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6:14~15 / 돈을 좋아하는 바리새인들을 통해 교훈하신 예수님
(눅 16:14)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들이라 이 모든 것을 듣고 비웃거늘
(눅 16:15)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사람 앞에서 스스로 옳다 하는 자들이나 너희 마음을 하나님께서 아시나니 사람 중에 높임을 받는 그것은 하나님 앞에 미움을 받는 것이니라
14절 바리새인들은 사람들 앞에서는 신앙생활을 잘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하나님보다 돈을 더 좋아하고 돈을 밝히는 자였습니다.
그런데 목사인 저도 돈이 좋습니다. 저만 돈을 좋아할까요? 아닐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돈을 좋아합니다. 돈을 싫어하는 사람 보지를 못했습니다.
사람들이 돈을 좋아하는 것은 인지상정입니다.
왜 돈이 좋을까요? 돈이 없을 때 너무나 힘들기 때문입니다. 돈이 없으면 사람답게 살지 못하고, 사람 대우를 받지 못하며 인격적 존중을 받지 못합니다. 돈 때문에 몸을 파는 여자도 있고 돈 때문에 생명을 담보로 3d 업종의 일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예전에 돈이 없어서 하루 한 끼만을 먹을 때도 있었습니다.
굶어서 죽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영화 오징어게임도 생존에 필요한 돈을 위해서 생명을 담보로 게임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박정희 대통령이 ‘우리도 잘 살아보세’라는 구호를 외치며 경제성장을 위해서 모두가 노력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부자가 되었습니다.
돈이 있으니까 참 좋아졌습니다. 돈이 있으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많습니다.
돈이 있으니 좋은 집에서 살고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차를 타고 다닐 수 있습니다.
경치 좋은 곳으로 세계여행을 다니기도 합니다.
병원에 자주 다니고 잘 먹어서 건강하고 장수하기도 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에 돈이 생기니까 예배당도 짓습니다. 예배당 안에 골프장도 만들고 수영장도 만들기도 합니다. 선교사들을 물질로 후원하기도 하고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기도 합니다. 이런 것을 보니 돈이 참으로 좋은 것입니다.
우리는 돈을 좋아하는 것을 책망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돈이 좋지만, 돈의 한계를 알아야 합니다. 돈이 죄 사함을 주지 못하고 죽을 때 돈을 가져가지 못합니다. 돈이 편안함을 주지만 평안은 주지 못하고 돈이 재미를 주지만 기쁨을 주지 못합니다. 돈이 많을수록 잃을까 봐 더 불안해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돈을 지나치게 좋아할 때 폐해도 많습니다. 돈을 지나치게 좋아하면 돈은 얻는데 하나님도 잃고 사람도 잃습니다. 하나님을 얻지 못하면 마음에 영생이 없고 진정한 기쁨과 평안이 없습니다. 돈을 지나치게 좋아하면 돈 때문에 사람과의 관계도 파괴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참 행복을 얻기 위해서는 돈보다 하나님을 더 좋아해야 합니다.
돈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사람은 선택의 순간에 하나님을 위해서 돈을 포기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주님을 위해서 첫 열매를 드리거나 십일조를 드릴 수 있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 하나님도 얻고 물질도 얻습니다. 또한 돈보다 사람을 더 중시 여겨야 합니다. 돈 때문에 부자 관계, 형제들 가운데 얼굴 붉히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우리가 돈을 좋아하는 것이 잘못은 아닙니다. 우리가 돈을 좋아하되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고 다음으로 이웃을 사랑하고 마지막으로 돈을 좋아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하나님과 사람들과 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영생을 얻고 사람들과도 평화롭게 지낼 수 있습니다.
15절에서 예수님은 그들이 돈을 사랑할 뿐 아니라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을 사랑하는 문제를 지적하십니다. 그들은 구제하는 것도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을 구하기 위해서 했습니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나팔을 불며 사람들 보는 앞에서 구제하였지만, 은밀하게는 구제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사람 앞에서 옳다고 인정을 받는 자는 하나님 앞에서 미움을 받습니다.
사람들은 옳다 할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십니다.
사람들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는 돈의 욕구보다 더 무섭습니다.
돈은 어느 정도 있으면 만족하지만, 사람들의 인정 받고자 하는 욕심은 끝이 없습니다.
사람들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것도 우리의 본성이라 좋은 면이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인정하고 칭찬해 주어야 합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이 있듯이 사람들의 인정을 통해서 사람들은 살맛을 느낍니다.
그러나 우리는 칭찬할 때 결과보다는 과정을 칭찬해야 합니다.
예수님도 장사해서 남긴 것보다 작은 일에 충성한 것을 칭찬하셨습니다.
이렇게 과정을 칭찬하면 우리는 자신의 은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칭찬은 일하게 하는 원동력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사람들의 칭찬을 받을 때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칭찬을 받을 때는 칭찬이 목적이 되지 않고 칭찬받는 내용에 집중해야 합니다.
칭찬이 목적이 될 때 많은 문제가 생갑니다. 비난을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사람들은 우리를 칭찬할 때도 있지만 비난할 때도 있습니다.
사람들의 비난을 받을 때 칭찬이 목적이 된 사람들은 자신의 존재 의미를 상살 합니다. 악플에 시달리다 인생의 무의미 허무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자살하는 일도 있습니다.
또한 사람들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 신앙 생활하다 보면 이중적이 되고 위선적이 되고 가식적이 됩니다. 다른 사람을 시기하고 권력 다툼을 합니다.
이런 대표적인 예가 바리새인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회칠한 무덤과 같고 독사의 새끼라고 책망하였습니다. 그들은 겉은 회를 칠하여 깨끗하지만, 속은 시체 썩는 냄새와 온갖 병원균으로 더러웠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시기하여 죽이고자 하였습니다.
우리가 위선적인 사람이 되면 사탄의 밥이 되기 쉽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칭찬할 뿐 아니라 자신의 자랑이 있어야 합니다.
자랑이 나쁜 것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십자가를 자랑하고 고난을 자랑했습니다.
바울은 물질적 지원을 받지 않고 일을 하면서 하나님의 역사를 섬긴다는 것을 자랑하였습니다. 다른 사도들보다 더 많은 고난을 받는다는 것도 자랑이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십자가와 고난을 자랑하면 자기보다 하나님을 자랑하고 주변 사람을 자랑하게 됩니다. 자신이나 가족이나 소유를 자랑하다 보면 교만해지고 결국은 망하게 됩니다. 사람들은 자랑하는 사람들을 싫어합니다. 그런 사람은 꼴불견이고 상대하기가 싫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자랑하고 이웃을 자랑해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을 위해서 많이 수고하고 그 모든 수고한 것이 내가 아니요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한 모든 일을 통하여 나를 감추고 하나님만 드러나게 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도와주어서 자신이 잘 되었다고 다른 사람에게 공을 돌려야 합니다. 이런 사람이 겸손한 사람이고 하나님이 이런 자랑을 축복하십니다. 사람들이 이런 사람을 좋아합니다.
오늘도 나는 감추어지고 하나님만 드러나고, 주님만 영광 받으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