서 두 딸을 출산했고, 케네스는 출산하는 아내의 곁을 내내 지키다가 직접 아이를 받았다. 케네스와 조안은 교대로 안젤라를 돌보며 직장과 학업을 병행했다. 에이미가 태어날 무렵에는 조안의 친정부모가 캘리포니아로 찾아왔고, 비로소 조안은 부모와 화해했다. 조안과의 의절을 선언했던 아버지도, 비로소 노여움을 풀고 케네스를 사위로 받아들인다.
캘리포니아로 이주한 이후 케네스는 Metal Deco라는 대기업의 서부지역 판촉책임자로, 조안은 심리학 석사학위를 가지고 캘리포니아주 주정부 민원담당 카운슬러로 취업한다. 크고 넓은 집을 마련하고 아이까지 둘이나 낳아 기르며 행복하고 안정된 가정생활을 즐기던 것도 잠시, 케네스와 조안은 1973년 여름 휴가차 어린 두 딸을 데리고 한국을 방문했다가 아예 한국에 정착하게 된다. 케네스는 홍익대학교 특수대학원장과 한미재단 이사장 등을 지냈다. 사업으로 항상 바쁜 아내 대신에 두 딸을 돌보는 것은 주로 케네스의 몫이었다. 케네스는 1986년 7월 3일, 미국 위스콘신주 애플톤에 있는 남동생의 집에서 향년 67세로 세상을 떠났다. 아내 조안은 41세, 큰딸 안젤라는 16세, 작은딸 에이미는 14세 때였다.
조안은 조선호텔 P.R. 매니저를 거쳐 헤드헌팅 업체인 스타커뮤니케이션을 창업했다. 다양한 국제 네트워킹을 통해 국제 비즈니스상의 난제를 해결하고 고급 인력을 공급하는 일을 했던 스타커뮤니케이션은, 1980년대 한국 경제의 급성장기와 맞물려 급성장했다.
1980년에는 불안한 정세에서도 각국 대사를 설득해 국내 최초로 스위스, 독일 등 유럽 7국이 참여하는 코엑스 국제산업박람회를 유치했다. 1986년 FX 사업(차세대 전투기 사업) 당시, 세계 굴지의 전투기 생산회사인 미국 맥도넬 더글라스의 F18 한국 판매 홍보를 따낸 일화는 유명하다.
조안 리의 스타커뮤니케이션은 맥도넬 더글라스의 대행사 발탁 공모에 지원하여 당당히 낙점을 받았지만, ‘남성중심적인 한국사회에서 여성에게 전투기 판매 홍보를 맡기는 것은 무리이다’라는 이유 때문에 최종 확정이 차일피일 미루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조안은 포기하지 않았고, 마침내 F18 전투기의 국내 판매를 위한 홍보의 총책임자가 되었다.
이 사업을 맡은 배경에 대하여 조안은 이렇게 밝혔다. 저는 저 자신만의 이익을 위해 외국회사의 홍보나 대행해주고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제가 F18의 국내홍보를 맡은 것은, 그 기종을 구입하는 것이 우리나라의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후 조안은 1988 서울올림픽을 홍보하고, 1988년에는 정세가 불안정하던 북아일랜드에 대우전자 공장을 세우는 데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세계 최대 PR기업인 버슨마스텔러의 한국지사 사장[22]과 전문직 여성들의 국제봉사단체인 존타(ZONTA)의 한국 여성 최초 아시아지역 총재, 여성신문 이사장 등을 지냈다. 국제백신연구소(IVI)의 고문과 한국후원회 부회장을 맡아, 예방접종을 하지 못해 병들고 죽어가는 빈곤국가의 어린이들을 돕는 일에도 매진했다. 1999년부터는 탈북자들의 국제법상 난민 지위 획득을 위해 서명운동 등의 노력을 했다. 500만 명의 서명을 받아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유엔인권위원회에 전달했고, 1,000만 명의 서명을 달성했을 때는 직접 뉴욕 유엔본부를 찾아가 코피 아난 당시 사무총장에게 전달했다.
나이가 많아지면서 조안은 뇌출혈과 신장질환을 앓는 등 건강이 나빠졌다. 그녀는 현업에서 은퇴하고 대외활동도 줄였고, 2012년부터 큰딸이 살고 있는 미국에서 머무르며 요양했다. 치료와 요양을 겸하고, 손자의 재롱도 실컷 보며, 그녀는 평온한 노년을 보냈다.
2022년 6월에는 회고록 를 출판했고, 모처럼 한국으로 와서 서울에서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미국에서 함께 살고 있는 큰딸뿐 아니라, 스위스에 살고 있는 작은딸도 먼 거리를 마다않고 달려와 참석했다. 조안은 지나온 삶을 돌아보면서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로 ‘케네스 에드워드 킬로렌과의 결혼’을 꼽았다. 2022년 9월 16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사망했다.
--지식백과에서 정리한 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