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가을 나들이
유옹 송창재
여행은 꼭 멀고 길어야만 하나?
그러면 더 좋을 것이다.
여행은 목적지가 멀어야 가는 동안에 설레는 마음을 오래 간직할 수 있어서 여행이라는 맛을 더 느낄 수가 있기 때문이며
그곳에 닿는 것 보다 가는 여정에서 느끼는 기대와 은근한 흥분이 더 재미있기 때문인 것이다.
그렇다고 꼭 먼 길만을 여행이라고 억지 할 수는 없다.
바로 옆 동네를 가더라도 그동안 벼루기만 했던 곳이라면 그 흥분의 낯선 맛은 길거나 짧거나 같은 것이다.
따라서 여행에는 거리가 필요치 않는 것이다.
나는 오늘 기행을, 그것도 문학기행을 하였다.
지금 이렇게 글을 쓰기 때문에 가까운 곳이었지만 기행인 것이다.
글쟁이로서 문학 기행을 한다는 것은 기대되는 멋진 일이고 더구나 가을에 문학기행을 한다는 것은 더욱 설레는 일이다.
오늘 아침 친구가 전화를 하였다.
그렇지 않아도 최근에 친한 친구를 잃어 우울하여 이른 가을을 타며 상실감에 빠져서 겨우 출간 사인회를 마치기는 했지만…
남들이 즐기는 휴일이면 더 우울하고 갈 곳이 없으면서도 안절부절 자리에 앉아 있지를 못하는 성격인데, 나를 보고있는 듯이 일찍 전화를 해주었다.
요즘 매일 조석으로 나를 지키며 안부를 묻는 고마운 친구여서 이 친구의 눈치를 보며 하루 이틀을 보내고 있다.
“야, 오늘 바람 쐬러 나가자! 언제 내가 가면 될까?”
“가고 싶은 곳 만, 니가 정하고 있으면 돼.”
휴일이면 더 바쁜 사업을 해야 하면서도, 아들에게 맡기고 자기는 나를 맡기로 했나보다.
“그래, 알았어. 생각해 볼게.”
그리고는 전화를 끊었다.
나는 봄과 가을이면 거리도 가깝고 주변도 확 트인 미륵사지를 자주 찾는다.
그곳에서는 우리의 백제를 볼 수도 있고 너른 잔디밭이 너무나 부드럽고...
그 가운데에있는 조그만 연못이 제법 푸근하여 자주 찾기도 하지만 봄, 가을의 계절이 예쁠 때는 틀림없이 그곳을 간다.
미륵사지를 거쳐 왕궁 터를 찾아서 오래 앉아 있다가는 돌아오곤 한다.
그래서 오늘도 그곳에 가기로 내심 작정하였다.
시내에서 들어오려면 30분은 족히 걸리건만 일요일 아침이라 교통 번잡함이 심하지 않은지 얼마 걸리지 않아서 왔다.
“미륵사지 가자! 왕궁 돌아오게.”
“ 맨 날 가면서, 오늘은 좀 멀리가자!”
“가게 들어가야지!”
“나도 바람 쐴 겸, 아들하고 지 엄마 하고 하라고 했어. 그러니 걱정 말어.”
“아니 미륵사지면 충분해. 그리고 왕궁으로.. 시간이 남으면 쌍릉으로 돌아서 들어오자! 점심 먹고..”
우리는 그리고는 나섰다.
내 차로 가자니까 굳이 자기 차를 타고 가자고...
가다가 점심 먹으며 술 한잔해도 좋으니 자기 차로 가자고 한다.
저는 술을 안 하니, 그것이 좋을 거라고...
그래서 그렇게 나섰다.
가을이 되어 자주 오던 비
덕에 공기는 아주 청량하고 하늘도 된가을처럼 맑았다.
야외로 나가니 누렇게 여물기 시작한 벼들이 많았지만 엊그제의 기습적인 폭우에 군데군데 넘어진 벼들도 간혹 있었다.
미륵사지는 공사를 끝내고 훨씬 개방되어 밖에서도 훤히 볼수가 있었다.
그러나 예전 보다 덜 고풍스럽고 개방적이어서 옛맛이 적었다.
넓은 주차장에는 단체 관광객을 싣고 일찍나선 관광버스만 두어대 있을뿐 한산한 편이었다.
예전만한 가을이 없었다.
그래서 방향을 돌리기로 했다.
가람선생의 생가와 그 문학관으로.
바로 그거였다.
기행은 먼 것이 아니었다.
가람선생의 문학관은 미륵사지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거리인 여산에 있다.
항상 다녀와야겠다고...
더구나 시조도 쓰는 시인이라는 내가, 가까운 가람선생의 문학관을 찾지 못하는 것이 늘 꺼림직하고 숙제처럼 남아있었는데, 마침내 오늘 가기로 했다.
가람선생이 출생하고 말년에 여생을 보낸 곳은 우리 집에서도 멀리 떨어지지 않은 여산이다. 그리고 여산은 나의 송씨의 본향이기도 하다.
어릴 때 아버지를 따라 덜컹거리는 버스를 타고 어디인지도 모르는 깊은 촌으로 시제를 모신다고 갔던 기억은 있었지만, 가까이 있으면서도 마음만 있었지
예전에 한번 들르기만 했을뿐 제대로 가보지를 못했던 곳이다.
남들은 먼 곳에서 일부러 문학 기행을 온다고, 단체로 또는 혼자서도 찾는 가람의 생가이며 문학관인데, 정작 엎어지면 코가 닿을 곳에 있으면서도 여태 한 번도 제대로 가보지를 못했다.
마음만 먹으면 30여분이면 충분한 거리인데...
그래서 이 기회에 가기로 하고, 가람 문학관으로 차를 돌렸다.
살짝 흥분이 되는 기분에 친구가 운전하는 차에 몸을 맡기고 들어가니 우리 집 들어가는 것보다도 더 작은 마을 길로 들어섰다.
앞에서 마주 오는 차라도 있으면 옆으로 겨우 피해야 될 만한 길이었다.
다행스럽게 우리 차는 경차였고 마주 오는 차가없어 마을길을 잘 빠져 나왔다.
운전이 서툰 중형차라면 조심해야 할 길이었다.
빠져나오니 잘 포장된 넓은 길이 있었고 “가람문학관”과, “가람 이병기 생가”라 쓰인 커다란 입간판과 함께 너른 주차장이 있다.
일요일인데도 너른 주차장에는 차가 한 대밖에 없어, 가람의 문학관이라는 말이 어색할 정도로 쓸쓸했다.
보도블록이 깔린 짧은 비탈길을 오르니 오른쪽 언덕 초입에는 가람선생의 두루마기를 입은 서 계시는 모양의 동상이 있었고, 그 뒤로는 생가를 둘러싸고 있는 커다란 굵은 왕대밭이었다.
넓은 철판에 용접 티그로 천공하여 만든 조형물에는, 가람선생의 “창”이라는 시가 새겨져 시비를 대신하여 방문객들을 맞아주었다.
그곳을 관리하는 관리인 집은 아닌 듯한 현대식 가옥이 한 채 있었고, 그 옆에 “수우제”라는 당호가 쓰인 낡은 편액이 걸린 고졸한 촌집이 있었다.
이곳이 가람선생의 생가였다.
마당에는 작은 연못이 있어 하얀 수련이 몇 송이가 피어있고, 특이한 것은 200여년이 넘었다는 탱자나무가 노랗게 익어가는 열매를 달고 마치 커다란 과일나무처럼 잘 정리된 수형을 뽐내며 서있었다.
목조가옥에 소박한 초가지붕을 얹은 안채, 사랑채, 고방채, 작은 정자 등 여러 채의 소박하고 작은 초가들이 있어 수수하고 순박한 선비를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뒤 안을 둘러보니 전라북도기념물 6호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는 생가가,
관리청의 관심부족으로 불을 지피는 아궁이에는 풀이 자라고 있었고, 초가지붕은 짚을 새로 이은 지 오래된 듯 처마가 썩어 썩은새가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방명록에 적을 필기구도 적당한 것이 없이 다 말라서, 거의 쓸 수 없는 엷은 색의 칼라 사인펜 한 자루가 있었을 뿐이다.
한국 문학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기고, 한국 현대시조의 중흥을 이룩한 시조시인이며 전북대, 서울대, 중앙대 등에서 한국문학의 후학들을 기르신 국문학자였으며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옥고를 치르기도 한,
우리말과 글을 사랑하여 시조를 아끼신 선비에 대한 대접이 이 정도로구나! 생각하며, 집 뒤안을 둘러싸서 보호하는 방벽과 같은 대나무 숲에서 대 바람 소리만 듣고 토방에 나와 수우제라 쓰인 낡은 당호편액을 카메라에 담았다.
만일 정치인들의 생가라면 이러지를 않았을 텐데~~~
토방에 서서보니 건너편에 늘어서 있는 얕으막한 작은 구릉 같은 산맥은, 아늑하게 적당한 논으로 내달려 있었으며....
이런 곳에서 어려서 자연을 벗 삼아 성장을 하셨으니, 학자로 저술가로 선비로 우리문학의 거두가 되실만하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자연이 스승이었으리라.
오른쪽으로 조금 떨어진 가람 문학관에는, 입구로부터 영상실, 가람실, 상설전시실, 체험실, 세미나실, 문인실, 휴게실, 사무실, 수장고들로 나뉘어서 가람선생의 생전 작품들과 그의 흔적들을 담으려고 하였지만... 왠지 깔끔한 짜임보다는 그냥 전시만 하였다는 느낌을 받았을 뿐이다.
둘러보고 나오면서 프론트에 앉아있는 직원에게 혹시 이곳에서 판매하는 가람의 서적들이 있는지를 물었더니, 그런 것은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여러 종류의 작품들을 쓰신 학자 작가셨는데, 그중에 몇 책이라도 가져다 두고 현장에서 스탬프를 찍어 판매를 한다면 시내의 서점에 가는 번거로움을 덜 수 있어서 좋을 것이고, 샘플을 보고 주문서를 받아서 익산시 나 문학관에서 택배로 보내준다면 어떻겠느냐고 건의하였고, 관리의 소홀함에 대한 성의를 부탁하며 가람문학관의 순례를 마쳤다.
돌아서 나오는 길목에 가람선생이 않아서 독서를 하는 부론즈 좌상이 있어 들여다보니.. 참, 단아한 늙은 선비학자를 보는 것 같아 나도 저렇게 늙었으면~~ 하고 속웃음을 지었다.
생가 쪽으로 들어올 때는 가람문학관, 가람생가라고 쓴 커다란 입간판의 앞면만 보았는데, 돌아서 내려오며 뒷면을 보았더니...
이수인 곡으로, 우리가 흔히 가곡으로 부르던 “바람이 서늘도 하여~~”라는 “별”이 새겨져있어, 나지막하게 노래를 한곡 부르고 내려왔다.
그동안 가까이 있으면서도 가보지 못하고, 숙제를 마치지 않은 듯이 찝찝하던 가람의 방문은 가을에 제대로 한 가깝고도 먼 문학기행이었다.
그러나 문학인이라는 예술인에 대한 대우가
점점 사라져가고 있는 독서대한 관심도의 하락과 더불어 치부를 본 것 같아 아니 본만 못하기도 한 것 같았다.
이제는 언젠가는 “영랑”을 찾고 “목월”을 찾고, “효석”을 찾아 떠났으면 싶다.
첫댓글 유옹 송창재 작가님!
가장 글이 잘 써지는 계절!
알찬 가을을 보내고 계십니다
오랜만에 수필 다운 수필을 읽었습니다
귀한 선물을 받은 기분이네요
특히 가람 이병기님의 생가를 찾으셔서
못 가본 저는 신기했습니다
함께 동행한 것 처럼 소상하게 써주셔서
생전에 그 분의 모습을 뵙는 듯 했습니다
이제 가을입니다
그 분의 '풀벌레'가 생각나네요
'자세 들으면 이놈의 소리 저놈의 소리 다 다르구나.'
하는 싯귀절이 생각나 가신 님에 대한 긴 여운을 남기고
주신 수필이 그리움으로 남습니다
귀한 글 주셔서 감사합니다
더욱 향필하세요.
추천 드립니다.
자세히 들으면 이놈, 저놈다르죠!
이제 가을이 깊어가면
그놈이 그놈이고
저놈이 저놈이랍니다.
멋진 가을 되시기를!